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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남자가 여자에게 옷을 선물하는 의미 (64/103)

#64화. 남자가 여자에게 옷을 선물하는 의미2022.03.10.

16549812508164.jpg“뭐라고요?”

지안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16549812508169.jpg“뭘 그렇게 놀라.”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주헌이 물었다.

16549812508169.jpg“나, 독수공방 계속 시킬 생각이야?”

하준이도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제일 걱정하던 큰 산까지 순탄히 넘은 마당에, 주헌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16549812508164.jpg“그런 건 아니지만…….”

여긴 한눈에 보기에도 억 소리 날만큼 너무 비싸 보인다고요. 원룸 월세도 여느 직장인의 월급을 통째로 갖다 바쳐야 할 만큼 비싸기로 알려진 동네였다. 그런 값비싼 동네에서 이런 엄청난 크기의 고급 단독주택이라니. 거대함을 넘어선 크기에 지안은 과하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강주헌의 손은 커도 너무 컸다. 지금 주헌이 살고 있는 집마저 초라하게 만들 만큼.

16549812508164.jpg“겨우 세 식구인데 여긴 너무 과해요.”

그러자 주헌이 냉큼 지안의 말을 가로챘다.

16549812508169.jpg“지, 금, 은, 세 식구인 거지.”

16549812508164.jpg“……?”

16549812508169.jpg“지, 금, 은.”

16549812508164.jpg“……!!!”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깜빡거리던 지안은 곧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지안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주헌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16549812508169.jpg“나는 딸도 갖고 싶어.”

부끄러움에 지안의 시야가 흐릿하게 이지러졌다. 내가 못 살아, 정말.

16549812508169.jpg“쌍둥이여도 좋고.”

이때는 기회다 싶어 주헌은 제 희망 사항을 늘어놓았다.

16549812508169.jpg“세쌍둥이여도 좋아. 하지만 그러면 너무 힘들 테니까, 당신 의사에 따를게.”

하준의 동생이 생긴다면 그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헌이 철석같이 붙어 지안을 돌보겠다 다짐한 그였다.

16549812508164.jpg“그래서 집 안 분위기도 밝게 한 거예요?”

어두운 모노 톤을 선호하는 주헌의 취향을 아는 지안이 물었다.

16549812508169.jpg“아무래도 아이가 있는 집은 밝은 편이 더 좋을 테니까.”

아들을 위해서 기꺼이 올곧은 제 취향도 버린 그였다. 깔끔하고 단조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취향과 달리 곳곳엔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물건들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환한 느낌을 주는 대리석, 화이트 톤 몰딩, 집안을 채우는 가구 또한 북유럽의 유명 친환경 가구 회사에서 주문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주헌은 하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거였다.

16549812508169.jpg“이리 와. 보여줄게.”

작고 하얀 손에 제 손을 엮어 넣으며 주헌이 어디론가 지안을 이끌었다. 양 문으로 되어 있는 독특한 곳을 눈으로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16549812508169.jpg“하준이 방.”

엄마로서 아이의 방이 궁금할 거라는 걸 아는 주헌은 부부 침실 대신 하준의 방을 먼저 보여주었다. 실은 지안이 이 집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그의 전략이었지만. 하준의 방에 들어선 지안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커다란 방 중심에 위치한 원목 침대. 아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침대 위에는 인형이 놓여 있었다. 더불어 아이의 시선에 맞춘 책장과 책상, 그리고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 줄 한가득한 장난감까지.

16549812508164.jpg“이거…….”

감격에 젖어 목이 메는지 지안이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16549812508164.jpg“주헌 씨가 다 준비한 거예요?”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까지 주헌이 심사숙고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16549812508169.jpg“내 자식을 위한 건데 누구 손에 맡겨.”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다정함에 코끝이 시큰거렸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이곳에 드나들었을 주헌을 생각하자 심장이 쿵덕쿵덕 요란하게 울렸다. 그때, 그가 말했다.

16549812508169.jpg“지겨워.”

느닷없는 주헌의 발언에 책장을 구경하던 지안이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16549812508169.jpg“혼자 잠드는 것도. 혼자 눈 뜨는 것도.”

아무리 분 단위 스케줄로 움직이는 바쁜 주헌이라지만, 그 와중에도 고독은 존재했다.

16549812508169.jpg“혼자 밥 먹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나.”

언제부턴가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는 행위는 맛을 느끼며 행복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생명 유지의 일환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먹는 데 소홀해졌다. 무얼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살아 있는 것조차도 무의미하다 여겼을 정도니까.

16549812508169.jpg“하지만 제일 못 견디겠는 건…….”

혼자라는 고독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無味)의 감각도 다 괜찮았다.

16549812508169.jpg“당신이 내 옆에 없다는 거야.”

정작 그를 미치게 만드는 건, 제 전부인 유지안의 부재였다.

16549812508169.jpg“유지안.”

부드러운 주헌의 음성에 지안의 이름이 실렸다.

16549812508169.jpg“앞으로 나랑 여기서 살아주겠어?”

벽에 살짝 머리를 기대어 서 있는 주헌의 눈이 지안을 지그시 향했다.

16549812508164.jpg“…….”

16549812508169.jpg“이래 봬도 꽤 필사적인데, 나.”

아무리 애써도 지난 5년의 공백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아이를 품고 있던 아홉 달의 시간. 부풀어 오른 배를 따스하게 감싸 안고 다정한 태담 한번 건네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에도 옆에서 손을 잡아주기는커녕, 존재도 모르고 있었으며. 손수 젖병을 물리는 것도, 기저귀 갈아주는 것 하나 해주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아이가 최선을 다해 커가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원망만 했다. 아이가 배냇짓을 하고, 배밀이를 하고, 홀로 앉고, 서고. 아장아장 첫걸음을 내디디고. 아이가 말을 배워가는 동안 ‘아빠’란 말은 모른 채 자라게 만들었을 뿐. 이렇게라도 하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애정을 쏟고 싶었다.

16549812508164.jpg“……하준이가 무척 좋아할 거예요.”

그의 가슴에 이마를 살짝 대며 지안이 작게 소곤거렸다.

16549812508169.jpg“당신은?”

하준이 말고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는 물음에 지안이 얼굴을 그의 가슴에 밀착하며 말했다.

16549812508164.jpg“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그제야 안도한 주헌의 몸이 살짝 느슨해졌다. 품 안에 날아든 따스한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가 슬그머니 지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16549812508169.jpg“유지안…….”

16549812508164.jpg“후우. 오늘은 날씨가 제법 덥네요.”

슬쩍 그의 품을 밀어내며 빠져나온 지안은 손을 펄럭거리며 부채질을 했다.

16549812508164.jpg‘하마터면 또 휩쓸릴 뻔했어.’

몰래 숨을 내쉬며 지안이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제부터 스위치가 제대로 켜진 주헌의 눈빛은 굶주린 짐승의 것과 흡사했다.

16549812508164.jpg‘차단기 좀 제대로 내려줬으면…….’

있는 대로 그를 받아줬다간 머잖아 제 몸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언제나 극한의 쾌락까지 내몰리고 먼저 까무룩 잠들어 버리는 건 모두 그녀였기에.

16549812508164.jpg“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려나 봐요.”

창문을 통해 스며든 햇빛이 그대로 지안의 위로 쏟아졌다. 그러자 얇은 블라우스 속의 여린 실루엣이 흐릿하게 비췄다. 투시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옷 속에 숨겨진 달콤함이 속속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부유한다. 살짝 더위를 느낀 지안이 긴 머리를 한데 모아 손으로 살짝 집자 주헌이 중얼거렸다.

16549812508169.jpg“이젠 하다 하다 이런 식으로 꼬시나.”

당장 목덜미에 얼굴 박고 싶어지게. 마음 같아선 단추를 풀고, 치마 아래에 가려진 다리 사이에 제 몸을 밀착하고 싶었다. 주헌의 눈빛이 또다시 위험하게 일렁였다.

16549812508164.jpg“주헌 씨. 여긴 하준이 방이라고요.”

아이의 방이니 어른의 시간은 안 된다는 말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지안의 하얀 목에 입술을 내리던 주헌의 행동이 뚝 하고 멈추었다. 그래. 여긴 아이의 방이지. 그렇다면…….

16549812508169.jpg“그럼 어른의 방으로 갈까.”

주헌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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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층으로 올라서자 1층의 거실보다는 조금 작은 패밀리룸이 있었다. 미니 거실처럼 개방되어 있는 이곳은 천장에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 하늘이 또렷하게 잘 보였다.

16549812508164.jpg“밤에 별 보면 예쁘겠어요.”

16549812508169.jpg“별 볼 시간이 어디 있어.”

그가 어른의 시간을 즐겨야지, 라는 눈빛을 했다. 얼굴을 붉히면서 주헌을 향해 지안이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16549812508169.jpg“여기가 마스터 베드룸.”

주헌이 손가락으로 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마디로 부부의 침실이라는 거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눈에 봐도 엄청난 크기의 침대가 떡하니 정 중앙에 놓여 있었다. 성인 다섯 명이 편히 누워도 남을 만큼 큰 침대를 보며 주헌은 즐거워 보였다.

16549812508164.jpg“침대가…… 너무 큰 거 아니에요?”

16549812508169.jpg“거거익선.”

거대할수록 좋다는 말. 요즘 세대 사람들에겐 가전은 클수록 좋다는 말로 통하지만, 주헌에게는 그 뜻이 살짝 남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침대만큼은 무조건 크고 봐야 한다는 그의 의지를 대변하는 말이랄까. 주헌은 너무도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16549812508169.jpg“커야 제약 없이 많은 걸 할 수 있을 테니까.”

16549812508164.jpg“마, 마, 많은 걸 하다니. 뭐를……!”

당황한 지안과 달리 주헌은 작게 미소 지었다.

16549812508169.jpg“글쎄. 정 궁금하면 지금 당장부터 알려줄 수도 있는데.”

농담이라는 걸 알지만 주헌의 눈빛은 진심 같아 지안의 등에선 식은땀이 절로 났다. 워. 워. 진정하라고요.

16549812508169.jpg“마음 같아선 누구 씨가 도망 못 가게 슈퍼 싱글로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매일 밤 제 품 안에 꼭 안겨 잠들게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매일 밤 서로의 다리가 얽히고설킨 채 눕게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지안의 체온과 향기에 흠뻑 취한 채 밤을 맞이하고 싶었다. 어느덧 지안의 등이 벽에 닿고. 그녀의 몸 양쪽엔 주헌의 단단한 팔이 벽처럼 견디고 섰다.

16549812508164.jpg“오늘은 그만…… 봐줘요.”

허리가 못 버틸 것 같다고요. 지안의 숨결이 주헌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16549812508169.jpg“키스해주면.”

16549812508164.jpg“……?”

16549812508169.jpg“키스해주면 봐줄게.”

그러기 전까진 절대 비켜서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은 비장한 눈빛. 이내 살짝 고민하던 지안은 결국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까치발을 했다. 초옥. 까치발을 하고도 그의 입술까지 닿기엔 역부족이라 손으로 다부진 목을 끌어안았다. 수줍음 가득하면서도 생생한 열기가 느껴지는 입술. 잡아먹을 듯한 키스는 아니지만, 주헌은 기쁜 듯이 입술 끝을 휘었다.

16549812508169.jpg“보여주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어.”

아쉬움을 뒤로하며 물러선 주헌이 침실과 붙어 있는 드레스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16549812508169.jpg“여긴 당신이 직접 열어 봐.”

내부를 꼭꼭 감추고 있는 문 앞에 선 주헌의 눈매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가 시키는 대로 드레스룸의 슬라이딩 도어를 옆으로 밀자, 환한 내부가 드러났다. 그리고……. 보란 듯이 마네킹 위에 걸려 있는 드레스가 보였다. 은은한 펄 감이 가득한 우아해 보이는 드레스. 화려한 레이스까지 레이어드된 이건 그저 단순한 드레스가 아니었다.

16549812508169.jpg“그걸 입고 법적으로 내 여자가 되어줬으면 해.”

웨딩드레스. 주헌이 준비한 건 다름 아닌 웨딩드레스였다.

16549812508164.jpg“주헌 씨.”

지안에게 다가간 주헌이 속삭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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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812508169.jpg“그거 알아?”

16549812508169.jpg“남자가 여자에게 옷을 선물하는 의미.”

16549812508164.jpg“……?”

16549812508169.jpg“자신이 선물한 옷을 입은 여자를 벗기고 싶단 뜻이라는 거.”

1654981250816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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