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으로 살아남는 법-67화 (68/116)

#67화.

서우진은 강하다.

웬만한 용사들 정도는 감추고 있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것이 B급이든, A급이든 상관없었다.

반 슬레인에게 일대일로 검을 배운 서우진의 강함은, 등급이나 레벨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단하네.’

하지만 그런 서우진도, 백시우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50레벨이 넘는 SSS급 용사.

버스를 타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강해지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은 자.

백시우의 검이 ‘섬뢰’라는 이름처럼 빛과 같은 속도로 로지 루비에게 작렬했다.

쿠르르릉-!

복도를 진동시키는 천둥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다.

그리고…….

끼, 끼에에.

정말로 벼락에 맞은 것처럼 검게 탄 놈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서우진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검은 공간에 펼쳐졌다.

“미친…….”

사실 서우진이 한 일은 별로 없었다.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도 못했고, 로지 루비의 숨통을 끊은 것도 백시우였다.

그가 한 일이라곤 로지 루비의 표피에 생채기를 조금 내고, 시간을 끈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레벨 업을 두 번이나 했다.

“저놈 진짜 괴물이었구나.”

만약 혼자서 로지 루비를 사냥하는데 성공했다면, 몇 레벨이 올랐을지 짐작도 되질 않았다.

부르타엘보다도 훨씬 높은 경험치였다.

“내가 이 정도면 백시우는 몇이나 올랐을까?”

5레벨? 6레벨?

‘아니지. 그 녀석은 레벨이 높으니 의외로 많이 오르지 않았을지도 몰라.’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필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감안하면 많아도 2레벨 이상 오르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마저도 백시우가 혼자서 잡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였다.

“난놈은 난놈이구만.”

과연 엘리트 친구들의 수장다웠다.

서우진은 피식- 웃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계마왕록.”

검은 공간의 한복판에는, 여전히 커다란 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손을 뻗어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만져지지는 않았다.

서우진은 입맛을 다시며 책의 표지를 확인해 보았다.

혹시나 책을 만질 수 있는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표지에는 책의 제목 외에도 수많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서우진은 왠지 그것들이 마법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그 문양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너무도 복잡하고 방대했기에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럴 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거지.”

서우진은 그중에서 그나마 심플한 문양 하나를 눈에 담았다.

자신에게는 마법적 소양이 전무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팀원 중에도 ‘원소술사’인 진태성이 있지 않은가?

혹시 마법 계열 직업을 지닌 이들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우진은 그들에게 문양의 해석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눈에 익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갈 때 쯤, 검은 공간에서의 시간이 끝났다.

파아앗-!

밝은 빛과 함께 서우진이 현실로 돌아왔다.

“음…….”

꽤 오랜 시간 동안 검은 공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현실의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았다.

아직도 로지 루비의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와아-!”

이지아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해요, 대단해! 저 괴물을 한 번에 팍! 목을 팍! 어떻게 한 거예요?”

로지 루비와 싸우며 겪었던 고생은 벌써 잊은 것일까?

이지아는 신난 표정으로 백시우에게 질문의 폭포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피식- 웃은 서우진은 다른 팀원들을 살폈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덕에 다들 지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표정들이 너무 좋았다.

아니, 쌩쌩해 보였다.

그것을 본 서우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들 레벨 업을 했구나!’

이 많은 인원이 전부다 레벨 업을 하다니…….

새삼 로지 루비가 얼마나 대단한 괴물이었는지 실감이 되었다.

“어?”

헛웃음을 짓고 있던 서우진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곳에서 봐선 안 될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일린?”

그녀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우진 씨.”

아일린은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표정으로 서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잘게 떨려오는 눈빛은 감출 수가 없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 말에 서우진은 아일린이 자신을 찾으러 이곳으로 왔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솔직히 조금 감격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괜한 쑥쓰러움을 감추며 그렇게 물었다.

“우진 씨와 다른 분들이 실종된 곳에서 마왕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아일린은 밖에서 벌어진 일들을 짧게 설명했다.

그녀가 입을 열자, 모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던 성유라마저도 입을 다물고 경청할 정도였다.

“카데마인이라…….”

루데인이 침음했다.

용사들이야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이 세계의 원주민인 그는 다르다.

마왕의 이름을 듣자 두려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럼 수색대들도 다들 뿔뿔이 흩어진 건가?”

“저만 떨어진 게 아니라면 그럴 겁니다.”

루데인의 질문에 아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단났네.’

이곳에서 찾아야 할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이미 죽어 살덩이가 된 기사들은 제외하더라도, 엘리트 친구들 중 세 명은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사람이 더 늘었다니…….

과연 그들 중 몇 명이나 무사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이곳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 걸까?

그런데 그때였다.

“어? 아저씨! 저거 보세요!”

이지아가 뭔가를 발견하곤 서우진을 불렀다.

“응? 뭔데?”

심각한 분위기를 와장창 박살 내는 그녀의 호들갑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지아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석?’

죽어버린 로지 루비가 재로 변해 흩날리는 모습 사이로, 주먹만 보석의 모습이 보였다.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전리품이라면 백시우에게 가장 큰 지분이 있겠지만, 서우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석을 본 순간 저것을 가져야만 한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난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루데인이 경고성을 날렸다.

로지 루비가 죽긴 했어도, 마왕의 권속인 만큼 그 안에서 나온 보석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대로 보석을 집어 들었다.

동시에…….

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마도사는 마력장을 펼쳤다.

유적으로 보이는 이곳의 정체를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시공간이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 유적에 부여되어 있는 마력패턴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개념을 뒤틀어 혼돈을 야기하는 마법이었다.

“놀랍군.”

자신으로선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의 마법.

적어도 대마법사의 위(位)에 오른 자가 아니라면, 흉내도 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과연 마왕의 유적인가?”

마도사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리고 좌절했다.

자신의 마법 실력으론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검을 들고 그를 수호하고 있던 리오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안 좋은 상황입니까?”

갑자기 마도사의 표정이 어두워졌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마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저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야만 상황에 대처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 말에 리오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생각한 안 좋은 상황이란, 이 안에 강력한 몬스터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 정도였으니까.

설마하니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말씀은?”

“이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다. 마왕의 권속을 쓰러뜨리는 것.”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로선 절대 그 수호자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원 중급 이상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수색대가 전부 모인다면.

그리고 자신이 원호를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시간과 공간이 뒤엉켜 있는 이상현상이 벌어지는 곳이다.

여기서 수십 명에 달하는 기사들을 한 곳에 집결시킨다?

그건 수호자를 처치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모은다고 해도 살아남는 건 극소수일 테고.’

마력 패턴의 분석을 통해, 마도사는 이 유적의 수호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마경 헬데인에서도 악명이 높은 로지 루비.

그놈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정말로 놈이라면 자신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왕의 권속인 그놈은, 정말로 괴물이었으니까.

그러니 마도사가 좌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습니다.”

“당연한 말을 하는군.”

마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리오크의 말대로,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마법사의 자존심을 걸고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일단 이동하지.”

앞장 선 마도사의 걸음이 향한 곳은 길게 이어진 복도가 아니었다.

바로 벽.

분석을 통해 유적의 진짜 길은 복도가 아닌, 이 너머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마도사가 손을 들어 벽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니, 끌어올리려 했다.

쿠구구궁-

갑자기 엄청난 진동이 복도를 뒤흔들었다.

“뭣?”

마도사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단순히 강력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마력.

그것이 마치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육체를 보호했다.

“크윽!”

그런데도 몰아치는 마력을 견디지 못해 격통이 밀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이 정도의 마력 폭풍은 그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규모였다.

하지만 마도사의 표정은 일그러졌을지언정,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설마?’

유적 내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질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붕괴.

유적이 붕괴하며, 그것을 유지하고 있던 마력이 흩어지는 중이었다.

갑작스레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수호자가 죽었다.’

로지 루비가 죽다니?

제국에서도 놈을 죽이기 위해 수없이 많은 토벌대를 보냈었다.

그 토벌대에는 최상급 기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놈을 상대로 승리할 수가 없었다.

헬데인 토벌을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로지 루비 때문이었다.

그런데 놈이 죽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군.”

눈앞의 공간이 깨져 나가고 있었다.

마치 유리처럼, 균열이 쩍쩍- 생기며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아아!”

뒤쪽에서 들려오는 리오크의 비명소리와 함께, 유적이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게이트가 생성되었던 숲 한복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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