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마차의 행렬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로위나는 그 광경을 황제의 결혼식에서도 보았던 것을 기억해 냈다. 물론 그때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설마 자신도 이렇게 많은 손님을 모시고 결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긴. 내 손님이 아니라 델만드 씨의 손님이지.’
누가 지적할 것도 아닌데, 로위나는 재빨리 생각을 정정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결혼 소식도 일부러 늦게 전했다.
축하받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멋쩍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없었다.
카이사르와 만난 후, 그녀는 그의 보좌관이 되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다. 황성에 들어간 후에도 일에 매진한 삶이었다.
목표만을 위해 살아오다 보니, 지인이라고는 일로 만난 사이가 전부였다. 목적이 부합하여 알게 된 관계이니만큼, 자신이 가깝다고 느끼는 것처럼 상대도 자신을 가깝다고 느껴 줄지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그 지인이라는 게 전부 기사, 귀족, 황후, 황제…….’
초대할 엄두도 안 나고, 감히 초대한다고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이들도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초대하지 않는 편이 피차 민망한 일을 안 만드는 길이다.
“그나저나 델만드 씨의 손님들이라고 해도 과한 것 같은데…….”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마차의 행렬에, 로위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그러자 바로 옆에서 그녀의 혼잣말에 누군가 대답했다. 로위나가 흠칫 놀라 옆을 바라보니, 델만드가 로위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혼약 전에는 신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던데요.”
“그런 풍습을 믿는 편입니까?”
“아뇨. 하지만 델만드 씨의 부모님은 믿으실 것 같아서.”
“그러잖아도 어머님께 등짝을 흠씬 두들겨 맞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신부를 일분일초라도 더 오래 눈에 담아 두고 싶은 욕심에 그만.”
이 닭살 돋고도 능청스러운 말을 듣고 있으니 누군가가 떠오르는데. 착각인가.
“그나저나 뭘 보고 있었습니까?”
“손님이 예상보다도 많은 것 같아서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미안해요. 줄이고 줄였는데도, 참.”
델만드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친지를 포함하여 초대할 손님이 없는 로위나를 생각해, 사실 델만드는 소규모의 결혼식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그는 큰 상단의 주인이고, 그에게는 결혼식도 어찌 보면 비즈니스의 일환인지라, 제대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로위나가 그를 설득했다.
손님을 줄이고 줄였다는 말은 진심일 것이다. 그랬는데도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델만드 상단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역시 돈이 좋구나.’
남자 하나는 잘 고른 것 같다. 로위나는 흐뭇한 기분이 됐다.
“적어도 손님들의 자리 배치만큼은 신랑 신부 자리를 구분하지 않도록 해 뒀어요.”
“배려는 고맙습니다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편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도 어쩐지 자연스럽게 사무적인 어투가 나가 버린다. 로위나는 말투가 신경 쓰이는 듯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하기는, 신부 측 자리가 텅텅 비어 있어도 나중에 구설수에 오르게 될지 모르겠군요.”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뭐, 식장에 나가서 보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뭘 이해한다는 거지?
로위나는 고갤 갸우뚱했지만, 델만드는 정답을 알려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대답 대신 장갑을 낀 로위나의 손을 들어 올려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내 표정만 봐도 지금 내가 얼마나 설레는지 당신도 분명 알아챘겠죠?”
“……미안해요. 안경을 안 써서 안 보여요.”
로위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떻게든 델만드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그 노력에 델만드는 결국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 * *
뭔가 깜짝 이벤트라도 준비되어 있는 건가?
식장에 들어가기 직전.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서 로위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결혼식에서 할 수 있을 만한 깜짝 이벤트의 종류도 몇 가지 떠올려 보았다. 유명 음유 시인을 초대 가수로 불렀다든가. 신랑인 그가 직접 구애의 춤이라도 춘다든가. 새삼 사람들 앞에서 청혼 편지를 읊으며 오열한다든가.
‘어느 쪽이든 별로인데.’
큰일이다. 웃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제 문을 열 겁니다.”
그러나 식은 로위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 한 톨 주지 않고 진행됐다. 결국 로위나가 ‘잠깐만’을 말하기도 전에, 식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
별수 없이 실전이다.
크고 육중한 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식장 안의 공기가 밀려 나왔다. 로위나의 머리에 쓴 베일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긴장하지 말자. 심호흡부터 하고.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문 앞에서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켠 후, 로위나는 식장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버진로드를 사이에 두고 내빈석에 사람이 가득 앉아 있는 것이 몽롱한 시야로 보였다. 그러나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볼 여유는 없었다. 어차피 본다고 아는 얼굴도 아닐 터다.
그럼에도 버진로드를 걷는 내내 귓가에서 들려오는 다소 경박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대부분 상단과 비즈니스 관계라서 온 손님들일 텐데, 남의 결혼식에 왜들 이렇게 즐거워하지?’
사방에서 들리는 환호성에 의문이 떠올랐다. 물론 그 의문은 금방 잊혔다. 당장은 치맛자락을 밟지 않고 걸어가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렇게 간신히 단 앞까지 나아간 로위나는 자신의 대견함에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앞에 나아가 서 있던 델만드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긴장했군요.”
“당연하죠.”
솔직히, 앞이 안 보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델만드의 손님일 터다. 거부인 델만드가 가족도 작위도 없는 자신과 결혼하는 이유를 의아해하며, 다들 평가하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았겠지.
남의 시선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 않은 건 아니다. 무엇보다 결혼식 날 그런 시선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질 않네.’
타인의 시선은 비록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느껴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러면 식을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진행을 위해 근처 성회에서 모셔 온 사제가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점잖은 목소리가 무색하게, 내빈석에서는 여전히 들뜬 환호성이 들렸고 말이다.
‘대체 어떤 손님들을 모셔 온 거야.’
긴장감이 싹 달아나는 손님들이다.
잠시 후 화관을 쓴 어린 소녀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결혼반지를 가져오는 화동이리라. 그러나 기억하기로, 화동이 나오는 순서는 아직 좀 더 지나야 했다.
‘순서가 바뀌었나?’
로위나는 곁에 선 델만드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그다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순서가 바뀐 걸 자신만 몰랐던 것일까. 당황한 티를 내어 식을 망칠 수는 없는지라, 로위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하려 애썼다.
화동이 로위나 가까이 다가왔을 때 로위나는 몸을 조금 숙여 화동과 시선을 맞추려 했다. 그 순간, 화동으로 나온 소녀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결혼 정말 축하해, 로위나.”
……응, 잠깐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인데.
당황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소녀가 들고 온 벨벳 위에 있는 것은 반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안경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예요?”
안경을 집으며, 로위나가 델만드에게 물었다. 델만드는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 답이 없었다.
결국 로위나 스스로 답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안경을 쓰는 자신의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안경을 쓴 순간, 그녀는 남의 결혼식에서 경박하게 박수를 치고 자기들 축제마냥 환호성을 질러 대던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결혼 정말 축하해, 로위나!”
“오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에버그린 양!”
“축하해요, 에버그린 씨!”
모두 익숙한 얼굴.
익숙한 목소리.
버진로드를 사이에 두고, 신부 측 자리에 앉은 그 낯익은 사람들. 델만드의 손님 수에 비하여도 부족하지 않은, 아니 그보다 넘치는 숫자의 사람이…….
……로위나 에버그린의 사람들이, 시야를 넘칠 정도로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로위나는 가장 앞줄에 앉은 헬레나와 카이사르를 발견하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와 황후라니. 저 인간들이 제정신인 건가 싶었다. 일개 보좌관의 결혼식에 황가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를 해 준다고?
“있지, 어마마마랑 아바마마랑 제일 먼저 가족석에 앉았어.”
넋이 빠진 로위나의 곁에서 작고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갤 돌려 보니, 화관을 쓴 레지나가 활짝 웃으며 로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위나는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잖아.”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걸까.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걸까.
한참 울음을 참던 로위나는 헬레나와 카이사르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사무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혼식장에서는 정숙해 주세요.”
그 딱딱한 말투와 달리 목소리에는 울음이 묻어나서, 헬레나와 카이사르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자신도 저들과 같은 표정이겠지.
그런 생각에 로위나는 결국 눈물을 떨어뜨렸다. 눈물이 안경알에 떨어져, 시야가 뿌옇게 번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