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54/156)

6. 황성 입성

마수 토벌이 끝나고 수도로 귀환한 후에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일단, 레너드가 졸업했다. 그것도 조기 졸업이다.

“축하드려요, 도련님!”

“고마워, 아고트.”

“축하해, 레너드.”

“감사합니다, 전하.”

레너드가 별저에 돌아온 날, 카이사르가 축하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선물을 가지고 찾아왔다.

선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크고 작은 선물 상자를 로비에 차곡차곡 쌓는 데만 두 시간이 꼬박 걸렸다고 한다.

“축하해, 오라버니.”

“고마워, 헬레나. 다 헬레나의 가르침 덕분이야.”

내 축하의 말에 레너드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훗, 당연하지. 내 제자가 허튼 실력을 가졌을 리 없잖아.

“그나저나 헬레나, 다친 데는 좀 어때?”

본인이 주목받는 이 순간에도 레너드는 금세 내 걱정이다.

“다친 널 두고 먼저 돌아온 게 미안해서 내내 마음에 걸렸어.”

“내가 보냈는걸. 그리고 다친 건 이미 오래전에 다 나았어. 끄떡없어.”

나는 다쳤던 팔을 붕붕 돌려 보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수도에 돌아온 후에도 카이사르가 황가의 의사를 데려오질 않나, 좋다는 약이라는 약은 죄다 구해 오질 않나, 하여튼 아주 극성이었다.

그 덕분인지 팔은 후유증 없이 깨끗하게 잘 나았다.

“정말이지? 아픈데 내가 걱정할까 봐 참는 거 아냐?”

“아냐, 정말이야. 전혀 안 아파.”

“그래, 그럼 괜찮겠다.”

“응? 괜찮다니, 뭐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기 무섭게, 레너드가 날 꽈악 끌어안았다.

아하, 안아도 괜찮겠다는 의미였구나.

“정말 걱정했어, 헬레나.”

“아이참, 오라버니도…….”

어휴, 하여튼. 어쩔 수 없는 천사라니까.

역시 우리 오라버니가 세상에서 최고다. 나는 팔을 들어 레너드를 꽉 끌어안았다.

“오라버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도 네가 가장 소중해, 헬레나.”

후우, 기분 좋다.

우리 집 천사가 드디어 집에 돌아왔구나. 마음이 훈훈해지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이제 좀 떨어지지?”

곁에서 잔뜩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렸다.

레너드와 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곁에 선 카이사르가 팔짱을 끼고 서서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와, 잿빛 늑대다.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아주 사납다.

“뭐야. 질투해?”

내가 툭 던지듯 물었더니, 카이사르가 한쪽 눈썹을 움찔했다. 정곡을 찔렸다만, 차마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듯이.

오호라.

나는 일부러 보란 듯 레너드를 더욱 꼬오오옥 끌어안았다.

뭐, 착한 레너드야 카이사르를 생각해서 나를 품에서 그만 놓……, 을 줄 알았는데, 어라. 레너드까지 보란 듯이 날 더욱 꽉 끌어안는다.

오오, 오라버니. 좀 하는데?

“아, 좀 그만하라고 이 팔불출 남매들아! 적당히를 몰라, 왜!”

결국 카이사르가 꽥 소리를 내질렀다. 억울하다는 듯 울먹거리는 눈망울이 되게 울리고 싶게 생겼다.

하아, 어쩌지. 카이사르는 예전이고 지금이고 놀리고 싶어진단 말이지.

‘좋아하는데도 말이지. ……좀 변태 같네, 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레너드를 더욱 다정히 끌어안았다. 꼬오옥.

* * *

레너드는 내년 봄부터 적기사단의 부단장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적기사단 부단장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달튼 단장이 레너드를 꾀려고 일부러 비워 둔 게 아닌가 싶다.

그 사람, 꽤 오래전부터 레너드를 눈독 들이고 있었으니까 말이지.

뭐, 덕분에 이번 마수 토벌 때 흔쾌히 지원받았으니 나쁠 것 없지만.

그리고 나는 처음 계획대로 황태자의 검술 교관으로 황성에 입성했다.

“……그랬는데.”

황가 전용 연무장.

널찍하고 쾌적한 연무장 중앙에 서서 검을 휙휙 돌리던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대체 왜 수련병들 검술 교관까지 하게 된 걸까?”

그렇다.

분명 ‘황태자의 검술 교관’이었는데, 자연스레 기사단의 수련병까지 가르치게 됐다.

마수 토벌 이후 적기사단이 가장 먼저 청해 왔고, 다른 기사단들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가르침을 청해 왔다.

거기에 해밀턴이 “이것은 공녀의 지위를 더욱 확고히 다지고, 전하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더없는 기회로 어쩌고저쩌고” 하는 바람에, 거기에 또 훌렁 넘어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승낙해 버린 후였다.

“뭐, 한 달에 한 번이라며? 그렇게 빠듯할 것 같지는 않은데.”

건너편에 서 있는 카이사르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내 말에 대답했다.

“말이 한 달에 한 번이지, 세 개 기사단이니까 한 달에 세 번이잖아.”

“그럼 거절하지 그랬어.”

“그랬어야 했는데, 해밀턴이 하도 불쌍한 얼굴을 하고선 부탁을 해 오니까……, 아니 잠깐만. 그런데 카이사르, 은근히 내 편 안 들어주네?”

뭐, 꼭 내 편 들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데?

아니나 다를까, 카이사르가 나보란 듯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뭐야, 저 태도는.

설마…….

“아직도 삐친 거야? 오라버니랑 끌어안은 일로?”

“그러면 넌 내가 그걸 보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엇, 뭐야. 무슨 귀여운 소릴 하는 거야, 이 남자.

나는 쓴웃음을 터뜨렸다.

“그 정도로 내가 좋아?”

“당연한 거 묻지 마.”

당연한 건가?

나는 카이사르에게 검을 겨누며 웃었다.

“좋아. 그러면 다섯 번 겨뤄서 한 번이라도 날 쓰러뜨린다면, 네가 평정심을 잃을 만큼 꽉 끌어안아 줄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이사르는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무서운 기세로 내게 달려들어, 어느새 내 코앞에 당도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았다.

카앙, 하는 금속성이 넓은 연무장에 메아리쳤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강렬한 부딪침에, 온몸이 짜릿짜릿했다.

“무르기 없기다?”

“하, 이길 자신 있나 봐?”

“스승님은 검을 들고 있을 때 가장 사랑스럽더라.”

“바닥에 드러누워서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내가 있는 힘껏 카이사르의 공격을 밀어냈다. 짧은 순간 몇 번이나 검과 검이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카이사르는 내 공격을 능숙하게 흘려 넘겼다. 나의 공격 패턴에 익숙해진 덕분도 있지만, 역시 본능적인 반응이 더 크다.

처음 검을 마주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검에 대한 그의 재능은 가히 천부적이다.

‘실력이 더 늘었어.’

카이사르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전처럼 여유롭게 상대하는 건 이제 무리다. 카이사르는 놀랄 만한 속도로 내 실력을 따라붙고 있다.

‘마수 토벌 때의 경험 덕분인가? 살기가 더욱 정제됐어.’

반응 속도도 더 빨라졌다.

판단력도 정확해졌다.

‘어쩌면 정말 나를 이길 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이사르가 재빠르게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검을 내리찍으려던 나는, 그가 왼팔을 드는 것을 보고 서둘러 검을 멈췄다.

“위험……!”

오래전, 그가 내 검을 팔로 막았던 일이 떠올랐다.

내기를 걸 때면 그는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내 검을 멈춰 세운 카이사르는, 그대로 나에게 다가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으잉?

“검을 멈추다니, 대련 중에 방심은 금물이잖아, 스승님?”

카이사르가 순식간에 살기를 거두고는 내 허리를 안아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 미친놈이?

“팔 또 망가뜨리려고 작정했어?!”

“아야!”

나는 자식 혼내듯 카이사르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카이사르는 아프다면서도 날 내려놓지 않았다.

“대련에 집중해, 이 바보야!”

매가 안 통하니, 결국 나는 검을 들었다. 내 어마어마한 살기에, 이번엔 카이사르도 찍소리 없이 날 내려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으헉, 주, 죽을 뻔했다……!”

“넌 죽었어.”

“뭐? 자, 잠깐만!”

대련이 속개됐다.

미친 듯이 퍼붓는 내 공격에, 카이사르는 크게 당황해서 뒷걸음질 쳤다.

‘아직 멀었어. 한참 멀었어.’

나는 이를 악물고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조금 전에는 크게 당황했다.

내가 검을 멈추리라는 걸 알고 파고든 카이사르. 그리고 정말로 검을 멈췄던 나.

실전에서였다면 말도 안 될 머뭇거림이었다.

한 방 먹은 기분이다. 카이사르야 한 방 먹일 생각으로 한 짓은 아니었겠지만.

“스승을 우습게 보지 마아아아!”

“죄, 죄송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살기가 충만해진 내 공격에 카이사르는 속절없이 방어에 몰두해야 했다.

결과는 나의 다섯 판 연승.

아, 물론 이것도 다 연애의 연장선이다. 의심스럽겠지만,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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