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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4화 (4/258)

# 젖꼭지 #

출산.

다큐멘터리에서 가끔씩 나오는 '그것'.

동물의 출산이든, 사람의 출산이든 생명을 낳는 행위는 신비하고 경이롭다.

하지만 난 TV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출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리모컨의 체널변경 버튼을 눌렀었다. 분명 생명의 탄생은 신비하고 경이롭고, 결코 무서운 게 아니지만 보기엔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출산의 장면을 보며 인상이 찌푸려지는 내가 세속적이며 냉정한 게 아니었다.

피와 양수, 고통스러운 산모의 비명과 아직 마르지 않은 피부의 '새 생명' 은 보기만 해도 위태로워 보여 현기증을 유발할 정도다.

난 그게 싫었을 뿐이다.

하물며 마물의 출산이다.

난 용의 말에 백만 원마저 포기하고 강하게 부정하며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정씨에게 무언갈 부탁드리는 건 아니에요. 마물의 출산은 대단히 조심스러워서 우린 모습을 감추고 그저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 거예요. 그러나 다정 씨의 [교감] 능력이라면 지구라는 낯선 환경에서 첫 출산을 하는 그녀에게 힘이 될 수도 있겠죠."

당연하게도 용은 내가 산파 도우미처럼 출산을 직접 도와주라고 하진 않았다.

고민된다. 단순히 출산의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백만 원.

...

곧 장마철이다.

지붕엔 비가 샐 테고, 물난리가 난 집을 피해 지낼 곳을 구해야 되겠지.

"위험하진 않겠죠?"

용은 웃으며 대답했다.

"용은 욕심이 많은 존재라는 거 아시나요?"

의미를 모르겠다.

멍청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괜히 백만 원을 드리겠어요? 호호."

돌려 말했으나 충분히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뒷걸음질 쳤으나 그녀는 내 팔을 잡아끌곤 특별히 마련된 마물의 출산장으로 이끌었다.

"에이, 걱정 말아요. 제가 설마 다정씨를 죽게 만들겠어요?"

아니, 이미 죽음에 대해서 논하는 것 자체가 불길하잖아.

입술을 깨물었으나 단호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에, 이미 거부하기엔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

마물이 지구의 생태계에 한 부분이 된지 어느덧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나 아직까지도 마물이 어떻게 '번식' 하고 '출산' 하는지 사람들은 알 지 못했다. 슬라임처럼 스스로 분열하여 자신을 '복제' 하는 번식의 규격을 아득히 뛰어넘은 마물들도 있었고 자웅동체는 일반적이며 규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번식하는 마물들도 많았다.

비밀에 쌓인 마물의 번식.

욕심 많은 사람들은 가치가 뛰어난 마물을 '양식' 하려고 시도했으나 막대한 설비와 자본이 투입되어도 성공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다. 어쩌면 마물의 출산을 보는 인간은 내가 최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방호복' 을 꼼꼼히 챙겨 입고 출산장으로 들어갔다.

손목에 찬 '온도계' 엔 화씨 30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쿠키가 구워질 정도의 온도다. 오븐 속에 들어온 것과 다름없었으나 용이 특별 제작한 방호복 덕분에 쿰쿰한 냄새만 맡을 뿐, 다행히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물은 이런 곳에서 출산을 하나요?"

느적느적한 발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

방호복 때문에 거추장스러웠다. 그에 비에 용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멀쩡히 사복을 입은 채였다. 용이라서 이해는 가는데, 대체 저 옷의 재질은 뭐길래 이런 열기 속에서도 멀쩡하게 버티는 거야?

내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샐러맨더의 출산 환경과 최대한 맞춘 곳이에요. 우리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녀의 고향과 똑같이 만들어주는 것뿐, 남은 건 오로지 그녀의 의지겠죠."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씁쓸한 듯, 안타까운 듯했다.

뒤뚱거리며 힘겹게 걷다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유리벽으로 '출산장' 을 관찰할 수 있는 방이었다. 긴장하며 다가가 유리 벽 너머를 바라보니, 그곳엔 무척이나 거대한 도마뱀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며 쓰러져 있었다.

'많이 아파 보여.'

산통에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도마뱀의 숨결은 불이 되고, 땀은 기름이라 방 안은 활활 불타는 불로 가득했다.

난 이곳에 오기 전 숙지했던 마물에 대해서 생각했다.

저 마물의 명칭은 '샐러맨더'

[샐러맨더]

크기 몸길이 3~12M 몸무게 1600~2400kg

서식장소 : 용암지대

먹이: 부패한 고기

뜨거운 마그마를 마치 물처럼 헤엄치는 도마뱀.

불을 내뿜는 샐러맨더는 지구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으므로 태평양의 몇몇 화산섬에서만 발견되었다. 하지만 샐러맨더의 가죽이 뛰어난 방열재료임이 밝혀지자 지금은 헌터들에 의해 지구에서 멸종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내뿜는 겉모습 때문에 성격이 포악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교적 순한 성격으로 머리를 만져주는 걸 좋아한다.

사는 환경이 환경인 만큼 인간들에게 샐러맨더를 보여주는 건 포기해야 될 것 같다.

관리 난이도 :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며, 주의가 필요하다.]

지구에선 이미 멸종한 마물이었다.

유리 벽 너머의 녀석은 불을 내뿜는 흉측한 도마뱀이었으나 고통스러워하는 감정이 [교감] 능력으로 인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며 안타까움이 들었다.

젠장.

"시작되었어요."

샐러맨더에게서 고통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더한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걱정과 슬픔, 사랑이었다.

어미의 모성은 마물이라고 달라질 것 없었다.

샐러맨더는 제 고통보다도 새끼를 향한 마음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생김새는 파충류였으나 녀석은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았다.

아니, 애초에 마물에게 지구의 생물의 잣대를 갖다 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샐러맨더를 바라봤다.

젠장, 유독 [교감] 능력이 심하게 발휘되는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끄에-!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던 샐러맨더는 문득 순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녀석과 난 첫 만남이었으나, 동시에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마물의 출산은 솔직히 말해 끔찍하고 징그러웠다.

녀석의 양수가 터지며 서서히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새끼 도마뱀의 모습은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역겨웠다.

"... 힘내."

하지만 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아니, 돌리지 못했다.

감정은 더욱 격해졌고, 내 목소리는 녀석의 비명만큼 점점 커져갔다.

"힘내라고! 조금 더! 할 수 있어. 젠장!"

"다정 씨?"

용이 의아한 목소리로 날 불렀으나 대답조차 할 수 없이 격류에 휩쓸린 감정은 오로지 나와 샐러맨더, 그리고 새끼만을 바라보게 했다. 고통은 나도 느꼈고, 사랑 또한 나도 느꼈다.

교감 능력은 격렬한 감정에 의해 더욱더 활성화되어 마치 내가 '그녀'가 된 듯했고 '그녀' 또한 내 존재를 느끼며, 기댈 곳 없는 낯선 세계에 처음 만난 날 향해 애처로운 시선으로 날 향해 지친 마음을 기대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역겹고 징그러운 새 생명의 탄생의 모습은 이젠 새끼에게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어미의 마음으로 간절함만이 보일뿐이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터질 것 같은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보는 것만으론 꺼림칙하기만 하던 출산은 이제 숭고하게 느낄 만큼 깊게 다가왔다.

그녀와 동화되며 난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말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희망을 속삭이는 것밖에 없었다.

간절하게.

마침내 새 생명이 온전하게 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녀석은 숨을 쉬지 않았다. [교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난 지쳐 쓰러진 어미 대신에 새끼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면 안 돼."

새 생명이 허무하게 저물지 않도록, 어미의 그루밍 대신에 끝없이 녀석에게 살아있길 부추기는 나였다.

끄앙-!

"다정 씨! 새끼가! 어머?"

새끼 샐러맨더는 마침내 '불' 을 토해냈고 난 그게 녀석이 '나 살아있어!'라며 온 세상에 표출하는 행동임을 알아챘다. 너무 기뻐 얼떨결에 용을 끌어안았지만 자비롭게도 그녀는 날 때리지 않았다.

용을 포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난 촉촉해진 눈이 간지로웠으나 방호복 때문에 긁을 수 없었다. 콧물과 눈물, 젠장. 나가면 샤워부터 해야지.

힘차게 우는 샐러맨더의 새끼를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독이는 것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보람이라는 건가.

괜찮은 느낌이다.

난 새끼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출산을 겪은, 힘든 일을 대견하게 치러낸 어미 샐러맨더에게 힘냈다고 격려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지쳐 쓰러진 녀석에겐 [교감] 이 되지 않았다.

"너... 야. 일어나 봐. 네 새끼가 울고 있잖아."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아.

느껴지지 않아.

지쳐 쓰러진 녀석은 움직임에 미동조차 없었다.

용은 재빨리 출산실로 들어가 치유 마법을 시전했으나 이미 늦었다는 걸 난 알았다.

하지만 죽었다는 걸 알아도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용은 본체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샐러맨더를 껴안으며 마법을 펼쳤으나 결국, 산모는 되살아나지 못했다.

출산실엔 우렁찬 새끼의 울음만 들려왔다.

용은 내게 다가와 손에 어깨를 얹었다.

따듯한 기운이 전해져왔다. 이것도 '마법' 인가.

하지만 고개를 들어 차마 그녀를 쳐다볼 순 없었다.

이게 무어라고.

젠장, 창피해서였다.

방호벽 안의 흘러내린 눈물은 바깥의 열기에도 마르지 않았다.

"제 마법으로 최대한 환경을 맞추어도, 결국 지구는 그들이 원래 살던 곳과 다른 곳. 힘에 겨웠겠죠. 대부분의 샐러맨더는 그 사실을 알기에 새끼를 가져도 스스로 유산시켜요. 하지만 그녀는... 모성이 유난히 강했었죠. 다정씨. 새끼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대단한 일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새끼를 세상에 남길 수 있었던 건 단언컨대 다정 씨 덕분이에요."

샐러맨더의 새끼.

난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남은 새끼를 바라봤다.

우렁차게 울던 울음도 이젠 지쳤는지, 조용했지만 새끼는 건강했다.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죠?"

"무리가 새끼를 받아들인다면 괜찮겠지만... 아니라면 죽고 말겠죠."

"그런... 저 어린 나이에 무리에게 버림을 받으면 슬프잖아요. 우리가 키우면 안 되는 건가요?"

"용인 저조차, 샐러맨더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자라나는지 알 수 없어요. 그리고 샐러맨더가 인간의 손에 자라나고 한들, 결국엔 외롭게 홀로 지낼 거예요."

"그렇다고 죽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난 어릴 적부터 감이 좋았다.

특히, 불길한 감은 대단히 잘 맞췄다.

"내가 키우겠습니다."

샐러맨더의 새끼는 결국 무리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버림받은 새끼는 내 품에 안겼다.

멍청한 책임감.

젠장, 새끼를 죽게 내버려 둘 거면 [교감] 을 나누지도 않았다.

##

샐러맨더의 새끼는 성체와 다르게 따듯한 난로 수준이라 방호복이 없어도 만지는 데 무리가 없었다. 녀석은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어미의 뱃속에서 세상에 나온 지 이틀, 가장 큰 문제점은 '먹이'였다.

성체 샐러맨더는 썩은 고기를 먹지만 새끼는 달랐다.

그렇다고 강아지 새끼처럼 우유를 먹지도 않았다.

'아사 직전이야.'

교감 능력은 녀석이 간절히 원하는 걸 느끼게 해줬다.

이 작은 생물은, 안타깝게도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용의 말대로 샐러맨더들이 새끼를 가지지 않아 젖이 나오는 암컷도 없었다.

녀석은 내 품에서 애처롭게 울었다.

그리곤 아직 뜨지도 못한 눈으로, 마치 젖을 찾듯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내 몸을 발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나오지 않는 젖에 대한 갈망, 젠장.

젖이 나올 리가 있나. 난 수컷인데.

그리고 나온다고 해도 인간의 모유다. 녀석이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용은 동분서주하며 '새끼를 밴 암컷 샐러맨더'를 찾아다녔지만 희귀동물 따위를 찾는 수준이 아니었다. 용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렇게 녀석의 생명이, 아른거리는 촛불처럼 약해졌을 때였다.

녀석은 힘겨운 몸짓으로 내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차라리 젖이라도 나왔으면 좋으련만."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가슴에서 욱신거리는 느낌이 났고 당황하며 내 가슴에 매달린 새끼 샐러맨더를 쳐다봤다.

당연히 젖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에서 '새빨간'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어머. 세상에 나 가슴으로 불 뿜고 있어.'

새끼 샐러맨더는 불을 먹었다.

아마도, 어미가 내뿜는 불이 새끼에겐 어떤 특별한 작용을 하는듯싶었다.

뜻밖의 사실을 알았으나 그보다 더한 현실을 맞닥뜨렸다.

난 암컷 샐러맨더도 아니고,

샐러맨더도 아니고,

마물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인간인데,

왜 지랄 맞게 불을 내뿜고 있는 거지?

난 주위를 둘러봤다.

관리실엔 나와 새끼 샐러맨더만 있었다.

너무 황당하여, 혹시나 '꿀잼 몰카' 임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춤추는 아저씨는 등장하지 않았다.

진짠가? 이거?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끼 샐러맨더는 여전히 내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불꽃을 먹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불꽃이 발산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알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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