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4화 (5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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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귀환하신다고요.”

벤 변경후의 주도로 서재에 나와 카이사르, 해밀턴이 모였다.

가장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은 카이사르가 변경후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신세 많았습니다, 후작.”

“아니, 오히려 저희 쪽에서 감사를 드려야지요.”

변경후가 말을 마친 후 내 쪽을 쳐다본 후에 가볍게 묵례했다.

“마수의 피해가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모두 덕분입니다.”

“그것참 기쁜 소식이네요.”

“이걸 다 어찌 갚아야 할지.”

그렇게 말하는 변경후의 눈빛엔 진심이 어려 있었다.

변경후에게 카이사르가 특유의 압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쓸 것 없습니다. 난 내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넘기지 않는 것뿐이니까.”

즉, 이제부터 넌 이제 내 사람이다, 라고 못 박아 두는 말이다.

그 말에 변경후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페레스카 공작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이 모든 결과까지도 예측했겠지.

변경후는 흔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전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물러서지 않고 하겠습니다.”

“든든하군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좀처럼 웃지 않던 카이사르가 씩 웃었다. 그 오만한 미소가, 내 앞에서 보여 주는 비글 미소와 겹쳐져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가만 보면 내 앞에서와 다른 사람 앞에서의 태도가 놀랄 만큼 다르단 말이지.

‘사랑의 힘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부끄러움이 확 밀려와 목 뒤가 뜨끈해졌다.

“아, 그리고……, 실은 귀환하시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변경후가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카이사르와 해밀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도 어떤 영문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해밀턴이 다소 걱정을 담아 질문했다.

변경후는 집사를 불러 무언가 말을 전했다. 곧이어 변경후 휘하의 기사 세 명이 어떤 물건을 가져왔다.

‘별로 무거워 보이지 않는데 세 명이 들고 오네? 그것도 시종이 아니라 기사가?’

물건은 얇은 직사각형 유리 상자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죽?”

그것은 마수의 가죽 일부분이었다.

토벌 때 내가 발견한 문양이 찍혀 있는.

‘……엇?’

그리고 그 문양을 본 순간.

나는 심장에 기이한 통증을 느꼈다. 당황한 나는 무의식중에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심장이 둘로 쪼개어지는 듯한 통증. 순간적으로 손끝이 차가워지고 등 뒤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뭐지, 이 감각.

분명 전에도…….

“헬레나, 무슨 일이지? 혹시 어디 아픈 건가?”

그런 내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카이사르였다.

그러나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이사르를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통증은 물에 퍼진 잉크처럼 번져 서서히 사라진 후였다.

“아……, 아닙니다.”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게 뭔가요?”

카이사르가 걱정되는지 뭔가 더 말을 하려 하기에, 나는 모르는 척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사실 나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궁하다고. 나도 영문을 모르겠으니까.

‘이 문양과 관련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사냥 때, 이 문양을 발견한 순간에도 분명 이런 가슴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마수와 관련이라니, 그게 뭐든 불미스러워 보이잖아.

“마치 마법진처럼 생겼는데요.”

내가 말을 돌리니, 해밀턴도 냉큼 말을 덧붙였다.

이쯤 되니 카이사르도 내게 말을 걸 기회를 놓치고 입을 다물었다. 휴, 다행이군.

“지난번 사냥에서 잡은 루크로코타의 가죽 일부입니다. 이런 게 찍혀 있더군요. 마치 화인처럼.”

“화인……, 말인가요.”

“네, 웜의 가죽에서도 같은 게 발견됐습니다. 지금 그건 마법학회에 보내 둔 상태입니다.”

“거기선 뭐라고 했습니까?”

해밀턴이 물었다. 그러나 변경후는 가만히 고개만 저을 뿐이다.

“모르겠습니다.”

“네?”

“저도 마법에 관련된 게 아닐까 싶어 보내 본 것인데, 이건 룬어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마법은 ‘룬어’라는 독특한 언어 체계로 실행된다. 그러나 이 문양에 새겨진 글자 같은 것은 그 ‘룬어’가 아닌 모양이다.

“그럼 뭐란 말이지.”

카이사르가 단정했던 미간에 주름을 새기며 중얼거렸다.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추측하기로, 전 이것이 그 ‘드라코교’와 관련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용을 숭상한다는 종교 말씀이신가요?”

“네. 그들이 등장한 후 마수의 수가 늘었습니다. 그리고 마수의 몸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이런 문양이 나왔고요.”

뭐, 정황으로 보면 그렇긴 하다.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입을 열었다.

“문양에 마수를 조종하는 능력이 있는 걸까요?”

“글쎄, 마법이 아니라니 모를 일이죠.”

“이걸 고민할 필요가 있나?”

나와 해밀턴의 말에 이어 카이사르가 다분히 반항적인 말을 내뱉었다.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드라코교와 관련 있다면, 그 교인이든 교주들 불러들여서 캐물어 보면 될 일이야.”

“정황 증거뿐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마법 학자들도 모른다는 물건을, 마법도 모르는 우리 셋이 골몰해서 어떻게 알겠나?”

“그건 그렇긴 하지만…….”

“일단 그 종교인을 잡아 묻고, 그래도 정보를 못 얻으면 그 후에 다른 방도를 생각해야지.”

거기까지 말한 후, 카이사르는 다시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니면 여기 다른 유효한 방법이 생각나는 사람, 있나?”

없지.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으으음’ 하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후작님, 괜찮다면 제가 이 문양을 베껴 갈 수 있을까요?”

카이사르의 말에 다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는 그때, 내가 말했다.

“괜찮습니다만, 무슨 이유이십니까?”

“이 문양에 대해 물어볼 만한 사람이 생각나서요.”

“그게 누구지?”

카이사르가 내게 물었다.

“비밀입니다, 전하.”

난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우리의 적, ‘율리카 브란테’였으니까.

‘밑져야 본전. 나도 한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알아봐야지.’

왜냐하면 이 문양은 아무래도 ‘나’와 관련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런 생각을 감춘 채, 나는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세 사람을 향하여 무해한 미소를 방긋 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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