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감 #
아침이다.
출근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난 멍하니 침대에 누워 전날을 생각했다.
용과 마물과 '천만 원'.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은 첫 출근의 설렘, 긴장감 따위는 아닐 것이다.
세상이 바뀐 후 헌터, 교섭꾼처럼 이상한 직업들이 생겨났다지만 마물들을 관리하는 사육사라니... 곰곰이 생각하면 맹수 사육사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직업이 아닐까?
"콜록-콜록- 카악 퉤!"
난 어제 먹다 남은 콜라병에 가래침을 뱉었다.
1.5 L 페트병의 바닥엔 한 모금 콜라가 남아있었지만 탄산 빠진 식은 콜라다.
"월급 받으면 이사부터 가야지."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데 아침마다 목에 고이는 가래는 내가 사는 '곳' 때문이었다. 집이라 부르기에도 난감한 곳이다. 냉장고가 없어 차가운 콜라도 마시지 못하며 창문도 열 수 없었다. 바로 옆엔 지독한 매연을 뿜는 마물 도축공장이 있었으니까.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은 환경 보호단체에게 격렬한 항의를 받는, 이전에 지구에서 발생하는 공장 매연과 격을 달리하는 해로운 물질이다.
이곳에서 산 지 반 년.
창문을 닫고 생활해도, 흘러들어온 약간의 매연만으로 기관지가 무척이나 상해버렸다.
게다가 곧 다가올 여름에 찜통과 다름없어질 집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소름이 끼친다.
침대에 일어나 생수 세 병을 집어 든 후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는 엄두도 못내, 머리를 감는 것으로 만족했다.
난 녹물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를 한번 바라본 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사 가자."
선수금으로 그동안 쌓인 빚은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달을 마물원에서 일하면 '천만 원'.
그 돈이면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원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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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원의 관리소에서 용을 기다렸으나 관리소의 문을 연건 여자였다.
난 멀뚱멀뚱 그녀를 바라봤다.
빨간 입술과 하얀 피부. 늘씬한 큰 키와 달라붙은 원피스를 자신 있게 입을 만큼 세련되고 굴곡 있는 몸매. 정열적인 붉은 머리카락.
그녀는 꽃으로 비유하자면 장미였고 보석으로 비유하자면 루비였으며 케이크로 비유하면 레드벨벳이었다.
그녀가 용임을 모르진 않았다.
용들은 신비한 종족이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들었었다.
내가 놀란 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었다. 미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인 것이다.
"안녕하세요. 다정씨."
미녀가 내게 인사를 한다.
"아, 안녕하세요."
험악한 뿔과 커다란 날개, 비늘, 섬뜩한 동공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모습인가.
전날에도 진작에 저런 모습으로 대해줬다면 무서워하진 않았을 텐데.
그녀는 내 시선에 담긴 생각을 느꼈는지 빨간 머리카락을 메 만지며 말했다.
"이제 곧 마물원이 개장하면 관람객을 받을 텐데, 용의 모습으로 있을 순 없잖아요?"
난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에게 있어 시각적인 것은 아주 중요하다.
비록 그녀가 속은 용일지라도, 지금처럼 인간의 모습이라면 대할 때 무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그녀가 아름다운 미녀가 아니라 배불뚝이 아저씨라도 '용' 의 모습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저랑 계실 때도 그 모습을 유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속이 편안해지는데요."
내 말에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전날에도 '용의 모습'으로 자주 웃었지만, 그땐 섬뜩하기만 했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니 봄날,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이 산뜻했다.
"왜요? 이뻐서 그래요?"
아뇨. 원래 당신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건데요.
"아... 네."
속내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사람의 모습일지라도, 속은 용이라는 걸 잊어먹지 않았다.
난 사무실에서 책상에 앉아 매뉴얼을 뒤적거리며 틈틈이 그녀를 훔쳐봤다.
'어디선가...'
예쁜 여자를 계속 보고 싶은 건 당연한 본능이겠으나 그런 하찮은 이유가 아니었다.
쓰읍, 그녀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어디선가 본듯했다.
일평생 용과 엮일 일 없이 살아온 내가 그녀를 아는 건 말이 안 됐지만 분명 깊숙한 기억엔 어렴풋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호기심 많은 아이인 난 한참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에 열중하던 용에게 물어봤다.
"우리 어디에서 본 적이 있던가요?"
"왜 그래요? 어제 만났잖아요."
"아니, 그전에..."
"없어요."
"정말요?"
"망각을 하지 않는 용의 기억에 맹세코, 없어요."
"네..."
이상하다.
분명 본 적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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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츄 우리는 나 홀로 관리하게 되었다.
그곳의 입구에서 용은 내게 '봉' 을 건넸다.
얼떨결에 받아든 난 묵직한 철봉의 무게를 느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걸 왜...?"
"한 번 휘둘러보시겠어요?"
그녀의 말에 의아함을 느끼며 대수롭지 않게 철봉을 휘둘렀다.
콰앙-!
위에서 아래로, 무게에 이끌려 대충 간결하게 휘둘렀을 뿐이다.
난 절대 '헌터' 들처럼 특별한 능력을 지니거나, 괴물 같은 육체를 지니지 않았다.
있는 능력이라곤 [교감]이라는, 땅을 움푹 파이게 만드는 데 있어서 전혀 쓸모없는 능력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철봉으로 만든 구덩이는, 내 능력이 아니라 봉에 깃든 힘이라는 뜻이겠지.
"마물을 관리하는 데 필요할 거예요."
용에게서 지급받은 봉은 투박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대단한 힘을 지닌 것 같았다.
대충 휘둘러도 구덩이를 만들 정돈데, 전력으로 휘두르면 무척이나... 아프겠지.
난 마물을 관리하는 데 필요할 거라는 그녀의 말에 문득 내 미래의 모습을 훔쳐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흉악한 마물을 상대로 철봉을 휘두르는 한 남자.
'봉급 천만 원... 아니, 이 천만 원.'
철봉을 꽉 쥐며 다짐했다.
돈만이 날 위로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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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떠올라있는 공중섬, 그 섬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때문에 평야는 언제나 축축했고, 들풀은 사람 허리만큼이나 자라있었다.
난 홀로 평야에 서있었다.
그녀의 지시대로 마츄들을 관리하러 왔는데 무얼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첫 개장' 전까지 마츄들이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들썩거리는 풀숲,
마츄들은 모습을 숨기고 나와 거리를 유지한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자!"
내가 한 일은 '말을 거는 것' 이었다.
[교감] 능력은 내가 동물들의 감정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교감, 쌍방 간의 감정 교류를 할 수 있게 만든다.
내가 그들을 감정을 느낄 수 있듯이 내 감정을 그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숨기지 않고 표출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학교 담벼락에 검은 고양이와 냥냥-냥냥 냥냥- 거리며 대화를 나눴던 그 모습을 들켜 한동안 '렉사르'라는 별명을 얻은 이후로 동물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본 건 처음이었다. 이 공간에 나 홀로 있는 게 다행이었다.
누가 보면 확실히 미쳤다고 할 만하다.
질척한 진흙에 옷이 더럽혀지는 걸 감수하며 몸을 엎드린 채 풀숲을 돌아다니며 '츄츄-!' 거리는 모습은 말이다.
처음엔 그들의 경계를 허물 수 없었다.
내가 다가가자 마츄들은 우르르 도망갔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속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어' 라는 감정을 담은 채 목이 쉴 때까지 츄츄- 거리며 들판을 돌아다니자 어느 순간부터 녀석들이 도망가지 않게 되었다.
첫날에 용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주위로 몰려드는 녀석들은 호기심 많은 눈을 끔뻑이다 내 머리와 어깨 위로 깡충 올라왔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털들은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너희들은 참 겁 많은 아이들이구나."
이런 녀석들에게 '마물'이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아.
교감 능력은 동물의 감정을 느낀다.
그 느낌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다. 하지만 동물들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고양이들은 '겁 많고 자존심 센 남자 꼬마 아이' 같았고 개들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마츄들에게 느낀 감정을 표현하자면 이들은 '겁쟁이'였다.
뾰족한 송곳니도, 날카로운 발톱도, 무서운 독도 없는 마츄들은 토끼처럼 재빠르지도 않았고, 느릿느릿해서 행동도 굼떴다.
먹이사슬의 최하위.
들풀만을 뜯어먹고 사는 마츄들은 방어기제가 전혀 없었다.
때문에 겁쟁이가 되었겠지.
계속해서 녀석들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내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마츄들이 먼저 다가와 털을 비비적거렸다.
손목시계의 큰 바늘은 벌써 점심시간을 지나쳐 '5'에 가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무려 반나절.
마츄들과 친구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내가 마츄들과 친해짐으로 그들이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며칠 동안 지내다 보면, 방법이 생길 거라고 확신했다.
"내일 다시 올게!"
마츄들과의 교감은 특별한 경험이었고 기분 좋은 교류였으나 '퇴근' 은 말릴 수 없었다.
난 마츄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치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지는 질척이는 진흙 평야를 힘겹게 걸으며 '입구'로 향했다.
마츄들의 둥지는 공중섬에서 흐르는 폭포로 항상 축축했다.
들풀은 허리까지 자라 시야를 가렸고 질척이는 땅은 늪과 다름없다.
마츄들의 털이 어떻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지는 몰라도 이곳은 분명 평범한 사람에겐 위험한 곳이다.
가령, 날 잡아먹는 늪처럼.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라, 점점 빠지는 다리를 상관치 않으며 오로지 입구만을 향해 걸었고, 때문에 마치 땅이 꺼지듯 깊은 늪에 다리를 헛디뎌 허리까지 빨려 들어갔어도 금방 눈치채지 못했다.
죽는다는 것.
발버둥 칠 때마다 늪은 날 점점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제야 가슴이 덜컥거리며, 뱃속으로부터 차가운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겁' 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원장님!"
바지춤에 넣어놨던 휴대폰은 쓸 수가 없었다.
날 구해줄 수 있는 건 그녀, 난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마물원의 우리임과 동시에, 전혀 새로운 곳인 마츄들의 우리에선 내가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듣는 사람은 없었다.
허우적거릴 때마다 마치 손과 발, 몸통을 밧줄로 꽉 묶은 듯한 압박이 느껴졌다.
질기고 단단하며 축축한 진흙은 날 꽉 문 채 놓아주지를 않았다.
젠장.
떨리는 가슴과 허덕이는 숨, 간신히 진정시키며, 서바이벌 지식을 생각했다.
몸을 눕히면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몰라.
베어 그릴스 형, 도와줘.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등을 뒤로 젖혀도 진흙은 날 빨아들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문득 깨달았다.
졸졸졸- '이곳'으로 몰려드는 물줄기.
저 공중섬에서 흐르는 폭포.
젠장, 평범한 늪이 아니야.
가슴팍까지 차오른 늪.
결코 오늘 아침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죽음의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필사적으로 도움을 외치는 것.
하지만 알았다.
날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사람은...
츄-!
아득해지는 정신을 깨운 건 마츄의 울음소리였다.
난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녀석의 꼬리를 붙잡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건 사람도, 용도 아니었다.
마물인 마츄는 내 주변으로 몰려와 저마다 꼬리를 내게 내밀었다.
한 마리의 힘으론 날 늪에서 벗어나게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수십 마리의 꼬리를 양손으로 꽉 쥐고 마츄들이 있는 힘을 다해 끌어올리자 몸이 들썩이는 느낌이 들었다.
....
젠장.
하지만 그뿐이었다.
몸은 들썩거렸으나, 진흙 무덤에 삼켜진 날 끌어내기엔 마츄들과 내 힘은 너무나 약했다.
오히려 내 힘에 마츄들마저 끌려오고 있었다.
난 입술을 깨물고, 곧 다가올 미칠 것 같은 압박감과 패쇄감, 숨구멍이 막히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며 녀석들의 꼬리를 놓으려고 했었다.
아-!
짧은 탄성.
순간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내 몸은 어느새 늪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난 내 몸에 복슬복슬하게 묻어있는 털들을 바라봤다.
마츄의 하얀 털은 진흙에도 전혀 때묻지 않았다.
신비한 '마법 같은' 힘.
녀석들도 '마물' 이었다.
섭리를 벗어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날 구하게 되었다.
"고마워."
마츄들을 꾹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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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죽을뻔한 상황을 듣곤 마츄 우리에서 그런 일이 발생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비상 벨' 을 지급했다.
죽음의 순간이 너무 생생해서 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비상벨과 함께 지급된 '위험 수당금' 이 내 발을 붙잡았다.
...산업 재해는 어디에도 있잖아. 헌터 시다바리나 공장을 다닐 때도 있었지.
난 내 부주의를 억지로 탓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진흙이 굳어 엉망이 된 몸 샤워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다 놓은 생수를 모두 사용해 샤워를 했다.
구정물과 함께 마츄들의 털이 화장실의 바닥을 더럽힌다.
털 뭉치는 무척이나 많았다.
마츄들과 엉키며 '묻어 나온' 털들 치고는 상당히 많은 털이었다. 심지어 가랑이 사이에서도 묻어 나와 이상함을 느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