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화 (1/258)

# 면접 #

어릴 때를 떠올리면 항상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지구란 행성이 사실 잡탕찌개의 김치처럼 재료에 불과하며 감자, 어묵, 고기, 생선처럼 다양한 '재료' 가 존재한다는 걸 인류가 처음 깨달을 때의 일이다.

비유가 이상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요지경, 잡탕찌개였다.

인류는 다른 재료를 만나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지금처럼 완성된 잡탕찌개가 될 때까지,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기억은 이십 년 전의 기억이다.

난 첫 전이를 유치원 시절에 겪었다.

지구에 괴물, 이계인, 마물... 등등이 나타났을 때를 첫 전이라고 부른다.

그런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말 난감하게도 난 혼자 옷조차 갈아입지 못하는 아주 어린 나이에 겪은 것이다. 점심밥을 먹고 모두 낮잠 시간을 보내던 시간에 난 혼자 이불안에서 빈둥빈둥하며 어떻게 하면 조개껍질 씨름에서 이길까 고민했다. 그러다 어디에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녹색 피부를 가진 괴물을 마주했다. 괴물은 유치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잠이 없고 승부욕이 많은 성격이 날 살렸다. 고블린. 아주 사악하고 조그마한 괴물 난쟁이들. 놈들은 유치원의 평화로운 낮잠 시간을 피로 물들였다. 잠을 자던 아이들은 저항할 수 없이 고블린의 난잡한 몸짓에 죽임을 당했다.

물론 고블린한테 새싹 반 친구들이 몰살당할 때, 내가 구석으로 도망쳐 엉엉 울었다고 하여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때 정말 어렸었고 사리 분별을 잘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친구와 선생님의 피로 녹색 카펫이 진한 단풍 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이 났다.

난 그 참극에서 살아남았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과 구급차.

어리다는 건 때론 무지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사실 그대로를 말해도, 어른들은 어린애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고블린들로부터 살아남은 이유를 경찰 아저씨에게 설명할 때 [대빵~만한 날개를 가진 도마뱀이 날 구해줬어!] 라고 말하자 경찰 아저씨와 같이 있던 의사 아저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징후가 보입니다. 보호자도 없으니 시설에서 치료를 받는 게 우선입니다.] 라고 말해 날 강제적으로 '그 기억' 이 거짓됐다고 믿게 만들 때까지 병원에서 몇 달을 보내게 했었다.

그렇다고 의사 아저씨를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조치는 현명했다. 복지 재단 유치원 몰살 사건은 크게 이슈 된 사건이었고, 난 성인이 될 때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릴 적 기억, 친구와 선생님이 작은 악마들에게 물어뜯히던 끔찍하고 잔인한 기억.

충분히 '치료 교정'으로 묻어둘 수 있는 잔혹한 경험이었으나, 난 그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떠올렸다. 고블린은 무서웠지만 날 구해주던 '도마뱀' 의 정체가 궁금했었던 것이다. 난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려, 난 그 존재를 감히 [용]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한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잡탕찌개가 돼버린 지구에서도 '고기'처럼 세련되고, 돋보이고, 완벽한 존재인 [용]이 겨우 인간 꼬맹이 '한 마리'를 살렸다는 이야기는 되지도 않는 거짓부렁으로 치부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아...

그래, 내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어릴 적 기억을 설명하는지 이해 못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린 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용] 때문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취업 면접을 보기 위해 마물원에 들렀는데 면접관이 [용]이라는 간단한 이야기였다.

지구라는 차원에 여러 세계가 뒤섞이며 다양한 이계인들이 침범해올 때 그에 따른 지구의 반발인지 인류에게 이상한 능력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내 능력은 교감(交感). 동물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시시껄렁한 능력.

변해버린 세계에서 이 능력으론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백수로 지내던 난 우연히 인터넷에서 마물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혹한 건 월급이었다. 한 달에 천만 원!

이건 요즘 핫한 직업인 헌터라도 제법 베테랑들만 받을 수 있는 액수였다.

그리고 하는 일도 내 능력과 맞닿아 있었다. 내 능력인 교감(交感)은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직접 개와 마주 앉아 코리안 스피치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이 개가 지금 '즐겁구나, 슬프구나, 배고프구나, 발정 났구나' 를 알 수 있는 정도다.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마물에게도 통할까 싶었지만 삼시 세끼 라면으로 때우던 난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젠장.

잡념이 많았다.

용과 마주치자마자 몸이 굳어 어릴 적 기억까지 떠올렸다.

면접관이 용이라니, 세상에. 미국 대통령이라도 만나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콧대 높은 용을 동네 어귀의 허름한 동물원, 아니 마물원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반갑습니다. 마물원 주인이에요. 성함이 정다정님 맞으시죠?"

"아, 네..."

"의외네요. 이름만 듣고 여성분이신 줄 알았는데."

"사진도 같이 첨부했는데요..."

"죄송해요. 용은 인간의 암수 구별을 잘 못하거든요."

암수 구별이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선택한 단어가 이상하다.

난 내가 말을 입으로 내뱉는지 코로 내뱉는지 몰랐다.

그저 용 앞에서, 태연한 척 대답만 할 뿐이었다.

"능력이 흥미롭더군요. 교감이라, 정말 멋진 능력이네요! 합격이에요."

"... 면접에 합격됐어요? 나 이곳에 취업한 거예요?"

"네. 오늘부터 정직원입니다."

정직원.

평범한 상황이라면 오랜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매달 천만 원의 봉급을 받는 고수익 직장에 취업한 걸 기뻐할 테지만 상사가 용이라는 이유가 모든 걸 부정하게 만든다.

난 침을 꿀꺽 삼키고 용의 거대한 눈알을 뚜렷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큰 목소리라고 생각했으나 첫 음절만 컸을 뿐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잠깐! 만요. 생각해보니 제가 동물을 싫어하더군요. 돈에 혹해서 온 거예요. 죄송합니다.

다른 분 구하시는 게..."

말을 할수록 그녀의 눈빛이 마치 칼날처럼 섬뜩하게 날 쑤셔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살기는 그대로였다.

"용들 사이엔 훌륭한 격언이 있죠. [용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니, 찰나의 시간이라도 헛되게 보내게 한 자가 있다면 불태워 죽여라.]"

"앗."

용이 웃으며 내던진 폭언에 난 등골이 오싹해졌다.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주춤하자 용은 농담이라고 깔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런 야만적인 용들은 이 세상에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 또한 용, 시간은 아주 귀중하다고 여긴답니다. 이력서를 읽고,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소모된 시간만큼, 당신이 날 위해 실습을 경험하는 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당장 시작하죠. 실습합시다."

난 용의 꼬리만을 바라보며 쫄래쫄래 '마물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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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첫 만남은 강제적이었다.

겁에 질린 채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실습, 그 기간은 자의적인 이유로 길어졌고 그 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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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이야기는 용과 사람과 마물의, 나아가 합쳐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 마츄 #

마물원.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다.

왜 난 '마물원'이란 단어에서 동물원을 연상한 걸까?

천만 원이라는 봉급에 혹해서? 당장 맛있는 한 끼를 사 먹을 돈이 없는 백수라서?

기껏해야 사료나 주고 똥이나 치우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용을 따라간 곳은 동물 우리였다.

이곳은 원래 오래된 동물원이었다. 폐쇄된 허름하고 낙후된 시설인 것이다.

동물 우리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마물들을 가두려면 적어도 초합금 철망이나 마법적인 효과를 지닌 물건들이 필요할 텐데 겨우 이딴 녹슨 쇠창살이라니!

용은 우리 안으로 들어갔지만 난 쭈뼛거리며 입구에서 멈춰 섰다.

겉모습은 '빈 우리' 인 것 같으나, 혹시 모르지.

용은 겁에 질린 채 머뭇거리는 날 향해 말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보세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용은 흙이 쌓인 빈 우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며 걱정 말라는 듯 손짓했다.

난 소리 지르며 '우리 안에 용이 있잖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사리 분별은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꾹 참으며 우리 안으로 발을 내밀었다.

낡은 창살과 썩은 낙엽이 뒤섞여 오래된 흙이 쌓인 빈 우리엔 마물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으나,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실습은...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내 물음에 용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제 마물원은 특별하답니다!"

그 순간, 땅이 꺼졌다.

당황하며 발버둥 치다가 그만 용의 꼬리를 꽉 쥐게 되었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라 정신이 없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아아아악! 악...?"

분명 땅이 꺼졌어.

두 발을 딛고 있던 땅이 사라졌고 주변이 어두컴컴해지며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 다시 느껴지는 반가운 땅의 감촉과 손에서 느껴지는 용의 비늘의 차가운 느낌에 내가 살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만 놓아주시겠어요?"

용의 말에 꼬리를 놓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방금 전까지 동물원의 빈 우리에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어두컴컴해 이곳이 어딘 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하는 내게 용이 말했다.

"말했죠? 특별하다고. 이제 시작이에요."

그녀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문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걸 열었고 그 순간 주변에 가득하던 어둠이 물러가며 '새로운 세계' 가 펼쳐졌다.

숨이 턱 막혀왔다.

경이적인 광경, 그랜드캐니언과 이구아수 폭포를 마주한 사람들은 압도적인 자연에 집어삼켜져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펼쳐진 세계는 좁은 동물원 우리에서 시작되었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넓고 아름다웠고 경이적이었으며 믿기지 않았고 굉장했으며 환상적이었다.

드넓은 평야와 공중에 치솟은 '섬', 그곳에서 뿌연 물보라를 만들어내며 콸콸 떨어지고 있는 '폭포', 꿈처럼 놀라운 광경이었으나 차갑고 기분 좋은 공기가 내 앞에 펼쳐진 환상이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와아!"

말이 나오지 않아 감탄사로 용에게 물었다.

용은 '용' 케도 알아듣곤 대답해줬다.

"설마 허접한 창살 우리에 갇힌 마물들을 생각하셨어요? 이곳, 나의 마물원은 그들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요. 가장 넓은 우리는 아프리카 땅덩어리보다 더 크죠."

스케일이다.

스케일이 다르다.

고수익 직장은 분명 함정이 있다고 취준생 모임에서 그랬었지.

난 심술이라고 생각했다. 사람하는 일이 다 그렇고 그렇지, 돈을 많이 버는 데 뭐가 중요할까.

하지만 문득 이 경이적인 광경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될 직원이며 하는 일이 '마물 관리 및 마물원 관리' 임을 떠올렸을 때 더 이상 이 환상적인 곳은 멋지게 다가오지 않았다.

난 용의 눈치를 봤다.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날 죽이려나?

이런 곳에서 죽게 되면 시체 수습은... 아니, 대낮에 번화가에서 용이 날 죽인다고 해도 그녀에게 무어라 할 사람은 없겠지.

우선 오늘 하루는 약속대로 실습은 이행하기로 했다.

오랜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첫 취업한 직장생활은 고되다 못해 목숨까지 걱정해야 하다니.

이런저런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내게 용이 무언가를 건넸다.

얇은 책이었다.

"매뉴얼은 꼭 숙지하세요. 그들을 대하는 방법만 안다면, 잡혀먹힐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호호호."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불평은 꾹 담고 그녀가 준 매뉴얼을 재빨리 펼쳐봤다.

매뉴얼엔 다양한 마물들의 생김새와, 특징, 서식지, 먹이 등이 적혀 있었다.

동물 백과사전처럼 말이다.

"처음이시니까, 쉬운 녀석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앞으로 다정 씨가 도맡게 될 녀석이에요."

평야로 걸어가는 용을 뒤따라 쫄래쫄래 걸어갔다.

용은 드넓은 잔디밭에 서서 독특한, 마치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

그 순간, 풀밭이 들썩거리며 알록달록한 무언가들이 우르르 나타나 그녀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가장 관리하기 쉬운 초급 마물인 '마츄'. 다정님도 아시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마츄' 는 지구에서도 상용화를 시도하는 애완동물이었다.

그만큼 마물답지 않게 순하고 얌전했으며 무엇보다 해가 되지 않았다.

난 매뉴얼을 읽었다. 마츄에 대한 내용은 첫 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마츄]

크기: 몸길이 10~20cm 어깨 높이 30cm 꼬리길이 90cm 몸무게 6kg

서식장소 : 축축한 평야지대

먹이: 들풀

순하고 얌전하여 관리하기 쉬운 마물.

특징으론 복슬복슬하게 난 털이 아주 부드럽다.

관람객들에게 인기 절정일 거라고 예상 중.

문제는 겁이 많아 외부인이 오면 풀숲에 몸을 숨긴다.

녀석들의 겁만 해결한다면 마물원의 마스코트가 될 것 같다.

관리 난이도 : ☆ [가만히 놔두면 되는 수준이다.]

매뉴얼의 내용은 용이 직접 쓴 듯했다.

마츄는 토끼와 닮아있었으나 토끼처럼 길쭉한 몸이 아니라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마치 털구슬이 굴러다니는 것 같다.

꼬리는 몸길이보다 족히 세 배는 더 길었는데, 우아하게 흔들리는 꼬리는 녀석들의 귀여움을 더 이끌어내고 있었다.

겁이 많은 마츄들은 용에게는 살갑게 꼬리를 흔들며 몰려들었다가 내가 다가가자 우왕좌왕하며 풀숲으로 도망쳤다. 내가 멀찌감치 떨어지자, 다시 우르르 몰려나와 용에게 털을 부비적대는 녀석들이다.

"어때요? 귀엽지 않나요?"

용은 큼지막한 손으로 조심스레 마츄 한 마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손 내밀어 보실래요?"

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진 않을 거예요."

"왜요?"

그녀의 되물음에 아차 싶었다.

감히 용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난 변명이라도 하듯 재빨리 대답했다.

"녀석이 경계하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손 내밀 테니까요. 자자!"

"경계...? 이 얌전한 아이가?"

그녀의 손바닥에 얌전히 앉아있는 마츄는 복슬복슬한 털북숭이에 지나지 않았다.

겉모습으로 본다면 그 어떤 경계심도 느껴지지 않는, 태연스러운 몸짓이었다.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듯이 그런 경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날 무서워하며 겁먹고 있었다.

난 녀석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했다.

내가 가진 능력 덕이겠지.

세상에나, [교감] 능력이 마물에게도 통한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교감으로 마츄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용은 내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게 [교감] 능력이라는 건가요? 대단하네요. 좋아요. 합격! 앞으로 당분간 [마츄] 들을 맡아주세요."

결정의 시기가 왔다.

아니, 결단의 시기다.

난 휘둘려져선 안된다. 앞으로의 인생이 달려있다.

결코 당장 겁에 질려 덥석 고개를 끄덕이면 안 돼.

거절의 뜻을 밝혀야 돼. 용기를 내서!

"죄송하지만 제 적성이 아닌..."

"다정님의 능력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것저것 할 게 많으니 한 달치 월급은 선수금으로 지급해드릴게요. 그리고 수습 기간이 끝나면 월 2천으로 인상, 어때요?"

"좋아요."

난 우유부단한 성격은 아니었다.

돈만 관련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월 2천.

내가 최고로 많이 벌어본 돈이 헌터 시다바리 노릇을 하며 한 달동안 뼈 빠지게 일해 간신히 번 돈 '300' 만 원이었으니까, 비교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하는 일도 당장은 어럽지 않아 보였다.

이 털복숭이들을 관리하는 것 정도야 쉽지.

물론 매뉴얼의 페이지를 한참 넘기다 보니 뒷장엔 마츄와 비교할 수 없이 끔찍한 마물들이 적혀있었지만 용이자 상사이자 마물원의 원장께선 아직 내게 그런 위험한 임무는 맡길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다. 첫 월급을 탈 때까지만이라도 일을 하는 건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그녀로부터 난 마물원 [ID 카드]를 지급받았다.

이것만 있다면, 마물원의 어느 곳이던 갈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혹시라도 실수해서 '관리 난이도 별 세 개' 이상의 우리에 들어간다면 뒷일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츄 우리에서 나온 난 또다시 땅이 꺼지는 느낌과 주변이 어두컴컴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문을 열자 녹슨 쇠창살 우리였다. 신비한 시스템이었다. '마법의 달인' 인 용들만이 할 수 있는 재주겠지.

하,

일단 직원이 됐으니, 상사하고는 친하게 지내는 게 이득이겠지.

비록 용이라도 그녀는 상식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좋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난 그녀에게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다.

"혹시 다른 직원은 없나요?"

새로 개장한 마물원이었으나

매뉴얼에 적힌 마물의 수만 해도 상당히 많았다.

이만한 크기의 시설을 관리하려면 그녀와 나, 둘 만으론 부족할 텐데.

"다정 씨가 마물원의 첫 직원이랍니다. 다른 직원을 뽑을 계획은 아직까진 없어요.

마물원은 보시다시피, 무척 힘든 직업이니까요. '제가 만족할만한' 인재들을 구할 생각이에요."

그녀의 말을 나 좋을 대로 생각한다면 난 용에게 인정받은 남자라는 뜻인가.

,,,그럴 리는 없겠지.

"먼저 돌아가세요. 전 들릴 우리가 한 군데 더 있어서."

괜히 자신감에 차있던 난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마물도 한 번 보고 싶은데요? 같이 가죠!"

"죽고 싶으세요?"

"아니요.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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