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05/156)

* * *

율리카 브란테에게는 자꾸만 경계를 허물게 된다.

피해자인 양 하는 그 표정. 울먹임. 도무지 적수라고 여기기 힘든 나약함. 피해망상.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려 자신을 잃어버린 가엾은 인생.

그런 것들이, 율리카를 향한 증오를 자꾸만 깎아 먹곤 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로위나의 답이 돌아올 때까지, 율리카는 나와 함께 방에 감금됐다.

그 차가 사실은 독이라는 내 설명에, 율리카는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 며칠이나 그 차를 마셨지만, 아무 문제 없었어요. 아무렇지 않았다고요.”

“그랬겠죠. 극소량이니까.”

나는 율리카를 향해 경멸을 감추지 않고 보내며 말했다.

“독이라고 먹자마자 즉사하는 그런 종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천천히, 아주 조금씩, 티 나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종류의 독이 더 많아요.”

“그, 그런. 태황후께서 왜 절 죽이려 하시겠어요?!”

“모르죠. 태황후가 영애를 죽이려 한 건지, 영애가 날 죽이려 한 건지.”

“……네?”

율리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영애가 내게 건넨 거잖아요? 독이 든 차를.”

“아……, 아, 아니, 전 그런 건 생각도 안 했어요. 그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마음?”

하! 하고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마수에게 발견된 문양을 반역의 증거로 삼으려 태황후에게 준 것도 순수한 마음이었나요?”

내 질책에 율리카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치맛자락을 꼭 쥔 그녀의 손등이 하얬다. 어깨가 안쓰러울 만큼 바들바들 떨렸다.

“독이……, 들었을 리가 없어요.”

결국 율리카는 고장 난 장난감처럼 고갤 떨군 채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공녀가 오해한 거예요. 말도 안 돼. 그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내가 티팟을 로위나에게 보낸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그 소리에 율리카가 불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고갤 들었다. 곧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이 로위나와 기병장이라는 걸 확인하고서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가르말 공작님…….”

율리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기병장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로위나와 눈빛을 교환했다. 로위나는 그저 말없이 안경만 고쳐 올렸다.

기병장인 가르말은 3공작 중 한 명으로 권위가 컸고, 무엇보다 어느 쪽의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이었다.

아마 그래서 일부러 택해 데려온 것이리라.

“일단 두 분 다 앉으시죠.”

가르말이 다소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며 양손으로 앉으라는 제스처를 했다.

율리카는 휘청거리며 앉았고, 나 역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우리 둘이 앉고 나니, 로위나와 가르말도 각자 시종이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방에 네 사람만 남게 되자, 가르말이 한숨을 시작으로 입을 열었다.

“에버그린 양의 부탁으로 급히 전문가를 불러 알아보았습니다. 일단 두 분께도 다시 확인하죠. 드신 차가 이것이 맞습니까?”

가르말이 가져온 티팟의 뚜껑을 열어 나와 율리카에게 보여 줬다. 우리 둘 다 동시에 고갤 끄덕여 긍정했다.

“도, 독 같은 게 아니죠?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꽃차잖아요? 그렇죠?”

율리카가 미간을 찡그린 채 입꼬리만 올려 웃으며 물었다.

“브란테 영애.”

가르말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율리카를 불렀다. 율리카가 무슨 죄를 지었든 다 사해 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이건 ‘페르바우스’라는 독입니다. 치사량의 독성은 아니지만, 꾸준히 섭취하면 독성이 쌓여 몸에 치명적이죠.”

“그, 그런……!”

율리카가 양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예요. 그럴 리가 없어요.”

“이건 제국에서 나는 독이 아닙니다. 바다 건너 이대륙에서 건너온 물건이죠. 일부러 구하지 않는 이상 실수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가르말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였으나, 말의 내용만은 가차 없었다.

“실례지만, 이 차를 태황후께서 내어 주신 게 맞습니까?”

가르말의 추궁에 율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어지럽게 떠다닐 것이다.

여기서 태황후의 이름을 말하면 태황후가 위기에 몰린다. 그러면 아버지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영애. 말씀해 주시죠.”

“모……, 몰라요. 모르는 일이에요……!”

“하아. 그렇습니까. 뭐, 관련된 시종들도 다 잡아들였으니 결국 밝혀질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가르말이 곤란하다는 듯 검지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어쨌든 영애가 이것을 공녀께 대접한 건 사실이라, 영애가 이 독과 무관함을 증명하기 전엔 감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억울함 없이 조사할 것이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가르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황한 율리카가 따라 일어났으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넘어졌다.

그러나 아무도 율리카를 일으켜 주지 않는다.

율리카는 바닥을 기어 가르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저, 마, 마, 만약에 제 무죄가 입증되지 않으면 전, 저는, 어떻게 되나요?”

“사형입니다.”

대답은 가르말이 아닌 로위나에게서 돌아왔다.

모두가 로위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지극히 그녀다운 무감정한 표정으로 기계처럼 말을 이었다.

“공작가의 영애를 살해하려 한 죄, 용서받지 못할 중죄입니다.”

“네?! 하지만 치사량의 독성도 아니라면서요!”

“그 점도 참작하여 면밀히 조사할 테니, 너무 염려 마시죠, 영애.”

가르말이 냉정하게 잘라 말하고는,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들을 불렀다.

기사들은 율리카를 양쪽으로 잡아 일으킨 후, 그녀를 방에서 끌고 나갔다.

율리카는 거의 졸도할 지경이 됐다.

“아버지를 불러 주세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예요! 전 폐하의 약혼녀예요! 약혼녀라고!”

율리카의 목소리가 복도 저 끝으로 사라지는 게 들렸다. 비명이 들리지 않게 되자, 가르말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인지 모르겠군요. 일단 폐하께 보고하겠습니다.”

“공작님.”

“네, 공녀.”

“가능하시다면, 이 일이 태황후마마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유가 뭡니까?”

“배후가 정말 태황후마마라면, 조사가 시작되는 즉시 증거를 감추고 꼬리를 자를 테니까요.”

가르말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날 빤히 쳐다보았을 뿐. 나를 가늠하려는 듯한 그 시선에, 나도 굳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한참 만에 가르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 폐하의 기사입니다. 다른 이의 명령은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폐하께 보고 드려도 같은 말씀을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군요.”

가르말은 내게 꾸벅 인사한 후 방을 나갔다. 꼿꼿한 뒷모습이라, 나는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 * *

며칠 내내 비밀리에 잡아들인 시종들의 추궁이 시작됐다.

동시에 카이사르가 먹은 독의 역추적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것들은 한 점에서 만났다.

“브란테 영애가 종종 폐하와 다과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폐하께서 드신 독은 거기서 검출됐습니다.”

그 사실을 전해 준 건 해밀턴이었다. 그는 왜 미처 몰랐을까 자책하듯 침통한 표정이었다.

“결국 이 일도 저 일도 모두 브란테 영애가 범인이었습니다. 하아, 그렇게 순진해 보이시는 분이 그리 영악한 짓을…….”

“그럴까요?”

“네?”

“브란테는 내게 준 차가 태황후가 내려 준 차라고 했어요. 폐하께 대접한 차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브란테 영애도 결국 다 알고 동참한 것 아니겠습니까? 태황후 측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하게 되죠. ……보통은.”

나는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하지만 내게 준 그 독은, 내가 아니라 율리카 브란테가 먹던 거였어요.”

아마 율리카가 그것을 내게 대접한 건, 태황후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을 거다.

율리카가 날 초대해 차를 대접하리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겠지.

“스스로 독인 줄 알면서 먹었을 리가 없잖아요?”

“하면, 브란테 영애도 이용당했다는 말씀입니까?”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난감하군요. 하지만 현재 증거로는 브란테 영애의 죄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태황후까지 끌어들이기엔 부족해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 증거라면 더 있어요.”

“……네?”

“전 이번 기회에 호리오까지 엮어서 제대로 보내 버릴 작정이에요, 자작님.”

호리오의 독 밀수.

그 사실을 눈치채, 호리오를 협박하고 이용했던 발레르.

그리고 율리카 브란테의 손에 들어갔던 이대륙의 독.

“전 머리를 벨 수 있게 되기 전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답니다.”

빙긋 미소 지으며, 해밀턴을 안심시키듯 내가 말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