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으로 살아남는 법-57화 (58/116)

#57화.

“이곳입니다.”

울창한 숲 사이로, 커다란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진짜 유적이네. 영화에서 이런 거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이지아의 감탄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영화나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옛 고대유적의 모습과 비슷했다.

“……놀랍군.”

옆에 있던 루데인이 심각한 음성으로 유적을 바라봤다.

“분명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서우진이 묻자, 루데인은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마경 헬데인의 외곽 지역을 표시해 둔 지도 같았다.

“여기는 제국에서도 수차례 토벌과 탐사를 진행한 곳입니다. 저 역시도 몇 번이나 와보았죠. 하지만 저런 건 단연코 본 적이 없습니다.”

강병규가 유적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루데인은 그것을 믿지 않았었다.

잘못 본 것이거나, 혹은 유적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들이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눈앞의 유적은 거대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도 그 규모가 상당했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생각하면, 도무지 어느 정도의 크기일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있네요.”

서우진도 덩달아 표정이 심각해졌다.

존재하지 않았던 유적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과 다른 상황이라면, 이번에는 용사들과 함께 왔다는 것.

그 말은, 이 유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용사들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루데인이 물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개입하긴 했지만, 기사들의 임무는 그저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니 결정은 자신이 아닌, 용사들이 해야만 했다.

하지만 루데인은 서우진이 거부하길 바랐다.

확인되지 않은 위험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옳으니까.

하지만 그런 루데인의 생각을 비웃듯이, 누군가가 나서 말했다.

“이런 걸 보고 그냥 돌아갈 순 없죠.”

성유라였다.

그녀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저 안을 탐사해서 저희가 더 강해지면, 이 세상에도 좋은 일 아닌가요?”

용사들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마왕을 물리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병력의 피해도 더욱 줄일 수 있었고.

그러니 용사의 성장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루데인은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성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러다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적은 위험한 곳입니다. 기사들만으로는 여러분을 모두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루데인이 데리고 온 기사의 수는 22명.

엘리트 친구들 쪽의 기사를 합쳐도 45명에 불과하다.

모두가 중급 이상의 실력을 자랑했으니, 웬만한 기사단보다 강한 전력이긴 했지만…….

“유적. 특히나 마경에서의 유적이라면, 제국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에나 탐사를 고려할 정도입니다.”

루데인은 다시 한 번 만류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성유라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우리는 저기 있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라요. 교관님도 아실 텐데요?”

다섯 명의 용사.

서우진은 그냥 엘리트 친구들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사실 그들에겐 다른 명칭이 붙어 있었다.

[파이브 세이비어.]

다섯 구원자라는, 입으로 부르기엔 참으로 낯부끄러운 명칭이었다.

하지만 그 다섯 명의 면면을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S급 이상의 최고등급 용사였으니까.

등급도 최상, 레벨도 최상, 노력도 최상.

성유라의 말처럼 다른 용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과 능력이 있었다.

오죽하면 제국에서는, 백시우를 검공 다리엘보다도 중요한 인물로 판단할 정도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루데인은 서우진을 슬쩍 쳐다봤다.

그가 본 서우진은 절대 백시우의 밑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다.

레벨부터 두 배 이상 차이가 났으니까.

그럼에도 루데인은 서우진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바랐다.

서우진이 반대해 주기를.

“저도 그리 내키지는 않는데.”

다행히 루데인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괜히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있나?”

용사들의 실전경험을 쌓는다는 명분은, 지금처럼 마경의 몬스터들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루데인의 말대로 괜히 위험한 곳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그쪽은 빠지시죠?”

성유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도 아저씨 따위의 의견을 묻지는 않았거든요.”

명백한 무시였다.

서우진은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설 생각도 없었는데, 뭐.”

애초에 이곳에 온 것도 루데인의 부탁 때문이었다.

자신과 팀원들은 투표를 통해 유적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결정했으니, 여기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엘리트 친구들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세요, 그럼. 우린 들어갈 테니까.”

성유라가 코웃음을 치며 백시우를 돌아봤다.

“야, 들어가자.”

어차피 같이 들어가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 같았다.

유적을 찾은 것은 강병규였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유적이 자신들 것인 것처럼 행동했다.

“기다려 봐.”

하지만 백시우는 성유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겠습니까? 저희끼리만 가도?”

그는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기회에 서우진의 진짜 실력을 조금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적에 함께 들어가지 않겠다니…….

“그렇게 하세요. 저희는 안 들어갑니다.”

서우진의 단호한 말에 이지아와 강병규가 한숨을 내쉬었다.

투표에서 지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 서우진의 말로 그 기대감이 박살났지만 말이다.

“…그렇습니까?”

백시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인이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유적을 앞에 두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성유라가 했던 말처럼, 이런 유적이라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 다음에 뵙죠.”

서우진은 백시우와 인사를 나누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우린 베이스캠프로 돌아갑시다.”

일행은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  *  *

“……이상하네?”

가장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강병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야?”

“아니, 이게.”

서우진의 물음에 그는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서우진이 눈을 끔뻑였다.

길을 잃어?

그게 가능한 일인가?

길을 찾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직업의 소유자가 강병규다.

그런 그가 미로도 아니고, 그냥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무슨 말이에요? 길을 잃다니? 왔던 길로만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지아가 고개를 쑥- 내밀면서 끼어들었다.

“나도 이해를 못하겠네? 분명 나는 맞는 길을 따라서 이동하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말한 강병규가 손을 들어 눈앞의 수풀을 헤쳤다.

그러자 낯익은 광경이 드러났다.

“유적?”

조금 전, 자신들이 떠나왔던 유적이 떡하니 펼쳐져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니야. 조금 틀어졌을지는 몰라도, 방향은 정확했어.”

서우진은 강병규의 말에 살짝 불안감을 품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엘리트 친구들과 그들을 보호하던 기사들은 이미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가보자.”

서우진은 루데인의 지도까지 빌려 비교해 가며 이동했다.

그리고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유적.

“…이거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지?”

“이번엔 제가 한번 앞장 서보겠습니다.”

루데인이 나섰다.

마경은 그에게 꽤나 익숙한 장소였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하고, 아예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도 해보았다.

그럼에도…….

“또냐?”

길의 끝은 언제나 유적이었다.

마치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지가 자신들을 속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낭패로군요.”

루데인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거 갇힌 것 같죠?”

“방향 감각을 속이고 길을 헤매게 하는 종류의 마법이나 저주는 흔하긴 합니다. 하지만 용사의 스킬을 속일 정도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란 뜻이었다.

“방법은 없습니까?”

루데인이 고개를 저었다.

제국이 자랑하는 아크 메이지, 로제리아라면 모를까.

자신으로선 무리였다.

“신호탄을 쏴보겠습니다.”

루데인이 품 안에서 신호탄 한 개를 꺼내 들었다.

이윽고 폭음과 함께 붉은 연기가 허공을 수놓았다.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탄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갇혔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원을 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신호를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네요.”

서우진이 유적을 쳐다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평생 헤매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이 현상이 유적 때문이라면, 해결 방법도 그 안에 있을 터.

서우진은 어쩔 수 없이 유적 내부로의 진입을 결정했다.

“괜찮겠습니까?”

루데인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최대한 조심하는 수밖에요.”

“부하들에게도 경고를 해두겠습니다.”

유적 안에서는 지켜보기만 한다는 원칙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저희 안으로 들어가요?”

이지아가 슬쩍 다가오며 물었다.

처음부터 유적탐사를 찬성하던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께름칙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도 눈치는 있었으니까.

지금 분위기가 별로 좋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채고 있었다.

“맞아.”

“……위험할 것 같아요?”

지금이야 단순히 길을 잃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유적 안쪽은 어떤 악의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조심하는 게 좋겠지.”

서우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다들 상태는 어때?”

서우진이 팀원들을 향해 물었다.

자신이야 레벨 업을 통해 모두 회복이 됐다지만, 다른 팀원들은 아니었으니까.

“아까보단 많이 회복됐어요.”

“준비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쁘진 않아.”

“괜찮을 듯요.”

최악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럼 들어가자.”

결국 서우진은 유적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입구는 사람 다섯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그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온통 어둠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서우진은 긴장한 채 앞장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화아아악-!

순식간에 눈앞의 환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제국의 수도에서 경험했던, 게이트를 다시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독한 멀미와 함께 비틀거리던 서우진이 눈을 뜨자, 기다란 통로가 보였다.

벽에는 횃불이 걸려 있어,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뒤를 돌아보자 아무도 없었다.

팀원도, 기사도.

이 통로에는 오직 서우진 외에,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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