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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여전히 예쁘네 (2/103)

#2화. 여전히 예쁘네2021.08.05.

주헌의 입에서 5년 동안 내내 억눌렀던 이름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16549796104788.jpg“……!”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를 본 순간, 여자의 새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16549796104788.jpg“여긴 어, 어떻게…….”

지안이 흠칫 놀라며 뒤로 주춤거렸다. 아. 꿈이 아니다. 꿈에서 늘 제게 뒷모습만 보이던 유지안이 저를 보고 놀라는 걸 보면. 주위에서 날아드는 호기심 어린 시선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주헌은 느릿한 걸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지안의 앞으로 다가갔다.

16549796104798.jpg“오랜만이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음성. 하지만 지안은 모를 것이다. 지금 주헌이 얼마나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지안을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마주치는 날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를.

16549796104798.jpg“잘 지냈어?”

픽, 웃는 소리와 함께 주헌의 입매가 비스듬히 위로 휘었다. 재회 장소가 웨딩숍이라니. 그의 눈빛은 스치기만 해도 아릴 만큼 차가웠다.

16549796104788.jpg“주, 주헌 씨…….”

그리웠던 목소리에 심장이 뜨끈해진다. 억지로 덮어둔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단념할 수가 없어서. 무슨 짓을 해도 포기가 되질 않아서. 혹여라도 ‘운명’이란 게 있어 다시 재회하게 된다면, 그리고 만약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는 일 따윈 없을 거라고.

16549796104798.jpg“여전히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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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입술을 비스듬히 올리며 말했다. 주헌의 시선에 갇혀버린 것처럼, 지안이 그를 바라보며 파르르 떨었다. ** 똑똑.

16549796104823.jpg“선생님.”

노크 소리와 함께 윤 실장이 모습을 빼꼼 드러냈다. 한창 스케치 작업에 빠져 있던 지안이 얼굴을 들어 윤 실장을 쳐다봤다.

16549796104823.jpg“대표님이 찾으세요.”

16549796104788.jpg“지금? 나를요?”

16549796104823.jpg“네. 잠깐 내려오시라고…….”

지안이 1층으로 내려가는 일은 드물었다.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이 있는 2층 이곳에서 보냈다.

16549796104823.jpg“박세은 신부님 머리 장식도 가지고 오라고 하시던데. 어디에 두셨어요?”

윤 실장의 말에 자신을 찾는 건 대표가 아니라 고객임을 눈치챈 지안이 실내용 슬리퍼를 벗고 스틸레토 힐에 발을 밀어 넣었다.

16549796104788.jpg“아, 그건 내가 가지고 내려갈게요.”

그러고는 의자를 뒤로 밀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안은 선반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를 꺼내 윤 실장에게 살짝 들어 보이며 미소 지었다. 지안이 신부를 위해 오랜 시간 공들인 머리 장식. 이를 보고 기뻐해 주면 좋을 텐데. 자신의 손으로 신부의 가장 행복한 날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이 일이 지안은 무척 좋았다.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아 넘긴 지안은 상기된 얼굴로 1층으로 향했다.

16549796104788.jpg“대표님.”

대표 이연을 보며 지안이 생긋 웃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온 묵직하고 낮은 음성. 온몸에 소름이 일어났다.

16549796104798.jpg“유지안.”

귀에 익은 목소리.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던 목소리였다. 지안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16549796104788.jpg“……!”

시선이 엉키자 너무 놀라 심장까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야수 같은 눈매는 여전했다.

16549796104788.jpg“여긴 어, 어떻게…….”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당신이 왜 여기에. 그였다. 제 심장을 지배하는 남자, 강주헌.

16549796104798.jpg“오랜만이네.”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며 그가 입꼬리를 휘었다. 먹잇감을 사지로 몰아넣고 여유롭게 다가오는 포식자처럼. 뛰어넘을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높은 벽처럼 자신을 포위해오는 그가 버거웠다. 여기서 마주치다니. 왜 하필, 여기서. 지금. 지안의 시선이 떨렸다. 아래로 떨군 시야에 들어온 바닥이 울렁거렸다.

16549796104798.jpg“잘 지냈어?”

붉은 입술이 벌어지고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지안의 귓바퀴를 감쌌다. 떨리는 눈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그의 연갈색 눈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에 삼켜질 것만 같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꼼짝도 못 하게 만드는 그 시선에 사로잡혀 지안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켰다.

16549796134662.jpg“어? 주헌 씨!”

정적을 뚫고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드레스룸 커튼이 젖혀지고 화려한 골드 비즈가 들어간 웨딩드레스를 입은 세은이 주헌을 반갑게 맞이했다. 모두의 시선이 세은을 향한 사이, 지안은 그대로 몸을 돌려 숍을 뛰쳐나갔다.

16549796134662.jpg“많이 바쁘다고 들었는데. 와줬네요?”

주헌이 못 올 수도 있을 거라고 미리 귀띔한 건 제 어머니일 터였다. 그럼에도 그를 결국엔 이곳까지 오게 만들어 세은이 더더욱 감격하게 만드는 것 또한 김 여사의 계산임을 그는 알았다.

16549796134662.jpg“어때요? 예쁘지 않아요?”

세은이 뺨을 붉히며 주헌에게 물었다. 사랑에 푹 빠진 듯한 얼굴로 웃는 세은의 얼굴을 보자 속이 거북해졌다. 진하게 풍기는 독한 향수 냄새에 넌덜머리가 났다. 어린아이 손바닥 크기의 레이스가 한화로 20만 원을 호가한다는 프랑스의 명품 레이스와 유럽에서 직수입한 최고급 은사로 제작된 드레스. 주헌의 눈엔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본인에게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세은의 모습은 주헌을 더욱 질리게 만들었다. 지금 그의 온 신경은 숍을 뛰쳐나간 지안을 향하고 있기도 했고. 철저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주헌은 태연하게 행동했다.

16549796104798.jpg“정이연 대표 작품입니까? 정 대표가 만드는 드레스 디자인은 세련됐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그쪽이 걸친 옷은 왜 그 모양이냐는 뜻이 함축된 말이었다.

16549796134662.jpg“주헌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이 자수 좀 봐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난 화려한 게 더 좋아서 비즈랑 자수를 더 많이 넣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렇게 하길 잘한 것 같아.”

주헌의 말을 칭찬으로 들은 모양인지, 세은은 자신이 의견을 피력한 덕분에 아름다운 약혼식 드레스가 탄생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이연은 민망하면서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보나 마나 이연이 말렸음에도 억지를 부리며 화려하게 해달란 것이 분명했다.

16549796134662.jpg“아, 맞다. 저번에 티아라 제작한 건 어떻게 됐어요? 드레스 입은 김에 그것도 써보고 싶은데.”

저 번쩍번쩍 눈살 찌푸리게 하는 반짝이에 티아라까지? 어이가 없어 주헌의 붉은 입술 새로 비웃음 섞인 조소가 터져 나왔다.

16549796162387.jpg“아, 내가 깜빡하고 있었네. 참, 우리 유 쌤이 세은 씨 드레스를 보고선 어울리는 헤어 장식을 하나 만들었는데 굉장히 잘 나왔지 뭐예요. 티아라랑 그것도 한번 써볼래요?”

짜증이 묻어나는 주헌의 기색을 읽은 이연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일부러 더욱 밝게 행동했다. 그때, 세은이 무언가 생각난 듯 이연에게 물었다.

16549796134662.jpg“제 본식 날 입을 피로연 드레스 디자인해주셨다는 분이죠? 오늘 숍에 계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인사도 할 겸 시간도 이때로 맞춰서 온 건데.”

지안이 서 있던 곳엔 그녀의 향기만 남아 있었다. **

16549796104788.jpg“하아…… 하아…….”

[YEON]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다다라서야 지안은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고 말았다.

16549796104788.jpg“그 사람이 어떻게…….”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6549796104788.jpg“후…… 어떡하지.”

자신이 갑자기 뛰쳐나와 버려 곤란해졌을 이연에게 미안했다. [YEON]에서 일한 지 겨우 4개월 차였다. 이연과는 미국에서 만난 사이였다. 한국인이라는 유대감과 두 사람 모두 의상 디자인 전공자라는 점.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까지.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졌다. 그러다 이연은 국내로 돌아와 [YEON]을 론칭했다. 기반이 잡히자, 이연은 지안에게 함께 일하자며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한국에 다시 발을 내딛는 게 쉽지 않아 고사했지만, 이제는 그도 저를 다 잊고 살겠지 싶어 이연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다. 지안은 탁월한 실력과 다양한 소재들을 감각 있게 믹스 매치하여 웨딩드레스를 만들어냈다. 인생의 새 ‘챕터’를 시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이제 이루는가 싶었다. 그랬는데…….

16549796104788.jpg“결혼……하는구나.”

우습게도 자신의 직업이 오늘만큼은 싫었다. 심장 한구석이 찌르르하게 아려왔다.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다. 재벌가의 후계자가 평생 독신으로 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어찌 보면 천하의 강주헌이 아직까지 미혼인 게 이상할 정도였다. 원하면 무엇이든 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는 모두가 선망하고 탐내는 남자였으니까. 문득 드레스를 입은 세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력적이고 예쁜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세상에서 그 어떤 절망도 겪어보지 못한 밝은 얼굴. 평생을 양지에서만 산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지안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16549796104788.jpg“박세은 씨가 주헌 씨의 약혼녀라니…….”

먼저 떠난 건 자신이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해서 떠난다는 편지를 남겨두고 갔으니 그의 자존심도, 사랑도 큰 스크래치가 났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가 좋은 상대를 만나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데 막상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걸 알게 되니 감정이 동요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주헌은 여전히 근사하고 강렬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지. 그 남자를 버린 건 나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자격조차 없는데.

16549796104788.jpg“잘, 어울렸어.”

누가 봐도 강주헌 옆자리는 세은이 어울렸다. 애초부터 사는 세계가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재회할 일은 영영 없을 줄 알았다. 설령 그렇다 한들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도 자신도 모두 마음을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쳐다보던 그의 눈빛이 뇌리에서 삭제되질 않았다. 저를 책망하는 그 눈빛에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그래, 내가 밉겠지.

16549796104788.jpg“이번 웨딩 작업만 끝나면 뭐, 다시 보게 될 일도 없을 테니까.”

한때 제 연인이었던 남자의 결혼식 드레스를 제 손으로 준비하는 모양새라니. 그에게 상처를 주고, 그의 고귀한 사랑을 버린 데에 대한 벌인 거겠지. 입안이 쓰디썼다. 위잉-.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액정을 본 순간, 지안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조금 전까지의 씁쓸하고 어둡던 표정은 마치 거짓이었다는 듯이. 어느새 지안은 세상의 모든 사랑을 끌어안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주헌을 만나 놀라고 충격받았던 것들이 모두 허상이었던 것처럼. 지안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16549796104788.jpg“전화했네, 내 사랑.”

그 사랑은 이제 지안에게 전부인 존재였다. 강주헌이 아니라. ** 한편, [YEON]의 분위기는 오묘하기 그지없었다. 주헌을 보곤 얼어 굳어버리더니 잡을 새도 없이 숍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 지안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참이 흐르고도 지안이 사라져버린 그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16549796162387.jpg“대표님 예복도 완성되었는데. 피팅 한번 해보시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세은의 눈치를 보며 이연이 묻자 주헌의 얼굴이 더욱 매섭게 일그러졌다. 그는 이곳에서 예복을 만든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눈썰미 뛰어난 디자이너라 한들 이연은 주헌의 치수를 당연히 몰라야 했다. 한데 당사자 없이 예복을 만들었다?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16549796104798.jpg“또 저희 어머니입니까.”

주헌의 말에 이연의 얼굴에 살짝 난처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 대신 은근슬쩍 화제를 바꾸는 노련함을 내보였다.

16549796162387.jpg“세, 세은 씨. 티아라 좀 봐요. 머리 위에 올려 볼까요? 너무 예쁠 것 같은데.”

이연이 세은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티아라를 벨벳 상자에서 꺼내 보여주며 물었다.

16549796134662.jpg“어머, 예뻐라.”

다행스럽게도 단순한 세은은 금세 티아라에 집중하며 빠져들었다.

16549796162387.jpg“윤 실장, 티아라 착용하는 거 도와드려요.”

세은의 관심이 수그러들지 않도록 이연이 윤 실장에게 어서 손을 보태란 눈짓을 보냈다. 지안과 주헌 사이에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사연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간파한 이연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차갑기 그지없는 강주헌 대표가 저런 눈빛을 띠고 있진 않을 테니까.

16549796162387.jpg‘저건 영락없는 남자의 눈빛이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주헌이 제게 물어선 안 될 것들을 물을 것 같아 이연이 몸을 돌렸다. 세은이 커튼 너머 피팅 공간으로 사라진 사이, 그가 느릿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16549796104798.jpg“유지안.”

주헌의 시선이 이연의 뒤통수에 들러붙는 것이 느껴졌다. 이연은 최대한 무감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16549796104798.jpg“조금 전 그 사람, 여기 직원입니까?”

매끄럽고 붉은 입술이 달싹이자 이연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16549796162387.jpg“아, 네. 유지안 씨는 저희 디자이너예요.”

16549796104798.jpg“디자이너?”

주헌이 되묻듯 읊조렸다.

16549796162387.jpg“네. 실력도 좋고 디자인하는 감각도 훌륭한 친구라 제가 많이 아끼고 있어요. 근면 성실한 건 두말할 것도 없고요. 저렇게 두루 다 갖춘 사람, 의외로 찾기 어렵거든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연의 말에 그가 픽, 웃어버렸다. 근면 성실. 유지안이라면 분명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그래서. 도망친 것도 그렇게 열심히 한 거였나. 3년이나 찾아 헤매도 못 찾게 만들 만큼.

16549796162387.jpg“상황만 괜찮았으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친구인데 안타까워요.”

아쉬운 마음에 이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16549796104798.jpg“상황이. 어떻다는 겁니까?”

16549796162387.jpg“아무래도 아…….”

아차, 싶어 이연이 말끝을 흐렸다.

16549796104798.jpg“아?”

이미 한겨울의 시베리아 같은 그의 얼굴이 더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고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도가 튼 이연이지만, 이상하게도 주헌의 앞에선 위축되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16549796162387.jpg“제가 실언했네요. 저…… 죄송하지만, 저희 직원의 개인적인 부분은 아무리 강 대표님이라 해도 함부로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중한 이연의 사과에 주헌은 미간을 풀지 않은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 되었건, 지안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으니.

16549796104798.jpg“뭐, 좋습니다.”

주헌이 선선히 물러났다.

16549796104798.jpg“내가 알아서 하죠.”

못 알아내는 것도 아니고. 유지안이 한국에 있는 걸 알았으니,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주헌을 바라보는 이연이 마른 침을 삼켰다. 지안은 친동생처럼 아끼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함부로 주헌에게 지안에 대해 알려줄 수 없었다.

16549796162387.jpg‘내가 사고 친 게 아니어야 할 텐데.’

평소에도 입조심을 하려 굉장히 조심하는 이연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여느 때 같았다면 하지 않았을 실언을 하고 말았다. 어느새 티아라를 쓴 세은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여전히 차갑게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에 세은의 얼굴도 와락 구겨졌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16549796134662.jpg“주헌 씨. 나 배고픈데, 우리 저녁 뭐 먹으러 갈까요?”

빙긋 미소를 띤 세은의 물음에 주헌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16549796134662.jpg“나는 파스타랑 와인이 좋을 것 같은데. 주헌 씨는요?”

16549796104798.jpg“…….”

이에 무안해진 세은은 씨근덕거리며 다시 드레스룸 안으로 들어갔다.

16549796104798.jpg“박세은 씨한텐 먼저 간다 전해주시죠.”

세은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헌이 이연에게 말했다.

16549796104798.jpg“아. ……유지안 씨가 정 대표한테 소중한 사람이길 바랍니다.”

김 여사에게 자신이 그녀에 대해 물어본 걸 함구하란 뜻이었다. 제 어머니가 알게 되어봤자 좋을 일 하나 없을 게 뻔하니. 이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 . 숍을 나서자 구 실장이 급히 통화를 종료하고 주헌에게 다가와 자동차 뒷문을 열어주었다.

16549796104798.jpg“다이나 호텔로 가지.”

차가 움직이고, 주헌은 뻐근한 뒷목을 헤드레스트에 기댔다. 시야에 들어온 구 실장의 뒷모습을 보던 주헌의 미간이 불편한 듯 살짝 구겨졌다.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주헌은 핸드폰을 톡, 톡, 두드리며 누군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16549796104798.jpg[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어. 그리고 아무래도 출근 날짜 좀 당겼으면 싶은데.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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