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검사[수정] #
싸움이 끝나고 힘을 풀자 몸을 휘감은 불꽃이 잠잠해졌다.
'용의 마법이 아니더라도, 왠지 강해진 느낌이야. '재검사' 라도 받아볼까?'
아직은 어색했지만 이게 '능력자' 들이 느끼는 감각이라면 난 분명 이전과 달리 강해진 게 분명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정 씨,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레미니가... 레미니!"
"형아, 등에 괴물 꼬리가... 나 때문에...훌쩍. 내가 엄마 말 안들어서.."
"제대로 사과하렴!"
알고 보니 레미니는 떨어진 파파니아 꽃잎을 발견하고 혼자 주우려 간 모양이었다.
"저도 책임이 있는걸요. 괜찮아요."
혼비백산 걱정하는 그들을 난 웃으며 안심시켰다.
사실 정말 위급할 뻔했으나, 좋게 끝났으니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콜피온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사타리언 부인은 걱정을 멈추지 않고 다급하게 말했다.
"만콜피온의 독은 바위마저 녹일 산독이에요! 등의 상처는 정말 괜찮아요? 아니지, 여보, 마취는 제가 할 테니 등의 상처 부위를..."
"정말 괜찮아요. 봐봐요. 아무 이상 없죠?"
난 등을 내보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 도마뱀?"
새끼 샐러맨더는 내 등에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대부분의 만콜피온 독은 사라졌지만 피부에 남은 약간의 '열독' 은 녀석이 중화시키고 있었다.
"녀석 때문에 살았거든요. 후아! 위험한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여행이 여러분에게 좋은 추억으로 새겨졌으면 좋겠어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이제 다음 일정을.... 젠장!"
[경고! 경고! 경고! 경고!]
용이 준비한 사막 여행 가방 패키지엔 그녀가 가장 중요하다며 신신당부한 물건이 있었다. '샌드웜 경고기' 다.
샌드웜이란 1600km의 거대 사막에서, 가장 위험한 마물.
만콜피온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물이자 용조차 '경고' 하던, 최장 32m까지 자란다는 사막의 청소꾼, 무시무시한 포식자!
가방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재빨리 샌드웜 경고기를 꺼내자 빨간 불빛과 사이렌 소리를 내며 야단 법석을 내고 있었다.
난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물의 기운!
양해의 바다에서 마주쳤던 불의 어룡과 맞먹는 존재감이었다.
"빨리 돌아갑시다. 녀석이 와요. 샌드웜이!"
사타리언 부인은 '샌드웜' 을 아는 듯했다.
그녀는 후다닥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고 용이 개조한 이동 골렘은 최대 출력으로 샌드웜 경고기가 잠잠하질 때까지 사막을 쏜살같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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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모해쪄요. 훌쩍."
정신 사나웠던 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안전해지자, 남편은 '레미니'에게 엄하게 꾸짖으며 훈계했다.
'흐음, 아빠 역할이라.'
이종 부부라도 결국 가족의 형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역할, 엄마의 역할. 아니, '부모' 로서의 역할.
사람과 결혼했으면서도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망나니 같은 아빠들도 많다.
그는 사타리언 부인과 열네 명의 혼혈 아이를 둔 가장이지만 오늘 하루 동안의 모습으로 볼 때 '역할' 을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사막 투어의 끝은 해가 모습을 감춘 사막의 밤, 하늘에서 피어나는 오로라였다. 북극 지방에서 일어나는 오로라와는 달랐다. 사타리언 부인이 설명하길, 사막 마물들의 마기가 낮의 태양빛에 기화되어 밤 하늘에 맺히는 현상이라고 했다. 뭔 소린가 싶었지만 확실한 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레미니에게 오늘 하루는 어떻게 기억될까.
괴물에게 잡아먹힐 뻔한 아찔하고 두려운 기억?
부디 끔찍한 기억보다 이 순간, 빛나는 오로라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는데.
"갱장하다아~"
방금 전의 일을 잊은 듯 해맑게 기뻐하는 녀석을 보니,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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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가 끝났다.
마물원으로 돌아오자, 그들도 나도 기진맥진이었다.
사막 투어 자동차에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 부모를 도와 남편의 차까지 옮겨줬다.
"고맙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게도... 나름의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듬직한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 같네요.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모르지만요."
"멋진 아빠세요. 아이들이 크더라도 아빠를 무시할 건 휑한 머리숱밖에 없을 거예요."
"... 네?"
"농담이에요."
남편이 아직까지 빨간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차에 올라탔다.
사타리언 부인은 차에 올라타기 전, 내게 명함을 건넸다.
금장 명함은 [윙바레] 라고 적혀있다.
"혹시라도 다치시거나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지구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의약회사 중 하나다.
언젠가 쓸 때가있겠지.
"그리고... 물론 위대한 존재의 밑에서 일한다는 건 굉장한 영광이겠지만 만약 일을 그만두신다면 꼭 저희 회사로 모시고 싶어요. 만콜피온과 싸울 때 보여줬던 모습, 다정 씨같이 강한 능력자는 저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해요."
'강한' 능력자라.
날 그렇게 생각하다니 뜻밖이다.
[교감] 이란 능력은 동물들의 속삭임이 들려와 귀찮기만 했던 능력이었다. 난 강하지가 않다. 게다가 사막에서 있었던 일은 내 힘이라기보다, 용의 마법 때문이었다.
"이거 스카우트인가요? 하하."
"네, 맞아요. 보수는 두둑이 챙겨드릴게요. 능력자들은 대부분 경호업무를 맡게 되나, 마취약의 실효성 입증과 '몇 가지' 곤란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윙바레는 마물 포획에도 힘쓰고 있거든요. 지구인들은 이 직업을 '헌터'라고 부르더군요."
헌터라,
명함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내 명함을 만든다면, [마물원 직원 정다정] 보다 [윙바레 소속 헌터 정다정] 이 더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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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거절했다.
그들을 마중하고 관리실로 돌아왔다.
원장님은 이미 볼일을 마치고 관리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 덕분에 살았어요. 원장님 '마법'이 아니었다면 저 오늘 죽었을 거예요."
"네? 마법이요?"
"사막에서 마물에게 습격당했는데 마법의 힘이 아니었다면 놈을 쫓아내지 못했을 거예요."
"이상하네요. 다정 씨에게 강화 마법 같은 건 안 걸었는데요? ...다정 씨?"
역시,
뭔가 달라졌어.
"내일 하루 휴가 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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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휴가를 내고 '검사'를 하러 갔다.
저번처럼 포근이가 집을 태우게 할 순 없었기에 녀석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마나 검사소'
전이 이후, 마나를 품은 인간인 능력자들에 대하여 확실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여긴 정부는 '마나 검사'를 의무화하여 청소년기에 여섯 번, 성인이 된 후 삼 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게 했다. 그러나 난 최근 6년간 검사를 받은 적이 없었다. 검사 의무화로 '카스트제도' 같이 되어가는 마나 등급제, 정부는 마나 보유량의 평균치를 내어 1~9 등급까지 나누고, 5등급 이상은 집중적으로 관리하되 8등급 이하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8등급 이하는 전이 이전의 평범한 지구인과 다름없어서였다.
9등급이 나온 난 검사를 하든 안 하든 정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검사 비용이 나오지 않으니 사비로 검사를 해야 했고, 비용은 300만 원을 넘어가기에 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능력자의 1~9등급.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등급 제도는 이제 전 세계가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의 '쓸만함' 등급.
대단히 디스토피아적인 제도다.
인권운동가들이 아직까진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글쎄, 한 번 매긴 등급, 심하면 심해졌지 완화되진 않겠지.
검사소에 도착했다.
유난히 칭얼거리는 포근이었으나 검사소에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포근이는 차에 놔두고 검사소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했던 검사가 떠오른다.
마나 수치 '0'
평범한 인간의 수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풀었던 감정이 순식간에 식는 기분을 경험했던 기분 나쁜 기억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을 입증하여 [교감] 능력이란 딱지 표를 하나 얻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검사는 마나 검사와 재능 검사가 있었는데 재능 검사는 시간이 며칠이나 소모되는 복잡한 검사였다. 난 마나 검사만 받고자 했다.
사막에서 느꼈던 이질적인 느낌이 마나의 변화에 따른 거라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검사소에 들어가자 무척이나 거대한 기계와, 예쁜 간호사가 날 반겼다.
"마나 검사하러 왔습니다."
"네네, 사회 보장증 좀 볼 수 있을까요?"
"아뇨. 사비로 하려고..."
"검사 비용이 조금 센 데 괜찮으시겠어요? 검사장치 동력석의 가격 변동으로 당분간 1회 비용이 400만 원으로 책정되었거든요~"
...
혹시 모를 의문을 해소하기에 400만 원이란 돈은 너무 심했다.
"흐으으~ 할게요."
그 후,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검사복으로 갈아입고 검사 장치라 부르는 거대한, 마치 손오공이 나메크 행성으로 타고 갔던 우주선 같은 곳에 들어갔다. 내 400만 원은 단 10분 만에 날아갔다.
기계 자체도 비싸 서울시에도 얼마 없고 마나를 스캔하기에 별도의 특별한 동력이 필요하다지만, 그래도 한 번에 400만 원이라니 너무 슬펐다.
검사 결과는 곧바로 나왔다.
안 돼, 곧바로 나와선 안 돼.
6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간호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약간은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건넨 검사 표를 읽던 난 400만 원을 지출한 것보다 더 슬퍼졌다.
[0]
마나 제로.
6년 전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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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할게요."
"검사 비용은 똑같이 첨부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 없습니다."
스위치가 켜졌다.
쓸데없이 피가 끓어오른다.
나는 이딴 것에 '악' 을 내는 걸 열받아하면서도 재검사를 요청했다.
다시 검사를 받으려던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