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42/156)

* * *

시찰단이 돌아오는 날까지 수련병들은 훈련에 매진했다.

인간이 아닌 마수를 상대하는 일이니만큼, 훈련 방향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세 제자들을 중심으로 팀을 나누었다. 새싹 대원들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 냈다.

그 후로 자신도 받아 달라며 찾아오는 이들이 몇 있었지만, 처음 온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거절했다.

“그거 아시오? 수련병들 사이에서 공녀를 부르는 호칭 말이오.”

달튼은 수시로 연무장을 들락거리며 내 말벗을 자처했다. 장소며 사람을 제공해 준 의리가 있으므로 기꺼이 상대해 주었다.

“뭐라 부르던가요?”

“무패 교관이라 하더군. 수십의 수련병을 상대로 전승한 실력이니 말이외다.”

“고작 수련병을 이기고 그런 칭호를 얻다니, 과분하군요.”

“흐흐, 언제 한번 기사들을 상대로도 전승 기록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떻소?”

“글쎄요. 득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내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더니, 달튼이 특유의 산적 같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밴달리움에서 시찰단이 돌아왔소. 두 시간 후에 보고가 시작될 거요.”

시찰단이 도착했다.

“토벌에 나설 때로군요.”

나는 수련병들을 향해 시선을 보낸 채 달튼에게 말했다.

귀찮은 것과 별개로, 몸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마수 때려잡는 영애라. 어쩐지 단테 황제가 생각나는군. 이러다가 정말 단테 황제처럼 용도 때려잡는 거 아닌가 모르겠구려.”

이미 멸종한 용을 들먹이며 농담을 내뱉는 달튼의 말에, 결국 난 웃음을 터뜨렸다.

* * *

시찰단의 보고를 받은 후, 내가 이끄는 마수 토벌대는 동도 밴달리움으로 향했다.

“카이사르는 밴달리움에 가 본 적 있어?”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 나는 함께 탑승한 카이사르에게 물었다.

“몇 년 전에 시찰을 목적으로 한 번. 그땐 이 정도로 마수가 들끓지는 않았어.”

“그게 좀 기이하긴 합니다. 듣기로 밴달리움 외에도 요즘 변경 지역에서 마수가 꽤 출몰하는 모양이거든요.”

카이사르 곁에 앉아 있던 레너드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500년 전에는 마수가 흔했다. 변경작을 주게 된 계기도 마수로부터 내륙을 지키는 게 목적이었을 정도이니까.

다만 요즘엔 마수가 멸종 수준으로 줄어들어, 변경작들의 임무라고 해 봐야 야만족의 침입을 경계하는 게 전부다.

작위만 남고 업은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러니 누구 하나 마수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지.’

지식도 없고 기술도 다 사라졌을 것이다. 변경후가 쩔쩔매는 게 괜한 게 아니다.

“무리 지어 다니는 소형 마수들은 꾸준히 계속 나오긴 했어. 마수 자체가 멸종한 건 아니니까 말이야.”

카이사르가 팔걸이에 턱을 괴며 말했다.

“기후 변화 같은 것 때문에 다시 늘어났나?”

“글쎄. 애초에 마수가 급격히 줄어든 이유도 불분명하고.”

내 질문에 카이사르가 애매한 답을 하니, 레너드가 말을 덧붙여 답했다.

“용이 멸종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긴 해.”

“용?”

“시기가 비슷하거든. 마수가 줄어든 시기랑, 용이 멸종한 시기가.”

꽤 흥미로운 얘기다.

카이사르도 레너드의 이야기가 그럴싸했는지, 말을 얹었다.

“그러고 보면 마법사의 수가 급감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지, 아마.”

“네, 그럴 겁니다.”

“신기하네. 용과 마(魔)가 뭔가 관련 있다는 건가?”

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 말에 레너드와 카이사르가 피식 웃었다. 다들 우스갯소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다.

카이사르가 고개를 살짝 들고 날 쳐다보며 놀리듯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잡아야 할 마수가 용이 아니길 바라. 지금 사람들에게 용 사냥은 무리일 거 아냐?”

무리지, 무리.

전생의 나도 솔직히 용은 좀 무리였으니까. 특히 악룡 크루세흐는 정말 간신히 봉인하는 데 그쳤고.

“뭐, 이제 와 죽은 용이 부활할 리 없잖아.”

나는 실소하며 마차 창문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밴달리움이 가까워지고 있다.

* * *

벤 변경후는 미혼의 중년 남성으로, 목소리가 낮고 말수가 적어 굉장히 점잖은 인상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와 주시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뭐, 속내야 어떻든 일단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인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전하께서 친히 와 주시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난 오늘 일개 대원으로 참여한 겁니다. 토벌대의 대장은 어디까지나 페레스카 공녀이니까요.”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돌아오려는 공을 얼른 내게로 돌렸다. 변경후는 부드러워진 눈매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두 자녀분을 흔쾌히 보내 주시다니, 공작님께도 후일 꼭 감사를 전하러 가야겠습니다.”

“아버지께서도 도움을 드릴 수 있음에 기뻐하실 겁니다.”

“그래서 그 문제의 마수에 대해서 말인데.”

변경후는 긴 인사치레를 생략하고 비교적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쪽 정찰대에서 이틀 전 숲에서 마수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내일 안내를 붙여 드릴 테니, 한번 나가 보시겠습니까?”

“그렇군요. 호의, 기쁘게 받겠습니다.”

흠, 의외로 순조롭군그래.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찻잔을 기울였다.

그 후로는 그다지 영양가 없는 정보와 시답잖은 가십이 오갔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네.’

카이사르의 편으로 끌어들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뭐,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그때, 변경후의 노집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말씀 나누시는 중에 실례합니다.”

집사는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변경후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여 전달했다.

나는 변경후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지만, 용케 평온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어서 어떤 용건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런. 죄송하게도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군요.”

변경후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후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는 나와 레너드, 카이사르 세 사람만 남았다.

변경후가 나간 후 잠시 이어지던 침묵을 깨며 내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때?”

많은 말을 함축한 그 질문에, 레너드와 카이사르는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 후 다시 내 쪽을 쳐다보았다.

“무례하지는 않은 사람이군.”

“헬레나에게 호의적인 것처럼 보였어.”

카이사르와 레너드가 차례도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의자 등받이게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흐음, 그런가.”

“헬레나가 보기엔 아닌가 보지?”

“아니, 내가 보기에도 그래.”

그래서 더 의아한 거다.

무례한가 아닌가를 떠나서, 내 존재를 너무 자연스럽게 납득하고 넘겨 버린다.

“나에 대해서 너무 호의적이지 않아?”

“네가 레너드와 나의 스승님이라는 소문이라도 들었나 보지.”

“소문에 밝은 사람처럼 보여?”

내 질문에 두 사람은 동시에 ‘으음’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 잘 해 줘도 불만이냐,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

다만, 촉이 그렇다. 통계라고 해도 좋다. 사람 잘 믿는 순수한 영혼은, 이 세상에 레너드 한 명으로도 이미 만원이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내가 던진 의문에 기묘한 침묵이 가라앉는 게 불편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밖으로 나가려던 나는, 그러나 1층 층계참을 돌기 직전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이건 날 업신여기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소.”

‘응? 벤 변경후?’

아래층에서 벤 변경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하고 평온했으나, 내용은 꽤 가시가 돋쳐 있다.

나는 사각에서 걸음을 멈춘 채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래, 보낼 이가 없어 기껏 보내온 사람이 스물도 안 된 계집이란 말입니까?”

……으음. 그럼 그렇지.

역시 마음에 안 드셨던 거로군.

“페레스카 공녀에게는 그럴 만한 실력이 있습니다, 후작님.”

그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해밀턴인 것 같았다.

좋아! 힘내라, 해밀턴! 내 명예를 위해 싸우는 거다!

“실력이 아니라 뒷배겠지. 페레스카 영애에게 한자리 내주려고, 그럴싸한 공적을 만들어 줄 생각인 거 아니오?”

“헉 어떻게……?”

해밀턴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어우, 저 멍청이 자작! 그게 사실이어도 그런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해!

“내 이럴 줄 알았지! 지금 마수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공녀의 호위까지 신경 써야 할 판이지 않소.”

“아니, 공녀께서는 누구 호위를 받고 그럴 필요가 없으신 분이라니까요? 제 목숨 걸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자작의 목숨을 걸어서 어디다 쓰겠소.”

“헉, 너무하시네요.”

“아무런 증거도 증명도 할 수 없는데, 내가 이 사태를 어떻게 곱게 볼 수 있단 말이오.”

틀린 말은 아니지.

저런 생각을 가지고도 내 앞에서는 용케 예의 차리고 있었던 게 오히려 기특할 정도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계단을 내려가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증거. 증명. 후작님 앞에 가져다드리면 되겠습니까?”

“……공녀!”

변경후와 해밀턴이 동시에 깜짝 놀라며 날 쳐다보았다.

“설마 엿듣고 계셨던 겁니까?”

“뒤에서 한 이야기일지언정 절 한낱 ‘계집’이라 칭하셨으니, 비긴 셈 치시죠.”

내가 고개를 까딱 기울이며 말했다. 주눅 들지 않는 내 태도에 변경후는 미간을 찡그리며 어깨를 움찔했다.

“……어떻게 증명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뭐 어렵겠습니까? 마수 토벌에 함께 동행하시면 됩니다.”

나는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후작님을 위해 얼마나 대단한 이를 앞세워 보냈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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