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수련병들의, 다소 과하지만 적극적인 상담과 관심으로, 나는 대략 보편적인 연애 코스를 습득하는 데 성공했다.
남은 건 실천이다.
“아고트. 이 옷 어때?”
나는 감색 원피스를 아고트에게 보여 주었다.
로위나가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라며 추천해 준 원피스로, 치맛단에는 풍성한 레이스가 달려 있고, 소매도 치렁치렁했다.
“와아, 예쁘긴 한데…….”
아고트가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뒷말을 흐렸다.
“왜, 별로야?”
“아뇨. 그게 아니라, 아가씨 취향과는 좀 거리가 멀지 않나 싶어서요.”
“그치, 내 취향은 아니지.”
이렇게 치렁치렁한 옷은 활동이 불편해서 별로다.
그러나 수련병들을 모아 두고 설문을 벌인 결과, 남자들은 이런 종류의 의상을 선호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뭐라더라, ‘샤랄라’풍?
들어도 어떤 건지 정확히 감은 안 왔다만.
“어쨌든 이상하진 않지?”
“그럼요. 아가씨는 뭘 입어도 아름다우신걸요.”
아고트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음, 그러고 보면 아고트는 내가 거적때기를 입어도 예쁘다고 할 애지. 질문자를 잘못 고른 걸 수도.
‘별수 없군. 로위나의 안목을 믿어 보는 수밖에.’
내 안목은 믿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마차 준비해 줘. 황성으로 갈 거야.”
“황성이요? 오늘은 수업 없는 날인데요.”
“알아. 오늘은 카이사르와 외출하기로 약속해 뒀거든.”
그렇게 대답한 후, 나는 각오를 다시 다지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늘 난 카이사르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작정이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보통의 연애를 할 것이다.
‘걱정할 것 없어. 준비는 완벽하니까.’
다수의 연애 경험자와의 상담과 정보 수집을 통해, 그야말로 완벽한 데이트 코스를 준비했다. 실패할 리가 없다.
곧 마차가 준비되어, 나는 방을 나섰다.
날 배웅하기 위해 홀에 나온 집사 케고르가, 내 의상을 보고는 괜히 자기 콧수염을 만지작댔다.
“아가씨. 평소와는 좀……, 다르시군요.”
저 말의 간격 사이에 대체 어떤 말을 숨기고 있는 건지 되게 신경 쓰이는데.
“별로인가요?”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오늘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거라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하겠습니다.”
“괜찮아요. 아, 오늘은 저녁도 밖에서 먹고 올 테니까 준비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더니, 그 말에 뭔가 깨달았는지 집사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갑자기 한 톤 낮아진 진중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렇군요. 오늘……, 즐거운 하루 보내고 오시기 바랍니다.”
뭘 깨달은 건진 모르겠지만,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집사!
마차는 곧장 황성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 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오페라 공연. 그 후엔 몽트 대성전에 들러 야경을 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한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의 계획을 몇 번이나 복습했다.
수련병들이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며 짜 준 코스였다.
심지어 오페라 좌석은, 내가 ‘무조건 1열이 좋은 거겠지.’ 하고 예약한 것을, 수련병들에게 엄청나게 혼나고 2층 발코니석으로 다시 예약했다.
이건 절대 망할 수가 없는 코스다!
나는 자신감에 넘쳤다.
“어서 와, 헬레나. 기다리고 있었어.”
안내받은 방에 도착하니, 카이사르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나는 각오를 다지는 심정으로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헬레나가 먼저 집 밖에서 만나자는 말을 다 하다니.”
“요즘 밀런 홀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이 꽤 괜찮다길래, 너랑 같이 가 보고 싶었어.”
나는 티켓을 꺼내 보여 주며 변명하듯 말했다.
티켓을 본 카이사르가 눈썹을 으쓱하며 웃었다.
“흐응, 오페라?”
“혹시, 별로야?”
“그럴 리가. 오페라, 좋아하지. 나는.”
아, 다행이다.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는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부터 하니까, 괜찮으면 카페에 먼저 들렀다가 갈래? 내가 분위기 좋은 카페를 알아 뒀어.”
“그래?”
“진짜 유명한 곳이래.”
“오, 그거 기대되는데.”
“그럼, 물론이지. 오늘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카이사르의 말에 조금 으쓱해진 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런 내 모습에 어째서인지 카이사르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스승님.”
카이사르의 미소가 어째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데, 내 착각이겠지.
나는 내게 손을 내미는 카이사르의 손을 잡으며, 마음 한구석에 슬그머니 떠오른 의문을 눌렀다.
* * *
우리는 마차로 시내 중심까지 이동했다. 마차에서 내리며 나는 준비해 온 양산을 펼쳤다.
“웬 양산?”
“예쁘잖아.”
“어느 쪽이? 헬레나가? 아니면 양산이?”
“음……, 양쪽 다.”
신중한 고민 끝에 내가 대답했다. 카이사르가 ‘흐음’ 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소릴 냈다.
수련병들 대부분이, 다소곳하니 양산을 쓰고 제비꽃처럼 웃는 애인의 모습이 퍽 아름다웠단다.
제비꽃처럼 웃는 건 어떻게 웃는 건지 모르겠지만, 양산이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물건이니까.
“그렇지만 오늘은 날이 흐린데?”
아.
카이사르의 말에 그제야 난 흐릿한 하늘을 확인했다.
양산에 집착한 나머지 날씨는 생각도 못 했다.
“뭐……, 예쁘니까 괜찮지 않을까.”
내가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했다.
“그래. 뭐. 예쁘긴 하니까.”
오, 긍정하는 건가?
나는 동의를 얻어 기쁜 마음으로 카이사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카이사르가 내 손에서 양산을 뺏더니, 자기 어깨에 올려 우산처럼 척 쓰는 것이 아닌가.
“엇, 뭐야?”
나는 순식간에 양산을 빼앗겨 당황했다. 카이사르가 그런 내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예뻐서 좋긴 한데, 헬레나랑 거리가 멀어지는 건 좀 싫군.”
“뭐?”
“오늘 예쁜 건 내가 할게. 헬레나는 양산 안 써도 예쁘잖아.”
카이사르가 날 쳐다보며 씩 웃었다.
아니, 이게 무슨 억지야.
“다 큰 남자가 양산 쓰고 있으니까 이상하잖아. 다들 쳐다본다고.”
아닌 게 아니라, 카이사르가 양산을 빼앗은 직후부터 사람들이 이쪽을 흘끗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잠행이랍시고 수행원들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나온 자리인데, 주목받아서 어쩌자는 건가.
“그냥 양산 접자. 나도 안 쓸게. 그러면 됐지?”
“응? 싫은데?”
“뭐?! 아니, 왜?!”
내가 황당해서 쳐다보았더니, 카이사르가 날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예쁘잖아.”
내가 했던 말로 반박하지 마!
“자, 그럼 가 볼까?”
“엇, 어엇?!”
카이사르가 양산을 빙그르르 돌리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느 카페인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앞서 척척 걸어간다.
‘뭐야, 왜 이렇게 신난 거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손에 이끌려 거리를 가로질러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