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45/156)

* * *

“이렇게 한 번에 잡게 되리라고는…….”

사병 대장 롯트가 루크로코타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걷어차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덩치에 비해 어찌나 잽싼지, 그동안은 도무지 잡기 어려웠습니다.”

“그런가요?”

“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조화인지, 한복판까지 달려 들어올 줄 몰랐네요.”

“뭐, 어쨌든 큰 놈을 잡았으니 당분간 마수의 수는 줄어들겠어요.”

“그러길 바라야죠. 저희가 공녀님의 덕을 참 많이 봅니다.”

롯트가 어허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때 잘린 마수의 머리를 처리하던 사병들이 롯트를 불렀다.

“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롯트가 내게 꾸벅 인사한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카이사르와 레너드는 다른 대원들에게 지시 사항을 하달하고 있었다.

“아고트.”

“네, 아가씨.”

“여긴 됐으니까, 사병 대장님을 도와 드리렴.”

아고트는 내게 꾸벅 인사한 후 롯트에게 달려갔다.

나는 홀로 마수의 몸뚱이 앞에 서서, 마수의 잘린 머리 단면을 살펴보았다.

‘뭐,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긴 했네. 다행이긴 하지만.’

재생 속도가 빠른 마수답게, 잘린 부분에는 이미 아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분명 날 향해 달려들었어. 착각이 아니야.’

카이사르는 나보다 먼저 이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까지 느낄 정도라면 착각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응? 이게 뭐지?”

멍하니 마수의 시체를 보고 있던 나는, 문득 그 거죽에서 기묘한 문양을 발견했다.

무늬일까? 얼룩일까? 자세히 보기 위해 피를 닦아 내려 손을 뻗으려 했으나―

“아.”

그 순간, 가슴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마치 날카로운 것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강한 통각.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목 뒤로 식은땀이 솟았다.

뭐지, 이 통증은?

그리고 그 직후.

“위험해!”

카이사르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숲에 메아리쳤다.

거대한 무언가가 기척도 없이 바닥에서 솟아올라, 내 옆에 놓여 있던 루크로코타의 몸뚱이를 집어삼켰다. 땅이 흔들려 나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상대가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나는 일단 검 손잡이에 손부터 올렸다.

‘공격을……!’

그러나 늦었다.

대처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흘러갔다.

땅에서 솟구쳐 오른 것의 정체가 거대한 ‘뱀’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미 내 몸은 공중에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큭……!”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뱀 형체의 마수는 쏜살같이 내 쪽으로 기어와 내 몸체를 물었다. 콰득, 하고 어깨가 부러지는 느낌이 났다.

“으악!”

“대장님!”

너무 아파서 의식이 날아갈 뻔했다가, 그 아픔 덕분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제길, 방심했다……!’

시찰단의 보고에도, 변경후의 설명에도, 뱀 형체의 마수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그 탓에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

내 실수다.

마수가 내 몸을 입에 문 채 ‘쉬익 쉬익’ 하는 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마수의 타액이 내 얼굴 위로 뚝뚝 떨어졌다.

“헬레나!”

멀리서 레너드의 비통한 외침이 들렸다. 가늘게 눈을 뜨고 보니, 어둠 속에서 질주하는 레너드의 은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오라버니……?”

레너드는 그답지 않게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죽여 버리겠어!”

레너드가 악귀 같은 표정으로 소리치며, 땅에 박혀 있는 마수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쿠웨에에에엑!

레너드의 공격에, 마수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온몸을 비틀어 댔다. 마수의 입에 물려 있던 내 몸은 다시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오늘 참 의도치 않게 하늘을 여러 번 나네. 빌어먹을.

“아가씨!”

“헬레나!”

아고트와 카이사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날 받으러 동시에 달려왔다. 덕분에 바닥에 내리꽂히는 사태만은 면했다.

“아가씨! 아가씨, 정신 차려 보세요!”

“아오……, 젠장!”

공녀 체면이고 뭐고, 욕부터 튀어나온다.

“헬레나, 괜찮아?”

날 품에 안은 카이사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 말에 대답했다.

“괜찮아 보여?”

“미안. 부질없는 질문이었어.”

카이사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 어깨에서 흐르는 피에 상의는 이미 피범벅이다. 갈비뼈도 부러진 것 같다. 허세를 부리기엔 여러모로 상태가 안 좋다.

하지만 골절 정도는 차라리 괜찮다. 진짜 위험한 건 따로 있었다.

“아고트.”

“네, 아가씨!”

“롯트 대장을 찾아서 전해. 저 마수의 타액엔 독이 있어.”

웜.

뱀의 형체를 가진 마수.

전생에도 딱 두 번 봤다. 애초에 개체 수가 많지 않은 마수이니까.

‘마수가 다 멸종해 가는 마당에, 하필 나타나도 저놈이 나타날 줄이야……!’

젠장. 젠장. 제기랄.

나는 왜 다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인가.

“그, 금방 돌아올게요!”

아고트가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한 후 대원들 쪽으로 달려갔다.

“저 마수의 타액엔 독이 있어요! 닿지 않게 조심해요! 롯트 대장님은 어디 있죠?!”

달려간 것 같다. 아고트의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으니까.

‘앞이 안 보여…….’

입술이 바짝 마른다.

녀석의 타액이 눈에 들어간 모양이다. 눈앞이 희부예지더니, 점점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낭패다.

“여기, 헬레나를 안전한 곳으로!”

카이사르의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그의 품이 너무 안온해서, 나는 계속 그 품에 안겨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지쳤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필요 없어.”

나는 카이사르의 옷깃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레나, 안 돼! 너, 상처가……!”

“그래요, 대장! 여긴 우리한테 맡기고 일단 물러나 계시는 게!”

카이사르와 대원들의 만류에도 나는 간신히 두 발로 서서 웜의 위치를 확인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뿌옇게 흐려진 내 시야에는, 움직이는 이들의 잔상과 형태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나는 이를 뿌득 갈며 말했다.

“마수 위치.”

“뭐?”

“위치!”

분노가 실린 내 외침에도, 대답이나 반응이 없었다.

이들은 지금 내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모른다. 그러나 그걸 설명하기엔, 내 조급함이 틈을 주지 않았다.

“마수 위치 말이야! 위……!”

딱 한 사람.

설명이 부족한 내 분노를 해석해 준 이가 있었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검을 쥔 내 오른손을 포개어 잡았다.

그리고 내 팔을 들어, 허공을 겨누게 했다.

겨누어진 검 끝에 몸을 뒤트는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다.

“헬레나가 뛰는 걸음으로는 열두 걸음 정도야.”

귓가에 카이사르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려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전투의 현장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다.

“내 뛰는 보폭도 알아?”

“난 너에 대한 건 모르는 게 없어.”

그래.

말하지 않아도 내 말의 의도를 이해해 주는 건 너 정도밖엔 없을 거야, 카이사르.

“나, 다시 튕겨 날아오면 네가 받아 줘.”

“분부 받들겠습니다, 스승님.”

독이 있는 마수를 상대하는 건,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생소한 마수의 공략 방법을 설명하는 건 시간 낭비다.

앞이 약간이나마 보일 때, 일격에 해치우자.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숲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기세로 소리쳤다.

“엄호!”

외침과 동시에, 바닥을 지치고 달려 나갔다.

대원들이 알아서 길을 텄다.

그들이 날 노리는 마수의 공격을 방어해 줄 것이다. 믿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

등 뒤에서 카이사르가 따라붙는 것이 공기의 떨림으로 느껴졌다. 어딘가 아고트와 레너드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으아아아아앗!”

열두 걸음.

나는 있는 힘껏 도약해서 마수의 턱 밑에 두 자루의 검을 찔러 넣었다.

그 후엔 내 몸무게에 의지해, 그대로 마수의 배를 갈랐다. 떨어져 나가는 마수의 비늘이 뺨에 달라붙었다.

―크아아악!

마수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몸체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그 탓에 내 몸은 다시 종잇장처럼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뭐, 괜찮아.

카이사르가 알아서 잘 받아 주겠지.

‘그러고 보니 살면서 이렇게까지 사람을 의지했던 적이 있었던가.’

웃기게도, 허공에 내동댕이쳐지며 그런 감상적인 생각이 번뜩 들었다.

사람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 누군가를 의지하는 건 약함의 증거라 생각해 왔다.

아,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약해진 것인가.

바닥과 충돌하기 직전, 카이사르가 나를 끌어안은 채 미끄러졌다. 날 다치게 하지 않으려 자신의 온몸을 바닥에 쓸리면서.

“잡았다……!”

굴러가는 게 멈춘 후에도, 카이사르는 꽉 끌어안은 날 놓아 주지 않았다.

“헬레나……, 잡았어. 무사해. 괜찮아. 내가 잡았어. 내가, 잡았어.”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헐떡거리는 그의 숨소리와, 쿵쾅대는 심장의 고동이 들려왔다. 수라장이 된 주변과 달리 그의 품은 기가 찰 만큼 안온했다.

응, 그래. 네가 날 잡았어.

멀리 마수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카이사르의 가슴에 기대어 의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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