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환골탈태.
그것은 분명, 이 순간의 나를 위해 준비된 말이리라.
“와……, 엄청나네요.”
파티 당일.
거울 앞에 선 나는, 몰라보게 변한 내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아가씨……!”
아고트가 내 모습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아고트는 거의 졸도 직전의 표정이었다.
나는 거울을 통해 내 뒤에 선 로위나를 확인했다. 로위나는 홀로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혼을 갈아 넣었어요.”
등 뒤에서 의상 디자이너의 골골대는 목소리가 들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반드시 브란테 영애를 눌러 주고 오세요, 공녀님……!”
“에버그린 양의 독촉 때문에, 이젠 뵌 적도 없는 황후마마께 지면 자존심이 꺾일 것 같아요……!”
로위나가 엄선하여 섭외해 왔다는 신인 디자이너들은, 나에게 모든 열정을 다 불태운 후 기가 빨린 얼굴로 소파에 널브러졌다.
“꼭 이기고 돌아와 주세요, 공녀님……!”
디자이너들이 한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 글쎄, 싸우러 가는 게 아니래도 그러네.
“너무 아름다우셔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또 너무 아름다우셔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아깝기도 하고……. 아가씨, 정말 최고예요.”
“고마워, 아고트. 네 말을 들으니까 자신감이 생기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옆방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재개조 당하던 레너드였다.
레너드 역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짙은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정장이, 은발과 푸른 눈동자에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온몸에 푸른 사파이어를 갈아 넣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와, 오라버니……, 와아…….”
말이 안 나온다. 나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레너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로위나를 쳐다보았더니, 로위나가 ‘훗’ 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영혼을 갈았습니다.”
몇 명의 영혼이 갈린 거야, 대체.
레너드 역시 날 향해 ‘와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다가왔다. 레너드의 눈동자가 경탄으로 반짝거렸다.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더 아름다워질 부분이 있었구나.”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는 거람, 내 오라버니는.
“자, 시간이 없습니다. 주연이 늦어서야 말이 안 되지요.”
나와 레너드가 넋을 놓고 서로를 보며 감탄하고 있으니, 로위나가 손뼉을 짝짝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방을 나서며, 로위나가 내 곁에 따라붙어 내게 주의 사항을 일러 줬다.
“치맛자락 밟지 않게 주의하세요. 절대 눈 비비지 마시고요. 귀걸이가 제법 무게가 나가니, 고개를 너무 많이 흔들지 마세요. 코르셋 꽉 죄었으니, 너무 많이 드셔도 안 됩니다.”
“어휴, 무슨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그렇게 많나요.”
“아름다워지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후, 로위나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내 귀에 속삭여 말했다.
“립스틱은 망가뜨리셔도 돼요.”
“……?”
공들인 화장을 망가뜨려도 된단 말인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로위나를 쳐다보았으나, 로위나는 저 혼자 결연한 눈빛으로 날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결연함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일단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음료는 마음껏 마셔도 된단 의미인가?’
결국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마차에 올랐다.
* * *
내 의상은 손목을 장식한 붉은 리본을 제외하면 빛을 모조리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색이었다.
그 덕분일까. 파티장에 들어선 직후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말도 한결같다.
“공녀, 오늘 굉장히 멋지세요.”
“그야말로 밤의 여왕 같으십니다.”
“대형 마수를 두 마리나 토벌하신 분답군요. 강하고 듬직하십니다.”
이런 식이다.
보통은 예쁘다던가 아름답다고 칭찬하지 않나? 내 이미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심지어 박력 넘치는 분위기 덕분인지 주변에 사람들도 계속 몰린다. 이제 제발 날 놓아줘.
‘예전이라면 황후 쪽에 사람들이 더 몰렸을 텐데.’
나는 슬쩍 고갤 돌려 황후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상석에 앉은 황후가, 몇 명의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왁자지껄한 내 주변에 비하면 확실히 초라하다.
‘오늘 파티의 주역이 나라는 걸 고려해도 차이가 확 나네.’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표정이다만, 황후도 느끼고 있겠지. 자신의 존재감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그러고 보니 브란테 영애가 안 보이네요.”
내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곁에 서 있던 한 영애가 운을 뗐다.
내가 다시 무리를 향해 고갤 돌리니, 영애와 영식들이 재잘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게요. 황후마마 곁에 찰싹 붙어 다니더니.”
“마마의 총애가 식은 걸지도요.”
“저런. 금붕어 똥이 떨어져 나간 건가요?”
“어머, 짓궂으셔라.”
한 영식의 말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이게 끈 떨어진 뒤웅박 팔자라는 건가. 내 위세가 강해지니까 바로 손바닥을 뒤집는구나.
얘들은 내 위세가 다시 꺾이면 언제든 다른 쪽에 가서 붙을 녀석들이다. 너무 친해지면 안 되겠군.
율리카를 편 들어줄 필요는 없지만, 좀 주의는 해 둘까.
“너무 심한 말을 하는 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모양이네요. 저도 끼워 주시겠어요?”
그러나 내가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게 됐다.
무리의 등 뒤에서 본인이 등판했다. 율리카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니, 낄낄대던 무리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브, 브란테 영애?!”
“어, 어떻게 오신 건가요?!”
“어떻게라니요.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제가 못 올 곳을 왔나요?”
율리카가 생글생글 웃으며 가는 눈으로 그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어머, 다들 왜 그렇게 놀라세요?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저에게 뭐 죄지은 거라도 있으세요?”
율리카의 말에 다들 흠칫 몸을 사렸다. 하나같이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내 정신 좀 봐. 다른 분들께도 인사를 드려야지. 전 이만 시, 실례할게요.”
“앗, 저, 저도요. 같이 가요.”
“크흠. 그러면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공녀. 그리고 영애.”
신이 나서 율리카를 험담하던 이들이, 불 켜진 방에서 바퀴벌레 흩어지듯 빠르게 흩어졌다.
율리카는 ‘흥’ 하는 콧방귀로 그들을 배웅했다.
오올, 율리카. 좀 하는데.
“정말 수준 딱하네요.”
모두가 떠난 자리, 율리카가 남겨진 날 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사람들이 좀 치켜세워 준다고 모여서 제 험담이나 하고 있다니.”
“억울하네요. 전 분명 말리려 했답니다.”
“저더러 믿으라는 건 아니겠죠?”
믿기 어렵긴 하지.
아니, 그런데 좀 화나네? 나한테 음료 끼얹었던 건 어디의 누군데?
‘그나저나…….’
나는 내 곁에 선 율리카의 드레스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레이스가 많이 달린 짙은 붉은색 드레스에, 가슴에는 새까만 코사지가 달려 있었다.
검은색과 붉은색은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나란히 서 있으니 그녀와 내가 꼭 한 세트인 것처럼 보였다.
‘아니 뭐 이런 우연이.’
율리카랑 세트로 보여서 좋을 게 뭔데.
율리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 드레스를 찬찬히 훑어보고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아…….”
율리카가 내게서 고갤 돌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와, 방금 그건 좀 열 받네.
“헬레나, 여기 있었구나. 벤 후작께서 찾으셔.”
마침 레너드가 그런 나를 찾아왔다. 율리카와 마주치자, 두 사람은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나눴다.
“네게 인사하고 싶으시대.”
“응, 곧 갈게.”
나는 레너드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오늘은 어지간하면 율리카랑 나란히 서 있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