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14/156)

* * *

어쩌다 보니 카이사르를 피하게 됐다.

일부러는 아니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면 어색해서 참을 수가 없다. 자연스레 시선을 피하게 됐다. 그래 놓고 스스로의 행동이 민망해져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요즘 내내 그 반복이었다.

검 수업 중에도, 실수로 카이사르와 스킨십이라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언제까지 이럴 건데, 헬레나 페레스카!”

결국 잠들기 전에는, 그날 하루 자신이 저지른 어린애 같은 행동을 돌아보며 이불 걷어차는 게 일과가 됐다.

오늘도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 후회의 긴 한숨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아……, 얼굴을 똑바로 봐야 검을 가르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한심하군.

할 거 다 해 본 어른이, 고작 친한 남자애가 갑자기 훌쩍 자라 돌아왔다고 당황하는 꼴이라니.

‘내일은 어떻게든…….’

그때였다.

어디선가 토옥, 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복도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듣다 보니 창가 쪽이다.

“비가 오나?”

그런 것치고는 소리가 불규칙하다.

전생에서는 자는 중에 암살자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잠이 오질 않는다.

결국 나는 창가로 다가가, 그 낯선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정원수의 나뭇가지를 밟고 선 카이사르가 내 방 창문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아, 드디어 눈치챘다.”

내 얼굴을 본 카이사르가 해맑게 웃었다. 나는 당황하여 창문을 열었다.

“……괴도로 전직했어?”

“그 말, 그리운걸.”

“오밤중에 거기서 뭐 해?”

“헬레나랑 얘기하고 싶어서.”

카이사르가 고갤 갸웃하며 싱긋 웃었다.

아, 또다. 또 저렇게 어른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들어가도 될까?”

“밤중에 여자애의 침실에 들어오겠다니,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카이사르는 가볍게 도약하여 가뿐하게 내 방 창틀을 밟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덩달아 밀려 들어왔다.

“잠시만 실례.”

이토록 예의 바르고 신사적인 괴도라니. 나는 피식 실소가 나왔다.

“다음부터는 문을 이용하도록.”

“아고트인지 뭔지가 문 앞을 지키고 있어서 안 돼.”

카이사르는 방을 가로질러 와, 멋대로 내 침대 위에 풀썩 앉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 앞에 서서 못마땅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내 침대거든?”

“치사하게.”

“대체 용건이 뭔데? 꼭 이 밤에 얘기해야 해?”

“하지만 낮엔 헬레나가 날 피하니까 얘기할 수가 없잖아.”

으음. 양심에 찔리는군.

나는 흘끗 그의 시선을 피했다. 하긴, 그렇게 노골적으로 피했는데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없어.”

“그런데 나한테 왜 그렇게 차가워졌어, 헬레나?”

“그냥 조금 낯설어서 그랬어. 못 본 사이에 너무 훌쩍 커 버려서 다른 사람 같잖아.”

“그건 내 탓이 아니잖아.”

“그렇지. 그저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뿐이야.”

“난 여기 석 달 밖에 못 있어, 헬레나.”

“그거야 나도 아는데…….”

다시 카이사르를 돌아본 나는, 카이사르의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카이사르는 울 것 같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꼭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난 불안해. 너희랑 같이 있는 날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너랑 레너드가 언젠가는 날 잊어버릴 것 같아.”

아.

이건 내가 잘못했구나.

나는 카이사르의 곁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하지만 내가 제자를 내팽개칠 일은 절대로 없어, 카이사르.”

“맹세할 수 있어?”

“맹세할게. 다시는 너한테 차갑게 굴지 않을게. 내 심장을 걸고 맹세해.”

“그래. 그럼……, 됐어.”

카이사르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이제야 겨우 안도한 듯.

“할 얘기 다 하고 나니 피곤하다. 난 이제 자야겠어.”

“그래, 가서 푹 쉬고 내일은……, 엇, 뭐야. 어딜 올라가는 거야?”

나는 내 침대 위에 꾸물꾸물 올라가 눕는 카이사르를 보며 버럭 소리질렀다. 카이사르는 야무지게 이불을 덮고 누우며 날 쳐다봤다.

“방에 다시 돌아가기 귀찮아.”

“여기 내 침대거든?”

“뭐 어때? 전에 너도 내 방에서 잔 적 있잖아.”

그때는 내가 10살이고 네가 열네 살이었으니까 가능했던 거고!

경악하는 내게, 카이사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그래? 이제 차갑게 굴지 않겠다고 맹세했잖아, 스승님?”

그거랑 이건 다른 문제지!

‘에휴……, 나도 모르겠다.’

뭐, 잠만 자는 건데 상관없으려나. 어머니께 들키지만 않으면 되겠지. ……그리고 아고트에게도.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다. 졸리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고.

우리는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향해 누워 손을 마주 잡았다. 카이사르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더니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옛날 생각 나네.”

“그래?”

“응.”

카이사르가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닫혔다.

나는 눈을 감지 않은 채 카이사르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뚜렷한 윤곽의 이목구비가 그야말로 미남의 얼굴이다. 목울대가 눈에 띌 정도로 커다랬다.

아아.

허세 부리고 고집 세던 나의 귀여운 카이사르는 어디로 가 버렸을까.

생경한 소년의 얼굴에, 어쩐지 서글픔이 밀려온다.

“나는 언제나 똑같아, 헬레나.”

잠꼬대처럼, 카이사르가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제발 낯설어하지 마.”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한 그런 말조차, 너무나 어른스러워서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할 줄 알았으면, 키 같은 거 크지 말 걸 그랬어.”

하지만 또 이런 어린애 같은 어리광은 내가 알던 카이사르의 모습이다.

“……바보 같은 소리.”

그는 여전히 네 살 많은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

결국에는 그렇게 안도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 * *

레너드와 단둘뿐이었던 검술 수업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수업뿐이 아니다.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만사 의욕 없는 내가 그나마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주제이기에, 두 사람이 배려해 주는 것이리라.

“카이사르는 치고 들어갈 때 자꾸 멈칫거리더라. 오라버니는 편한 기술만 쓰려고 하고.”

“전에 대련하다가 얼굴을 맞은 후로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돼.”

“뭐? 어떤 몰상식한 인간이 얼굴밖에 내세울 거 없는 사람의 얼굴을 공격했어?”

“전하를 상대하려니 서툰 기술을 쓸 엄두가 안 나.”

“카이사르는 그거 습관 들기 전에 고쳐. 오라버니, 대련에서 지는 게 실전에서 죽는 것보다 나아.”

“큭……, 고치겠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수업 후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의 지적에 두 남자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갤 푹 숙였다.

아버지가 그 모습에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우리 헬레나가 아주 엄한 선생님이로군. 그래도 식사는 즐겁게 하는 게 좋지 않겠니?”

“제가 뭘요. 밥 먹을 자격도 없다고 혼을 낸 것도 아닌걸요.”

진심으로 한 말인데, 내 말이 ‘너네 둘은 밥 먹을 자격이 없다.’로 들렸는지, 두 사람이 동시에 ‘으윽’ 하고 신음했다.

하여간 둘 다 소심하기는.

“괜찮아. 설령 두 사람이 제대로 못 해도, 난 밥은 안 굶겨.”

나는 최대한 착하게 보이려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스승은 가끔 밥을 굶기거나 날 때리기도 했지만, 난 그런 악질이 될 생각은 없거든.

그러나 내 미소는 역효과였던 모양이다.

결국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식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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