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으로 살아남는 법-78화 (79/116)

#78화.

하늘탑의 주인.

대륙 유일의 대마도사.

모든 마법사의 스승.

마룡 살해자.

이 모든 수식어가 가리키는 존재는 단 하나였다.

마공 마르테스.

‘미친……!’

서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눈앞의 여자아이가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하늘탑의 고위 마도사이거나, 어쩌면 제국 황실의 일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공이라니?

‘그 검공 노인네랑 동급의 강자라는 뜻이잖아!’

상상도 못한 정체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마기에 대해 말해줄 순 없었다.

자신의 몸속에 마기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맹세?

마왕과 마족 앞에서 그딴 맹세는 휴지조각보다 못하다.

거기다 지금 앞에 있는 존재는 제국의 수호자이자 하늘탑의 주인.

아무리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자신 정도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죽일 수 있는 세계관 최강자였다.

오죽하면 제국에서는, 용사의 도움 없이 마공 마르테스만 있어도 강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힘만으론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내젓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절대 말해줄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말도 안 할 순 없는데.’

계속해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풍기면, 분명 의심을 받을 것이다.

아니, 이미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 된 것 같았다.

마르테스도 자신이 마력뿐만 아니라 마기까지 흡수했다는 사실을 알진 못하겠지만,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200년 가까이 산 괴물 중 괴물이었으니까.

‘겉모습에 속아선 안 돼.’

그녀의 이명 중 마룡 살해자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였다.

초월종인 드래곤을 홀로 잡아 죽였다.

반 슬레인이나 다리엘조차도 불가능한 일을 아무렇지도 해낸 것이다.

그녀는 내면에 백 마리의 요사한 뱀이 들어앉아 있는, 노회한 현자였다.

서우진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잘 알지 모르겠지만, 숨기는 게 없진 않습니다.”

“호오, 계속 이야기해 보거라.”

마르테스가 서우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치 진실을 가려내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우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용사의 스킬에 대해 잘 아십니까?”

“스킬이라…….”

마르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이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 자부한다.”

확실히 마법사는 마법사였다.

기사들 중에는 스킬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저는 남들과 다른 스킬이 하나 있습니다.”

마르테스의 눈에 짙은 호기심이 서렸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상태창’에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으니까요.”

■스킬 : ???[패시브]

서우진이 처음 소환되었을 때부터 있던 스킬이었으며, 아직까지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서우진은 마기의 정체를 감추는 대신, 이것을 떡밥으로 내놓았다.

“물음표?”

“이름도 모르고, 그 효과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서우진은 북방에서의 토벌과 로지 루비의 전투를 예로 들었다.

“가끔 몬스터나 마수 같은 것들이 움직임을 멈춥니다.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말이죠.”

서우진은 말을 하며 마르테스의 분위기를 살폈다.

‘제발 이걸로 그냥 넘어가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일까?

마르테스가 강한 흥미를 보였다.

“그런 스킬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구나. 혹, 지금 발동시켜 볼 수는 있느냐?”

“아쉽게도 ‘패시브’라고 적혀있네요.”

“패시브? 그건 무슨 뜻이더냐?”

마르테스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 것 같았다.

“어, 그러니까. 굳이 발동하지 않아도 항상 효과가 발휘되는 상태로 유지가 되는 스킬이라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신기하긴 하구나.”

다행히 마르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스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왜 지금껏 하지 않았느냐?”

지금부터다.

마르테스에게 불필요한 의심을 더 이상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모두가 다 갖고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다른 용사들과 대화를 하며 묻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이후에는?”

“…조금 무서웠습니다.”

“무섭다? 무엇이?”

계속되는 질문에 서우진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요.”

침묵이 흘렀다.

서우진은 초조한 심정으로 마르테스의 반응을 기다렸고,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해할 수 있노라.”

남들과 다르기에 느끼는 두려움.

마르테스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네 스킬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마.”

“가, 감사합니다.”

서우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추고 있던 비밀 중 작은 하나를 내주어, 다른 것들을 숨기는 것에 성공했다.

하나같이 서우진에게는 치명적인 비밀들이었으니,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야.’

만약 ‘???’ 스킬이 ‘마왕’이란 직업과 연관이 있고, 그것이 밝혀지게 되면 큰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사자인 자신도 잘 모르는 걸 마르테스가 단기간에 밝혀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하늘탑의 주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전에 무슨 핑곗거리라도 만들어두어야만 했다.

“오늘 내 너를 추궁하듯 몰아붙여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지금도 식은땀이 등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으니, 억지로나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혹 바라는 것이 있더냐? 오늘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무엇이든 하나는 들어주겠노라.”

‘바라는 것?’

생가지도 않은 행운이었다.

‘뭐가 있을까?’

검… 은 새로 생겼고.

갑주 같은 장비는 자신의 전투 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력도 충분, 육체도 과할 정도로 충분하다.

모자라는 것이 있다면 레벨 정도인데, 그것도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등급이 등급이었으니, 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모르겠다.’

갑자기 질문을 받아서인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서우진의 고민이 길어지자 마르테스가 웃음을 지었다.

“없다면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느냐?”

“자, 잠깐! 잠깐만요. 금방 생각을 해내겠습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흐음, 딱히 필요한 것이 없나 보구…….”

“강해지고 싶습니다!”

마르테스가 자신의 말을 철회할 것 같자,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강해지고 싶다?”

‘이런 망할!’

급한 마음에 필터링도 없이 내뱉고 말았다.

조금만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훨씬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소원을 빌 수 있었을 텐데.

서우진은 조금 안타까웠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어차피 강해져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제발 마르테스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소원을 들어주길 바랐다.

“흐음, 강해지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

마르테스는 서우진의 말에 고민했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지 않으냐?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테고. 그럼에도 그것을 바란다는 뜻이더냐?”

“…최대한 강해지고 싶습니다. 마왕을 몰아내기 위해선 아무리 강해져도 부족하니까요.”

오늘따라 혓바닥에 기름칠을 한 것인지, 변명이 술술 나왔다.

“너의 말이 옳다. 마왕을 생각하면, 부족한 것보단 과한 것이 낫지.”

그러곤 ‘어디 보자’ 하며 허공을 살폈다.

마치 용사들이 ‘상태창’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너는 용사이니, 이것이 좋겠구나.”

마르테스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텅 빈 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공간 같은 건가?’

서우진은 그것을 보며 차라리 아공간 마법 같은 게 걸려 있는 아이템이나 달라고 할 걸 그랬다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쉽게도 용사들에게는 인벤토리 같은 게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마르테스가 꺼내 든 것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받거라. 이것이면 너에게도 충분한 도움이 될 터이니.”

*  *  *

“아저씨는 어디 가셨어요? 훈련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돌아오지?”

이지아가 연무장 한복판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며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홍설이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까 지나가다 들으니, 누군가 찾으시는 것 같더라고.”

“누가요? 혹시 여자? 예뻤어요?”

“아니. 머리도 하얗게 센 어르신이었어.”

유홍설의 말에 이지아는 김이 샌 표정으로 운동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다혜야, 너도 봤어?”

“못 봄.”

그림을 그리고 있던 김다혜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뭐 그리고 있어? 또 총이야?”

이지아가 옆에 들러붙으며 귀찮게 굴었다.

하지만 김다혜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M134.”

“그러니까 그게 뭔데?”

김다혜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미니건(Minigun).”

“뭐? 미니건?”

김다혜의 말에 쩌렁쩌렁한 외침이 연무장을 울렸다.

“깜짝이야!”

이지아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웬 곰이 한 마리 서있었다.

“어, ‘마법소녀’ 아저씨다.”

“으하하! 아직 아저씨 아니다!”

구동환은 이지아의 말을 부정해 봤지만, 그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미니건이라고?”

김다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오오!”

구동환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환희했다.

“정말 미니건이구나! 설마 이걸 소환해서 싸우나?”

“맞음요.”

웬만한 몬스터들은 가루도 남기지 않고 박살내 버릴 수 있는 무기였다.

“나, 나중에 나도 한번 쏴봐도 될까?”

구동환이 간식을 앞에 둔 강아지처럼 조르자 김다혜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으하하- 하고 웃던 구동환이 문득 주변을 돌아보다 이지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서우진 씨는 어디에 있지? 분명 오늘부터 함께 훈련하기로 했었는데.”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아저씨니까, 금방 오시겠죠.”

어느새 연무장에는 서우진과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이지아, 김다혜, 유홍설, 강병규, 진태성, 구동환, 그리고 아일린까지.

“수지 언니도 온다고 했었는데.”

이지아가 눈을 반짝였다.

그동안 서우진과 훈련하며, 맨몸으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었다.

그런데 계수지에게는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패배를 했다.

질투가 생길 만도 했지만, 이지아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보단 그녀에게 동경을 품었다.

“어서 같이 훈련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저씨도 없고, 언니도 없고.”

“그럼 우리끼리 먼저 하고 있을까?”

강병규가 제안했다.

“아, 그럴까요?”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이 반색했다.

연무장에 가만히 앉아서 수다만 떨고 있는 것도 궁상맞았으니까.

“늦어서 죄송해요.”

그때, 계수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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