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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0화 (20/258)

# 캣 맘 #

콰아앙-!

바깥에서 큰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는 폭발에도 인상만 찡그렸을 뿐,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으나 난 기계에서 벌떡 일어나 검사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후다닥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포근아!"

활활 불타는 람보르,

검은 연기가 자욱한 참혹한 현장.

뀨-!

부서진 람보르에서 녀석이 기어 나왔다.

녀석은 불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날 보며 깡충거렸다.

그래, 뭘 걱정하겠어. 용암에서 사는 녀석인데.

걱정해야 할 건 내 통장이다. 젠장, 그새를 못 참고!

다행히 점심시간 이후라 길거리에 사람이 없어 인명 피해를 입히진 않았다.

폭발해버린 내 애마, 스포츠카의 명가 람보르사에서 만든 뉴타입 람보르, 위험수당과 모아둔 돈을 모두 투자해 '빌린' 스포츠카를 바라봤다. 비싼 보험료를 내는 만큼 보험 처리를 하면 어느 정도 복구가 되겠지만 그래도 몇 천만 원 정도의 뼈아픈 지출을 해야겠지.

눈물을 훔치며 보험사를 부르고 사후 처리를 하기 전에 검사소로 돌아왔다.

선불 비용을 지불한 만큼 검사는 계속해서 받을 생각이었다. 간호사는 포근이를 보고 약간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아 했다.

과연, 별 해괴한 일이 다 벌어진다는 '마나 검사소' 의 간호사인가.

"어라? 마력 수치가... 7등급이세요."

포근이를 안고 재검사하자 검사표엔 7등급이 출력되었다.

사실, 예상한 일이다. 내가 궁금했던 건 마물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도 마나의 보유량에 변동이 있는가, 답은 X였고 마물의 영향을 받아 마나가 늘어나는 건 재확인할 수 있었다.

난 포근이를 바라보며, 그때를 떠올렸다.

불꽃 모유를 온몸에 두르던 그 감각,

"다시 검사 부탁드려요."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

"비용은 지불하겠습니다.... 12개월 할부로요."

만콜피온의 독침이 살점을 파고들었던 위험한 순간, 내 몸에서 발산되던 불꽃과 발휘했던 괴력이 용의 마법이 아니라면 샐러맨더와 동화된 내 능력이라는 뜻이다.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몸을 감싼 불의 기운, 정말 '불' 은 아니었기에 검사복이 불타오르거나 하진 않았다.

품에 안긴 포근이가 날 바라본다.

'모유'를 주는 과정, 그 순간만큼은 녀석과 내가 모자관계처럼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져 긴밀한 사이가 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모유가 나온다는 건 녀석과 내가 깊숙이 연결된 증거라고 생각했다.

내 능력이 마물의 힘을 빌려오며 그 수치가 나와 마물의 깊은 감정 교류에 따라 증폭된다면 포근이와 난 더 말할 것 없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진한 '부모와 자식' 간이었으니, 샐러맨더의 능력을 녀석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가지는 것도 이해가 갔다.

검사 기계에 들어갔다.

충만한 마나의 기운에 확실히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올 거라 짐작했다.

"다정 씨."

기계 안에서 검사를 받고 있을 때였다.

문득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장님?"

그녀를 부르자, 대답이 들려온다. 헛것이 들린 게 아니었다.

기계 바깥에선 간호사와 용이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사 도중에 강제로 기계를 개폐해선 안됩니다!"

"죄송해요. 급한 일이라."

"아이참! 고장 나면 큰일 난다고요!"

정말 그녀가 왔다.

휴가를 내고 왔는데 왜 이곳까지 찾아왔을까?

검사를 받는다고 말을 한 적도 없는데 내가 이곳에 있는진 어떻게 알았고?

차르르-!

결국 간호사는 용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문이 개폐되며 빨간 머리의 그녀가 들어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부터 워프할 테니 준비하세요."

"워프요? 아니, 잠시만!"

그녀는 순식간에 용의 모습으로 변해 날 거대한 손으로 낚아챘다.

어떤 마법 주문을 외우는 그녀에게 난 필사적으로 외쳤다.

"잠시만요! 검사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그럴 시간 없어요."

"검사 비용 400만 원이!"

"두 배로 드릴 테니 얌전히 계세요."

막무가내였다. 용이 지랄 맞은 성격인 건 익히 들어 알았지만 지금까지의 그녀는 믿음직한 상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이번 일은 꽤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돈은 준다 해서 잠자코 있었다.

피슝-!

정신줄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소리라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워프 마법은 순식간에 주위의 공간을 무너트리고, 다시 공간의 퍼즐을 재확립시켰다.

마물 우리에 들락날락하며 공간의 박탈감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를 다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탄 것 같은 이 느낌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눈 한 번 깜빡하니,

서울 도심의 마나 검사소에서 찰랑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변가가 보였다.

등 뒤론 야자수가 빼곡히 자란 정글이었고, 바닷물은 사파이어색으로 반짝거리는 맑고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한국이 아니다. 적도 오지의 열대 지방 같았다.

"여긴 어디래...."

"제 동족이 다정 씨의 힘을 필요로 해요."

"동족요? 원장님 동족이라면 그분들밖에 없으시잖아요."

"지구에선 그녀를 '캣맘' 드래곤으로 부른다더군요. 괴짜지만 제겐 은인 같은 분이시라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가 다정 씨를 간곡히 원해서... 휴가신데 갑작스럽게 불러내서 죄송해요. 이 일이 끝나면 이틀 휴가 정돈 드릴게요."

"유급?"

"네. 유급."

난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차렸다.

곰곰이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의 동족, 그러니까 위대한 존재인 용이 내 힘을 필요로 하였고 내 힘을 필요로 한 그 용은 다름 아닌...

"잠깐, 캣 맘이라고요? 그 전설의?"

"맞아요.대단한 괴짜시죠."

'용' 이 불가지해의 존재임을 설명할 때 주로 인용되는 전설적인 용들이 있었다.

각 나라의 랜드마크를 골렘으로 개조시킨 '오타쿠들의 황제'(자유의 여신상은 골렘으로 개조 당할 때,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다.) 1억 마리의 길고양이를 데리고 태평양의 거대한 섬을 만들어 '고양이 왕국' 을 만들어버린 '캣 맘'

'확실해. 용들 중에선 우리 원장님이 제일 멀쩡할 거야.'

이곳이 고양이 섬이라는 건 얼마 가지 않아 깨달았다.

해변가를 벗어나자마자 여기도, 저기도, 모두 고양이 천지였다.

##

차가 터져도 상관 쓰지 않던, 산전수전 다 겪은 간호사라도 '용의 난입' 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어휴, 깜짝 놀랐네."

빨간 머리의 여자가 순식간에 용으로 변해 사라지는 장면은 베테랑 간호사인 그녀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출력되는 검사 표를 확인했다.

"맙소사."

그녀는 머그잔 가득 채워진 커피를 다 마실 동안 검사 표를 손에서 떼지 못했다.

간호사는 머그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전화기를 찾았다.

마나 검사소에 배정받은 그녀는 사실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정부 소속의 요원이었다. 간호사로서의 책무와 동시에 정부 요원으로서 배정받은 그녀의 임무는 비싼 검사기계를 보호하는 것과 '요주의 인물' 을 솎아내어 정부에 보고하는 것이다.

'길드'처럼 초국가적 단체에 맞서기 위해 정부는 '검사' 의 독점을 주장하며 강한 능력자를 미리 파악하였다. 5등급 이상의 능력자들은 정부의 감시하에 놓이며, 이 사실은 공공연히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나 알고도 모른 척하는 주제였다.

최고 등급,

1등급의 능력자가 해낼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일'

이계인을 압도하는 유일한 지구인.

전략적인 가치, 사회문화적인 가치, 어떤 분야든 '한 사람' 이 가지기에 너무나 크나큰 '권력' 1등급 능력자는 국가의 얼굴이자, 전술핵이자, 항공모함이자, 톱스타였다.

간호사는 전화기를 들었으나 이내 내려놓고 검사 표를 다시 확인했다.

"처음엔 '6' 등급이었어. 그 후, '용'이 검사 기계에 들어간 후부터 가파르게 올라가 1등급을 찍었다. 용의 마력이 흘러 들어간 거겠지. 결국 그 사람의 결과는 6등급이라고 봐야 돼. 젠장, 보고는 어떻게... 머리 아픈 일이야."

분명 검사 표대로라면 그녀는 의무적으로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용의 개입' 이 신경 쓰였다. 그 사람이 누구든, 그 용이 어떤 존재이든 상관없다. 문제는 용과 그 사람이 자신이 이곳에서 일한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

검사 표대로 보고하자면 용의 개입을 빠트릴 수 없다. 가뜩이나 이계의 거듭된 습격으로 곤두선 상부가 안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 질 것이다.

'용이 무섭나, 상부가 무섭나 하면 당연히...'

고민하던 간호사는 결국 검사 결과를 폐기시켰다.

그녀는 상당히 조심성이 많았다. 단순한 이유였다. 보고를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 수도 있다.

자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저 용과 용이 아는 사람 한 명이 검사 기계에 들어간 작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이 커지고 커져, 결국 마지막에 큰 폭탄이 되어버리는 걸 그녀는 많이 봐왔다.

상부가 혹시나마 '1등급' 의 존재가 용의 마력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판단했다.

가장 좋은 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결과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녀가 검사 표를 폐기하는 대범함을 보인 이유는 그녀가 가진 악질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귀찮음'

괜히 하는 일이라곤 하루에 두세 번 검사 기계를 점검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고객을 응대하는 편한 일을 택한 게 아니었다. 나머지 시간에 쇼핑몰을 보든 소설을 읽든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녀는 정부 요원으로서 여유로운 삶을 위해 말단직인 검사소 관리직을 택했다.

그녀가 평범했다면 보고했을 것이다.

그녀가 어리석었다면 주변에 자문을 구했을 것이다.

단, 지금의 선택은 현명함에 의한 것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그녀가 죽기보다 싫어하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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