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47/156)

* * *

상담이 필요하다.

정원의 정자에 앉아, 북풍을 맞으며 나는 절실하게 생각했다.

“피칸 파이와 초콜릿 타르트 중에 뭐가 더 좋아?”

“……타르트.”

“디저트 취향은 나랑 정말 다르군. 자, 줄게.”

카이사르가 타르트를 집어 내게 내밀며 말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냥 이리 줘. 손가락이 부러진 게 아니니까.”

“앞이 안 보이는데, 먹는 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게 뭐야.”

“내 손으로 집어서 내 입으로 넣는데 아무렴 콧구멍으로 넣을 리 없……, 하읍.”

카이사르의 말에 시시콜콜 반박하던 나는, 어느새 입 안으로 쏙 들어온 초콜릿 타르트에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버럭 화라도 내야 할 것 같은데……, 우물우물. 으음, 이 타르트 굉장히 맛있군.

“맛있어?”

맛있다.

하지만 맛있다고 말하면 진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달기만 한 게 왜 맛있지? 이해를 못 하겠네.”

“내 디저트 취향을 카이사르가 이해해 줄 필요 없거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카이사르의 손을 덥석 움켜잡고, 그의 손에 쥐어진 타르트를 합 하고 먹어 치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입을 벌리고 이 녀석은 내 입에 쏘옥 넣어 주는 민망한 상황이 계속 연출될 것 같았으니까.

“오호.”

내 속셈을 눈치챘는지, 카이사르가 탐탁잖은 양 소리를 냈다. 나는 ‘어떠냐’ 하는 듯 카이사르 쪽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뭐, 다른 사람이라면 좋아하든 말든 그야말로 상관없는 일이지만.”

“……?”

카이사르가 엄지로 내 아랫입술을 훔쳤다. 급하게 덥석 빼앗아 먹으면서, 타르트 부스러기가 묻었던 모양이다.

카이사르가 제 손가락에 묻은 부스러기를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핥아 먹더니,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헬레나가 좋아하는 거니까.”

‘……상담이 필요해!’

그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머리에서 열이 날 것만 같다.

분명 그의 행동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을 터다. 이전엔 그저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을 거다.

그러나 난 이제 그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인식할 수 없게 됐다.

상담이 필요하다.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능구렁이 앞에서 좀 더 의연해질 수 있게 만들 상담이!

* * *

어째서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거야?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전 처음이다.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은 것이.

사실 그걸 고백으로 쳐도 되나 싶긴 하다. 그 후로 극적인 변화가 없잖아? 내 정신 상태만 극적으로 변했을 뿐.

‘혹시 농담으로 한 말에 나 혼자 설레발 치는 건가?’

모르겠다.

난 이런 쪽의 경험은 전무하니까.

“……그래서 절 찾아오셨다고요.”

찰거머리처럼 따라붙던 카이사르 –를 포함한 여러 인간들– 을 간신히 따돌린 나는, 해밀턴을 찾아갔다.

서류 더미에 파묻혀 시들어 가던 해밀턴이 다소 쉰 목소리로 내 말에 대답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벤 변경후는 독신이고, 아고트는 카이사르와 사이가 안 좋고, 오라버니는……, 어쩐지 이런 상담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마지막의 그건 진심으로 현명한 판단이시네요.”

“그나저나 보고할 일이 그렇게 많으신가요? 내내 방에 틀어박혀 계시네요.”

“아, 보고는 다 끝났고, 지금 이건 페레스카 공작님께 따로 보내는 보고 겸 편지입니다.”

음, 그렇군.

내가 예정대로 귀경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야 할 테니 말이다.

“……너무 자세하게는 쓰지 않으시는 게.”

내가 약간의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해밀턴이 ‘흡’ 하고 울음 참는 소리를 냈다.

“역시 유서를 먼저 써 두는 편이 나을까요?”

“극단적이시네요. 하지만 유비무환이니까 나쁘지 않을지도요.”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해밀턴은 ‘으아아’ 하며 진지하게 괴로워했다.

아무리 우리 아버지라도, 마수와 싸운 딸에게 흠집 좀 난 정도로 분개하진 않으실 거다. ……그렇지 않나, 보통?

‘내가 보통을 알아야지.’

전에도 말했지만, 전생의 내 아버지는 내가 구르고 깨지는 일화를 가장 즐거워했다.

“크흠, 어쨌든……, 그렇군요. 이제 제게 연애 상담을 청할 만큼 어른이 되셨군요.”

해밀턴은 펜을 내려놓고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일단은, 여태까지 공녀께서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는 게 더 놀라운데요.”

“거기서부터 파고드시나요.”

으음, 하고 나는 낮게 신음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나 역시 내가 참 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냥 스승과 제자, 소꿉친구로서의 다정함과 신의라 여겨 왔지, 그것이 이성적인 연심의 영역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솔직히, 그 녀석은 까마득히 어린 꼬맹이였잖아. 황제 되기 싫어 무서워 엉엉 하던 코흘리개였다고.

서른 넘은 정신세계를 가진 인간이 그걸 보고 이성적인 감정이 샘솟는 게 이상한 거 아냐?

‘하긴, 이제는 내 정신연령이 어디쯤인지도 잘 모르겠다.’

한숨이 나왔다.

환경의 영향인지, 어느 순간부터 제 나이의 감정선에 익숙해진 기분이 든다. 전생의 기억은 기억대로 남아 있으면서 말이다.

‘이상한 부조화야.’

지금의 나는 어딘가 이상하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전하의 마음을 알게 되셨으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다행인 건가요?”

“서로 삽질만 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것보다야 낫죠. 이번 일로 전하도 확실히 아셨을 겁니다. 공녀께는 직언을 드리는 게 속 편한 일이라는 걸요.”

“……전 제가 눈치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을 하며 살아오셨군요.”

창피하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대체 어느 부분이 상담을 할 정도로 문제이신 겁니까?”

해밀턴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음,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요? 전하께서 고백에 대한 답을 원하시던가요?”

“아뇨.”

“아니면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시던가요? 공녀를 피한다든가…….”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럼 그냥 평소처럼 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평소처럼 안 되니까 문제지!

그 인간의 행동이며 말이며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가 되어서 미치겠단 말이다!

“자신의 눈치가 한 단계 진화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전하의 사랑을 듬뿍듬뿍 이용하세요.”

“전하의 보좌관이면서 꽤나 반항적인 말씀을 하시네요.”

“그분 밑에서 10년만 굴러 보세요. 사람이 이렇게 안 되나.”

음, 그 점에 대해서는 반박할 말이 없다.

나는 어린 시절 곧잘 해밀턴을 따돌리곤 했던 카이사르를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으음. 그렇군요. 현명하신 공녀께서도 연애는 초보이실 테니, 갑자기 깨닫게 된 자신의 마음이 낯설고 당혹스러운 게 이해는 갑니다.”

“제 마음이요? 아뇨, 저는 카이사르의 고백에 대해 상담 드리고자 하는 거예요.”

“하지만 전하께서는 고백 전과 후가 전혀 달라진 바가 없으니, 달라진 건 결국 공녀의 태도와 마음 아닙니까?”

엇, 그런가?

내가 멋대로 그를 신경 쓰고 의식하고 휘둘리고 있는 건가?

하지만 왜?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내가 왜 사람 때문에, 타인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휘둘려야 하는 건데?

“결국 중요한 건 공녀님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해밀턴이, 그로서는 드물게도 신뢰감 넘치는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공녀께서는 전하께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셨을 때 어떠셨습니까? 싫고 두렵던가요? 아니면 떨리고 기쁘던가요?”

나의 마음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카이사르를 향한 헬레나의 마음은…….

‘나는, 기뻤던가?’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의문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빨라지는 맥박과 더워지는 체온이, 떨리는 호흡과 달아오르는 얼굴이 말로 하지 못한 대답을 대신했다.

와, 어쩌지.

어떻게 나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었지.

나는.

그 녀석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