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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5화 (5/258)

# 젖동냥 #

원장님이 오자마자 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저 젖 나와요!"

"어머! ... 축하해요?"

한참 젖을 빨리고 난 후 기진맥진하던 나였다. 그러나 빨리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젖꼭지로 불을 내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관리실의 문을 열던 용은 내 말이 적잖이 황당했는지 문고리를 잡은 채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의 시선이 내 가슴으로 향하지만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다급하게 말해보지만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젖 나온다는 말이 일종의 유머라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축하해준다. 하지만 이건 농담 따위가 아니다.

남자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불꽃 모유를 내뿜는 건 대단히 위급한 일이었으므로 난 창피함은 둘째치고 확실한 증거를 보이기 위해 셔츠를 벗었다.

그리곤 친절하게 젖꼭지를 가리키며 외쳤다.

"보세요! 젖이 나온다니까요!"

아직까지 시뻘건 불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그 모습을 본 원장님은 구긴 눈썹을 추켜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흥미로워하는 그녀가 내 젖꼭지로 다가올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

문득 그녀도 '용'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용에게 말한 건 실수일지도...'

지금까지 지내온 바로는 그녀는 용이긴 하지만 대화가 통하는 나쁘지 않은 상사였다.

돈도 많이 주고.

하지만 용은 본질적으로 아주 괴팍하다.

뉴욕에 사는 어떤 용은 호기심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골렘'으로 개조했다.

원장님도 용인 걸 상기해보면 내가 자유의 여신상처럼 '개조' 당할 수 있는 상황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젖을 계속 내뿜을 수는 없었고 유일하게 해결해줄 자가 그녀뿐이란 걸 알았다.

"확실히 대단하네요. 오호호, 만져봐도 되나요?"

"... 살살 만져주세요."

그녀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언뜻 야릇한 상황이었으나 내가 변태였어도 불을 내뿜는 젖꼭지를 가졌다면, 혹은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 섬뜩한 뱀 눈에 비늘을 가진 용이 젖꼭지를 만져준다면 감히 이상한 상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난 바들바들 떨며 그녀의 손놀림에 몸을 맡겼다.

"흐응, 이건 가슴에서 나오는 게 아니네요. 젖꼭지는 평범한 인간의 젖꼭지예요. 다만 불의 모유가 젖꼭지로 발산될 뿐이죠."

"제 젖꼭지는 무사한다는 말씀인가요?"

"샐러맨더들은 자신이 품은 불의 기운을 새끼에게 전달해요. 젖꼭지가 아니더라도 피부의 어떤 부위던 불의 모유를 흘러보낼 수 있죠. 아마 다정씨의 젖꼭지에서 불의 모유가 나오는 건 인간의 상식 때문일 거예요. 젖은 젖꼭지에서 나온다는 정립된 상식이죠. 굳이 젖꼭지가 아니더라도 다정씨는 불의 모유를 다른 부위로도 내뿜을 수 있을 거예요."

"아, 그거 다행이네요. 제 젖꼭지는 무사한 거네요?"

젠장, 젖꼭지든 뭐든 무슨 상관이야!

결국 불의 모유 라는 걸 총각의 몸으로 내뿜는다는 거잖아.

난 침착하게, 태연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

"근데 근본적인 건 해결이 안 됐는데요."

"다정씨가 샐러맨더의 특성을 가진 건 용의 지식으로도 엄청나게 독특한 일, 이런 건 저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대체 뭐가 당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을까요? 지구인들은 차원 전이의 중심에 있던 반동으로 지구엔 없던 능력이 생겨났다고 하죠. 당신의 교감능력은 설마 마물과 '동화' 될 만큼 강력한 걸까요?"

용은 혼잣말을 한 후 생각에 빠졌다.

가끔씩 이상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는데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다정씨는 제 생각보다 제게 더 소중한 존재일 수도 있겠네요. 좋아요. 저와 알아보도록 해요! 다정씨의 능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만약 다정씨가 제게 필요한 존재라면, 많은 걸 약속해드릴게요."

침만 꿀꺽 삼키고 있자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말 대수롭지 않아서, 마치 '커피 한잔할래?' 처럼 시답잖은 말투라서 난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못해도 인간들의 왕 정도는 시켜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리란 법도 없었다.

그래서 난 깊게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러던지, 젠장. 일단 젖꼭지가 우선이야.'

##

다행히 해결책은 있었다.

용은 내가 흘리는 모유에 대해서 일시적인 동화현상이라며 새끼 샐러맨더에게 젖을 줄 암컷 샐러맨더를 찾는다면 해결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물원의 샐러맨더들은 젖이 안 나오잖아요?"

"방법은 있어요. 새끼 샐러맨더가 무리에 어울리지 못한 이후로 찾아다녔거든요. 이미 샐러맨더들의 고향으로 갈 준비는 끝났어요."

샐러맨더의 고향?

지구에 그들이 서식하는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었다.

"태평양 어디의 화산섬이요?"

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보다 더 다른 '차원'까지 찾아본 모양이었다.

"그곳에서도 새끼를 밴 샐러맨더들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보다 더 깊은 곳으로 가야겠죠. 지구가 아닌 샐러맨더들의 고향으로."

그렇다.

정말 다른 차원.

지구가 온갖 차원에서 흘러들어온 존재들로 '잡탕찌개'가 되었지만 재료들의 '순수 원산지'는 따로 있었다. 지구인들의 고향이 지구이듯, 샐러맨더들의 세계도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차원을 이동하는 건 단순히 해외여행을 떠나는 수준이 아니다. 용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난 평범한 지구인으로서 절대 불가능하다. 소문으로도 차원이동에 성공했다는 지구인은 표면적으론 없었다. 혹시 모르지, 정부의 비밀 단체나 특급 헌터들이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난 흔한 지구인 중에 한 명이었다.

"혼자 가려고 했었지만 다정씨가 도와주시면 수월할 거예요."

"하지만 '차원이동'이라니, 그런...!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제 마력이라면 차원을 넘는 데 '인간' 한 마리쯤은 문제없을 거예요."

젠장, 젖꼭지의 해결 방법이 차원 이동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다는 거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다. 마물의 출산을 지구인 최초로 목격한 것에 이어서 이젠 차원 이동을 겪을 기회가 주어지다니, 한 달 전만 해도 가끔씩 치킨 시켜 먹는 게 특별한 일과였던 내겐 너무 스케일이 큰 일이었다.

참을 성 없는 용도 내 대답을 기다려줬다.

위험하겠지.

쉽사리 결정지을 문제가 아니야.

인생 설렁설렁 살며 그다지 큰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내가 그 사건 이후로 오랜만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끄응-!

젖을 먹고 잠든 샐러맨더가 뒤척거리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젖꼭지가 반응하며 따듯해졌다.

젠장, 정말 동화가 된 듯했다. 난 새끼의 어미가 출산할 때 산통을 겪는 녀석과 동화되어 아픔을 느꼈고 새끼를 낳을 때 모성애로 마음이 차올랐다.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인 샐러맨더지만 녀석은 내게 새끼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내가 자초한 거군.'

우는 샐러맨더에게 다가가 젖을 물리며 깨달았다.

녀석에게 먹일 모유를 원한 건 나였다.

지금도 배고픈 녀석을 달래는 게 젖꼭지에 불을 뿜어내는 걸 걱정하는 것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녀석을 징그러운 마물의 새끼라고만 생각했다면 젖꼭지에서 불을 뿜을 일도 없었겠지.

"역시 많이 아프겠죠?"

"어지러울 뿐이에요....아마도?"

"젠장, 갑시다."

난 샐러맨더를 품에 안고 용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마물원에 자리한 그녀의 비밀스러운 공간.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그곳은 마법에 문외한인 나라도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풍부한 무언가로 차있는 곳이었다.

긴장해있던 날 용이 부드럽게 안았다.

"걱정 말아요."

그녀는 바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

사람은 인생을 특별함으로 채우려고 한다.

다른 이들이 겪어보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꿈꾸는 것이다.

익스트림 스포츠, 위험한 오지의 여행.

'전이 이후' 론 마물 헌터, 초능력자 집단, 실체가 드러난 일루미나티.

하지만 난 그들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왜 사서 고생이야?

"꾸에에엑!"

그리고 지금의 난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되는 그들처럼 되었다.

자의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 특별함이 깃들어버린 것이다.

차원 이동이라니!

정말로 기이하고 신비로우며 웅장하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또한 개 같은 경험이다. 차원이동의 여파라는 걸 대부분 용이 막아준 모양이지만 소주 열 됫병을 마신 듯 울렁거리는 속과 독감에 걸린 것처럼 아픈 머리는 역겹도록 기분을 나쁘게 했다.

무언가 따근따근하고 까슬까슬한 바닥에 주저앉아 토를 하고 있자 용이 다가왔다.

그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붉은 비늘을 가진 용이 다가와 날카롭고 큰 발톱으로 내 등을 툭툭 두들겨줬다. 등을 두들겨주는 건 고마운데 심장이 덜컹거릴 정도의 충격이잖아. 그만하라고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등이 따듯해진다. 마치 파스를 붙인 듯 따듯한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두들겨 준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따듯함은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메스꺼움도, 두통도 포근한 기운이 닿자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법인가.'

정신을 차린 난 새삼 그녀를 바라보며 '용은 용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녀 덕에 기운을 차리자 몸 상태에 신경 쓰지 않았던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마치 용암으로 만들어진 바다 같았다.

'무언가 따끈따근하고 까슬까슬한' 것의 정체는 시뻘건 용암이었다.

난 품 안에서 루비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는 새끼 샐러맨더를 쳐다봤다용암을 발로 딛고 설 수 있었던 이유, 용의 힘이 아니다.

녀석 덕분이다.

"자 그럼, 젖동냥을 하러 가볼까요?"

샐러맨더의 고향은 보기에도 위험했고 실제로도 위험했다. 그녀를 따라 샐러맨더의 서식지로 이동하는 동안 난 어린 시절 이후 가장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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