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대에게 꽃을
카이사르가 황태자로 즉위한 후 세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레너드는 적기사단장의 추천으로 수도의 사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기사단의 간부가 되려면 학교 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레너드와는 방학 때를 제외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만날 수 없게 됐다.
카이사르는 여름마다 공작저를 방문했지만, 이전만큼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는 조금 더 많은 권력을 얻었고, 조금 더 많은 자유를 잃었다.
아고트는 손에 물집이 사라질 새가 없을 만큼 검에 집착했다. 오로지 그것만이 나와의 접점이라 여기는 듯해서, 조금 안쓰러웠다.
그리고 네 번째 여름.
스물한 살이 된 카이사르가 다시 이곳, 공작저를 방문했다.
아주 귀찮은 물건을 들고서.
* * *
“황가 주최의 검투 대회?”
나는 카이사르가 내민 종이를 확인하고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내가 그 내용을 눈으로 읽는 동안, 카이사르가 맞은편의 레너드에게 그 내용을 설명했다.
“4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야. 원래는 기사 작위를 가진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였는데, 올해 규칙이 바뀌었거든.”
아, 그래. 그 대회라면 나도 알고 있다. 알고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던 것뿐이다.
왜냐하면.
“이 대회, 검 실력은 관심 없고 귀족들끼리 젠체하는 재롱 잔치 수준이잖아.”
나는 종이를 테이블 위에 휙 던져 놓으며 말했다.
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실전에서 내 목숨을 보전하고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검과, 보여 주기 위해 정해진 합을 맞추어 움직이는 검.
이 대회는 후자를 위한 대회다. 예를 들어 실력 있는 용병이 이 대회에 참가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검술이 조잡하고 천박하다며 욕이나 얻어먹을 게 뻔했다.
“말했잖아. 규칙이 바뀌었다고. 이번에는 귀족이 아니어도 참여 가능해.”
카이사르가 검지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무려 황가 주최야. 분명 굉장한 녀석들이 잔뜩 참여할걸. 재미있을 거라고.”
“음…….”
그건 좀 혹하긴 하네.
많은 이들이 몰리는 만큼, 다양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러잖아도 레너드의 학교에서는 실전엔 하등 쓸모없는 의전만 익히는 같아 걱정됐는데 말이야.
그때, 아고트가 간식거리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초코 타르트를 가져왔습니다.”
“쳇, 하필 초코라니.”
카이사르가 혼잣말로 투덜댔다. 그는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 실례했습니다. 전하를 위해 지금이라도 따로 에그 타르트를 준비할까요?”
“응? 어쩐 일이야, 네가?”
“두 시간쯤 걸릴 테지만요.”
“저게 진짜…….”
카이사르와 아고트가 으르렁대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얘들은 참 꾸준하단 말이야. 이쯤 되면 둘이 잘 맞는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니까.
“그러고 보니 이거, 귀족이 아닌 이들도 참가 가능한 대회면, 아고트도 참가할 수 있지 않아?”
두 사람이 지지든 볶든 관심이 없는 레너드가, 테이블 위에 던져 둔 종이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아고트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카이사르가 한숨을 쉬며 몸을 의자 뒤로 기댔다.
“맞아. 뭐, 저 녀석이야 참가해 봤자 엉망으로 당할 뿐이겠지만.”
“……오호.”
아고트는 아직 대회에 참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잖아도 이제 슬슬 내보내도 되겠다 싶은 참이었는데, 이거 괜찮을지도?
“카이사르. 혹시 이 얘기, 아고트 때문에 꺼낸 거야?”
“미쳤어? 아니거든?”
이 반응을 보니, 맞나 보군.
“널 위해 가져온 정보래. 좋겠다, 아고트.”
“아, 안 좋아요! 아가씨 말고는 좋은 거 없어요!”
아고트가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아고트는 대회 나가 보고 싶지 않아?”
“나가고 싶어요!”
아고트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그러더니 오만상을 찌푸린 채 카이사르를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
“하,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쟤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 맞지?”
말의 내용과 표정과 기합이 전혀 통일되지 않은 아고트의 말에, 카이사르가 빈정댔다.
“어쨌든 다들 한번 참여해 보자. 스승님의 제자라면서, 정작 우리 셋이 제대로 겨뤄 본 적도 없잖아.”
“엇, 너도 참여하는 거야?”
내가 깜짝 놀라 카이사르를 쳐다보았다. 카이사르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몰랐어? 이 대회, 황태자는 무조건 자동 참가야.”
“으잉? 언제부터?”
“그레이가 황가였던 내내 쭉.”
전혀 몰랐다. 귀족 놀음에 낄 생각이 없어 신경도 안 쓰던 대회였으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에게, 곁에 앉은 레너드가 침착하게 설명을 덧붙여 줬다.
“단테 황제 이후로 황가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검’이거든. 전하께서 검 수업을 일찍부터 받으신 게 괜한 게 아니야, 헬레나.”
카이사르의 검 조기 교육에 이런 뒷배경이 있었을 줄이야.
내 탓인가? 전생의 내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엄청난 나비 효과군.
전생의 난 그냥 먹고살려고 그랬던 것뿐이었다고!
“오호……, 그렇단 말이지.”
어쨌든 내 제자 세 명이 다 참가 가능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흥미가 동한다.
세 사람의 실력이 얼마큼 성장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회 아닌가.
“그럼 셋 다 한번 나가 볼래?”
그렇게 말해 놓고, 나는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제 발로 귀찮은 일에 걸어 들어가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