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6-4화 (150/156)

* * *

투둑, 투둑. 간헐적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카이사르는 눈을 떴다.

나른한 감각이 온몸을 떠돌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낡은 나무 천장의 기하학적인 문양뿐이었다. 멀리 빗소리가 들려, 또 비가 내리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찌뿌둥하다.’

그런 생각에, 카이사르는 몸을 왼쪽으로 누였다. 아니, 누이려 했다.

‘……?’

그러다가 카이사르는 자신의 왼쪽 팔 아래에 레지나가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젖었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카이사르의 품 안에 발그레해진 뺨을 하고선, 레지나는 작은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레지나를 깨울 수는 없는지라, 카이사르는 오른편으로 돌아누워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도 실패했다. 오른쪽으로 누우려 보니, 오른쪽엔 헬레나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좁아 죽겠네.’

카이사르는 ‘끄응’ 하고 한 번 신음하고는, 별수 없이 불편을 감수한 채 정자세로 누울 수밖에 없었다.

‘뭐……, 이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인가.’

양쪽에 사랑하는 여자들을 품고 누워 있을 수 있다니, 이만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침대가 1인용이라는 건 좀 그렇지만.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페레스카 공작이 갑자기 파산하여 작은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긴 게 아닌 이상, 여기가 공작저는 아닌 것 같은데.

“해밀턴이 일단 가까운 농가의 집을 빌렸어요. 마차보다야 침대가 나을 것 같아서.”

고개만 조금씩 움직여 주변을 파악 중이었는데, 언제 깬 것인지 헬레나가 작게 대답했다.

오른쪽을 흘끗 보았더니, 헬레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잠꼬대였나 싶을 정도다.

“우릴 습격했던 녀석들은?”

“다 죽었어요.”

“죽은 거야?”

약간의 간격 후에, 헬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죽였어요.”

음, 그렇군. 단번에 납득했다.

“걱정했어?”

“당연하죠.”

“내가 같이 있었는데 뭘 걱정해. 내가 아무렴 레지나를 다치게 하겠어?”

카이사르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헬레나에게 팔을 찰싹하고 맞았다. 뭐, 아프진 않았지만.

“폐하께서 잘못될까 봐 걱정한 거예요.”

비탈에서 떨어질 때, 헬레나는 카이사르가 레지나를 품에 꽉 끌어안는 모습을 봤다.

그 상태로는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없게 된다. 레지나의 무게도 있으니 더 크게 다칠 염려도 있었다.

“뭐, 다른 선택지가 없었잖아.”

“알아요. 알지만 화가 나는걸요.”

헬레나가 카이사르의 몸에 바짝 붙어 고갤 파묻었다.

“두 사람이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서, 손이 덜덜 떨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졌어요. 그런 기분 처음이었다고요.”

“저런, 무서웠겠군. 미안해라.”

“그래요, 무서웠어요.”

얕은 한숨을 내쉰 후, 헬레나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 거 보면, 내가 두 사람을 정말 많이 사랑하긴 하나 봐.”

“이렇게 기특할 수가.”

카이사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헬레나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아픈 게 씻은 듯이 낫는 기분인걸.”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폐하.”

“그냥 좀 속아 넘어가 줘. 때로 아빠들은 딸 앞에서 무적인 것처럼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고.”

“무적 맞죠. 누가 폐하를 적으로 두려 하겠어요?”

하긴 그렇지.

이렇게 강하고 무섭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곁을 지키고 있는데. 이렇게 작고 용감하고 귀여운 딸이 곁을 지키고 있는데.

감히 누가 자신을 해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번에 몸을 사리지 않고 딸을 지켜 낸 나는 좀 멋있었지 않아? 어떻게 생각해?”

카이사르의 농담 같은 말에 헬레나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카이사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니. 카이사르는 언제나 멋있어.”

카이사르는 만족한 듯, 양팔로 헬레나와 레지나를 끌어당겨 안으며 눈을 감았다. 따뜻한 체온이 뒤엉켜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빗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카이사르는 모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페레스카 공작과 공작 부인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함과 초조함 사이를 오가며 손님을 기다렸다.

손님들은 엊그제 오후 진작 도착했어야 했으나, 그날 온 이는 한 명의 전령뿐이었다.

전령은 공작 부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그저 약간의 사고가 있어 도착이 이틀쯤 늦어지게 되었다고만 전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공작 부처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불길한 사고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드디어 사흘 후 정오 무렵. 안달이 난 공작 부처의 불안함을 달래려, 동구 밖까지 나가 기다리고 섰던 시종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옵니다! 마차가 넘어오는 게 보여요!”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두 대와 그 마차를 호위하는 여러 명의 기사들이 공작저의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어머니. 평안하셨습니까?”

건물 입구에 서 있던 공작 부인이, 레너드의 인사에 그늘 한 점 없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레너드가 말에서 내려 공작 부인에게 다가갔다.

“어쩌다가 이리 늦었니? 걱정이 되어서 한숨도 못 잤다.”

“설명하자면 긴데……. 마차가 진창에 빠져서……. 음, 폐하께서 좀 다치셨어요.”

“뭐?!”

어떻게든 걱정 끼치지 않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레너드는 거짓말에 영 재주가 없었다.

결국 공작 부인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황제가 자신의 영지로 오는 길에 상해를 입다니, 온갖 걱정이 드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페레스카 경의 호들갑이 오늘따라 유난하군.”

그때, 카이사르가 해밀턴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페레스카 공작이 카이사르에게 다가가 예를 갖춰 인사했다.

“약간의 부주의로 다리를 삐었을 뿐이오. 괜한 호들갑으로 나를 민망하게 만들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군.”

“큰 사고라도 있었는 줄 알았습니다. 요즘 비적 떼가 극성이라는 얘기도 있고 했던 터라.”

“기사들을 이만큼이나 이끌고 다니면서 큰 사고 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안 그런가, 호크 경?”

“아하, 아하하…….”

카이사르가 능글거리며 호크에게 눈치를 주자, 호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기사들이 이만큼이나 있었는데 황제와 공주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면목이 있을 리가 없다. 두고두고 물고 늘어지며 놀려야겠다고 카이사르는 굳게 결심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헬레나의 품에 쪼르르 달려가 매달린 레지나는 헬레나의 옷자락을 쿡쿡 잡아당겼다.

“어마마마, 어마마마.”

“무슨 일이지?”

“거짓말은 나쁘죠, 그렇죠? 근데 왜 아바마마는 거짓말해요?”

“음……. 레지나. 이제 슬슬 너에게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비기를 가르쳐 줘야 할 때인 것 같네.”

헬레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딸이 착하고 선량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거짓말은 나쁘다’는 대의 명제를 가르쳤을 뿐인데, 어른들이 평소에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만 알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

“황후마마.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레너드와 대화를 마친 공작 부인이 헬레나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레지나가 깜짝 놀라 헬레나의 치마폭 뒤로 숨었다.

공작 부인이 빙긋 웃으며 허리를 숙여 레지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주님.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

레지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헬레나가 그런 레지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머니께 제대로 인사드려야지.”

“할머니?”

레지나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거리며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헬레나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잔뜩 긴장했던 레지나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녹았다.

그녀에게는 남들 다 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처음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레지나 그레이입니다.”

레지나가 앞으로 나와 자신의 치맛자락을 잡고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공작 부인은 너무나도 작고 사랑스러운 외손녀의 인사에 한껏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레지나를 품에 번쩍 안아 들었다.

조금 떨어져서 대기 중이던 유모 엠마가 당황하여 다가왔다.

“제가 안고 가겠…….”

“괜찮습니다. 제가 안겠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이 귀여우신 공주님을 안아 들 일이 있겠어요?”

공작 부인은 제법 단호했다. 황가 부처가 공작저에 머무는 동안 레지나를 내려놓지 않을 각오인 것 같았다.

‘나보다 레지나를 더 기다리셨나 보네.’

행복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뿌듯한 한편, 헬레나는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걸로 섭섭해하다니. 나답지 않은걸.’

한때는 자신에게 애정을 쏟고 보살피려 하는 부모님을 부담스럽고 낯설다 느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가족에게 사랑받는 일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아. 그만 들어갑시다, 황후.”

묘한 감상에 빠져 있는데, 카이사르가 곁에 다가와 헬레나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고갤 들어 보니, 카이사르가 눈을 마주치며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설레는 모양이야?”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을 첫 번째로 사랑해 줄 남자의 미소다.

그런 생각에, 헬레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헬레나는 살짝 발돋움하여, 카이사르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내 집은 폐하의 곁이에요.”

“이런. 날 감격 시키다니, 오늘이 내 생일이었던가?”

카이사르의 농담에, 두 사람은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윽고 저택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부터 중앙 계단까지, 모든 식솔들이 나와 양쪽으로 정렬하여 서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옛날 생각 나네.”

카이사르가 혼잣말을 중얼거려, 헬레나가 눈짓으로만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는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는 저 끝에 헬레나가 서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카이사르와 계속 얽히고, 사랑하고, 결혼해서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헬레나는 카이사르와 마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젠 저 끝이 아니라 폐하의 옆에 서 있어요.”

정말 앞날은 예측할 수 없는 것투성이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헬레나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도 그리 무료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가 들었다.

* * *

공작저에 도착하고 얼마 후.

카이사르는 새로운 위험에 빠졌다.

“그것은……, 뭐지?”

장의자에 눕듯이 앉아 있던 카이사르는, 헬레나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공손한 자세로 일어나 앉아야 했다.

그녀가 들고 온 음식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접시 안에서는 초록색의 액체가 느리게 부글거리며 거품을 만들고 있었다. 보라색이 섞인 김도 모락모락 올라왔다.

먹으면 그 즉시 사망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작 헬레나는 너무나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사에게 레시피를 얻어 만들어 봤어요.”

“무슨 레시피? 마수를 토막 내어 끓인 스튜 레시피?”

“브로콜리 수프예요!”

헬레나가 귀까지 빨개져 버럭 소리쳤다.

그 말에 카이사르의 눈동자는 더욱 위태롭게 흔들렸다.

곁에 다가온 헬레나가 그릇을 내려놓아, 카이사르는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무언가 떠다니긴 하는데, 아무리 봐도 브로콜리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초록색 늪에 가라앉아 가는 유기물같이 보일 뿐이다.

들리진 않지만 분명히 ‘차라리 죽여 줘…….’라고 중얼거리고 있겠지.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브로콜리 수프를 먹으면 좋거든요.”

“저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인…….”

카이사르가 떨리는 목소리와 공손한 존대로 그렇게 말했다.

“다들 비를 맞았잖아요? 감기 걸리는 건 한순간이에요.”

“다들?”

“네. 기사들에게도 수프를 전해 주라고 했어요. 한 솥단지 끓여 뒀거든요.”

기사단을 초토화할 셈인가?!

“레지나에게도 주려고 했는데, 어디로 도망갔는지 안 보이더라고요. 하여튼, 공작저에 오니 고삐 풀린 망아지가 다 됐어요.”

그나마 다행이다. 부디 너만은 살아남아, 이 아비 대신 제국을 이끌어다오, 나의 망아지……!

“음……, 역시, 별로예요?”

사색이 된 카이사르의 얼굴을 본 헬레나가, 다소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제야 카이사르는 ‘헛’ 하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헬레나가 자신감을 상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아플 때 내가 뭔가 해 주고 싶었어요. 마사가 절대 부엌에 오면 안 된다고 하는 걸 설득해서 만든 음식이거든요. 그래도 이건 비교적 쉽다고 해서 만들어 본 건데…….”

카이사르는 공작저의 키친 메이드인 마사를 떠올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부엌을 지켜 내지 못했구나, 마사. 하긴, 그녀는 옛날부터 헬레나에게만은 좀 약한 면이 있었어.

“먹기 싫으면 억지로 안 먹어도 돼요. 갖다 버릴게요.”

헬레나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표정을 보니, 카이사르는 차마 거절할 수도 없게 됐다.

무엇보다 그다음 말이, 카이사르의 오기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에레즈는 곧잘 먹어 줬거든요. 그래서 내 요리가 모양은 별로여도 맛은 괜찮다고 착각했나 봐요.”

“……누구?”

“폐하의 조상님이요.”

그 말을 들은 직후, 어느새 카이사르의 손에는 스푼이 쥐여 있었다.

“헬레나가 만든 요리인데, 맛있을 게 당연하지. 안 그런가?”

“앗, 굳이 안 먹어도 돼요.”

“먹을 거야. 아니, 먹고 싶어. 아무에게도 안 주고 혼자 다 먹을 거야. 그럼, 다 먹고말고.”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 카이사르가, 드디어 수프를 크게 떠서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수프의 맛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이 없었다.

카이사르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삼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각오를 다진 후에야,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꾸, 울, 꺽.

“……헬레나.”

“네, 폐하.”

“정말……, 맛있어…….”

“……저런. 울 정도로 맛있어요?”

“응. 정말 맛있어. 앞으로 다시는 아프거나 다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이 들 정도로 맛있어…….”

“정말요? 보람차네요.”

헬레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행복해하는 미소에, 카이사르는 수프를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0.5초 정도.

“고마워요. 폐하 덕분에 자신감이 생기네요. 역시 좀 더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 줄까 봐요.”

헬레나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 말에 카이사르가 스푼을 놓쳤다. 터엉, 하고 스푼이 접시 안으로 떨어졌다.

헬레나의 시선이 스푼으로 향한 순간, 카이사르는 손을 뻗어 헬레나의 손을 꼬옥 움켜잡았다.

“헬레나.”

“네?”

“나는 헬레나의 요리를 독점하고 싶어. 그러니까 다른 이들에게는 주지 마, 제발.”

카이사르의 눈동자가 긴장감에 팽글팽글 돌아갈 지경이 됐다.

그러나 헬레나는 그런 카이사르의 긴장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헉, 그 정도로 제 요리가 좋아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알았어요. 그럼 저도 폐하를 위해서만 요리할게요.”

“고마워, 헬레나……! 사랑해!”

카이사르가 헬레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진심으로 눈물이 핑 돌 지경이 됐다.

“네에, 저도 사랑해요. 하여튼 욕심쟁이라니까.”

헬레나가 싱긋 웃으며 어린애 달래듯 카이사르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헬레나를 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적어도 수프가 다 식어서 기분 나쁜 부글거림이라도 멈추게 될 때까지는 놓아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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