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침실 안은 커튼을 쳐서 어두웠다.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눴다.
방 안은 지독하게 조용했다. 침대는 안쪽 방에 있어, 입구에서는 카이사르가 누워 있는지 아닌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주무시고 계신가 봅니다.”
해밀턴이 소리를 죽여 말했다.
“역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주무시는 걸 깨울 수는 없잖습니까.”
“안 깨워요. 괜찮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해밀턴의 말대로, 카이사르는 방문 쪽을 등진 채 잠들어 있었다. 어깨가 일정 간격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깊이 잠든 건가.’
아무리 인기척 없이 다가왔다지만 안 깨어날 줄이야.
카이사르는 어릴 때부터 암살의 위협을 자주 당했다. 때문에 나 역시 그에게 살인검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을 잘 리가 없다.
“공녀. 그만 돌아가자니까요.”
해밀턴이 어린애처럼 보챘다.
하지만 난 그의 말을 무시하고 침대 곁에 슬쩍 걸터앉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해밀턴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숨소리도 고르고, 땀도 안 나고……. 지금은 안정됐나 보네.’
나는 그의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며 생각했다.
벌어진 앞섶 너머로 빗장뼈가 도드라져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살이 빠졌어. 왜지?’
아무리 일이 많고 피곤하다고 해도, 그는 꾸준히 체력 단련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살이 빠지는 건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할 뿐이다.
내가 곁에 있었다면.
곁에서 계속 지켜봐 주었다면.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텐데.
“공녀, 좀 나가자니까요.”
어느새 곁에 다가온 해밀턴이 소리를 죽여 나를 보챘다.
“전 안 나가요.”
“공녀……!”
“저희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도록 깨지 않으시잖아요.”
“그러니까요. 모처럼 깊이 주무시니까 나가자고요……!”
“이럴 때 침입자가 찾아오면 꼼짝없이 당해요. 전 폐하께서 깰 때까지 여기 남겠어요.”
“저희가 그 침입자입니다만……!”
해밀턴은 거의 미칠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 거면 대체 왜 따라오겠다고 한 거지. 이해가 안 되네, 진짜.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해밀턴이 ‘히익’ 하고 털을 쭈뼛 세우는 고양이처럼 긴장했다.
“누군지 어서 나가 보셔요, 자작님.”
“……제가 다시 올 때까지 아무 짓도 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네?”
누가 보면 내가 카이사르를 암살하러 들어온 줄 알겠네.
해밀턴은 몇 번이나 날 돌아보며 방 입구로 향했다. 뒤이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사르의 부재와 관련된 일로, 로위나가 해밀턴에게 의논을 하러 찾아온 모양이었다.
지금 카이사르가 집무실이 아닌 침실에 누워 있는 건 최측근들 외엔 비밀이니까.
저대로 로위나가 해밀턴을 데리고 가 줬으면 좋겠다. 곁에 있어 봐야 성가실 뿐이니까.
‘자, 그러면…….’
나는 다시 카이사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열은 없겠지.’
나는 카이사르의 이마에 슬그머니 손을 가져다 댔다.
미열이 느껴지긴 했으나, 열이 높진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
카이사르의 손이, 자신의 이마를 짚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흠칫 놀라 몸이 떨렸다. 곧이어 카이사르의 감겨 있던 눈이 떠졌다.
그의 잠기운이 전혀 남지 않은 붉은 눈동자가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런……, 완전히 방심했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던 거야?’
나는 뜨악하는 심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