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튿날. 날이 맑았다.
나는 변경후와 그의 사병 몇 명, 그리고 내 세 제자들과 함께 근처 숲으로 향했다. 수색이 목적인 만큼 인원을 많이 꾸리진 않았다.
“아무리 수색이라지만, 몸종을 데리고 나오다니 납득하기 힘들군요.”
숲길을 걸으며, 변경후가 내게 말했다. 아마 내 곁에 걷고 있는 아고트를 향해 한 말일 것이다.
엄연히 검을 차고 있는 아고트를 향한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머잖아 납득하게 되실 겁니다.”
“그러길 바랍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사이, 앞서가던 사병이 걸음을 멈추고 우릴 향해 소리쳤다.
“여기, 발자국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응달에 커다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흑요견의 발자국입니다. 예전부터 이 부근에서 자주 출몰하는 마수죠.”
변경후가 차분하게 마수에 대해 설명했다. 시찰단에게 이미 들은 내용이라,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수가 많네요.”
“뭐, 그래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잘 출몰하지 않으니 염려 놓으십시오.”
내 말을 곡해했는지 사병이 히죽 웃으며 날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러나 내 곁에 선 카이사르가 팔짱을 끼며 심각한 표정으로 그 말을 부정했다.
“글쎄. 내가 보기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군.”
“예? 어째서 그런 말씀을?”
“이슬이 내렸는데 발자국이 흐트러지지 않았어. 이건 새벽 이후에 찍힌 발자국이라는 거다.”
카이사르의 차분한 설명에 사병들의 얼굴이 굳었다.
“오늘은 이만 귀가하는 게 좋겠습니다.”
변경후도 카이사르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조금 다급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권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부정했다.
“수색하러 나와서 발자국만 보고 돌아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 인원으로 많은 수의 흑요견을 상대하는 건 무립니다. 더구나 대형 마수까지 등장하면…….”
“우으아아악!”
그때였다.
등 뒤에서 어린 사병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재빨리 뒤를 돌아보며 검을 뽑아 들었다. 풀숲에서 튀어나온 마수가 쓰러진 사병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타 있었다.
“흑요견이다!”
다른 사병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외침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흑요견 무리가 안광을 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런 시각에 왜……!”
그러게. 이상하긴 하군.
내가 알기로도 흑요견은 야행성 마수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부터 새벽까지만 활동한다.
그러나 지금은 훤한 대낮이고, 심지어 날도 맑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흑요견이 움직이는 건 왜일까?
‘……뭐, 고민은 나중에 하고.’
“하아아압!”
레너드가 쓰러진 사병을 물어뜯으려는 흑요견의 머리를 날렸다. 크웨엑, 하는 단말마를 내지르며 흑요견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어떻게 해? 일단 후퇴? 아니면 싸워?”
카이사르가 경계 자세를 유지한 채로 내게 말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후작님께 보여 드려야지요. 이 몸이 왜 토벌대의 대장인지.”
그 말은 곧 명령이 됐다.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베어 버립시다.”
사병들이 ‘이 인원으로?’라고 생각하는 듯 질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너드와 카이사르가 마수를 향해 돌진해 갔다.
그리고 나 역시, 내게 달려오는 마수를 향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 * *
“마……, 말도 안 돼…….”
약 20분 후.
변경후가 허탈함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는 검을 뽑긴 했으나,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 아니,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나와 내 제자들이 서른 마리가 훌쩍 넘는 흑요견들을 모조리 말살해 버렸으니까.
“몇 마리 놓쳤군요.”
나는 검에 묻은 마수의 체액을 털어 내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발밑에는 내가 베어 넘긴 마수들의 시체가 이미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안타깝네요. 제 실력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이 정도로는 안심이 안 되시겠죠?”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변경후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변경후가 흠칫하더니, 흔들리는 동공으로 날 쳐다봤다.
“도망친 몇 마리가 대형 마수를 끌고 올지도 모르는데, 수색 나온 김에 확인하고 갈까요?”
“아, 아니, 예?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아직도 절 너무 못 믿으실 것 같아서…….”
“아니, 아닙니다! 믿지 못하다니요! 그럴 일 없습니다!”
변경후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날 보는 그의 눈빛은 어느새 신뢰감으로 꽉 차 있었다.
“제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노여움 푸시고 일단 귀환하시죠. 드릴 말씀도 있고.”
드릴 말씀?
‘날 못 믿어서 다 못 한 얘기가 있다 이 말이로군.’
그렇다면 일단 귀가한 후에, 다른 대원들을 준비시켜 다시 나오기로 하고…….
“위험합니다!”
그때, 한 사병이 날 향해 소리쳤다.
그 외침에 난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흑요견 한 마리가 숨이 다 안 끊어졌던 듯, 나를 노리고 뛰어올랐다.
그러나 나는 검을 들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 흑요견을 쳐다보았을 뿐이다.
“공녀!”
변경후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이 여자가 이대로 물어뜯길 작정인가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흑요견은 내게 작은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했다.
내 곁에 있던 ‘몸종’ 아고트가 순식간에 달려드는 흑요견을 두 동강 내 버렸기 때문이다.
“어……, 으어…….”
누가 봐도 내 몸종에 불과한 어린 여자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흑요견을 베어 넘기는 모습에, 다들 얼이 빠진 표정이 됐다.
“그럼 일단, 귀환할까요?”
나는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 제자들이 그런 나를 보위하듯 내 곁에 섰다.
세 명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나를, 변경후와 사병들이 흡사 대군을 이끄는 장군을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후로 변경후가 나를 얼마나 의지하게 되었는지는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 *
저녁 식사 후, 저택의 넓은 방에서 모임이 이루어졌다.
내 쪽에는 카이사르와 레너드와 해밀턴이, 변경후 쪽에는 사병 대장인 롯트가 자리했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먼저 운을 뗀 건 나였다.
변경후는 낮의 마수 습격 때 나갔던 혼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 다소 얼빠진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변경 지역에 마수 출몰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긴 세 분 다 아시겠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드라코교’라고 들어 본 적 있으십니까?”
생소한 단어에 나는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카이사르와 레너드를 쳐다보았지만, 두 사람도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그때 우리 쪽에서는 유일하게 해밀턴이 무언가 아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용을 숭상한다는 신흥 종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그거라면 들은 적 있다.
서민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종교라고 했던가. 성회에서조차 관심 갖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맞습니다. 작년 봄, 그 신자들이 밴달리움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용은 이미 멸종한 지 오래인데,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신자 수도 적고 하는 얘기도 허무맹랑해서 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만.”
변경후가 굳은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말을 이어서 설명한 건 사병 대장인 롯트였다.
“그자들이 숲에서 용을 부활시키는 의식이다 뭐다 한 이후로 마수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우연이겠지. 그게 무슨.”
카이사르가 오만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모두 그 말에 내심 동감했다.
그러나 변경후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변경작들에게 사병 지원을 요청했을 때, 하나같이 같은 소릴 하더군요. 그들이 다녀간 후 마수들이 늘어났다고.”
“그런데 왜 그런 얘길 위에 보고하지 않으셨던 거죠?”
“증거가 없으니까요.”
거참, 증거 좋아하는 사람일세.
하지만 나 역시 별다른 증거가 없는 그 이야기에 ‘우연이겠지’ 하는 생각이 더 크긴 했다.
나는 내 생각에 동의를 구하려 레너드 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그래, 오라버니?”
내 말에 레너드가 퍼뜩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인데 말이야.”
“뭔데?”
“전에 말했잖아. 마수의 수가 급감한 것이 용의 멸종과 관련 있다는 설이 있다고.”
……으음.
묘한 침묵이 방 안에 감돌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죽은 걸 살릴 수 있는 방법 따윈 없어.’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하듯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죽은 것’ 중 하나였다.
환생한 것이니 되살렸다기보다는 다시 태어난 셈이지만,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니 상당히 애매한 존재이긴 하다.
그러나 이쯤 되니 내 존재에 깊은 의심이 든다.
‘내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단순한 우연인가?’
나는 떨리는 가슴을 슬그머니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