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89/156)

* * *

성회에 보존되는 관은 매장하는 것과 달라서, 으레 석관으로 만들어진다.

“관이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이네.”

나는 양쪽으로 정렬되어 있는 갖가지 관을 눈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돌로 조각된 사람들이 어깨에 관을 받치고 있는 것, 누운 사람의 생애를 관 옆면에 조각해 둔 것, 금으로 장식을 넣은 것 등등…….

나는 그 화려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고작 시신 보관하는 상자를 뭐 이렇게 화려하게 만들어 두는 거야?”

“가끔 헬레나의 그런 무신경함에 놀란다니까.”

내 투덜거림에 카이사르가 쓴웃음을 터뜨렸다.

“이래서는 단테의 관이 어느 것인지 알 수가 없잖아.”

관에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일일이 열어 보지 않는 이상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다.

아니지. 열어 본들 확인할 수 있을까?

아무리 방부 처리를 했다고 해도 시신이 일그러지고 쪼그라져 있을 것 같은데.

‘미라가 된 내 시체라니……, 막상 구체적으로 상상하니 별로 보고 싶지 않긴 하네.’

으으음.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관 뚜껑을 보고 확인하는 수밖에.”

카이사르가 근처의 관에 새겨진 조각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관 뚜껑?”

“응. 관 뚜껑에는 시신 주인의 전신이 조각되어 있거든.”

절로 표정이 구겨진다. 정말 악취미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그거.

“여기 있는 시신 대부분 남성이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관 뚜껑 말이지. 남의 관을 일일이 기어 올라가 봐야 하는 건가.”

보통 사람의 신장으로는 관 뚜껑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발 받침이나 사다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기어 올라가지 않아도 확인 가능하잖아?”

카이사르가 내 고민에 가벼운 말투로 반박했다.

“뭐?”

“헬레나 키에 내 키를 더하면 몇이게?”

그렇다. 카이사르가 날 안아 올려주기만 하면 해결될 일이다.

“앗, 그렇구나! 그럼 부탁 좀 할게, 카이사르!”

“그게 아니지, 헬레나.”

“아니라고?”

“자,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안아 주세요.’ 하고 말해 봐.”

카이사르가 턱을 치켜들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상한 요구를 해 오기 시작했다.

뭐야, 이 녀석. 요즘 오래 못 만났더니 이상한 데 눈 뜬 건가.

“안……, 으음, 올려주면 고맙겠습니다.”

“그 문장이 아닐 텐데.”

심지어 까다롭기까지.

그 말 한 문장이 뭐라고 이리 끈질기게 구는 거람.

뭐, 나도 그 한 문장이 뭐라고 괜히 부끄러워서 말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나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걸 간신히 견디며 더듬더듬 다시 입을 열었다.

“그……안아……, 꼭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는 거야?”

“빨리, 헬레나.”

“큭……, 안아 주십시오…….”

“흐음. 10점 부족한 90점이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귀여우니까 인정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젠장.”

“자, 이리 와.”

카이사르가 싱글벙글 웃으며 양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약이 오르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순순히 그에게 다가갔다.

카이사르는 단번에 나를 번쩍 안아 제 어깨에 앉게 했다.

“헉, 안 무거워?!”

너무나 가뿐하게 들어 올려서 도리어 내가 놀랐다.

“무겁지만, 헬레나니까 괜찮아.”

“무슨 논리야, 그게. 가볍다고 말해, 당장.”

“너무 가벼운 나머지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좋아. 앞으로 이동.”

가벼운 말장난으로 긴장감을 해소한 후, 우리는 가장 끝에 놓인 관부터 하나씩 신중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카이사르의 말대로, 관 뚜껑에는 사람이 누워 있는 형상이 부조되어 있었다.

대개는 늙은 성인 남성이라, 그런 관은 자세히 살펴볼 것도 없이 휙휙 지나쳤다.

“이것도 아니고……, 음, 이것도 아니고.”

“아직도 못 찾았어? 이제 슬슬 내 어깨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헉, 미안해. 정 힘들면 내가 카이사르를 안을까?”

“……죽을힘을 다해 버텨 볼게.”

내 말에 카이사르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나에게 안기는 건 굴욕적이라 싫다는 건가.

어두운 지하에서 촛불에 의지하여 단테의 관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하나씩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드디어 낯익은 얼굴이 부조된 석관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거다……!”

내 얼굴이다.

500년 전의 내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돌로 만들어졌음에도, 실제와 차이가 없을 만큼 생김새가 실감이 났다. 만지면 체온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기분이 이상하네.’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잠자듯 죽은 내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라니.

카이사르가 나를 내렸다. 우리는 관 뚜껑을 열기에 앞서 잠시 긴장된 기분을 진정시켜야 했다.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시신을 직접 마주하는 건 각오가 좀 필요하다. 특히 나 자신의 시신이라면.

“……준비됐지, 헬레나?”

“응. 준비됐어.”

“좋아. 열어 보자.”

석관인지라 뚜껑의 무게만도 어마어마해서, 지렛대를 동원하고도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 간신히 관 윗부분이 한 뼘 정도 밀려났다.

“헉, 열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팔을 주무르며 내가 말했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카이사르는 미간을 찡그렸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열렸는데.”

카이사르가 조용히 읊조렸다.

“무게는 둘째치고 몇백 년이나 열린 적이 없었을 텐데, 예상보다 쉽게 열리지 않았어?”

“그러게. 그러고 보니 냄새도 별로 안 나고.”

아무리 시신을 방부처리 했다지만, 뚜껑을 열면 냄새가 올라와야 정상일 터다.

그러나 관 안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희미한 먼지 냄새만 올라왔을 뿐.

‘어쨌든 확인을 해 봐야지.’

나는 열려있는 관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차라리 시신이 완전히 썩어서, 노에도 어찌 손 쓸 방도가 없을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안을 들여다보기 전, 카이사르가 내 어깨를 잡아 날 멈춰 세웠다.

“안은 내가 확인해 볼게.”

내게 시신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생에서는 전쟁터를 다니며 나뒹구는 시신을 보는 게 일상일 때도 있었건만.

‘음. 그래도 역시 내 시신을 직접 보는 건 좀 비위가 상할지도.’

나는 카이사르의 배려를 얌전히 받기로 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카이사르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내게 촛대를 받아 관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까치발을 들어 조그마한 틈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잘 안 보여?”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의 뒤쪽에 서 있던 나는 초조한 마음에 재촉하여 물었다.

뭐 보기 좋은 게 있다고, 카이사르는 관 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촛대를 이리저리 옮기며 꼼꼼히도 말이다.

“왜 그래?”

이제는 초조함을 넘어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러, 결국 나는 불길함을 느끼며 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답이 돌아왔다.

“……없어.”

“뭐?”

“아무것도 없다고.”

카이사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농담이지? 싶었으나, 굳은 그의 표정을 보니 농담은 아닌 듯했다.

“나도 볼래.”

결국 나도 관에 매달려 관 안을 살폈다.

“……이게 어떻게 된……?”

카이사르의 말이 맞았다.

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신도, 시신을 싸 두었을 세마포도, 함께 부장했을 물건도, 아무것도.

“설마 관이 생각보다 쉽게 열렸던 게, 이미 한 번 누군가 열어 봤기 때문이었나?”

내가 카이사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카이사르는 대답 없이 그저 미간을 찡그렸다.

“이젠……, 어쩌지?”

내 얼빠진 질문이 무거운 침묵에 묻혀 가라앉았다.

돌겠네.

나야, 어디로 간 거니?

시신이 사라졌다.

이건 예상도 못 한 상황이었다.

내 심장에 여전히 용이 봉인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는데, 상태가 문제가 아니게 됐다.

“대체……, 언제 사라진 거지?”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을 구하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는, 혼란스러운 내 정신을 진정시켜 보려는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설마 드라코교에서?”

노에가 가져간 건가?

그 녀석은 마법을 사용할 줄 아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용의 봉인 장소만 안다면, 어떻게든 빼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교주가 ‘용의 육신’은 이미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는 둥 하는 얘길 했었어.”

나는 집회 때 노에가 떠들어 대던 이야기를 반추하여 설명했다.

카이사르가 ‘으음’ 하고 신음하더니 한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렸다.

흔들리는 촛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그의 얼굴이 유독 창백해 보였다.

“일단……, 나가자. 여기서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카이사르가 긴 한숨을 내쉬며 제안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들어온 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누군가 온다.”

무의식중에 내가 말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린 것이다.

나와 카이사르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발소리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심지어 한 명도 아닌 것 같다.

“부, 불 꺼!”

카이사르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촛불을 끄고 있었다.

관뚜껑을 닫을 여유도 없이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꺼진 초에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흰 연기가 한줄기 피어올랐다.

우리가 주저앉음과 동시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하실의 문이 열렸다.

“응? 뭐야, 뭔가 타는 냄새 나지 않아?”

기사인가?

나와 카이사르는 서로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입구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냄새? 그냥 지하실 냄새 아냐?”

킁킁, 다른 한 명이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그런가? 뭔가 태운 냄새 같은데. 좀 살펴볼까?”

“에이, 귀찮게.”

깐깐한 기사와 건성인 기사의 조합인 모양이다.

기왕이면 건성인 기사의 의견을 따라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다만.

“그래도 내려온 김에 한 번만 둘러보자. 불 좀 켜 봐.”

안타깝게도 깐깐한 기사의 발언권이 더 강한 것 같다. 젠장.

나와 카이사르는 숨을 죽인 채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몸이야 숨긴다지만, 열려 있는 관뚜껑과 널브러져 있는 지렛대며 촛대를 어떻게 치울 거냔 말이다.

더군다나…….

“엇, 촛대가 하나 없는데?”

“뭐?”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다 끝났다는 생각밖엔 안 든다. 불법 침입은 둘째치고 시신까지 없으니 내가 다 뒤집어쓸 판이구나.

“얼른 좀 켜 봐.”

“기다려, 좀. ……아, 됐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숨은 곳까지 빛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관의 그림자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려 몸을 더 웅크렸다.

“저쪽부터 천천히 살펴보자.”

“아, 귀찮은데…….”

“비품 없어진 거 보고도 귀찮다는 소리가 나와?”

“분명 어제 순찰조가 까먹고 그냥 가지고 나간 거겠지. 한두 번이냐.”

게으름이 정점에 달한 듯한 기사 하나가 연신 투덜거리며 다른 기사를 말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잘한다! 힘내라, 게으른 기사여!

“솔직히 여기 침입자가 있어도 뭘 훔쳐 갈 건데? 시체? 팔아먹을 수는 있냐?”

“아 거, 말 많네, 진짜.”

“나는 여기 좀 으스스하단 말이야. 대충하고 가자.”

“뭐, 나도 으스스하긴 한데…….”

오, 희망이 보인다.

나는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심장이 쿵쾅대서 미칠 것 같았다.

나만 떨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있는 카이사르의 심장도 내가 느껴질 정도로 쿵쾅대고 있었다.

“그래도 내려온 김에 한 바퀴만 돌자. 오늘 저녁에 타르트 나온다던데, 내 몫도 너 줄 테니까.”

고작 타르트에 굴복하는 건 아니겠지, 게으른 기사여.

“오, 그거 좋은데. 후딱 볼까?”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게으른 기사는 너무나 쉽게 함락당하고 말았다.

고작 타르트 하나에 꺾일 정도의 게으름이라니. 저 기사는 크게 될 인물은 아님에 틀림없다.

‘어쩌지. 난 둘째치고 카이사르는…….’

나는 흘끗 카이사르를 쳐다보았다.

그는 통로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빛이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절그럭, 절그럭. 부츠가 돌바닥을 밟는 소리가 서늘하다.

흐릿하던 빛이 점점 또렷하게 다가올수록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어? 저 관……, 좀 비뚤어져 있는 것 같지 않아?”

들켰나.

난 허벅지에 매어 둔 검에 손을 가져갔다. 카이사르가 망토로 나를 완전히 덮어 가렸다.

좋아. 들키면 기절시키고 튀자.

그렇게 결심이 섰을 때.

“문이 열려 있어 내려와 보았습니다만. 두 분, 여기서 뭣들 하십니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건들거리는 말투가 어쩐지 귀에 익었다.

‘호크다.’

적기사단 수련병인 호크가 분명하다. 나는 티 나지 않게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엇? 적기사단?”

“이크, 성회기사단 분들이군요? 그렇지만 오늘 지하는 순찰 경로가 아닐 텐데요.”

“아, 이상한 기척이 있어서 내려와 본 겁니다.”

“예식도 거의 다 끝나서 일손 부족한 지금 말입니까? 에이, 땡땡이 변명치고는 좀…….”

“때, 땡땡이라니! 절대 아닙니다!”

“예이, 예이. 뭐, 성회기사단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실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호크가 그 특유의 얄미운 억양과 말투로 두 기사를 힐난했다.

“그럼 계속 수고하십쇼. 전 어쨌든 본 게 있어서 보고는 올리겠습니다.”

“네?! 자, 잠깐만요! 그게 아닌데……!”

“에잇, 거봐! 너 때문에 혼나게 생겼잖아! 저기,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호크가 계단을 올라가니, 두 기사도 허겁지겁 호크를 따라 사라졌다.

복도를 비추던 빛이 흔들거리며 멀어지더니,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이내 다시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찾아온 지독한 침묵.

“……사, 살았다.”

기사들이 물러난 후에도 우리는 한참 동안 웅크린 자세로 굳어 있었다.

“너무 긴장했더니 손발이 저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카이사르도 그제야 날 덮었던 망토를 치웠다.

“하아……, 두 번 다시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

“동감이야. 심장에 안 좋아.”

서로 한마디씩 투덜거리고 나니 긴장이 좀 풀린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