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으로 살아남는 법-88화 (89/116)

#88화.

“……디X니?”

서우진이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내뱉었다.

“그건 뭔가요?”

“아, 아니야.”

서우진은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일린이 가리킨 성은 흡사 지구의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상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규모는 그것의 몇 배에 달했다.

“대공의 성이에요. 마공께서 직접 부여한 대마법방어진이 새겨져 있고, 평시에도 2천에 달하는 병사와 1백의 기사가 상주하고 있는 요새이기도 하죠.”

이미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들을 때보다 훨씬 실감이 났다.

“대공에 대해서 얘기 좀 해줘.”

검공과 마공은 겪었다.

하지만 다른 셋은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

그들의 특기가 무엇인지, 성격은 어떤지.

왠지 한 번식 모두 엮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에, 서우진은 이 기회에 정보를 좀 알아두고 싶었다.

“대공께선 제국의 황족이세요.”

“황족?”

“정확하게는 현 황제의 하나뿐인 동생이죠.”

모르던 사실에 서우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말을 듣자 저 거대한 위용의 성이 이해가 갔다.

“일신의 무력은 다섯 수호자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강력하고, 제국에 끼치는 영향력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죠.”

황제의 동생이라면 꽤나 큰 정치력도 지니고 있을 터였다.

“대공은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칭호만으로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검공은 검, 마공은 마법이어서 짐작하기 쉬웠는데 대공?

‘대가리 왕은 아닐 테고.’

혼자 실없이 웃었다.

그런 서우진을 이상하게 쳐다본 아일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대공께서 지닌 능력은 알려지지 않았어요.”

“뭐? 그런데 어떻게 수호자 중 한 명이 됐어?”

“그래서 혹자는 황제의 동생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로 수호자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곤 하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황족이 수호자로 있다면, 황실의 권위가 드높아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일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대공은 이능(異能)을 쓰신다는 것 같아요.”

“이능?”

들어도 모르겠다.

솔직히 마법이든 오러든 스킬이든.

지구의 상식으로 생각해 보면 모조리 이능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으니까.

“저도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영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상징에 불과한 허수아비는 아니라는 뜻일 거예요.”

반 슬레인, 그 노인네가 허튼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만나보면 알겠지.”

깊게 엮이고 싶진 않았다.

마르테스의 말투로 보면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닐 것이고.

후딱 부탁을 들어주고, 내일 하늘탑으로 돌아가 ‘소환석’을 받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얼른 가자.”

“생각보다 거리가 머니, 마차를 빌리는 게 좋을 거예요.”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눈으로 보는 것보단 훨씬 멀리 있었다.

아일린은 역 근처에서 마차 한 대를 빌린 후, 서우진과 함께 탔다.

천천히 대로를 이동하며 도시의 전경을 구경했다.

풍요로운 남유럽의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중해와 같은 에메랄드빛 해안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롭고 밝았다.

“메르노타인은 제국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예요. 도시민들의 표정이 밝은 게 당연하죠.”

아일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씁쓸함이 서려 있었다.

‘매시브 가디언을 생각하나?’

메르노타인과는 정반대의 요새.

궁핍하고, 척박하며, 위험하다.

매년 목숨을 건 토벌을 진행하며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는다.

그곳의 기사인 아일린에겐 메르노타인의 풍족한 광경이 불편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서우진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창밖을 쳐다봤다.

그렇게 잠시 후.

마차는 대공성에 도착했다.

*  *  *

“게랄드 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커다란 공간.

방이라기엔 너무도 큰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게랄드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말하라.”

“사자의 명을 받들어, 게랄드 님의 손발이 되어줄 아이들이 도착하였나이다.”

검은 눈동자가 말을 한 이의 뒤를 훑었다.

총 열 명.

고개를 들 생각도 못하고 부복해 있는 그들을 본 게랄드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족하다 전하라.”

“알겠나이다.”

스르륵- 하며 대답을 한 이의 신형이 그림자로 화해 사라졌다.

“너.”

게랄드가 열 명 중 한 명을 지목했다.

“하명하십시오.”

“이름이 무엇이냐?”

“그저 12호라 부르시면 되나이다.”

그들에겐 이름이 없었다.

어차피 소모품.

이름을 지어주기엔, 그 언어가 아깝다.

“좋다, 12호. 지금부터는 네가 이들의 수장이다.”

일족의 리더가 되었음에도, 그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수하들을 이끌고, 소란을 일으켜라.”

“어느 수준이면 되겠나이까?”

12호가 한없이 정중한 어투로 물었다.

그러자 게랄드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최대한 잔혹하고, 화려하게. 대공과 그의 개들의 시선이 너를 향하게 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12호가 고개를 더욱 숙였다.

“시일은 후에 전할 터이니, 돌아가라.”

“보중하소서.”

12호를 포함한 열 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야 게랄드는 다시 눈을 감았다.

“브리아니…….”

결코 쉽지 않은 존재다.

특히나 그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게랄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대공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자신은 마왕의 가호를 받은 자.

사자가 부탁한 대로, 목을 날리기엔 충분하리라.

그리 생각한 게랄드가 잠에 빠져들었다.

조금이라도 쉬이 일을 끝마치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메르노타인의 어느 한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  *  *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네.”

하늘탑 만큼 거대하진 않았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곳에 비하면, 대공성은 충분히 있을 법한 곳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상주 병사가 2천 명이라더니.’

매시브 가디언보다 더욱 큰 규모 아닌가?

‘아니, 아니지. 기사도 100명이나 된다니 훨씬 더 크네.’

실력이야 둘째치고, 병력의 양만 보자면 대공성이 매시브 가디언보다도 한수 위였다.

“이곳은 대공성입니다.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수문 병사가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정중하게 물었다.

예법이 몸에 익숙해 보이는 것이, 병사의 행동만 봐도 대공의 성품이 짐작될 정도였다.

서우진이 대답을 하려는데, 아일린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시온의 기사, 아일린이다. 마공의 명으로 대공성에 방문한 것이니, 안쪽에 기별을 부탁한다.”

병사가 묘한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푸른 갑주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병사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얘기해도 되는데.”

“굳이 용사임을 밝힐 필요는 없어요. 그랬다간 원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던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수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떠올리면, 신분을 밝혔다간 괜한 소란이 일 것 같았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일린은 언제나 완벽한 일처리를 자랑했다.

이 세상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자신이 나서기보단, 그녀가 나서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잠시 기다리자, 조금 전의 그 병사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대공께서 입성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병사는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성도 튼튼해 보이고.’

공성이나 수성 따위에는 일말의 지식도 없는 서우진이었지만, 대공성의 성벽은 그의 눈에도 매우 단단해 보였다.

조금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깔끔한 정장에 흰색 장갑.

그림으로 그린 듯한 집사의 모습을 재현한 노인이었다.

“대공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한쪽에 있는 둥근 돌덩이 위로 올라섰다.

‘마법진?’

하늘탑에서 본 이동마법진과 비슷했다.

“올라서시면 됩니다.”

집사의 말에 서우진은 아일린과 함께 돌 위에 올라갔다.

“이동하겠습니다.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우웅-

마법이 발동되며 빛이 퍼져 나왔다.

‘마법사구나.’

서우진은 집사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일개 집사조차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데, 순간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밖이 아닌, 실내였다.

“이쪽으로.”

집사가 안내한 곳은 고풍스러운 나무문이 달린 응접실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대공께서 오실 겁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불러달라는 말과 함께 집사가 자리를 떴다.

“…대공의 인성이 괜찮은가 봐?”

병사도 그렇고, 집사도 그렇고.

예의가 몸에 배어 있었다.

아랫사람을 보면 윗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서우진은 다시 한번 대공의 성품이 뛰어날 것이라고 짐작했다.

“맞아요. 메르노타인뿐만 아니라, 제국의 모든 신민이 그분을 칭송할 정도예요.”

“그쯤 되면 황제가 견제하지 않아?”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예가 한가득이었다.

장수를 질투해 온갖 패악질을 부린 선조도 있는데, 황족이라면 더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일린은 고개를 저었다.

“제국의 현황제와 대공의 신뢰는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을 정도로 두텁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권력 앞에선 얼마든지 추해질 수 있을 텐데.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제국의 정치가 어떻든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냥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응접실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괜히 뭔가를 더 물어봤다간, 아일린의 교육이 다시 시작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응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문이 열리자, 붉은 머리카락의 젊은 여인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공이 여자였구나!’

몰랐다.

황제의 동생이라기에 단순히 남동생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저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니…….

대공, 브리아니는 우아한 자세로 걸음을 내디뎠다.

“대, 대공을 뵙습니다.”

아일린이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것이 느껴지자, 서우진이 냉큼 인사를 했다.

예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사였지만, 브리아니는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머, 시온의 기사가 찾아왔다 해서 의문스러웠는데. 용사도 있었네?”

그녀의 시선이 서우진을 향했다.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설마 단번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라, 조금 당황했다.

“마르테스의 명령으로 왔다고?”

배시시- 웃은 브리아니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고급스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명령이라기보단, 부탁이었는데요.”

“부탁?”

서우진의 말에 브리아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이곳에서 직접 대공께 들으라고만 해서.”

“아, 그거구나?”

대공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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