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63/156)

○ 7. 네가 처음이라

파티가 끝난 후, 나는 황성 복도를 제대로 걸어 다닐 수가 없게 됐다.

거의 스무 걸음에 한 번씩은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와 안부를 나눠야 했다.

그 사람들을 지나 연무장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체력이 바닥난 기분이었다.

“인기가 많으십니다, 그려.”

달튼 단장이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 히죽댔다. 얄미운 인간.

“지쳤어요.”

“뭐, 시간이 지나면 다 사그라들 관심이오. 좀 즐겨도 좋을 텐데 말이오.”

“사양할래요.”

전생에서 충분히 누렸던 타인의 관심이다. 조용한 삶을 살고 싶은 내게 두 번은 필요 없다.

‘하긴, 조용한 삶은 이미 틀렸지.’

마수 토벌에 나가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각오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각오를 했다고 싫은 일이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 거 보면 공녀는 참 이상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상해요? 제가요?”

“보통 이렇게 동경과 관심을 받게 되면 좋아할 텐데 말이오.”

달튼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쪽 눈썹을 씰룩거렸다.

“처음엔 빈말이겠거니 싶었는데, 지금 여기 콕 틀어박혀 숨은 거 보면 영 빈말은 아닌 양 싶고.”

“뭐, 사람마다 성격은 제각각이니까요.”

“그야 그렇긴 합니다만, 후에 비마마가 되실 거라면 이런 관심에 익숙해지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윽 하고 신음을 삼켰다.

달튼과는 늘 검이나 레너드에 관련된 주제로만 대화를 나눠 왔기 때문에, 그에게 듣는 ‘비마마’라는 단어가 몹시 생소했다.

“그렇겠죠……. 전하와 결혼하게 되면 황태자비, 그거 해야 하는 거지…….”

나는 괴로워하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런. 그것도 싫단 말이오? 참 고루고루 이상한 양반일세.”

각오는 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각오했다고 귀찮은 일이 귀찮지 않아지는 것은 아니라 이 말이다.

‘더구나 나, 결혼은 처음이라고……!’

황태자비는 둘째치고, 결혼 자체가 처음이다.

아니, 잠깐.

결혼이 문제가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나, 연애도 처음 아닌가?

‘연애……. 그런데 나 지금 제대로 연애 중인 게 맞나?’

나는 새삼, 카이사르와 내가 함께 만날 때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반추해 보았다.

대개는 검술 수업. 대련.

얼마 전엔 같이 마수 토벌.

그 외에는 집을 나가기 싫어하는 날 위해 카이사르가 공작저를 찾아와, 차를 마시거나, 아고트와 셋이서 대련하거나, 레너드까지 넷이서 대련하거나……, 어?

‘이거, 연애 맞아?!’

내가 아무리 연애에 대해 생초보라도 알겠다.

이건 연애라고 할 수 없어!

어딜 봐도 연(戀)은 없고 검(劍)만 있는 검애잖아!

“달튼 경.”

“예.”

“경께서는 언제 결혼하셨어요?”

“음, 한 5년 됐소만.”

“혹시 연애할 때 주로 뭘 하며 시간을 보내셨어요?”

내 질문에 달튼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 사람, 웃을 일이 아니라고! 난 심각해!

“요즘 전하와 영 재미를 못 보고 계신 모양이오?”

“아니, 그건 아닌데……, 뭐랄까, 다른 사람들은 연애할 때 주로 뭘 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흠, 글쎄. 난 정략결혼이었고, 연애 기간도 짧아서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긴 합니다만.”

달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함께 오페라나 공연을 보러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아가거나……. 뭐, 보통 그렇지 않소?”

너무나 연애의 정석 같은 대답이 나와서 꽤 놀랐다.

달튼 같은 검 바보도 연애는 제법 평범하구나.

“그런 게 보통이겠죠?”

“설마 전하와 공연 같은 거 보러 가 본 적도 한번 없소?”

“…….”

나는 대답 대신 달튼의 시선을 피했다.

“전하께서 먼저 권하신 적도 없소?”

“없네요.”

“흐음. 이상한 연인들이시구만. 그럼 두 분은 대체로 뭐 하시오?”

“……대련?”

“아…….”

검에 죽고 검에 사는 달튼이, 이것만은 용납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야, 그 눈빛. 자존심 되게 상하니까 그만둬.

어쨌든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나는, 나와 카이사르는, 지금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

* * *

연애란 무엇인가.

어떤 연애가 올바른 연애인가.

바른 연애를 위해 나는 대체 무엇을 하면 좋은가.

“교관님, 요즘 무슨 고민 있으십니까?”

수련병들 수업을 마친 후.

내 가벼운 한숨을 들은 것인지, 토벌 때 함께했던 수련병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다들 내가 걱정되어 죽겠다는 표정들이다.

“헉, 혹시 지난번 파티 때 불쾌한 일을 겪으신 건 아닙니까?”

“앗, 어떤 집안의 덜떨어진 놈이 우리 교관님을!”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가 가서 당장 그 놈팡이를!”

“그런 거 아니니까 다들 진정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뭘 자기들끼리 결론 내놓고 으싸으쌰 하고 있는 건지, 원.

“그럼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고민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다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솔직히 연애 문제라고 말하기 창피한 것도 있었다.

“음, 혹시 연애 경험이 있는 사람?”

내가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들고 물었다. 다들 내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손을 들기 시작했다.

잠깐만. 뭐야. 거의 다야?

“다들 이십 대 아냐? 연애 경험자가 왜 이렇게 많아?”

“이십 대인데 아직 연애 경험이 없어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엇, 그런 거야?”

왜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죽을 때까지 연애 한 번을 못 했다니, 노력하지 않은 분야가 있었구나, 전생의 나!

“저기, 지금 손든 사람들 중에 말이야. 호, 혹시 나랑 상담 좀 해 줄 사람 있어?”

내가 소심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렵사리 꺼낸 내 질문에 수련병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뭔가 깨달았는지, 갑자기 적극적으로 돌변했다.

“물론입니다! 교관님을 위해서라면 밤새워 상담에 응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밤을 새울 필요는 없어.”

“전 스무 번도 넘게 연애한 경험이 있습니다, 교관님!”

“뭐? 넌 탈락이야.”

“교관님! 저요! 전 자유 연애했던 유부남입니다!”

“오, 정말?”

“저 새끼 말 듣지 마십시오, 교관님! 저 새끼, 연애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다들 적극적으로 응해 주는 건 좋은데,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온갖 음해와 저격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지, 진정해 다들.”

내가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는 그때, 연무장 입구 쪽에서 카이사르가 해밀턴과 함께 나타났다.

아마 내가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데리러 온 모양이다.

“응? 이게 무슨 상황이지?”

평소와 다른 소란에 카이사르가 빙긋 웃으며 대답을 요구하듯 수련병들을 쳐다보았다.

“누구 앞에 나와서 나에게 설명 좀 하지 그래?”

수련병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려 하길래, 나는 당황하여 팔을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궁금하군.”

카이사르가 날 보며 한쪽 눈썹을 으쓱했다.

“궁금해하지 마세요.”

“섭섭한걸, 스승님. 난 스승님이 궁금해하는 건 뭐든 솔직히 말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전 아니거든요?”

“흐음.”

내가 완고히 거부했더니, 카이사르가 수련병들 쪽으로 흘끗 시선을 옮겼다.

내 입을 열 수는 없어도 수련병들이라면 털어놓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수련병들을 쳐다봤다.

‘말하지 마! 절대 말하지 마!’

내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수련병들이 걱정 말라는 양 결연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이건 저희와 교관님만의 비밀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전하라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사의 명예가 달린 일입니다!”

‘너희들……!’

나는 수련병들의 의리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물론 나와 자기들만의 비밀을 유독 강조해서 카이사르를 자극하는 건 좀 그랬지만.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까지 말하면 하는 수 없군.”

‘응? 의외로 순순히 물러나네?’

“그럼 하던 얘기 나누도록.”

카이사르는 정말로 더 재촉하지 않고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이상하네. 저 녀석이 저럴 녀석이 아닌데. 나는 수상쩍음을 느끼며 카이사르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뭐, 다행이긴 하지만.’

내가 저 녀석 때문에 연애 상담을 받다니, 죽어도 카이사르가 알게 할 수는 없지.

‘저 녀석에게만큼은 절대로 들키면 안 돼.’

카이사르가 사라진 입구 쪽을 쳐다보며, 나는 몇 번이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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