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저한테 감사하십쇼, 두 분 다.”
한 시간 후.
예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대성전을 거의 다 빠져나간 후에야 우리는 지하실을 나올 수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호크가 우릴 적기사단의 마차로 안내하며 거드름을 피웠다.
“제가 때맞춰 등장하지 않았으면 두 분 다 어떻게 됐을지. 어휴.”
호크가 과장되게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한결같이 얄미운 자식이다.
마차에는 나와 카이사르 두 사람만 올랐다. 호크는 마차 문밖에 서서 돌아갈 방법을 설명했다.
“전하는 이 마차로 황성까지 가시면 됩니다. 교관님은 외곽에 준비된 마차로 갈아타십쇼.”
짤막한 설명이 끝난 후, 마차가 출발했다.
덜그럭거리며 마차가 출발한 후에야 우리는 두려움과 긴장에서 다소 해소됐다.
‘내 시신……, 어디로 갔을까.’
나는 멍한 정신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카이사르도 같은 얘기를 꺼냈다.
“단테 레나투스의 시신을 가져간 건 드라코교겠지. 어디로 가져간 걸까?”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끌고 가는 장소와 같을 거야.”
“일단 수색대를 파견해야겠군. 성회에는……, 하아. 염두에 두지 않는 게 나을지도.”
카이사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회에 도움을 얻으려면 단테와, 크루세흐와, 사라진 시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어느 내용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커튼 틈으로 보이는 바깥의 풍경에 시선을 보내며 대화를 이어 갔다.
“대체 왜 크루세흐를 되살리고 싶은 걸까? 그 용 때문에 하마터면 인간들이 멸망할 뻔했었는데.”
“모르지. 짐작 가는 건 있지만.”
“그게 뭔데?”
“마수 토벌 때 레너드가 그랬잖아. 용이 멸종된 후 마수도 마법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정말 마법이 사라진 게 용과 관련이 있다면 말이야. 용이 부활했을 때 가장 이득을 볼 인간은 누구겠어?”
“……마법사들?”
“그렇지. 드라코교 교주도 마법을 썼다면서.”
카이사르의 추측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럴싸한 추측이지만, 역시 나로서는 얼른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작 마법을 다시 부흥시키고 싶어서 용을 되살린다는 게 가당키나 해?”
“나야 알 수 없지. 하지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는 개인마다 다 다른 법이잖아.”
카이사르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보다 나는 네가 걱정이야, 헬레나.”
“나 말이야? 어째서?”
“교주가 너에게 왕이니 뭐니 말했다면서.”
카이사르의 눈빛이 일순 차가워졌다. 나도 모르게 ‘흡’ 하고 숨이 멈췄다.
“마수 토벌 때도 이상했지. 마수들이 널 노리듯 달려들었고.”
“그랬……, 지.”
“황가에서조차 모르는 크루세흐의 봉인 장소도 알고 있고.”
카이사르의 추궁 아닌 추궁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나도 이 일에 관련은 있어. 다만 정확히 내 역할이 뭔지 모르겠어. 추측은 하지만.”
“그게 뭐지?”
“어쩌면 내가 크루세흐의 부활에 필요한 부품일 수도 있겠다는 거.”
“단테의 심장처럼 말인가? 왜? 네가 단테나 용과 어떤 관련이 있어서?”
“그건……, 말 못 해.”
난 카이사르에게서 고갤 돌렸다.
카이사르는 말이 없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듯, 내 말의 진위 여부를 가늠하는 듯.
그사이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를 갈아타야 할 외곽 지역에 도착한 것이다.
“……내려야겠군.”
커튼을 살짝 걷어 박을 확인한 카이사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쨌든 헬레나가 이 일에서 빠질 생각이 없다는 건 잘 알겠어.”
카이사르가 얕은 한숨에 섞여 그렇게 말했다.
“단테의 시신은 내 쪽에서 수색대를 보내 볼게. 뭔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헬레나는 얌전히 있어 줬으면 좋겠어.”
“……노력해 볼게.”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카이사르는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가 먼저 마차에서 내리고, 뒤이어 내가 내렸다.
밖에는 미리 준비된 또 다른 마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몸조심해, 헬레나.”
“응. 카이사르도.”
짧은 인사 후에 카이사르가 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키스라기보다는 흔적을 남기는 듯 절박해 보여서, 나는 어쩐지 서글퍼졌다.
“자, 어서 가.”
카이사르가 쓰게 웃으며 내 손을 놓았다.
나는 대기 중인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서 걸음을 멈추고 카이사르를 돌아보았다.
카이사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날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카이사르가 재촉하듯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볼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걸음은 마차가 아닌 카이사르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카이사르에게로 돌아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프지 마, 카이사르.”
“그래, 걱정 마.”
“일 좀 쉬엄쉬엄하고.”
“그건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내가 금방 데리러 갈 테니까.”
목소리 끝이 조금 떨렸다. 나는 그의 옷깃을 힘껏 움켜쥐며 다짐하듯 재차 말했다.
“내가, 다시 찾아올 테니까.”
나를 안은 카이사르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참, 보내고 싶지 않게.”
카이사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마치 한 사람의 것 같은 그림자가 오후 나절의 길 위로 길게 늘어졌다.
해가 기울어져 모습을 감출 만큼 오랜,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없이 짧은, 시간 동안.
S6. 로위나 에버그린의 이해 불가
로위나 에버그린은 황성에서 ‘늑대 조련사’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잿빛 늑대’를 곁에서 가장 오래 모신 해밀턴보다도 더 잘 다루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아마도 황성에서 카이사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가 아닐까.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면, 그녀는 늘 무표정한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며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글쎄요. 사실 저는 아직도 전하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진짜 속내인지 단순한 겸손인지는 모르겠지만.
* * *
사람들은 그를 폭군이라 부른다.
그를 거스를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안 됩니다.”
어느 오후, 집무실.
적기사단의 부단장인 레너드 페레스카는 카이사르의 의견을 일언지하에 묵살했다.
그 탓에 집무실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로위나도, 적기사단의 총무 제럴드도 그저 입을 다문 채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지?”
“너무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명분이 없습니다.”
“명분은 뭐든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신년 축하라든가.”
“선례가 없습니다만.”
“기어코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 말이로군.”
“아무리 전하라 하셔도, 이번 일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꿀꺽.
옆자리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 로위나는 흘끗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제럴드가 이 일촉즉발의 흉흉한 상황에 긴장한 나머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카이사르가 어금니를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그 살기만으로는 자신의 의견을 묵살한 레너드를 당장 베고도 남을 기세였다.
주변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 그 냉혹함으로, 카이사르가 말했다.
“어째서 나는 헬레나에게 보양식을 보내 줄 수 없단 말인가……!”
……돌겠군.
로위나는 시선을 허공으로 보냈다. 이 주제로 벌써 한 시간째 토론 중이다. 제발 적당히 하고 이제 일 좀 했으면.
“누가 들으면 페레스카가에서 귀한 딸 굶기기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전하.”
“하지만 분명 살이 빠졌어. 이렇게 안아 올렸는데, 이전 무게가 아니었단 말이다.”
카이사르가 안아 드는 흉내를 내며 절박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에 레너드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제 여동생을 함부로 안아 올리지 말아 주십시오.”
“심각한 문제야. 분명 2킬로그램 정도는 빠졌어.”
“2킬로그램은 한 끼만 굶어도 빠집니다, 전하.”
“헬레나가 밥을 굶다니, 그게 흔한 일이라 생각하는 건가, 레너드?”
“흔한……, 일은 아니죠.”
두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동시에 ‘으음’ 하고 신음했다.
“어쨌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요.”
레너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나마 한 명은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로위나는 생각했다. 둘 다 바보면 감당이 안 된다.
“곁에 다른 여자를 두고 계신 이상, 전하께서 제 동생에게 베푸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다. 둘 다 바보였군.
로위나는 이마를 짚었다. 제럴드는 ‘신이시여’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아, 갑자기 잃었던 신앙심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레너드, 내게 차가워졌군……!”
“동생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그게 누구라도 제 적입니다.”
“그대와 나 사이의 친애는 대체 어디로 증발한 것인가.”
“작금의 사태를 해결하시면, 재고해 보겠습니다.”
“난 자네를 믿었는데! 자네마저 내게 등을 돌리면 난 누굴 믿으란 말인가!”
아아, 이야기가 또 산으로 향하고 있군.
로위나는 이제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를 세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제럴드만이 안절부절못할 뿐이다.
“어, 어쩌죠, 에버그린 씨? 말려야 하지 않나요?”
“사람이 안 죽으면 평화로운 겁니다.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저게?”
“아.”
“?”
“화장실 가고 싶네요.”
로위나가 안경을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 듯한 말에, 제럴드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