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B급 24레벨 ‘듀얼 블레이더’.
C급 21레벨 ‘화공’.
두 사람의 정보였다.
‘그런데 화공? 이건 뭐지…….’
유홍설의 직업인 ‘듀얼 블레이더’는 대충 예상이 가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김다혜의 ‘화공’은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림 그리는 거요.”
“아니, 그건 저도 아는데요.”
그림을 그려서 뭘 하느냐는 거지.
서우진의 궁금함은 투머치 토커 이지아가 풀어주었다.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혜 직업은 그림을 그려서 그걸 소환할 수 있어요! 몬스터나 귀여운 동물도 되고, 음식 같은 것도 가능한가 봐요! 진짜 괜찮은 능력이죠? C급 이라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예요!”
뭔가 산만한 설명이긴 했지만, 서우진은 대강 ‘화공’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사기 아니야?’
소환되는 것들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얼음 벌레 같은 것도 가능하다면……?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를 동시에 소환하는 장면을 떠올려 봤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었다.
“그렇게 강하진 않음요.”
하지만 김다혜는 고개를 저었다.
“직접 눈으로 본 것만 되고, 사람 같은 것도 안되고, 소환 시간도 10분밖에 안됨요.”
거기다 소환수의 능력은 김다혜의 레벨에 비례한다.
이런저런 단점이 좀 있는 직업이었다.
‘하긴, 만능이었으면 S급 이상은 줬겠지.’
C급에 불과하니, 능력 자체도 그렇게 강하진 않은 듯했다.
물론, 레벨을 올리면 점점 더 좋아지기야 하겠지만…….
타 직업에 비해 큰 메리트는 느끼지 못하겠다.
“아, 그래도 이건 쓸 만한데.”
김다혜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연필과 작은 연습장을 꺼내 들더니, 뭔가를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손이 어찌나 빠른지, 서우진이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림이 완성됐다.
“소환.”
김다혜가 그림에 손을 얹고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어우씨, 깜짝이야.”
총이 나왔다.
구경 5.56㎜.
길이 97㎝.
무게 3.26㎏.
최대사거리 3300m.
유효사거리 600m.
군대를 다녀온 서우진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총기.
“케이투?”
분명 직접 본 것만 소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십대 초반의 여자가 K-2를 대체 어디서 봤을까……?
“한번 쏴보쉴?”
김다혜는 서우진에게 총을 건넸다.
웬만하면 다신 잡고 싶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서우진은 홀린 듯 그걸 받아 들었다.
익숙한 무게감.
그리고 떠오르는 PRI의 추억.
“총알은?”
“필요 없음요. 마력탄이라고, 사용자 마력으로 총알을 만들어서 쏜다는데.”
그러니까 마력만 갖춰지면 연발로 놓고 무한으로 쏴재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허허-’
그건 마음에 든다.
몬스터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둘째치고, 탄피 걱정 하지 않고 연발을 쏠 수 있다니.
대한민국 군대에선 경험하기 힘든 일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총을 쏠 순 없었다.
연무장이 넓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데서나 총을 쏠 순 없는 일이었다.
서우진은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K-2를 살펴보다 다시 돌려주었다.
“총은 다음에 쏴보도록 하고, 일단 오늘은 수련부터 하죠.”
서우진의 말에 먼저 나선 건, 유홍설이었다.
그녀는 ‘듀얼 블레이더’란 직업의 소유자답게 두 자루의 검을 갖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빙결이랑 염화라고 해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검들이었다.
빙결은 마치 차가운 서리가 내린 듯 한기를 내뿜었고, 염화는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개좋아 보이네.’
서우진이 반 슬레인에게 받은 흑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듯했다.
아마도 유홍설이 있던 왕국에서는 보물 취급을 당하던 것이겠지.
‘시온에선 이것도 무리를 한 거라고 했는데…….’
조금 부럽긴 했다.
“안 뜨거워요?”
불꽃이 일렁이는 검을 허리에 차고 있으니 뜨거울 것 같은데.
“주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괜찮아요.”
그러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장점까지 자랑을 했다.
검이 꽤나 마음에 드는 듯했다.
“음, 대련은 한 명이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치명적인 공격을 제외하면 뭐든지 가능하고.”
서우진의 말에 유홍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다 다치면 어떡해요?”
“…네?”
“아무리 치명적인 공격은 안 한다고 해도, 검에 맞으면 다치잖아요.”
당연한 소리다.
서우진 역시 매시브 가디언에서 수많은 부상을 달고 살았으니까.
“수련하려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대충 합을 맞춰서 검만 휘두를 거면, 그게 무슨 대련인가?
‘춤이지.’
서우진은 매시브 가디언에서 해왔던 대로 하려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치료 가능한 마법사라도 한 명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서우진은 유홍설과 김다혜, 그리고 이지아를 쳐다봤다.
세 명은 두려움이 깔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반 슬레인이 경험을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힘만 센 어린아이.’
일 검에 바위를 가르고, 땅을 갈아엎는 힘을 지니면 무엇 하나?
단순한 대련 하나에도 이렇게 겁을 집어먹는 것을.
저들과 정상적인 수련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아일린.”
서우진은 뒤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일린을 불렀다.
“제가 먼저 할까요?”
“그래, 그러자.”
다른 용사들은 어떨까 기대를 좀 했는데, 저 상태로는 힘들었다.
“일단 저희가 하는 거 보고, 그다음에 할지 말지 결정하세요.”
그렇게 말한 서우진은 대답도 듣지 않고 아일린과 연무장 중앙으로 향했다.
스르릉-
흑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일린 역시 검을 꺼내 들었다.
“먼저 가요.”
아일린이 땅을 박찼다.
쩌엉-!
* * *
찌릿찌릿-!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 이지아의 몸을 관통했다.
‘살기?’
기사 아저씨들한테 들었던 살기라는 기운이 이런 느낌일까?
온몸의 솜털이 모두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저게 수련이라고?”
옆에 있던 유홍설이 넋이 나간 듯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저건 그냥 싸움이잖아.”
대련이라고 하기엔 너무 위험해 보였다.
공격 하나, 하나가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것 같았다.
실제로 서우진과 아일린의 몸에서는 벌써부터 핏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따다다당-!
1초에도 몇 번씩 부딪치는 검격에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우린 저렇게 안 했는데…….’
이지아는 처음 몬스터를 죽였을 때를 떠올렸다.
오크.
근육질의 녹색 피부 괴물은, 피를 잔뜩 흘리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지아는 망설였다.
생명을 죽이는 것.
그게 아무리 몬스터라 할지라도, 평생을 지구에서 살아온 그녀에겐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결국은 해냈다.
그 후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긴 했지만, 이지아는 뿌듯했다.
왠지 성장을 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용사가 되어 나쁜 마왕을 물리치는 상상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이지아는 기사들이 ‘차려주는’ 밥상만을 먹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나랑 같은 용사가 맞나?
똑같이 버스를 타고, 똑같이 성장을 하고, 똑같이…….
‘그럴 리가 없잖아.’
서우진이 자신과 똑같은 과정을 밟았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지아와 다른 두 사람은 너무도 살벌해 보이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저 무서운 검이 자신에게 향할까 두려워 당장에라도 연무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핏방울이 튀었다.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붉은 액체가 날아와 발치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이지아가 흠칫- 했다.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피를 보는 것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앞을 쳐다봤다.
아일린의 왼쪽 어깨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서우진 역시 옆구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 검을 휘둘렀다.
마치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즐거워하는 듯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냥 기사들이 마련해 준 몬스터들만 잡아도 강해지는데.
왜 아프고 힘들게 저런 수련을 하는 걸까?
이 세계의 기사라면 이해하겠지만, 서우진은 용사였다.
저런 수련이 아니라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었다.
이지아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두 사람의 대련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주먹에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 * *
스걱-!
‘위험했다.’
아일린의 검이 귀를 스쳐 머리카락을 잘랐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다면 그대로 짝귀가 될 뻔했다.
‘역시 강해.’
서우진은 아일린의 검술에 감탄했다.
그녀는 중급 기사에 불과했지만, 검술로만 따지자면 자신보다 한참 위였다.
서우진 역시 많은 성장을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물론 스킬과 마력까지 사용한다면 압도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야 수련이 안 되니까.’
오직 검술로만 수련에 임해야 한다.
실전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방불케 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점점 더 검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크!’
다시 한번 검이 팔을 노리고 떨어졌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하마터면 피하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 아일린 역시 어깨에 부상을 입어 전처럼 빠른 검격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
‘오늘도 이길 수 있겠는데?’
서우진과 아일린은 백중세였다.
승률은 아일린이 조금 앞서지만, 요즘 들어 빠르게 따라잡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 역시 승리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채앵-!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아일린의 검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가 이겼다.”
서우진이 검을 목에다 가져다대며 말했다.
아일린은 잠시 분한 눈빛을 보내다 한숨을 쉬었다.
“…졌어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깔끔한 패배였다.
“실력이 점점 느는군요.”
“네 덕분이지.”
빈말이 아니었다.
아일린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가파른 실력 향상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래 라이벌이 있어야 성장하는 법이었으니까.
서우진은 검을 집어넣고는 손을 내밀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우진 씨도요.”
서로 피칠갑을 한 모습이었지만, 보기와는 달리 큰 부상은 아니었다.
굳이 치료마법을 받을 것도 없이, 외상약만 좀 바르면 회복할 정도였다.
“약은 숙소에 있나?”
“챙겨 나왔어요. 저쪽에 두고 왔으니 조금 이따 바르면 될 거예요.”
매시브 가디언에서 보급되는 외상약은 그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매년 몬스터들과 싸워대니, 그런 쪽은 발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니까.’
사실 조금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병사들 중에는 약을 바르면 기절을 하는 이도 종종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상처가 거의 아물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그 약이 없었으면 이런 식의 수련은 꿈도 못 꾸지.’
한 번 대련을 할 때마다 며칠씩 요양을 해야 했다면, 무슨 소용일까?
서우진은 애써 약의 통증에 대한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새하얗게 질려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같이하실 분?”
서우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 최대한 친절하게 웃으며 말을 했지만, 그녀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무섭다.’
‘무서워.’
‘무서운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