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수들(2) #
케르베로스의 둥지는 좁았다.
마츄들의 둥지에 들어갔을 때처럼 박탈감이 느껴진 걸 보아 이곳이 용의 마법으로 인하여 동떨어진 공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섬과 폭포수의 마츄 둥지에 비하여 녀석의 둥지는 마치 개집처럼 허접했다.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쇠사슬에 칭칭 감긴 채 피와 해골이 널브러진 피의 지하실에서 붉은 안광을 빛내는 괴물을 상상했는데, 마물의 위명에 비해 우리가 너무 초라한데요?"
"그에게 공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난 유리창 너머의 삼두견을 지켜봤다.
케르베로스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척하는지, 진짜로 자는지 바깥의 소란에도 녀석은 미동도 없었다.
"차원의 여파를 홀로 견뎌냈어요. 600층의 마물이라도 차원 붕괴의 에너지에 고스란히 직격당했으니 본신의 힘을 대부분 잃은 상태죠. 그를 발견한 후로 많은 노력을 했으나 전혀 호전되지 않아요. 다정 씨의 힘으로 그가 무의식에서 깨어나도록 도와주세요."
겉보기에 무시무시한 마물이었다면 고민했을 것이다.
유리창 너머의 케르베로스는 그저 머리 세 개 달린 개에 지나지 않았다.
용의 말에 녀석에게 집중했다.
내가 녀석을 느끼고, 녀석도 날 느끼게 했다.
마츄와 샐러맨더에게 말을 걸었을 때처럼 유리창 너머의 잠든 케르베로스에게 말을 걸었다.
"묵묵부답이네요."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교감은 실패였다.
내 힘으론 닫힌 문을 열 수 없었다.
교감은 일종의 '말 없는 대화' 다.
말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녀석들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그 감정의 상태가 마치 내가 '그들이 된 듯'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녀석들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전할 수도 있었다.
결국엔 대화라는 것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지금처럼 닫힌 문에 소리쳐봤자 문 너머의 마물은 듣지 못한다.
"교감이 되지 않아요. 직접 만날 순 없는 건가요?"
가볍게 유리창을 툭툭 치며 말했다.
잠든 개에 불과하니 유리만 없으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용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돼요. 쇠사슬에 칭칭 메인건 아니지만 저곳은 지구 차원과 단절된 곳이에요. 유리창도 그저 장식일 뿐, 마법으로 그곳을 비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죠. 실제로 그는 아주 먼 곳, 걸어선 갈 수 없는 차원에 갇혀 있어요. 힘을 잃었다 하여도 솔로몬의 마물, 그곳에 발을 디딘다면 다정 씨는 케르베로스의 의식에 지배되는 영겁의 아공간에서 영영 고통받으며 떠돌아다니게 될 거예요. 그런 비참한 걸 원하는 건 아니겠죠?"
머리를 긁적였다.
어우, 겉보기엔 비실비실한 똥개가 엄청 살벌하네.
유리창에 기댔던 손을 떼고 아까보단 조금 떨어진 채 다시 교감을 시도했다.
용의 한숨이 들려왔지만 어쩌겠어.
위험한 건 피하고 봐야지.
용이 날 속이고 저곳에 던져두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멀뚱히 녀석을 바라보며 의식의 문을 두들기던 그때였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녀석이 눈을 떴다.
세 쌍의 눈이 추켜떠졌고 그 즉시 용은 내게 소리쳤다.
"이런! 시선을 마주치지 마세요! 보호복을 입었다고 해도 설마 적안을 뜰 줄이야... 아, 젠장."
여섯 개의 눈은 붉은색으로 빛났다.
그 빛을 마주하자 주변의 모든 게 무너졌다.
용의 외침이 들려왔으나 곧 잊히고, 난 밤바다처럼 차갑고 어두운 곳에 홀로 남게 되었다. 아니, 혼자가 아니다.
쓸쓸한 그곳엔 녀석이 있었다.
외로운 어둠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녀석만이 환한 불빛을 내뿜었다.
난 불나방처럼 불빛에 이끌렸다.
가까이서 보니 불꽃으로 이루어진 늑대였다. 세 개의 머리는 눈마다 색깔이 달랐다.
왼쪽 머리는 녹색, 오른쪽 머리는 파란색, 가운데 머리는 빨간색이었다.
경이로운 존재였다. 복극의 오로라를 만난 것처럼 한없이 경탄하게 되는, 위대한 자연경관 같은 위엄을 한 생물이 뿜어냈다.
놀라운 일이었다.
난 녀석의 이름을 알았다.
이곳에서 더 이상 녀석은 허접한 개의 모습이 아니었다.
케르베로스, 용이 말하길 세계를 멸망시킬 마수.
허투루 한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
녀석은 말을 걸어왔으나 불의 어룡을 만났을 때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다.
[...]
마치 온 세계가 음소거가 된 듯했다.
분명 그는 말을 했으나 들려오지 않았다. 답답한 느낌이었다.
[...!]
[....!!!]
[...!]
...
"그만! 그만! 끄으윽..."
잠잠하던 세계는 갑자기 들려오는 케르베로스의 외침에 머리가 터질 만큼 시끄럽고 복잡해졌다. 이어폰을 꼽고 실수로 노래 음량을 최대로 틀어놓았을 때 느꼈던 놀램이 쭉 이어지는 것 같았다.
"뭐라는 거야. 젠장!"
귀를 틀어막아도 비명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접시를 와장창 깨부수는 게 이것보다 아름다운 소리일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귀를 뜯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쳤으나 비명은 그치지 않았다.
제발, 멈춰줘.
케르베로스에게 필사적으로 내 말을 전달했으나 오히려 비명은 귓가를 파고들어 뇌마저 흔들어버렸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자 어김없이 그 기억이 떠올랐다.
세계가 변한 후, 20년 동안 '짭탕찌개' 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동안, 모두 뒤섞여 찌개에 녹아든 건 아니었다. 이계에서 협상적인 존재들만 지구로 전이되는 게 아니며, 이계인들 중엔 인간들에게 큰 재앙을 남긴 사악한 존재들도 있었다.
죽음이 이전보다 가까워졌다.
IS 테러에 고통받는 중동, 머리 위로 미사일이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는 반대편의 평화로운 국가의 평범한 시민들에겐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온도차가 전이로 인하여 균등하게 '뜨거워졌다.'
지구인들은 중동과 유럽,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과 바다, 구분 없이 전이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나 또한 자라오며 죽음의 순간이 더러 있었지만 가장 치열했던 건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다. 고블린에게 죽임당하는 새싹 반 친구들과 선생님, 허무하게 꺼져가는 삶, 그토록 대단해 보이던 체육 선생님의 머리가 데구루루 굴러와 내 발치에 놓였을 때, 난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죽으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
죽음을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난 솔직히 말해,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죽어가는 그 자체의 허무함은 두려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택할 수 있었던 건 죽음의 위기에서 확실히 발버둥 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발버둥을 정작 삶엔 적용시키지 못했지만...
어쨌든 다혈질의 남자로 이 세상을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생존에 대한 발버둥 때문이었다.
필사적으로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필사必死
젠장! 살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한다는 뜻이다.
비명은 새끼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생각하는 것조차 필사必死적이었다.
살 수 있는 방법, 녀석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과정이 지독하게 괴로웠지만 결국 녀석이 원하는 건 내가 녀석의 말을 이해하는 것.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또한 녀석의 알 수 없는 비명을 이해하는 것일 테지.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다정다감 왈왈 거려도 될걸 이런 개 같은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물이 이해될 존재였다면 동물과 별반 다를 게 뭐 있어.
익숙해지지 않는 소프라노의 비명 속에서 단단히 정신을 부여잡고 참으며 이해하려고 했다.
...
수십 번이나 정신을 잃을 뻔했다.
허무하게 죽을 뻔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필사必死적인 노력은 점점 단순히 비명에 지나지 않던 놈의 목소리에 윤곽을 드러내주게 만들었다.
...
...
[.. ......계약.]
....
[.. 솔로몬의..]
[.. 날 그곳으로...]
...
[날 그곳으로 보내줘.]
파직!
케르베로스의 감정을 이해한 순간, TV 전원이 나가듯 공간이 깨졌고 눈을 끔뻑하자 머리카락을 헝큰 빨간 머리의 그녀가 보였다.
"두 시간 동안 준비한 방호복... 의미가 없잖수?"
반말에도 용은 넘어가 주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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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이 된 케르베로스의 우리, 녀석이 한 짓이냐고 물었으나 용은 황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당신이 한 짓."
"... 제가요?"
"괴로워하던 다정 씨는 순식간에 주변을 자신의 공간으로 물들였어요. 마치 케르베로스의 힘처럼 공간 자체를 비틀어버린 거죠. 막을 방법은 죽이는 것밖에 없어서 지금까지 고민했답니다. 다행이네요. 조금만 늦었어도... 어쨌든 '방호복'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예요. 인간에겐 비틀린 공간은 용암과 빙하보다 위험한 곳이거든요."
"녀석은요?"
"다시 눈을 감았어요."
유리창 너머의 케르베로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누워있었다.
망할 녀석이 얄미웠다. 한 번만 더...
눈은 뜨진 말아주라.
난 고독한 밤바다의 세계에서 겪었던 일들을 용에게 알려줬다.
"녀석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어요."
"역시! 그가 원하는 건 솔로몬의 탑으로 복귀하는 것... 하지만 지금 그의 힘으론 600층에 어울리는 명성을 되찾진 못할 거예요. 옛 힘을 회복하기 전까진 가둬놓는 게 그에게도, 지구에게도 이로운 일. 수고했어요. 다정 씨."
"네 뭐, 죽을 뻔했는데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용이 멀뚱히 날 바라본다.
아직 할 일이 남았던가?
물어보려던 찰나, 그녀가 뜻밖의 말을 전했다.
"... 미안해요."
"네?"
"안전하게 지켜드리지 못했잖아요. 제 불찰이에요."
용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용은 오만하고, 건방지고, 강하고, 제멋대로다.
편견이 아니다. 실제로 지구에서 그들은 '편견'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정말로 내게 미안해하는 것이다.
...그녀가 진심인지 아닌지 왠지 나는 알 것 같았다.
##
"내일 또 한다고요?"
"이번엔 그다지 위험한 건 아니에요. 금지구역의 격높은 마물이긴 하지만."
내 오해일 수도 있겠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라,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