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8/156)

* * *

용의 레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뼈는 추린다 했다.

자, 그러니까 침착하자. 침착하게, 만약 카이사르가 납치된 거라면 어디로 끌려갔을지 생각하는 거야.

“분명 매음굴로 끌려갔을 거야.”

나의 확신에 찬 추리에 레너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매, 매음굴?”

“이런 축제 기간에, 그것도 환한 대낮에 영업하지 않는 곳은 거기뿐이니까.”

“헬레나는 전하께서 누군가에게 끌려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야.”

갑자기 사라진 불길한 기척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수가 없어, 나는 그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마침 마차가 서 있을 장소로 이동하는 경로에, 매음굴로 이어지는 골목이 있다. 틀림없을 거다.

“그러면 어서 자작님을 찾아 데리고 가자!”

레너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아직 걸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자작님을 찾아와. 난 곧장 매음굴로 갈게.”

“뭐?! 너무 위험해!”

“만약 거기가 아니라면 얼른 다른 장소를 찾아 움직여야 해.”

“그러면 차라리 내가 거기로 가겠어!”

레너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글쎄. 마음은 갸륵하다만, 이렇게 순수한 오라버니를 벌써 그런 곳에 보내고 싶진 않은걸.

“오라버니가 자작님을 모셔오는 게 나아. 나보다 발이 빠르잖아.”

“하지만……!”

“오라버니. 내가 언제 허튼소리 한 적 있었어?”

나는 언제나 옳다.

레너드는 그 명제에 한 치 의심 없이 자랐다. 결국 레너드는 고갤 숙인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위험한 짓은 안 하겠다고 약속해 줘, 헬레나.”

“물론이야.”

지금의 나만큼 위험한 짓에 나서기 싫어할 사람은 없다고.

결국 레너드는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레너드는 해밀턴을 찾으러, 그리고 나는 매음굴을 향해 갈라졌다.

“하여튼, 이번 생에서도 편히 쉴 수가 없다니까, 내가.”

날 이렇게까지 고생시키고 무사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둘 거다, 카이사르.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내리막길을 달렸다.

* * *

매음굴은 도시 저지대에 있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고, 해가 들지 않아 곳곳에서 곰팡내가 났다.

“역시 낮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하군.”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이 모두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인기척이라고는 없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는 창녀들에게 빌어먹었던 적도 꽤 있었지.’

부랑아 시절의 얘기다. 창녀들은 인심이 후해서, 고급 과자 같은 것도 곧잘 나눠 주곤 했었으니까.

‘창녀촌에서도 빌어먹던 계집애가 황제 자리까지 오르다니. 전생의 나는 참 별일을 다 겪었구나.’

괜히 아련해지는 기분이군. 물론 장소도 상황도 추억에 젖기엔 영 적합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때, 골목 안쪽에서 와장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여 소리가 들리는 건물로 향해 갔다.

‘문이 잠겼어.’

당연하게도 문은 잠겨 있었다. 창문도 덧문을 달아 안이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는 사이, 건물 안에서 다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뒷문으로 들어가야겠다.’

보통 사창가 건물에는 뒷문이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일반인들은 쉬이 찾지 못할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나 있기 마련이지만…….

‘비렁뱅이 짓도 했던 나한테 사창가 뒷문 찾는 거야 우습지.’

나는 건물 사이의 좁은 틈새로 기어가 뒷문을 찾아냈다. 뒷문 역시 자물쇠로 잠겨 있었지만, 그 정도야 쉽게 딸 수 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선 내부는 공기가 서늘했다. 좁은 방이 양쪽으로 쭉 늘어선 구조였는데, 인기척은 가장 안쪽의 큰 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큰 방으로 가, 방문 틈새로 안을 엿보았다.

‘……있다.’

방 안에 카이사르가 있었다.

손이 묶여 구석에 앉아 있다. 상태를 보니 폭행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카이사르의 옆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칼로 찔러 죽이는 게 제일 빠르고 손쉽잖아?”

“멍청아, 그러면 살해당했다는 티가 나잖아. 사고사로 위장해야 한다고.”

“그러면 어쩌지?”

“으음……, 강에 빠뜨리자. 장마가 끝난 뒤라 강물도 불었겠다, 물가에서 놀다가 떠내려간 셈 치면 돼.”

“오, 그거 좋은 방법인데?”

좋긴 뭐가 좋냐, 나쁜 놈들.

애 앞에서 어떻게 죽일까를 토론하고 있다니. 아직 열네 살밖에 안 된 애가 가엾지도 않나? 야만적인 놈들 같으니라고.

“이, 이 나쁜 놈들! 내 몸에 함부로 손대면 너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묶여 있는 카이사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 패기는 인정할 만하다만,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눈가가 빨개진 것이 잔뜩 겁먹고 있는 티가 나고 말이지.

“어이, 조용히 못 해? 이게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하고 떠들어 대는 거야?”

남자 하나가 신경질을 내며 카이사르 옆에 쌓여 있던 물건을 발로 걷어찼다.

다시 한번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물건이 부서졌다. 카이사르가 겁에 질려 어깨를 떨었다.

아까 밖에서 들린 소리가 저거였구나. 음, 덕분에 위치를 알아낸 걸 생각하면, 카이사르의 패기를 좀 더 칭찬해 줘도 되겠는걸.

‘납치 후에 사고사로 위장하여 살해……. 단순한 강도단이 아닌 게 확실하군.’

쳇, 역시 내가 좀 더 주의를 해야 했는데. 요즘 너무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다 보니, 마음이 해이해져 있었던 탓이다.

‘강에 빠뜨릴 생각이라면, 당장 움직이지는 않겠구나. 해밀턴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어둠을 틈타 움직일 테니,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카이사르가 무사하다면, 괜히 내가 나서서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귀찮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꽥꽥 시끄러운데, 일단 지금 죽여 놓을까?”

으잉.

“엇, 강에 빠뜨릴 거라면서?”

“당연히 시체를 빠뜨리는 거지. 산 채로 던졌다가 살아 나오면 어쩌려고?”

젠장, 기분 나쁘게 치밀한 놈이네.

“목 졸라 죽일까? 음, 아냐. 그건 손자국이 남나? 질식시킬까?”

“봉투 같은 걸 씌워서?”

“그것보다 베개로 누르는 게 쉽지 않겠어?”

남자들이 진지하게 살해 도구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에 카이사르는 완전히 하얗게 질려 덜덜 떨었다.

‘망했다. 해밀턴이 올 때까지 못 기다리겠는데?’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교살이든 질식사든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이다. 해밀턴을 기다리다가 카이사르가 먼저 죽을 판이다.

‘지금 나로서는 두 놈을 다 상대하는 건 벅찬데.’

어떻게든 수를 줄이는 수밖에.

한 놈은 밖으로 유인하고, 그사이 한 놈을 처리한 후에, 다른 한 놈이 되돌아오기 전에 카이사르를 데리고 재빨리 튀자.

후우, 좋아. 완벽해.

작전을 세운 나는 건물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나무 의자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단 나무 의자를 박살 낸 후, 의자 다리를 집어 들었다.

‘가볍긴 해도 휘두르기 나쁘지 않군.’

좋아, 무기 획득. 나는 그걸로 눈에 보이는 살림살이와 창문을 다 깨부쉈다.

와장창.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건물 전체를 흔들었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소음에 남자들이 당황해하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빈방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야, 무슨 일인지 나가 봐.”

좋았어.

남자 하나가 상황을 보러 입구로 나갔다. 그사이 나는 카이사르가 있는 큰방으로 뛰어갔다.

“너, 넌 뭐야?!”

내 등장에 방 안에 있던 남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키 차이가 있으니 처음부터 급소를 노리는 건 무리다.

‘일단은 무릎부터!’

“하아압!”

“으악!”

허둥대던 남자는 내가 휘두른 의자 다리에 무릎을 맞고 주저앉았다.

요즘 난 레너드와 검 훈련을 하면서 체력이 꽤 붙었다 이 말씀. 부러지지 않았어도 뼈에 금은 갔을 거다, 아마.

물론 여기서 공격을 멈추면 안 된다. 나는 재빠르게 공격 방향을 바꿔, 눈높이가 같아진 남자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아아아악!”

남자가 비명과 함께 완전히 쓰러졌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젠장, 팔 근육 끊어질 것 같네. 역시 아직 10살인 몸으로는 한계가 있구나.

“헤, 헬레나?”

카이사르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적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소리쳤다.

“뭐 해? 일어나, 어서!”

“엇, 그, 그래!”

카이사르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이 묶여 있어 몸의 중심을 잡기 힘들어하기에, 내가 그의 한쪽 팔을 잡고 도왔다.

“여기, 뒷문으로!”

“네놈들, 뭐야!”

칫, 벌써 되돌아왔나?

입구 쪽으로 갔던 남자가 도망치는 나와 카이사르를 발견했다.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방에 쓰러져 있는 놈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

“뛰어, 카이사르!”

이 건물에서만 빠져나가면, 도망치든 숨든 좀 더 수월해진다. 사람 많은 길로 나가면 도움을 구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나간다.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뒷문을 열었는데―

“어, 뭐야? 이것들은?”

‘……젠장!’

한 놈이 더 있었어?!

뒷문을 여니, 앞선 두 남자보다 더욱 덩치가 큰 남자가 막 들어오려던 듯 서 있었다.

얼마나 덩치가 큰지, 문을 다 막고 있는 통에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야, 그것들 잡아!”

등 뒤에서 우리를 쫓아오던 남자가 소리쳤다.

“뭐야, 도망치려고 했어? 이 앙큼한 것들이!”

어쩌지?

싸워야 하나? 싸우는 수밖에 없나? 하지만 지금의 난 10살이라고? 지금의 나는―

‘여유롭게 싸우는 건 불가능할 텐데?’

“도망 못 가게 여기서 죽여 주마!”

아차.

뒤늦게, 시야가 떠졌다.

눈앞에 선 거대한 남자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드는 게 보였다. 남자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나다.

아니, 나였었다.

“헬레나!”

남자의 검이 벤 것은 나를 감싸듯 몸을 던진 카이사르의 등이었다.

“아흑……!”

카이사르가 무너지듯 내 앞에 쓰러졌다. 그의 등에서 배어 나온 붉은 피가 금세 그의 옷을 적셨다.

그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갈수록, 내 몸에서는 피가 차갑게 식어 가는 게 느껴졌다.

“……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지금 카이사르를 다치게 한 건가? 그것도 내 눈앞에서?

감히?

“야! 그쪽을 베면 어떻게 해! 사고사로 위장해야 하는데!”

“엇, 그런 거야?”

“젠장, 일이 다 틀어졌잖아! 넌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년이야!”

뒤쫓아 온 남자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윽박질렀다.

피가 식는다.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냉정해졌다.

와, 진짜.

안 되겠네.

“하아, 이번 생에서는 어지간하면 싸우고 죽이고 하는 일 없이 평화롭고 게으르게 살려고 했는데.”

“뭐? 뭐라는 거야, 이……, 아악!”

내 머리채를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이 반대로 꺾였다. 내가 들고 있던 의자 다리로 남자의 팔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과도하게 움직인 탓에 근육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아팠으나, 아프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서, 아픔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막대를 힘주어 고쳐 잡았다.

“너네 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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