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44/156)

* * *

변경후와의 대화 후에는 대원들과 작전 회의를 가졌다.

직접 만난 흑요견의 공격 방식을 설명하고, 대처 방안을 주지시켰다. 다행히 흑요견 정도는 대원들 실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대형 마수를 처치하지 않으면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 거야.”

레너드가 말했고, 나 역시 동감했다.

“마수학자들의 의견으로는 ‘루크로코타’라는 마수일 가능성이 높대.”

“루크로코타가 뭔가요?”

아고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사자 몸통에 오소리 머리가 달린 마수야. 덩치는 큰데 엄청 빨라.”

500년 전엔 ‘중형급’ 정도로 취급 받았을 텐데, 지금은 그것도 대형 마수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루크로코타는 재생 능력이 뛰어나. 머리를 베지 않으면 계속 살아날 거야.”

“역시 아가씨! 마수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아고트가 경탄하는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마수도감에서 봤어.”

물론 거짓말이다. 이건 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이란다, 얘들아. 500년 된 경험이긴 하지만.

“어쨌든 머리를 잘라 내는 건 카이사르가 맡는 게 좋겠어.”

“네가 아니라?”

“내 검은 베는 건 가능해도 그 큰 몸체를 절단하기엔 무리야.”

이도류인 내 검은 검신이 짧고 가벼웠다. 우리 넷 중에서는 카이사르의 검이 가장 힘 있고 무게가 있으니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황태자니까, 카이사르에게 적당히 공이 돌아가는 것도 좋을 거고.”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돼.”

카이사르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저 웃으며 “그래” 하고 대답했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할 때, 레너드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들 지치기 전에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대형 마수 사냥이 늦어져 시일이 늘어지면 사기가 떨어진다. 카이사르도 수도의 일을 마냥 내버려 둔 채 여기 체류할 수는 없을 거다.

뭐가 됐든 눈이 쏟아지기 전에 끝내는 게 제일이다.

* * *

우리는 대형 마수를 불러내기 위해 지혜를 쥐어 짜냈다. 소형 마수의 시체로 유인한다든가, 먹잇감으로 소를 매어 둔다든가 하는 의견이 왕왕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그 수많은 지혜를 다 써먹을 일도 없게 됐다.

사흘 후, 우린 별다른 조치 없이도 루크로코타와 마주칠 수 있었으니까.

“숲 북쪽 덫에 흑요견이 몇 마리 걸렸다는 모양입니다.”

사흘째 아침, 변경후가 아침 식사의 환담 주제로는 썩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흑요견 무리가 북쪽으로 이동했나 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덫 중 상당수가 부서져 있었다는 걸 보면, 대형 마수가 같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오후, 해가 막 저물어 갈 시각.

우리는 본격적인 마수 토벌에 돌입하기로 했다.

“후작 측 사병들은 퇴로를 차단하는 데 투입된다. 대형 마수가 등장하면 섣불리 공격하지 말고, 흑요견 사냥과 전하의 엄호에 집중하도록.”

나는 출발 직전 대원들에게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대원들은 한껏 의기충천한 표정으로 존명을 외쳤다.

이윽고 우리는 대열을 맞춰 숲의 북쪽으로 이동했다. 전방과 후방의 몇 명이 횃불을 들어 길을 밝혔다.

“밤이라 시야 확보가 어렵겠는걸.”

한참 걷는데, 카이사르가 내 곁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긴장돼?”

“흥, 누가.”

카이사르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실은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더 있는데.”

내가 애써 긴장감을 유지하려 애쓰는데, 카이사르가 재차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지난번에 말이야. 야행성인 흑요견이 갑자기 낮에 나타난 이유가 뭘까?”

“글쎄. 불면증이 있나?”

“농담이 아니야, 헬레나.”

내 장난 어린 말에 카이사르가 미간을 슬쩍 구기며 날 쳐다보았다.

“그때 마지막에 달려들었던 녀석 말이야. 정확히 널 노리고 달려들었어.”

“그랬던가? 내가 제일 가까이에 있었나 보지.”

“아니. 변경후 측 사병이 더 가까이 있었어.”

가벼이 넘기려는 나와 달리 카이사르는 심각했다.

“조심해, 헬레나. 혹시 모르는 거니까. 만약 이번에도 마수들이 널 노리고 달려든다면…….”

카이사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완전히 끝맺어지지 못했다.

“흑요견이다!”

대열의 후미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검부터 뽑아 들었다.

“각자 위치로! 진영을 유지하라!”

내가 외치는 소리가 숲에 메아리쳤다. 급습에 당황했던 대원들은 내 목소리를 듣더니, 훈련했던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죽어라!”

여기저기서 비명과 기합과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흑요견의 숫자가 이전보다 훨씬 많았다.

더군다나.

‘카이사르의 말을 들은 직후라 그런가? 정말 나에게 마수들이 몰리는 것 같은 기분인데.’

분명 나는 전방에 서 있었는데, 후미에서 등장한 마수들이 순식간에 내 쪽으로 접근해 왔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압도적인 수에 뒷걸음질 쳐야 할 정도였다.

‘뭐지? 전생에도 마수 사냥은 여러 번 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당혹감에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양쪽으로 물러서!”

나는 양손에 나누어 쥔 검을 힘주어 잡으며 소리쳤다.

내 외침에, 내가 선 곳에서부터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길이 뚫렸다.

나는 곧장 날 노리고 달려드는 흑요견들을 쳐다보며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나 참, 마수에게까지 인기가 많아서 어쩌자는 거야?”

긴장을 풀기 위한 실없는 농담을 내뱉은 후.

돌진.

“아고트, 따라붙어!”

“네, 아가씨!”

나는 내 쪽으로 밀려드는 마수의 파도를 역으로 올라가며, 차례차례 흑요견을 베고 나누고 해체했다.

미처 베어 내지 못한 떨거지들은 내 뒤를 따라붙는 아고트가 처치했다.

대열의 반대쪽 끝에 도착했을 때, 내가 거슬러 올라온 길은 마수의 시체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우아아아! 대장님 최고!”

“좋았어! 모조리 없애 주마!”

순식간에 반수 이상 줄여 버린 나와 아고트의 활약에, 대원들의 사기가 한층 올라갔다.

그렇게 흑요견의 숫자가 아득히 줄어들었을 무렵.

“대형 마수다! 대형 마수가, 으아아아악!”

그토록 기다려 왔던 대형 마수, 루크로코타가 등장했다.

“크와아아악!”

어둠 속에서 거대한 마수가 눈을 빛냈다. 그 포효가 공기를 뒤흔들었다.

“자리 유지해!”

확실히 대형 마수는 대형 마수다. 등장하자마자 대원 둘이 마수의 발에 짓밟혔다. 대열이 흐트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카이사르!”

“걱정 마! 준비됐어!”

저 멀리, 카이사르가 흑요견 하나를 걷어찬 후 곧장 도약할 자세를 취하는 게 보였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안광을 내뿜었다.

“엄호!”

내 외침에 작전대로 아고트와 레너드가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두 사람의 검이 루크로코타의 다리와 옆구리를 각각 공격했다.

마수가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그 몸부림에 주변 나무들이 쓰러졌다. 일반 사병들은 감히 근접할 엄두도 못 냈다.

‘도망치게 둘까 보냐!’

상처가 회복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나는 시간 차를 두고 앞으로 돌진해, 마수의 뒷다리를 베어 버렸다.

마수가 휘청거리며 울부짖었다. 공격할 기회다. 계획했던 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좋아! 카이사르 지금……?”

그 순간.

마수가 등 뒤에 선 날 향해 무리하게 방향을 틀었다.

전방의 적에게 등을 보이면서까지 날 공격하려 돌아선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반응이다.

그 기이할 정도의 집착에 난 일순 사고가 얼어붙었다.

‘정말 나를 노리는 건가?’

카이사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녀석들은, 나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왜?

“헬레나!”

카이사르가 날 부르는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멈췄던 사고가 다시 움직였다.

내 앞에서 입을 벌린 루크로코타의 커다란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허공을 날아갔다.

카이사르의 검이 마수의 머리를 잘라 낸 것이다.

마수의 붉은 피가 튀어 옷과 머리카락을 적시는 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의문만 꽉 들어찼다.

나는 옆으로 쓰러지는 대형 마수의 머리 없는 몸체와, 내 앞에 선 살기 어린 카이사르의 얼굴을 보며 몇 번이고 그 의문을 곱씹었다.

나를, 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