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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나도 죽겠어 (62/103)

#62화. 나도 죽겠어2022.03.03.

당황한 김 여사가 허리에 둘린 윤환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16549812076963.jpg“이거 놔요!”

16549812076969.jpg“가만히 있어. 당신 구두 굽이…….”

16549812076963.jpg“놓으라고요!”

버둥거리는 김 여사의 심장이 빠르게 박동했다. 윤환에게서 벗어난 김 여사는 다시 한번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16549812076963.jpg“읏……!”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넘어지겠구나 싶었는데. 아까보다 더 강한 힘으로 김 여사를 끌어안은 윤환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16549812076969.jpg“가만히 있으라니까. 구두 굽 부러졌어.”

16549812076963.jpg“…….”

윤환은 무릎을 굽히더니 굽이 부러진 구두를 김 여사의 발에서 벗겨냈다. 발에 닿은 그의 손에 움찔거린 김 여사가 재빨리 발을 뒤로 빼려 했지만, 윤환이 한 발 더 빨랐다. 김 여사의 발 곳곳을 살피던 그가 눈을 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16549812076969.jpg“다행히 다친 곳은 없네. 삔 것 같지도 않고.”

16549812076963.jpg“…….”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본 게 얼마 만이었더라. 당황한 기색을 지우며 김 여사는 불퉁한 어투로 말했다.

16549812076963.jpg“날 설득할 생각이라면 포기해요.”

평생 단 한 번도 제 뒤를 쫓아온 적 없는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이토록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 이영원, 그 여자 때문일 게 뻔했다. 윤환이 김 여사의 손목을 살며시 그러쥐며 설득했다.

16549812076969.jpg“주헌이 만큼은 우리처럼 만들지 말자고.”

16549812076963.jpg“……우리처럼이라는 게 어떤 건데요?”

외줄 타기 하듯 늘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부부관계. 다 알면서, 윤환의 죄책감을 부추기기 위해 김 여사는 모르는 척 굴었다.

16549812076963.jpg“파탄 난 우리 관계가 내 탓이에요?”

16549812076969.jpg“…….”

뾰족하게 튀어나온 원망은 세월을 거듭하며 켜켜이 쌓여 무성한 바늘 숲이 되었다. 상처받는 것이 지긋지긋해진 그녀의 마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을 찌르는 모난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16549812076963.jpg“나는, 싫어요.”

죽어도 싫어. 싫다고. 김 여사의 입술이 고집스레 맞물렸다.

16549812076969.jpg“…….”

거칠어진 윤환의 숨결이 김 여사의 뺨에 닿았다.

16549812076963.jpg“남편도 그 여자한테 빼앗겼는데. 아들마저 빼앗기란 소리예요?”

그러면 내 삼십 년은. 내내 참기만 한 내 시간은 누가 보상해주는 건데.

16549812076969.jpg“재경아.”

16549812076963.jpg“내 이름, 부르지 말아요.”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내 이름을 불러. 원망 어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김 여사의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16549812076963.jpg“당신도 그래요.”

차라리 미워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남편인 윤환을 미워하려 애쓰던 시간들이 그와 한 번 맞닿은 것만으로도 물거품이 되려 했다.

16549812076963.jpg“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일말이라도 있어요?”

평생을 이영원, 그 여자만 바라본 주제에. 자신도 없어서 그 여자에게 마음도 제대로 고백 한 번 못했던 주제에.

16549812076963.jpg“다른 사람은 다 그런 소리 해도, 당신이 정말 나한테 미안하면…… 당신만큼은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지.”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김 여사는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16549812076963.jpg“……당신만큼은 내 마음을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16549812076969.jpg“……미안하다.”

윤환의 손이 김 여사의 등을 감쌌다. 이를 밀어낸 김 여사는 두 주먹으로 윤환의 가슴을 퍽, 퍽, 쳤다.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데도 그는 김 여사의 주먹질을 모두 받아 냈다.

16549812076963.jpg“이제 와서 미안해? 그냥 차라리 끝까지 뻔뻔하게 굴어!”

그래야 당신을 미워하는 데 죄책감이 들지 않을 테니까.

16549812076963.jpg“다 싫어. 강화 그룹도, 아버님도, 당신도!!! 그리고 이영원도……!”

윤환의 가슴에 쏟아내던 주먹질이 점차 느려지더니 김 여사가 힘없이 두 팔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16549812076963.jpg“정말이지, 다 싫다고요…….”

울분 섞인 목소리가 짓씹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사랑에 뺨을 붉히고 윤환을 보며 설레어하던 여자는 더 이상 없다. 결혼에 실패한 김 여사에게 남은 건 악과 몸의 화상 흉터뿐. 숨을 가다듬으며 김 여사는 윤환의 가슴을 밀어냈다. 한쪽 발에 남아 있는 구두를 마저 벗은 후, 몸을 숙여 이를 집어 든 김 여사의 눈빛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16549812076963.jpg“당신도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요. 이혼 서류 제대로 도장 찍어서 강 비서한테 전해주는 거 잊지 말고요.”

16549812076969.jpg“여보.”

16549812076963.jpg“그 같잖은 소리도 이젠 집어치워요. 우리, 그런 호칭으로 부를 만큼 정겨운 사이 아니잖아요.”

내가 흘려온 눈물이 얼만데. 그걸 생각해서라도 김 여사는 조금도 물러설 생각 따위 없었다.

16549812076963.jpg“창립 기념 행사. 그 날 주헌이 결혼 발표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김 여사는 맨발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 김 여사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높은 온도 때문인지 눈가에 맺혔던 물기는 어느새 말라 있었다.

16549812076963.jpg‘지긋지긋해.’

누군가는 저더러 독하다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눈물도 없다고. 관용하는 법도 모른다고. 차에 올라탄 김 여사는 긴장했던 등허리를 풀며 자세를 느슨히 했다.

16549812076963.jpg“이제 와서 용서,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이 심장의 두근거림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 진절머리나는 두근거림은 정말이지 더 이상 싫은데.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심장을 도려내 버리고 싶었다. ** 그 시각. 영월에서는 누군가가 사회로 복귀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16549812076969.jpg“2상 8 – 2831. 석방.”

덥수룩했던 수염을 잘라내고, 야구 캡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배낭을 메고 철문 밖으로 나섰다.

16549812076969.jpg“씨x. 날씨 한번 더럽게 좋네.”

목을 긁어내는 소리와 함께 침을 바닥에 뱉으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16549812076969.jpg“딱 기다리고 있어라, 유지안.”

오늘 날씨처럼 내가 즐겁게 해줄 테니까. 남자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달렸다. ** 오랜만에 윤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의 동생 윤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또다시 친정에 온다는 거였다.

16549812166347.jpg‘조카들이 하준이랑 유원지 갔던 게 재미있었나 봐. 이번에 캠핑 간다는데 하준이도 데려갈까 해서.’

  엄마랑 떨어지는 걸 불안해하지 않을까 싶어 하준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아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방방 뛰었다.

16549812166351.jpg‘엄마! 하준이 가고 싶어요! 갈래! 갈래!’

  신이 난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우면서도 엄마만 찾던 아이가 훌쩍 커 제 품을 떠나려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16549812166355.jpg‘나도 참.’

그렇게 하준은 씩씩하게 윤희의 손을 잡고 캠핑장으로 떠나고. 주말은 자연스레 지안과 주헌, 단둘만의 시간이 되었다.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오붓하게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고. 여느 연인처럼 한강의 유유자적한 강물을 따라 산책을 한 후. 당연한 순서처럼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은 채 주헌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 당연한 듯,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일렁거리는 욕망으로 뒤덮인 눈을 한 주헌이 입꼬리를 길게 늘이며 말했다.

16549812166359.jpg“안 재워.”

날 이렇게 불 지펴 놓고선. 난 한숨도 못 잤는데. 오늘은 당신도 못 자.

16549812166359.jpg“책임은 져야지.”

슬립을 들추며 안으로 천천히 파고드는 손길에 지안은 아랫배가 지글지글 끓는 자극을 느꼈다. 침대 주변에 설치된 은은한 간접조명에 의지한 채 두 사람의 농밀한 키스가 시작됐다.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뒤엉킨 입술. 도톰한 감촉이 지안의 입안으로 파고들었다. 뜨겁다. 아찔한 온도에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이 기분. 어떻게든 버텨보려 가느다란 팔로 주헌의 목을 안았다. 그 행위가 주헌을 더 들끓게 만들었는지, 맞물린 입술 사이로 더욱 질척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로를 향한 욕망. 부끄러워하면서도 지안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에 열렬히 반응하자 주헌 역시 입술 사이를 벌리고 파고드는 움직임이 더욱 강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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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겨우겨우 삼켰다.

16549812166359.jpg“참지 마.”

입술까지 깨물며 견디는 지안을 유혹하듯 속삭였다.

16549812166355.jpg“싫어.”

주헌은 언제든 흐트러짐 없었다. 침대 위에서 뜨겁게 몸을 겹칠 때조차도. 언제나 자신만 흐느끼고, 무너져 내리는 게 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이렇게나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데.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느라 벅차 죽겠는데. 가쁜 숨을 내쉬는 것도 여의치가 않은데. 주헌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16549812166355.jpg“너무해.”

지안이 얼굴을 그의 어깨에 묻으며 중얼거렸다.

16549812166359.jpg“뭐가.”

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저 눈빛도 그랬다. 평소보다 조금 더 붉게 물들어 있을 뿐. 냉정하고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16549812166355.jpg“나는 이렇게 따라가기 버거워 죽겠는데.”

16549812166359.jpg“나도 그래.”

새빨간 거짓말. 강주헌은 거짓말쟁이다.

16549812166359.jpg“나도 죽겠어.”

아닌 거 다 아는데. 사람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눈매와 무감한 얼굴이면서. 검푸른 핏줄이 불거진 관자놀이만 빼면 평소와 똑같으면서.

16549812166359.jpg“못 믿겠다는 얼굴이군.”

아아. 열기에 들떠 평소보다 조금 더 가라앉은 음성도 제외.

16549812166359.jpg“자.”

지안의 귓불에 가까이 대고 그가 속삭였다.

16549812166359.jpg“확인해 봐.”

지독하게 섹시한 음성으로. 주헌이 지안의 손을 들어 제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댔다. 쿵. 쿵. 쿵. 쿵. 천둥이 내리치는 것처럼 엄청나게 큰 울림이었다. 그 속도도 얼마나 빠른지. 지안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16549812166359.jpg“확인은 여기까지.”

주헌의 손이 지안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슬립 끈을 내렸다. 그러자 목덜미부터 어깨, 그리고 팔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선을 감상하는 데 거슬리는 장애물이 사라졌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곳마다 붉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지안의 발끝까지 찌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눈을 들어 지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더욱 붉어져 있었다. 먹잇감을 제 손에 쥔 굶주린 짐승. 딱 그 눈빛이었다. 매번 받아들이기 버겁고 힘겨우면서도 지안은 거부하지 않았다. 싫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이 순간이 좋으니까. 넓게 펼쳐진 어깨는 다부졌고, 완벽하게 균형 잡힌 근육은 아름다웠다. 동양인에게선 더더욱 보기 힘든 두툼한 흉통의 피지컬. 그에게 제물로 바쳐진 유약한 존재가 된 기분에 휩싸이면서도, 곧 다가올 환희가 기대됐다. 체격이 커도 너무 큰 그 때문에 매번 받아들이기 버겁지만 지안은 몇 번이고 기꺼이 그의 먹잇감이 되고 싶었다.

16549812166355.jpg“저, 저기.”

그러나 막상 순간이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난 지안이 그를 저지하려 했다.

16549812166359.jpg“늦었어.”

달콤한 유혹을 속삭이며 그가 다가왔다. 유혹에 화답하듯 지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16549812166355.jpg“주헌 씨.”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입술을 부딪친 주헌이 작게 속삭였다.

16549812166359.jpg“안 들린다고.”

그가 덥석, 지안의 귀를 물었다. 그러더니 촉촉하게 젖은 입술로 지안의 귓불을 훑었다. 흡. 내몰아 쉬는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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