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방패병!”
기사의 외침에 병사들이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쿵쿵쿵-!
흰색의 늑대 형상을 한 몬스터, 스노울 무리가 방패와 충돌했다.
“버텨!”
방패로 거의 백여 마리에 달하는 커다란 늑대 무리의 돌진을 막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매시브 가디언의 병사들은 흔들리지 않고 대열을 지켜냈다.
“창, 찔러!”
다시 한번 명령이 떨어지자, 방패가 열리고 그 사이에서 창이 튀어나왔다.
캐갱-!
예리하게 날이 선 창이 스노울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새하얀 대지가 순식간에 뜨거운 김을 뿜어대는 피로 물들었다.
전위를 꺾었으니, 이제는 사냥을 시작할 때였다.
“모조리 도살하라!”
검이 뽑히고, 병사들이 놈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서우진은 그런 병사들 사이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나가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고작 검 한 자루를 들고 자신의 키보다 큰 늑대에게 달려들다니?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치 여의도 불꽃 축제가 끝난 뒤의 지하철역과 같은 상황이었다.
병사들의 움직임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너무 과한 긴장은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아일린의 냉정한 음성이 서우진을 독려했다.
하지만 그딴 말이 지금 도움이 될 리가 만무했다.
“지금 긴장을 안 하면 그게 사람입니까!”
서우진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 버릴 것 같았으니까.
크르르르-!
그때, 서우진의 눈앞에 스노울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앞서 달려가던 병사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남은 놈 같았다.
검에 베였는지 새하얗던 털이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서우진의 눈에는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두렵게 보였다.
“검을 잡으세요.”
서우진이 발을 멈추자, 아일린이 옆에서 조언을 시작했다.
병사들 역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주위를 피해 돌진했다.
그들도 이번이 용사의 첫 전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투의 광기에 휩싸이지 않고 주변 상황을 인지한다는 사실이, 그들이 얼마나 강병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후욱- 후욱-!”
반면 서우진은 긴장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중이었다.
드레이카스와 비교하면 위압감도, 살기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미약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서우진에겐 다 같은 몬스터다, 언제든지 자신의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는!
크아아악-!
두려움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아일린을 경계하던 스노울이 서우진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뛰어올랐다.
“흡!”
동시에 서우진은 옆으로 몸을 날렸지만, 긴장 때문인지 놈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찌이익-!
왼쪽 팔에 기다란 상처가 생겼다.
다행히 상처 입은 스노울의 행동이 굼떠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고작해야 피부가 조금 찢어진 정도.
팔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서우진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 새끼가!”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바로 분노였다.
생각보다 놈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서우진은 그대로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퍼억-!
“검 똑바로 잡아요.”
아쉽게도 서우진의 검은 적중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검술 수업 한 번 받아본 적 없었기에, 검의 날이 아닌 면으로 놈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고.”
아일린의 서늘한 말투 덕분에 서우진은 조금씩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거대하고 두렵게만 보이던 스노울이, 조금 큰 대형견의 크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젠장.”
아무리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고작 저런 놈 하나 때문에 그토록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꼴사납다, 꼴사나워.’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다니.
‘면이 아닌, 날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쉽게 느껴졌던 행동이, 실제로 하려니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스노울은 약간 충격을 받았는지,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곤 서우진의 빈틈을 찾기 위해 탐색하는 것 같았다.
‘다친 짐승이라고 생각하면 돼.’
실제로도 스노울은 몬스터로 분류가 되어 있긴 했지만, 야생 동물에 가까운 놈이었다.
무리 생활을 하기에 위험종으로 분류가 되었지, 이렇게 무리에서 떨어진 한 마리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검에 베여 다친 상태이지 않은가?
아무리 상처 입은 맹수가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서우진에게도 무기는 있었다.
‘제대로 한 방만!’
단번에 몸을 양단시킬 필요도 없었다.
그저 목을 한 번 찌르기만 해도 놈은 죽는다.
서로 가만히 서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다 바람이 불며, 바닥에 쌓여 있던 눈이 허공에 떠올랐다.
‘지금!’
서우진의 검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검끝은 흔들리고, 속도는 느렸지만,
푸욱-!
마주 달려오던 스노울의 목을 꿰뚫기엔 충분했다.
서우진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리고…….
목에 구멍이 난 스노울이 죽자, 서우진은 자신의 몸속에서 뭔가가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게?’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이 느낌이 일종의 경험치를 얻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작 스노울 한 마리론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이대로 몇 마리만 더 잡는다면?
‘레벨 업을 할 수 있어.’
정확히 몇 마리나 더 사냥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열 마리인지, 100마리인지.
아니면 한 마리인지.
하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 사냥하다 보면 레벨 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어요.”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아일린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아일린의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싸움이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검을 잡았음에도 일격에 몬스터의 목을 꿰뚫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만했다.
물론 처음엔 도저히 못 봐줄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이제 긴장이 좀 풀렸나요?”
덜덜 떨리던 손도 어느새 멈춰 있었고, 가쁘던 숨도 안정됐다.
“그런 것 같네요.”
처음으로 살아 있는 뭔가를 죽여보았다.
당연히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투의 광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음의 공포 때문일까?
생각보다 훨씬 아무렇지도 않았다.
서우진은 심호흡을 하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붉은 피가 묻은 검과 그것을 잡고 있는 손이 보였다.
본래라면 기겁해야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덤덤한 자신의 모습이 어색할 정도였다.
“이상하네.”
“뭐가 이상하죠?”
서우진의 혼잣말에 아일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별건 아니고. 그냥 몬스터를 죽였는데도 별다른 느낌이 들질 않아서요.”
“그게 뭐가 이상한가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아일린의 모습에 서우진이 피식- 웃었다.
자주 느끼긴 하지만, 이쪽 세계 사람들은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살아온 환경 탓이겠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몬스터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과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 역시 이쪽 세계에서 살아왔다면, 아일린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졌을 것이다.
‘이것도 앞으론 바뀌어야 해.’
강해지려면.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어요.”
서우진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고 느낀 아일린이 재촉을 시작했다.
이제 고작 몬스터 한 마리를 사냥했을 뿐이다.
아직 수백 마리가 남아 있고, 병사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 사이에 섞여 들어가야만 했다.
“그럴까요?”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아직 자신감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려움은 많이 가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자신의 몸 안에 뭔가가 차오르는 듯한 기분.
아직 1레벨도 채 올리지 못했음에도, 그것은 서우진에게 커다란 충만감을 주었다.
‘이러다 중독되는 거 아니야?’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아일린과 함께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피와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 * *
“아직 레벨은 올리지 못했나 보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반 슬레인의 물음에 테스테론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우진을 관찰하고 있었다.
“레벨 업을 한 용사는 밝은 빛에 휩싸인다고 했었지.”
“그렇게 기록되어 있긴 합니다. 실제로 다른 왕국에서 성장 중인 용사들에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원리로 그런 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역시 스노울 한 마리 정도로는 턱도 없나 보군.”
반 슬레인은 서우진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걸음걸이, 손의 방향, 시선까지.
고작 스노울 따위와의 전투에 불과하긴 했지만, 서우진은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 슬레인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역시 우연이었나?’
드레이카스가 순간적으로 서우진에게 겁을 먹고 멈추었던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드레이카스가 그럴 정도면 스노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스노울은 서우진을 자신보다 약한 사냥감이라 판단했는지, 그저 맹렬하게 달려들 뿐이었다.
‘아니, 착각은 아니었어.’
그 정도 되는 실력자가 잘못 봤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날, 드레이카스는 정말로 서우진에게서 뭔가를 느꼈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군.”
드레이카스와 스노울의 다른 점.
마왕이 부리던 몬스터에 불과하긴 하지만, 놈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단순히 강약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격의 차이.
당연하게도 드레이카스의 격은 스노울의 그것을 아득히 넘어선다.
그리고 그것이 서우진에게서 뭔가를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 테고.
“토벌이 끝나면 제대로 한번 알아봐야겠구나.”
반 슬레인은 저 멀리서 터져 나온 밝은 빛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