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타리언 #
오늘 마물원을 개장한다.
손님은 단체 예약한 단 하나의 가족밖에 없다.
문제는 신상서에 적힌 그들의 아이가 열네 명이라는 것과 리자드맨과 인간이 결혼한 다인종 가족이라는 것, 리자드'맨' 측이 부인이라는 것과 지구에서도 나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이종족 가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화목한 가족소풍을 마물원으로 정한 이유가 리자드맨의 '고향' 때문이라는 것.
젠장, 나열해보니 총체적 난국이구먼.
사실 그들이 다인종 가족이든 다차원 가족이든 상관없다.
그들이 관광할 곳이 '사막'이라는 게 문제였다.
전날, 원장님으로부터 리자드맨측에서 요청한 마물원의 사막이 어떤 곳인지 브리핑을 받았었다. 그곳은 마물원에서도 가장 큰 우리이자 하나의 생태계였다.
맨 처음 마츄 우리에 들어섰을 때, 원장님이 마물원에 마련된 공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버금가는 마물 우리도 있다고 했었다. 허언이 아니었다.
마물원의 사막은 고비 사막쯤 된다고 그랬고, 고비 사막이란 건 몽골의 거대한 사막이며 동서 길이가 1600km이나 되는 놈이었다.
[그곳은 사막에 서식하는 마물의 생태계를 완벽히 구현해놓은 곳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구의 오지를 탐험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젠장.
마물이 득실거리는 사막에 왜 가족 단위로, 그것도 열네 명의 아이를 주렁주렁 달고 온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남편 측은 말렸을 거야. 어쩌겠어. 아내가 리자드 공주이신데.
20년 전 일어난 전이 이후 잡탕찌개가 되어버린 지구에선 인간은 더 이상 메인 재료가 아니게 되었다.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이종족은 어떤 분야에선 확실히 인간을 압도하였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구의 문화와 사회 전반에 뚜렷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세계를 바꾼 이종족] 들이란 뉴스 기사에서 본 적이 있었다.
리자드맨은 '의약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들의 '몸'에서 생성되는 독은 지구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혹은 인위적으로 만든 그 어떤 마취약보다 뛰어난 효과를 자랑했다.
미량으로도 마취가 용이하고 투약을 잘 못하더라도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사고들이 많이 일어나 항상 인력이 부족했던 의료계는 마취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났는데 리자드맨의 마취약이 유통되면서부터 사고는 제로에 가깝게 되었고 이제 마취에 관련된 수요 분야는 모두 리자드맨이 꽉 쥐고 있었다.
이번에 마물원을 방문할 리자드'맨', 아니 '사타리언' 은 사타리언들의 공주였다.
인간으로 치면 재벌가 손녀라는 것이다.
껄끄러웠다. 혹시나 그들 앞에서 '사타리언' 이 아니라, '리자드맨' 이라고 부른다면 난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 의뢰를 당할지도 모른다. 왠지 이종족 재벌이라면, 능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자드맨은 비교적 유순하다고 들었으나 자신을 '리자드맨' 이라 부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내 개인적인 말실수를 제외하더라도 그들이 탐험할 사막에서 혹시나 사타리언 공주님이 마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중상을 입는다면 내 처지는 참 곤란해질 것이다. 물론 그들도 '용' 은 건들지 못하겠지만, 내가 항상 원장님과 붙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주님의 옥체에 비늘 하나라도 벗겨지는 날엔 단단히 각오해야겠지.
난 그들이 도착할 남은 시간 동안 신상서를 뒤적거렸다.
"부인이 리자드맨, 사타리언만 아니라면 남자판 신데렐라 이야기일 텐데."
일반적인 동물원이 아니라 마물원인만큼 원장님은 꼼꼼하게 신상이 적힌 서류를 요구했다. 그들이 제출한 신상서엔 나이와 이름, 직업 등 상세한 신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난 남편의 신상을 읽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온갖 아침드라마스러운 상상이 떠오른다.
리자드맨과 결혼.... 돈 때문에? 돈 보고 결혼한 거야?
인간과 이계인의 결혼 문제는 대부분 소강상태에 접어든 전이의 화두 중에서도 식지 않은 뜨거운 감자였다. 단순히 남녀의 결합이,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다인종 가족이 늘어가는 추세에 따라 '출산율'에 대한 개념도 바뀌고, 남녀 문제와, 다문화가정과 비교할 수 없는 차별 문제, 혼혈아... 그다지 관심 없는 내 머리로도 얼마큼 세상이 바뀌는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내심 궁금해진다.
남편에게 '장단점' 을 얘기해달라 하면, 대단히 실례가 되려나.
"다정 씨, 준비물은 다 챙겼습니다."
창고에서 나온 원장님이 내게 묵직한 배낭을 건넸다.
이것저것 생존 물품과, 마물이 득실거리는'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용이 준비한 특수한 물건들이었다.
"정말 원장님은 안 도와주시는 건가요? 저 지금 엄청 불안한데요."
"이번 일을 승낙하며 사타리언의 수장과 몇 가지 거래를 한 게 있거든요. 사타리언들이 자리 잡은 호주에 볼일이 있어서 마물원 관광 정도는 다정 씨에게 맡길게요. 전 다정 씨의 능력을 믿으니까요. 파이팅!"
"... 파이팅!"
원장님은 서둘러 마물원을 나갔다.
누군가에게, 그것도 용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썩 나쁜 느낌은 아니었으나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뀨!
"일어났어?"
낮잠을 자던 샐러맨더가 일어났다.
용암 둥지에서 기어 나온 녀석은 내 허벅지로 폴짝 뛰어왔다.
이전엔 한 손으로 들 만큼 가벼웠으나 이젠 제법 묵직해진 샐러맨더였다.
성장하는 녀석, 왠지 뿌듯하네.
아직까지 젖을 원하는 녀석이었다. 원장님 말로는 젖을 떼기까진 몇 개월이 걸리며 그 후엔 샐러맨더들과 합사를 시도할 예정이라고 했다. 녀석의 포근함을 느끼는 것도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녀석은 내 가슴에서 바둥거렸다. 다른 피부로 '모유'를 흘러보낼 수 있지만 맨 처음 먹였던 부위가 젖꼭지라 그런지, 습관적으로 가슴에 달라붙는다.
"... 이 짓도 끝나면 서운하려나."
원장님도 없겠다.
난 셔츠를 풀었다.
모성애라는 게 다소 부끄러움을 이겨냈다.
난 오랜만에 포근이를 위하여 젖꼭지를 개방했으나,
"계십니까?"
곧바로 관리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때문에 후다닥 포근이를 떼어냈다.
가슴에서 주르륵 흘러나오는 '불꽃 모유' 물론 액체적인 느낌은 아니라, 그다지 야릇할 것도 없지만.
"... 아, 전 예약... 한."
말 더듬는 남자를 보니 그의 생각은 조금 틀린 듯했다.
난 꿋꿋하게 부끄러움을 참아내고, 젖 달라 칭얼거리는 포근이를 밀어내며 셔츠의 단추를 잠갔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저 먼저 미리 대금 지불을... 부인과 아이는 나중에 온다고..."
남편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쭈볏쭈볏 걸어온 남자는 보안 가방을 내밀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모유 수유 장면을 들켜버린 애매한 분위기를 내가 느껴보다니.
자물쇠가 채워져있는 가방에 들어가 있는 건 돈다발 따위가 아니었다.
원장님은 마물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마취약이 필요했고,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최상품의 사타리언 마취약을 '몇 가지' 거래로 얻었다고 했다. 이번 마물원 관광도 그 거래 중 하나겠지.
"커피... 타드려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색한 시간은 제법 길었다.
삼십분 후, 그의 부인과 아이들이 도착했다.
남편은 부인의 입술에 키스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꽤 평범한 모습,
사랑이 느껴지는 가족.
'리자드맨' 부인과 머리 까진 대머리의 중년 남자, 둘 사이의 열네 명의 혼혈아.
리자드맨 부인은 예상한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사타리언 부인과 인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들은 예상 밖이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혼혈아, 그 모습은 내겐 그저 귀여운 꼬마일 뿐이었다.
"꼬리' 가 달렸고, 팔과 다리에 '비늘' 이 있으며, 눈이 파충류처럼 생겼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저 아이와 다를 바 없었으니 난 평범하게 그들을 대했다.
그들에게 하루 일정을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단단히 경고했다.
"남편 분께선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관광 중에, 가장 익스트림한 관광이 되실 겁니다. 화목한 가족 뮤비가 호러 재난 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주세요."
"하하, 각오한 일이랍니다. 아내를 위해서 가는 거죠."
난 사타리언 부인을 바라봤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생각보다 평범해 보여, 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있습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엄청 위험할 텐데요."
사타리언 부인은 교양 있는 목소리로 낮게 웃으며 말했다.
"제 고향은 다른 차원의 사막, 지구에서 볼 수 없는 험악하고 위험한 곳. 아이들의 뿌리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인간처럼 지구에서 자라겠지만 사타리언 어미를 뒀다는 것만으로 많은 차별을 겪겠죠. 아이들의 앞에 놓인 난관에서, 꼬리와 발톱, 눈에 새겨진 사타리언의 자부심을 원망하는 것보다 인정하며 긍지로 받아들여 편견과 싸우길 바랐습니다."
열네 명의 아이들은 얌전하게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녀석들은 자라며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돼서 각자의 길을 찾아가겠지.
'다종족 가정' 의 아이들을 위한 이종 학교는 설립되어 있었지만 사회의 분위기는 아직 녀석들에겐 시린 한파처럼 차가울 것이다.
"최선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아침부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즐거운' 사막 탐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