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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으로 살아남는 법-31화 (32/116)

#31화.

무섭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악마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자신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성장을 해온 세 사람은, 서우진의 모습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나보고 저런 걸 같이하자고?’

싸움이 두렵지는 않았다.

몬스터를 수도 없이 많이 죽여보기도 했고, 기사들과 대련 같은 걸 해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서우진과 아일린이 한 것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과 별다를 바 없었다.

이지아는 두 사람이 서로 원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죽일 듯이 상대를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까.

대련이라고 해서 태권도 겨루기 같은 걸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였다.

까딱 잘못했다간 목이 그대로 잘려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느끼는 건 이지아뿐만이 아니었다.

유홍설과 김다혜 역시 핏기가 모두 사라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안 하실 건가요?”

서우진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러자 이지아가 번쩍- 손을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분명 두렵고 하기 싫었다.

괜히 나섰다가 검에 베이면 아프기도 하고, 굳이 피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지아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두근거렸기 때문이었다.

‘미쳤나 봐.’

한바탕 싸워보고 싶었다.

아프고 무섭겠지만, 그래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저요! 제가 먼저 할래요!”

서우진의 눈동자가 이지아를 향했다.

그토록 사람 좋아 보이던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래, 이리 와.”

서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 설마 죽기야 하겠어?’

침을 꿀꺽- 삼키며 연무장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  *  *

‘의외인데?’

솔직히 서우진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까 유홍설의 말을 듣고는, 저들이 얼마나 편하게 성장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다치면 어떡하냐니…….

그게 마왕과의 전쟁을 앞에 둔 용사들이 할 말인가?

강림 전쟁은 매시브 가디언에서 실시했던 토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할 것이다.

세계의 종말을 막기 위한 전쟁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 저런 약한 말을 하고 있으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예의상 물어본 것이었는데, 이지아가 나섰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움직임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겁을 먹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긴장 좀 풀지.’

팔과 발이 동시에 나간다.

무슨 훈련소 고문관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저렇게 나서는 걸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이지아의 직업은 ‘피스트 마스터’였다.

무려 A급의 직업인데다, 레벨도 26에 달했다.

용사들 중에서도 분명 최상위권일 것이 확실했다.

서우진은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앞에 도착한 이지아에게 물었다.

“장비는?”

“아, 숙소에 놓고 왔어요. 원래는 밖에 구경 갈 예정이었거든요. 갑자기 이렇게 될 줄 몰라서 챙겨오질 못했는데, 그냥 다음에 할까요? 그게 낫겠죠?”

막상 대련을 시작하려니 겁이 더 났는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대단하다.’

이지아의 입은 이런 상황에서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음, 그럼 그냥 체술 대련으로 할까?”

“어? 그래도 돼요? ‘검병’이시잖아요.”

“물론이지. 체술 쪽도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하고 있거든.”

서우진의 대답에 이지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검을 쓰지 않으면 크게 다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 단순한 주먹다짐은 무조건 자신이 유리했다.

그녀는 ‘피스트 마스터’니까.

“스킬이랑 마력은 쓰지 않고. 괜찮지?”

“네! 완전 괜찮아요!”

이지아는 신이 났다.

“그럼 아일린. 혹시 모르니까 약 좀 준비해 줘.”

“그럴게요.”

아일린이 한쪽으로 자리를 비켜주자, 서우진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먼저 와도 돼.”

이런 식의 대련이 익숙하지 않은 이지아였기에, 선공은 양보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쿠웅-!

이지아가 발을 굴렀다.

연무장에 쌓여 있던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며, 그녀의 주먹이 순식간에 서우진의 코앞까지 날아왔다.

‘흐읍!’

고개를 틀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살짝 늦은 감이 있었지만,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놀래라!’

A급은 A급이었다.

스킬과 마력을 제한했음에도, 그 신체 능력만으로 웬만한 기사들은 찜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와악-!

뒤늦게 몰아치는 후폭풍에 서우진이 몸을 돌렸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상대할 만했다.

서우진은 손을 뻗음과 동시에 다리로 이지아의 무릎을 노렸다.

“윽!”

당황한 이지아가 몸을 빼려 했지만, 그녀의 퇴로는 이미 막힌 지 오래였다.

무슨 방법을 생각하기도 전에, 서우진의 손이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콰앙-!

“아악!”

이지아의 머리가 땅에 박혔다.

최대한 힘을 빼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이지아가 뒤통수를 부여잡은 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아파요! 아파! 으아앙!”

많이 아팠는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허-’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레벨의 차이가 심하긴 하지만, 이지아는 이런 싸움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황판단과 대처법에 미숙할 수밖에.

반면 서우진은 1년간 죽을 듯이 굴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칼침을 맞고, 주먹과 발에 치여 뼈가 부러졌다.

그런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거친 서우진이 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나보다 레벨이 16이나 높잖아.’

이래서야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나 걱정이었다.

“괘, 괜찮아?”

서우진이 뒤늦게 이지아를 살폈다.

당연히 육체에는 큰 부상이 없었다.

살살하기도 했고, 이지아의 신체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으니까.

지금은 당황하고 놀라서 이렇지, 생각해 보면 통증도 그리 심하지 않을 것이다.

서우진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이지아를 달랬다.

아무래도 대련을 계속 이어가려면 손속에 사정을 많이 둬야 할 것 같았다.

“으잉잉…….”

이지아는 콧물까지 훌쩍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응?”

“다시 해요!”

일어난 그녀의 눈에는 미약하지만 독기가 서려 있었다.

서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  *  *

콰앙-!

“다시!”

콰아앙-!

“다시!”

쿠아아앙-!

“다… 끄응.”

몇 번이나 상대해 줬을까?

힘을 많이 빼고 상대를 해주었는지라, 처음보다는 오래 버텼다.

매서운 공격도 제법 날리기 시작했고.

하지만 아직 서우진을 상대로 제대로 된 반격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지아는 거의 열 번에 가깝게 땅을 구른 뒤에야 재도전을 포기했다.

자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지금은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음에 또 붙어요! 이번엔 장비 갖고!”

이지아의 눈에 서린 독기는 점점 더 그 빛이 강해졌다.

순수했던 눈에 저런 눈빛이 서리게 한 것이 조금 미안했지만, 이건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다.

서우진과 함께 이런 수련을 하다 보면, 전쟁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커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좀 불안하기도 했다.

‘괜히 내 무덤 파는 건 아닌지 몰라.’

괜히 적이 될지도 모르는 애를 키우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런 아이를 그냥 두고만 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매시브 가디언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자신에게 가장 먼저 친근하게 다가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래그래, 내일 또 하자.”

“도망치면 안 돼요!”

보통은 포기할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고 저 멀리 거리를 두고 있는 유홍설과 김다혜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지아는 반대였다.

왠지 기특해졌다.

“저분들은 안 하신대?”

아직 힘이 남아돌았다.

아일린과는 좀 격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매시브 가디언에서 했던 수련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조금 더 땀을 빼고 싶은데…….

“저, 저는 다음에요!”

“저도요!”

서우진의 말을 들은 것일까?

두 사람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 그래요, 그럼.”

조금 아쉽긴 했다.

유홍설도 그렇고 김다혜도 그렇고.

어떻게 싸우는지 한번 보고 싶긴 했으니까.

하지만 싫다는 걸 억지로 조를 순 없었다.

“기다려 봐. 약 발라줄게.”

이지아의 머리와 팔에는 자잘한 생채기들이 가득했다.

계속해서 바닥을 구르며 얻은 상처였다.

“으으, 이렇게 많이 다쳐 본 적 처음이에요! 세상에, 아저씨는 악마야!”

이지아가 투덜거렸다.

“나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서우진이 피식-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조금 피가 멎기는 했지만, 서우진은 그야말로 피범벅인 상태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덤프트럭에 치인 것이라고 오해할 법한 모습이었다.

“그, 그게…….”

방금 전까지 그런 서우진에게 살벌한 주먹질을 해댄 것이 떠올랐다.

“괜찮아요? 많이 아파 보이는데…….”

그제야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별거 아니야. 수련하다 보면 더 크게 다치는 일도 허다하니까.”

“우진 씨.”

이지아를 일으켜 세우고 먼지를 털어주고 있는데, 아일린이 다가와 약을 건네주었다.

“벌써 발랐어?”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것으로 봐선, 혼자 먼저 약을 바른 것 같았다.

예상대로 아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도 좀 발라줄래?”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바르기엔 좀 그랬으니까.

같은 여자가 발라주는 편이 서로 편할 것이다.

그리고…

“아? 아아? 아아아악!”

매시브 가디언 특제 외상약을 바른 이지아가 발버둥을 쳤다.

“아, 맞다. 그거 좀 아파.”

예를 들면, 알보칠을 한 열 배 정도 농축한 느낌이랄까?

이지아는 서우진에게 얻어맞을 때보다도 더한 고통에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래도 효과는 끝내주니까.’

일주일 아플 걸 10초 아픈 걸로 치환하는 기적의 약이었다.

아일린은 능숙하게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지아에게 약을 발라주었다.

“주, 죽을 뻔했다아…….”

이지아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아까도 저렇게 울진 않았는데.’

확실히 약이 아프긴 한가 보다.

“나도 좀 발라줄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발라주어야만 했다.

“저요! 제가 발라줄래요!”

아일린이 나서기도 전에, 이지아가 약을 받아 들었다.

서우진은 그녀의 눈빛에 담긴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건… 복수에 눈이 먼 눈빛이다!’

자신에게 약을 발라 오늘 당한 고통을 갚아줄 생각인 게 분명했다.

서우진은 피식- 웃었다.

약이 아프긴 하지만 지금은 참을 만했다.

호들갑을 떨기엔 지난 1년간 너무도 익숙해진 탓이었다.

매일 저 약을 온몸에 처발랐어야 했으니까.

서우진이 옷을 벗자, 이지아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드디어 복수의 시…….”

환호성을 지르며 약을 바르려던 이지아의 몸이 굳었다.

서우진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도무지 셀 수 없을 정도의 검상이, 서우진의 상반신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깨진 도자기를 억지로 이어붙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이 이런 꼴을 하고도 살아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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