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1화 (21/258)

# 내 똥구멍 좀 핥아주겠니? #

"흐에취!"

1억 마리의 고양이들이 사는 고양이 섬, 해변가를 벗어나자마자 풀숲에서, 나무 위에서, 길가에서 뒹굴뒹굴하는 고양이들이 잔뜩 보였다. 한 마리의 고양이라도 방을 뒤덮는 털을 생성해내는 녀석들답게 섬에는 콧가를 간지럽히는 털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녔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겐 이곳은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일 것이다.

"젠장, 그분은 왜 하필 고양이를 좋아한대요? 저 끔찍한 생물들을 1억 마리나 모아둘 생각을 하다니."

"어머, 고양이가 끔찍하다고요? 충분히 귀여운 외모잖아요?"

"녀석들은 귀여워서 다행인 생물이에요.어휴."

이 섬은 온통 고양이 밭이었다.

이곳에 고양이가 아닌 생물은 우리밖에 없었다. 제법 넓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열 발자국 걷을 때마다 다른 고양이 무리가 나타났다. 야옹야옹야옹-! 호기심에 가득 찬 녀석들은 경계하면서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고양이라는 생물 단 한 종만 격리된 이 섬은 비정상적인 생태계지만 고양이들을 관리하는 '캣맘' 이 위대한 용이라, 먹이 걱정은 없는 듯했다.

야옹야옹-!

야옹-!

냐나아앙-!

지랄 났다.

원장님은 흐뭇한 미소였지만 그들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난 귀여운 녀석들의 환영에 미소로 답할 수 없었다. 고양이는 매우 성가신 동물이다.

난 놈들에 대해 비교적 광적일 만큼의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고양이 혐오자라서가 아니다.

내가 가진 교감 능력의 가장 큰 단점의 발현이자 '천적'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길고양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배고파.]

[잠 와.]

[심심해.]

[섹스하고 싶다.]

[뭘 보냐?]

고양이들은 귀엽다.

그것과 별개로, 도도한 병신들이다.

누가 맨 처음 고양이들에게 도도한 병신이라고 불렀는진 몰라도 그것만큼 잘 어울리는 명칭이 없었다. 분명 매력적인 생물이긴 하다.

내가 녀석들을 이토록 폄하하더라도 개와 더불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자 매력적인 생물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분명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생각보다 애교도 많고 사랑도 많다.

단, 녀석들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만 고양이가 어떤 해괴한 짓을 해도 귀엽다고 웃어넘길 수 있겠지.

이건 굳이 길고양이가 아니더라도 다른 동물들에게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는데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은 유기된 길고양이들의 수가 가장 많았으므로 딸려오는 반대급부적인 현상이었다. 내가 고양이들을 유난히 싫어하는 건 어쩌면 골목마다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이라서 일지도 몰랐다.

[저 새끼 뭐냐?]

[우리 구역이야! 꺼져!]

[확 마, 때려버린다? 가서 때려버릴 거야? 진짜야?]

적대적이다.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예전엔 인간의 터와 삶을 공존하며 녀석들이 겪는 불상사를 안타까워했지만 전이 이후 '길 고양이' 신세가 된 건 나도 녀석들과 마찬가지였기에 이젠 짜증만 날 뿐이었다.

먼저 다가오는 살가운 녀석들도 있었다.

아마 인간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일 것이다.

[인간, 핥아 줘.]

[내 똥구멍 좀 핥아주겠니?]

[쓰다듬어줘.]

괴로웠다.

고양이들이 잔뜩 깔린 이곳은 내게 깡패 학교나 다름없었고 난 얼빠진 전학생 역할을 맡아야 했다.

"원장님. 그분이 있는 곳은 아직 멀었나요?"

"저 언덕 너머에 그분의 저택이 있어요."

"빨리 좀 가면 안 될까요? 날아가면 금방 일 텐데."

"다른 용의 둥지를 방문할 땐 날개를 펼치면 안 돼요. 그게 용들 간의 예의라서요."

애써 고양이들을 무시하며 걸었다.

냐아이아아!

으아아에에에!

발정이 나 한참 예민해진 녀석들의 신경질적인 울음.

얼마 가지 않아 수컷 두 마리가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어머. 왜 그러니?"

원장님은 고양이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도도하며, 병신이라 칭한 이유였다. 용이 가진 생물로서의 압도적인 위압감, 마치 호랑이 앞의 사슴처럼 벌벌 떨어야 마땅하지만 고양이들은 무려 '용' 의 만류에도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녀석들이었다.

원장님의 손짓에 하늘을 나는(천천히 얌전하게) 녀석들은 서로 떼어진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화를 내며 씩씩거렸다.

'캣맘' 이 사는 언덕으로 걸으면 걸을수록 화난 고양이들이 많이 보였다.

잔뜩 곤두선 녀석들, 한 번의 싸움은 열 마리 고양이를 흥분시켰다. 그리고 흥분한 고양이들은 서로 싸우고, 다른 고양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1억 마리의 고양이들이 사는 냥코섬, 이 섬에 도착했을 때부터 '행복한듯한' 느낌은 받지 않았다. 이 섬의 고양이들은 천적도 없고 먹이를 힘들게 사냥할 필요도 없었지만 오히려 길 고양이들보다 잔뜩 성나있었다. 녀석들은 도도하고, 병신 같지만 무엇보다 섬세한 녀석들이다. 마치 인간처럼.

만약 유토피아라 한들, 1억 명의 사람이 좁은 곳에 갇힌다면 그곳은 행복한 곳일까?

난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 섬의 생태 균열을 알 수 있었다.

'캣 맘' 이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해답도 간단한 거겠지.

##

'캣 맘'

드래곤의 집은 거대한 고양이 모양을 한 성이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중동 거부들은 오일 머니로 상상할 수 없는 사치를 누린다던데 '용' 정도면 이 정도 위엄은 있어야지.

고양이 성의 대문, 앙증맞게도 초인종이 있었다.

누르자 앙칼진 고양이 울음소리를 한 벨 소리가 울렸고, 이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성 안에도 고양이 천지였다.

다만, 바깥의 고양이들과 달리 아픈 녀석들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싸움에 상처 난 녀석들이겠지.

"호호호, 오랜만이야. 빨간 꼬마야!"

원장님을 따라 멀뚱히 기다리자 2층 계단을 부리나케 내려오는 아줌마가 있었다.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빵 모자를 쓰고 빵빵한 볼과 미소가 푸근한 아줌마였다.

원장님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담."

'마담' 은 달려와 원장님을 꾹 안았다.

그녀는 딱히 용으로서 공포스러운 느낌은 안 들었지만 원장님을 포옹하는 것만으로 그녀가 확실히 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용이 아니면 누가 원장님을 '감히' 안아주겠어.

"빨강 꼬마야, 이 녀석이 네가 말한 인간이냐?"

"그의 이름은 다정, 마담께서 원하는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호호, 인간의 이름 따윈 알 필요 없고, 좋아. 특별히 티타임에 참석하게 해주지."

마담이라 부르는 아줌마 용은 우릴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에도 마찬가지로 고양이들이 잔뜩, 고양이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만약에 저 아줌마가 용이 아니었다면 과히 정신병이라고 부를 수준이었다.

"빨강 꼬마야. 널 위해 과자를 만들었단다. 호호, 이제 완성됐을 거야."

아줌마 용이 나가자 원장님이 말했다.

"용이 직접 만든 과자를 먹을 수 있다니, 다정 씨는 운이 좋네요."

아줌마 용이 앞 치마와 빵 모자를 쓴 건 단순한 패션이 아니었나 보다.

곧 그녀가 가져온 쟁반에는 고양이 모양의 과자와 향기로운 차가 있었다.

난 그녀들이 서로 안부를 물을 동안 과자를 먹고 차를 홀짝였다.

'맛있다.'

드래곤은 음식 솜씨도 좋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그래, 네 능력이 동물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멀뚱히 과자를 먹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물었다.

"네."

"흐음, 그럼 이 아이가 무어라 말하는지 알겠느냐?"

아줌마 용은 페르시안 고양이를 안으며 날 바라봤다.

젠장, 곤란한 상황이다.

난 우물쭈물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마른 입술을 적시며 당황하는 내게 아줌마 용은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빨강 꼬마야, 인간은 때론 교활해 우리마저 속인단다. 물론 널 믿기에 이건 단순한 떠보기에 지나지 않았으나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의심스럽구나. 당연히 우리 페르츄가 날 사랑한다고 대답..."

"답답해. 아줌마야. 간식 줘. 쓰다듬지 마. 예민하니까."

"뭐?"

"그 고양이가 느끼는 감정들입니다."

난 페르시안 고양이가 느끼던 감정 중에 마지막, '냄새나'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원장님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는 흥미로운 능력을 지녔어요. 믿어봐도 좋아요."

아줌마 용은 믿기지 않는 듯 페르시안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결국 녀석의 냥냥 펀치를 맞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