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40/156)

* * *

이 일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을 거다. 예를 들면, 의욕 없는 딸을 늘 염려하시는 부모님. 잔소리 많은 마사랑 베시. 그리고 콧수염이 멋진 집사 케고르.

“안 돼! 난 반대야!”

하지만 네가 반대하면 안 되지, 이 자식아.

나에게 결정된 사안을 보고 받은 카이사르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참고로 해밀턴과 로위나는 튀었다. 자신들이 작당해서 날 끌어들였다는 걸 카이사르가 알게 되면 경을 칠 거라며. 쯧, 겁쟁이들.

“미쳤어? 마수를 잡으러 가겠다고?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그럼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버려?”

“내가 가! 네가 안 가도 내가 갈 거라고!”

“하! 네가 가는 게 더 위험하겠어, 내가 가는 게 더 위험하겠어?”

지금 감히 네 실력을 나에게 비비는 것이냐, 제자야.

내 말에 카이사르가 ‘우윽’ 하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이내 다시 입을 열어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헬레나는 귀찮은 거 싫어했잖아?”

“사람이 자기 좋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나.”

“나 때문이라면, 거절하겠어. 헬레나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해내고 싶은 건 없어.”

“카이사르.”

나는 팔짱을 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잊었어? 널 황제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 건 나야.”

“하지만……!”

“아니면, 뭔데. 넌 내가 한 자리 차지하겠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내가 너희들 그림자로만 있었으면 좋겠어?”

“그,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알아.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너니까.

“내 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날리고 싶어?”

내가 가늘게 웃으며 턱을 들었다.

카이사르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나는 늘 제자들의 실력에 맞춰 대련 상대를 해 줬다. 아무도 나의 ‘최선’을 보지 못했다.

실은 보고 싶겠지. 너라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 나와 검을 마주했던 너라면.

“난 네 스승님이잖아, 제자님.”

나는 카이사르가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것이 나의 권위다.

감히 누구도 넘보지 못할 내 권능이고, 면류관이다.

카이사르는 인상을 쓴 표정을 가리듯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는 그가 생각할 시간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한참 만에 카이사르는 깊은 한숨과 함께 내게 말했다.

“헬레나가 원하는 일을 내가 반대할 리 없다는 걸 알고 나한테 이러는 거겠지?”

“약간은.”

“만약 현장에 갔을 때, 정말 위험한 일이다 싶으면 언제든 철수할 거야.”

여기까지가 타협할 수 있는 선이라는 듯, 카이사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 긴장감에 가벼운 웃음으로 대꾸해 주었다.

“겨울이 가기 전에 끝내 주겠어.”

어차피 나에게는 너무 쉽고 시시해서 무료한 일일 뿐이니까.

* * *

부모님의 허락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해밀턴이 설득해 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이야 별개겠지만.

그리하여 시찰단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적기사단장인 달튼 경이 공녀 뵙기를 청하더군요.”

마수 토벌 인원을 어디에서 모집하는지에 대해 의논하던 중, 해밀턴이 그 말을 꺼냈다.

“적기사단이요?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가 가까이 지내는 이가 적기사단이라 들었던 듯한데.”

“맞습니다. 기사단 견학 때 소공작의 실력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거든요.”

훗, 당연하지. 누구 제자인데.

흐뭇함이 감춰지질 않는다. 그래, 이런 짜릿한 기분을 느끼려고 후학 양성하는 거지.

“이번 마수 토벌에 적기사단의 수련병들을 지원해 주겠답니다.”

“기사도 아닌 수련병인가요? 써먹으라고 보내는 게 아니라, 가르쳐 돌려보내라는 것 같네요.”

“뭐, 그쪽도 득이 있어야겠죠.”

하긴, 지금 당장 용병을 모집하거나 민병을 꾸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어쨌든 황실 기사단의 수련병이니, 기본적인 훈련은 되어 있겠지.

“좋네요. 최대한 빨리 날짜를 잡아 주세요.”

나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적기사단 본부를 찾아갈 때는 어째서인지 카이사르가 동행했다.

접견실에서 기사단장을 기다리며, 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굳이 같이 갈 필요 없는데.”

“제자가 스승님을 모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카이사르가 그럴싸한 변명을 하며 날 향해 씩 웃었다.

“그나저나 오늘 한탕 할 기세인걸, 헬레나.”

오늘 나는 드레스가 아닌 짧은 튜닉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물론 검도 패용했다.

“카이사르라면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여자가 ‘제가 당신들을 이끌 토벌대장입니다’라고 말하면 신뢰가 갈 것 같아?”

“그야 헬레나잖아? 당연히 무한 신뢰가 가지.”

“미안. 물어볼 상대를 잘못 골랐네.”

가만 보면 이 녀석도 아고트 만만치 않게 나를 맹신한단 말이지.

“넌 날 너무 믿어. 사람을 그렇게 맹신하면 안 돼, 카이사르.”

“괜찮아. 너한테만 그래.”

“저런.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널 배신해서 네 등에 칼 꽂으면 어떻게 하려고?”

“죽지, 뭐.”

카이사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해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생각 좀 해 보고 대답해.”

“생각해 봐도 답은 마찬가지야. 헬레나를 의심할 바에는 죽는 게 나아.”

“아니, 죽으면 안 되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색했다.

이 녀석, 큰일이네. 어쩌다가 이렇게 맹목적인 녀석으로 자란 거지?

대체 누구 탓이야? 설마 내 탓은 아니겠지?

내 불안이 가중되어 가는 그때, 마침 문이 열리고 적기사단장인 달튼이 등장했다.

“오오, 드디어 뵙는군. 레너드의 누이동생, 아니, 레너드의 스승님이라 해야 하나?”

마구잡이로 난 턱수염에 풍채가 좋은 남자가 낯가림도 없이 내 쪽으로 다가오며 껄껄 웃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헬레나 페레스카입니다.”

“네르프 달튼, 적기사단장이오.”

나는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대신 악수를 청했다. 달튼도 흔쾌히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수련병들은 연무장에 집합시켜 두었소. 뭐, 인선 방식은 자유롭게 맡기기로.”

“배려 감사합니다.”

“미적댈 것 없이 바로 이동하는 게 좋겠군. 전하, 함께 가시겠습니까?”

달튼의 말에 카이사르가 긍정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달튼의 안내로 접견실을 나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앞서 걷는 달튼을 따라, 나와 카이사르는 몇 걸음 뒤에서 나란히 걷는 구도가 됐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카이사르가 문득 내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시죠?”

“소독.”

응? 무슨 소독?

뜻 모를 소릴 한 후에 카이사르는 내 손을 꽉 잡았다가 놓았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난 혼란스러울 뿐이다.

카이사르는 내 의문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화제를 꺼냈다.

“수련병들이 헬레나의 명령에 순순히 따를지 잘 모르겠군.”

“역시 뜬금없이 등장한 귀족가 영애를 따르라는 건 무리일까요?”

“으음. 적기사단이라면…….”

카이사르가 뒷말을 흐렸다. 그 뒷말을 보충하듯, 앞서 걷던 달튼이 입을 열었다.

“뭐, 아시다시피 우린 허연 쪽 놈들이랑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허연 쪽 놈들이란, 백기사단을 말하는 것이다.

실력주의인 적기사단과 귀족주의인 백기사단은 오랜 앙숙이다.

적기사단은 가문의 뒷배로 기사작을 받는 백기사단에 치를 떠는 이들이니, 내 존재를 못 미더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각오는 해 두는 게 좋으실 거요.”

달튼이 투박한 말투로 경고하듯 말했다.

다만 그 경고 속에 기대감이 숨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만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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