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5화 (15/258)

# 피와 섹스 #

츄파카브라,

뱀파이어의 소굴까지 가는 동안 원장님에게서 설명을 들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물 이랬다.

[지구에 남아있는 뱀파이어들은 피의 힘을 허락받지 못한 미약한 뱀파이어들, 귀족들이 아닌 그들은 제 힘으로 동족을 만들 수 없어요. 피의 힘이 없는 뱀파이어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보다 조금 튼튼한 인간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 수단을 우회하여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죠. '츄파카브라' 는 지구에 터를 내린 뱀파이어들에게 필수불가결한 마물이에요. 동족을 만들기 위해선 '츄파카브라' 의 힘을 빌려야 하죠. 츄파카브라는 일 년에 한 번, 이틀 동안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되는데 뱀파이어의 전신이 된 힘으로 자신의 피를 이용해 다른 생물을 뱀파이어로 만들 수 있어요. 피의 저주, 혹은 서약이라 칭해지죠.]

그리고 뱀파이어들이 도움을 요청한 이유도 알려줬다.

어제가 '츄파카브라가 일 년에 단 한 번 가지는 특별한 힘' 을 각성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의식의 날에 정신을 잃어버렸다며, 원인을 찾아달라고 했다.

츄파카브라가 있는 곳은 아마 이곳에서 가장 은밀한 곳일 것이다. 몇 겹의 비밀 문과 가드들을 지나자 퀴퀴한 냄새와 붉은 조명, 그리고 킹사이즈 침대를 마주했다. 원장님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따라가니, 침대에 누워있는 존재가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저게 츄파카브라인가요?"

"네. 피의 마물이죠."

츄파카브라,

대단히 못생긴 마물이었다.

스핑크스 고양이처럼 털 없이 가죽만 있었는데 빨간색으로 번들거리는 가죽이라 솔직한 감상으론 역겹게 생겼다. 몸통은 고양이처럼 날씬했는데 머리는 쥐처럼 뾰족했다.

특히 압도적인 건 다물어지지 않는 입안에 수없이 난 뾰족한 이빨들이었다. 마치 바늘처럼 뾰족하고 얄팍한 이빨은 저런 것에 물렸을 때, 얼마큼 끔찍한 상처가 남는지 상상한다면 정말 징그러운 생김새였다. 녀석이 눈을 감고 미동도 없이 쓰러져있는 게 다행이었다.

"다정 씨, 그의 상태를 알 수 있을까요?"

"녀석을 본 순간부터 알았어요. 아파서 쓰러진 거예요. 끙끙 앓는 소리, 들리진 않으시겠지만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는데요?"

용은 곧장 뱀파이어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실..."

그는 뒤편의 동료의 눈치를 살폈다.

조용히 다가와 우리에게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젯밤에 파티가 시작될 때, 첫 번째 피의 서약을 맺은 사람이 하필이면 '선기'를 가진 자였습니다. 망할, 하필이면! 성직자, 혹은 천사의 자질을 가진 자가 멍청하게 뱀파이어가 되겠다고.... 츄파카브라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신다면 '일 년에 단 한 번' 뱀파이어들이 고대하던 피의 축제는 일어나지 않게 될 테고 이 날만을 꿈꿔오던 피의 신도들은 절망하게 될 겁니다. 그들이 얼마큼 열정적으로 기다려왔는데... 젠장."

"죄책감으로 안절부절못하시는 걸 보아하니 선인을 뱀파이어 소굴에 초대한 건 당신이겠군요."

"... 동료들이 알면 절 죽이려 들 겁니다."

"그런 문제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부디, 고귀하신 존재시여."

"어쨌든 당신들이 그동안 날 위해 치렀던 희생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 방법을 찾아보죠."

난 그들의 대화를 멍하니 듣다가 용의 외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정 씨!"

"네?"

"교감 해봐요!"

"녀석의 마음엔 고통만이 가득하다고요. 꽤 싫은 느낌뿐인데."

"야간 수당은 두 배로 드릴 테니, 조금 더 노력해보세요."

원장님의 말에 손바닥을 츄파카브라의 머리에 갖다 대고 눈을 감고 녀석의 모든 것을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녀석은 확실히 강한 마물이었다. 샐러맨더보다 더 커뮤니케이션이 힘들다. 마나의 질이 다르다는 거겠지.

하지만 '금지 구역' 의 마물에 비하면 무척이나 수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만이 가득한 녀석의 마음에서 몇 가지 다른 감정들을 발견했다.

"녀석의 내면에 잠든 '불안한 초조함, 무력함, 슬픔,' 은 느꼈는데, 깨어나긴 힘들 것 같네요. 고통에 휩쓸려 제 말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어요."

손을 떼고 교감을 멈췄다.

그리고 용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뱀파이어를 쳐다봤는데 녀석은 경악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난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앱을 실행했다.

치즈-!

"그에게 맡겨봐요."

"정말 놀랍군요. 과연 위대한 존재가 데리고 다니는 '인간' 은 평범하지 않다는 건가..."

사진 속 난 빨간 눈을 번득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밀며 웃고 있었다.

##

이빨은 결국 모두 뾰족해져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선짓국이 먹고 싶었다. 아니, 보다 농밀한 비린 맛이 먹고 싶다.

이곳은 전등의 불빛이 약해 어두웠지만 난 충분히 환하게 볼 수 있었다. 벽지에 붙은 날벌레의 주둥이까지 보일 만큼, 너무나 잘 보이는 게 탈이었다.

교감의 힘이 강해졌다.

야간 수당의 두 배라는 말이 날 힘내게 만들어버렸고, 정신을 잃은 츄파카브라의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보다 깊숙이 내면으로 들어갔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변명하자면 난 아직 마물의 특징을 빌릴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부탁이 있어요."

난 츄파카브라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를 대신하여 오늘 밤, 피의 축제를 주관해주세요."

그래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용은 나보고 오늘 밤, 저 바깥에서 마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머저리들을 츄파카브라의 힘을 이용하여 뱀파이어로 만들어달라 부탁했다.

제3자라면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뱀파이어 소굴에 들어섰을 때부터 느꼈던 위화감에 대해서, 그녀에게 솔직히 말할 용기 있는 결단을.

" 전 인간이니,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겠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솔직히 윤리적인 이유에서 이해가 되질 않아요. 뱀파이어라고요? 피 빨아먹고 눈 번득이는 저 괴물들... 아, 죄송합니다. 당신들을 비하할 생각은 없었어요. 어쨌든 제가 머저리라도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데에 동참하는 게 제법 그릇된 일이란 건 알겠는데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녈 '용'으로서 가 대하는 게 아닌, 한 달 넘게 지내오며 느꼈던 '그녀' 로서 마주하고 있기에 난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 '용' 이 이따위 일에 동참하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아요."

발끈하는 뱀파이어는 내게 오만하다며 욕했다.

욕 한 건 인정하는데, '오만'이라고?

용은 차분히 대답했다.

"저들은 모두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에요. 다정 씨. 제가 '용'으로서 부과 받은 운명은 세상을 보다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며, 어느 차원보다 가장 혼란스러운 지구야말로 제 운명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에요. 강제된 일이라면 조화에 어긋나지만, 결국엔 그들의 뱀파이어에 대한 소망도 변해버린 세계에 순응하는 조화라고 생각해요. 제 운명은 뚜렷한 주관으로 세상의 균형을 바라보는 것. 다정 씨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마물원은 그만두시는 게..."

"아뇨. 이해합니다."

다시 생각했지만 다혈질로 도가니 같은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사실 '쉽게 식어서' 가 아닐까.

태세 변환은 빨랐다.

난 곧바로 무대에 올라서게 되었다.

##

츄파카브라의 힘으로 뱀파이어를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날카로운 송곳니로 대상의 피부를 찢고 피를 쭉쭉 마시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역겹고도 잔인한 행동을 난 츄파카브라의 식욕을 이해하게 되어 비교적 수월하게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이 난관은 몹시 곤란하여 난관이라고 표현했으나 사실 난관이라고 하기엔 난관같이 '어려운' 고비는 아니었다.

"하으응. 아앙!"

적당히 뱀파이어 흉내를 내며 첫 번째 여자를 물었을 때였다.

여자는 신음소리를 냈고 난 허리를 숙였다.

힘겹게 일을 마친 후, 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용을 노려봤다.

그녀는 알고 있었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뱀파이어에 관련된 전설 중에, 어쩌면 그들이 가진 에로티시즘의 근본이 된 이야기가 있다. '피를 빨리는 자는 절정의 쾌감을 맞이한다.' 놀랍게도 실제로 유럽 어떤 지역의 '처녀' 들은 그 당시 무서운 괴물이었던 흡혈귀와의 만남을 고대하기도 했다.

이게 '난관이되 난관이 아닌 난관' 이었다.

피를 빨리는 자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절정'을 맞이했다.

마치 섹스와 같이 말이다.

생식기를 내놓고 추잡한 짓(비교적)을 하는 건 아니지만 느끼는 기분은 섹스와 똑 닮았다. 난 고개를 들어 내가 뱀파이어로 만들 남을 인간들의 숫자를 세어봤다. 삼십 명쯤 되는 것 같았다.

'잠깐, 남자도 있잖아.'

입술을 깨물었다.

꾹 참아보자고 다짐하며 다음 '손님' 을 불렀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내 혀놀림에 절정을 맞이했다.( 절대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니다. 무는 부위도 목이 아닌 팔뚝이었다.)절정의 느낌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좋아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절정은 변태가 아닌 이상 당황스럽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난 내 혀놀림에 무참히 함락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심라 만상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악윽!"

굵직한 남정네의 비명.

"하아.."

가면 갈수록 여러 가지로 고되었다.

난 절정을 삼십 번이나 느끼고 나서야 모든 일을 마쳤고 곧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의식이 흐릿해진다.

행복하다면...

행복한 죽음이겠지.

##

일어나니 내 침대였다.

어렴풋이 어제의 기억이 떠오른다.

기절한 날 용이 직접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침대에 던져놓으며 오후 출근이라고 말했었지.

"몇 시..."

어제 일은 지금껏 겪어왔던 일중 가장 고되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두 시까지 출근이니 여유가 없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범한 일상과 같이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봤다.

"어?"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제법 잘생겼지만 무언가 이질적이었다.

거울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난 수십 초 동안이나 내 얼굴을 바라봐야 했다.

"창백해."

피부가 하얗다.

난 곰보자국도 있는, 다소 험한 피부를 가진 평범한 동양인 남자였다.

하지만 거울 속의 저 새끼는 대체 뭐길래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건가?

"설마."

입술을 뒤집어 송곳니를 확인했다.

이는 멀쩡했다.

후다닥 욕실의 창문을 열어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다.

눈만 시릴뿐이었다.

"대체 뭐야?"

난 흡혈귀로 변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어젯밤의 소동이 날 변화시킨 게 확실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미백 효과를 얻었다.

뭐 이런 거야?

"... 남자도 피부 빨이다."

피를 먹고 싶다던가, 마늘이 싫어진다던가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얀 피부 외엔 평소와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요즘 남자라도 피부관리를 받는다던데, 이게 얼마치의 성형수술 효과야? 기분이 썩 나쁘지만도 않다.

아니, 배시시 웃음이 나올 만큼 좋았다.

외모에 냉소적인 나라도 하얀 피부는 제법 매력적인 보상이었다.

##

야간 출장 이후 평탄한 일만 해오던 나날이었다.

오랜만에 마물원이 '개장' 했다.

게다가 이번 손님은 '가족 손님', 그것도 이종족과 인간, 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로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가족의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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