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놈 #
용이라고 다 잘난 건 맞지만, 용이라고 다 똑똑한 건 아니었다.
'캣 맘' 은 내게 고양이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이상 증상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약간 짜증이 났으나 상대가 용이기에 난 어떻게 그녀에게 '당신의 망할 욕심 때문에 고양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건데요?' 라는 직설적인 말을 좋게 풀어서 말할지 고민했다.
지금 내가 느끼기에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겠으나 캣 맘 드래곤은 '위선적인 동물협회' 같았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서 녀석들의 습성도 모르고 어떻게 1억 마리를 같은 곳에다 모아놓은 거지? 왕성한 번식력으로 개체 수가 적어도 두 배 이상은 늘어났을 테고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다.
물론 그녀는 1억 마리 고양이 섬을 만든 게 춥고 배고픈 길고양이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녀석들의 의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손 짓 한 번에 만리장성이 무너지고 발 짓 한 번에 북극의 빙하로 거대한 아이스 랜드를 건설하는 용의 힘이 대책 없이 남용된다면 이딴 꼴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이렇게 밀집된 생태계는 자연적인 게 아니었다.
당연히 표본 따윈 있을 리 없고 언제나 만들어진 자연은 인간의 예측을 벗어났다.
캣맘의 부탁에 생각하던 난 우선 고양이 섬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고양이들이 싫어하는 톡신이 담긴 병이야. 빨강 꼬마의 손님이니 그래도 다치게 만들어선 안되겠지. 우리 아이들이 싫어하니까 너무 자주 사용하지는 마!"
원장님과 '캣 맘' 은 따로 이야기를 나눌 게 있다 하여 나 홀로 고양이 섬을 거닐었다.
"위험한 게 뭐 있다고."
캣 맘이 준 유리병을 흔들자 시큼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여긴 '고양이' 섬이다.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괴물 섬도 아니고 위험할 건 하나도 없을텐데 왜 이런 걸...
내가 고양이한테 질 것 같았나?
해변가를 돌아다니던 난 무성한 열대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레들과 질척한 흙 때문에 내키진 않았으나 정글에서 '고양이' 들의 불쾌한 마이너스 감정이 유전처럼 퐁퐁퐁 솟아나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얼마큼 넓은 거야? 젠장."
정글에 들어서자 잔뜩 곤두선 고양이들의 날카로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번득이는 눈빛이 제법 사납다.
바스락-!
풀숲과 나무 위에서 녀석들이 요란스럽게 움직인다.
성큼성큼 걷던 난 발소리를 죽였다.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단순히 고양이들인데... 뭐지? 이 공포는?
정글에 숨은 고양이들은 날 '사냥감'으로 여겼다.
당연하다. 고양이들은 귀여운 외모로 오해받지만 사실 타고난 사냥꾼들이었다.
제 구역에 들어온 날 경계하며 사냥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근데 그 압박감이 생각보다 훨씬 무섭다.
겨우 고양이 주제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상황이 반전되었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유리병을 꺼냈다. 언제라도 톡신을 뿌리기 위한 준비 자세를 취했다.
고양이에게 겁먹는 쪼다 같았지만 교감으로 인하여 느끼는 놈들의 위협이 상당했다.
마치 재규어 같아.
유리병의 마개를 따고 흔들자 인간의 코도 마비시킬 만큼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사사삭-!
부스럭-!
그 순간, 날 지켜보던 시선들이 일제히 없어졌다.
확실한 효과였다. 캣 맘은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했다.
젠장. 전혀 고맙지 않아. 이런 곳에 날 홀로 보내다니.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용이 더 무서웠기에 꾹 참으며 정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마이너스' 의 소용돌이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역겨워서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이런 감정, 느껴본 적이 있었다. 우연히 조류독감으로 닭들이 폐사당하는 양계장을 지나쳤을 때, 그곳에서 이런 비슷한 감정이 휘몰아쳤었다.
마침내 풀숲을 해치고 '그곳'에 도착하자 난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냉기를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을 꽉 움켜쥐어야 했다. 세상 가장 끔찍한 오물의 늪을 마주한 듯했다.
'고양이' 섬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교감으로 인하여 난 고양이의 감정을 가졌다. 고양이가 마치 인간들과 엇비슷하게 동족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적어도 '수십만 마리' 정도의 쌓여진 고양이 시체를 마주했을 때, 분노와 폭발하는 슬픔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 심장을 강타했다.
물어뜯겨 죽인 고양이들의 무덤, 죽은 고양이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난도질당해 있었다.
시체 썩는 내가 진동한다. 내가 두려움과 역겨움을 같이 느낀 건 이 섬에 사는 생물이라곤 오로지 고양이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저런 끔찍한 살육의 구렁텅이를 만든 게 '같은' 고양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망할, 캣 '맘' 이라고?
참극을 목격하고 돌아오던 난 언뜻 고양이 형체를 한 비정상적인 동물을 만났다.
녀석의 감정은 미치광이와 같았다. 정신병자와 같았다. 덩달아 미칠 것 같았다.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고양이들은 이 섬에 '적응하고' 있었다. 원래의 본능을 뛰어넘은, 굳이 말하자면 용에 의해 발생한 선택한 진화라고 할 수도 있었다.
아프리카의 육식 동물은 '외래종' 마물의 난입으로 근 20년 만에 지난 수천 년간의 진화를 뛰어넘는 놀라운 적응 변화를 꾀했다. 사냥감을 구할 수 없어 굶어가던 사자와 하이에나는 서로 협동을 했다.
마물을 우선으로 사냥하며 '먹을 수 있는' 마물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20년 동안 인간의 도움 없이 전혀 새로운, 마물을 포함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해냈다.
다큐멘터리에서 우연히 봤던 그 '적응의 진화'는 상당히 감명 깊은 것이었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변한 세계에 적응한다.
정글에서 발견한 엄청난 고양이들의 시체는 동족을 사냥감으로 여긴 몇 몇 고양이들의 안타까운 적응이었다. 젠장, 일반적인 고양이보다 훨씬 거대해진 '녀석들' 은 더 이상 고양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했다.
물론 자연적으로 겨우 몇 년 만에 저따위 끔찍한 진화가 일어나진 않겠지.
아마 '캣 맘' 때문일 것이다. 마나를 간직한 마물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용의 마력, 용이 주는 사료, 용이 머무는 둥지, 고양이들이 변하는 변수는 충분했다.
고양이 성으로 돌아온 난 거칠게 대문을 열어젖혔다.
주먹을 쥐었다. 냉정해지고 싶었지만, 망할 교감 능력은 스위치를 켰다 껐다를 할 수 없었다. 난 이 섬의 고양이가 되어 휘몰아치는 감정의 격류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라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위층에서 원장님과 캣 맘 드래곤은 나름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입을 꾹 다물고 불편한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마담'께선 정글의 상황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곳엔 '다소' 흉포해진 아이들을 모아두고.."
"수만 마리의 고양이들이 '물어뜯겨' 죽어있었습니다."
"그럴 리가? 유독 사나운 녀석들만 모아 편안함을 불러일으키는 마법 약재가 들어간 먹이를..., 혹시 먹이 문제인가? 사료를 바꿔봐야 되게.."
"그따위 문제가 아닙니다."
짜증 난다.
고양이들이 변한 이유를 알았다. 뭐가 '마법 약재' 야.
용, 위대한 존재에게 하는 언사치곤 무척이나 과격했다.
그러나 참아도 참지 못했다. 그 감정, 그 역류하는 역겨움.
결국 원인을 만들어낸 드래곤에게 토해내고 말았다.
"젠장, 드래곤이면서 그딴 것도 모릅니까?"
원장님의 빨간 눈알이 당황했고 캣 맘의 노란 눈알도 당황했다.
둘의 차이점은 '흥미롭거나, 어이가 없거나'
뭐가 됐든 엿 된 건 분명했다.
망할.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고양이들은 양아치 새끼들이에요. 자기 구역에서 놀아야 하는데, 자꾸 딴 놈이 기어 와. 양아치들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때려서 다신 못 오게 해야죠. 그런데 이 섬은 너무 좁아요.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인데, 이곳은 너무 좁고, 너무 많아요. 무슨 고양이 판 배틀 로열도 아니고! 인간이 좁은 방구석에 몇 마리씩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녀석들이 한계까지 참아주다 포기하는 거라고요. 게다가 확실한 중재자가 존재하죠. 이곳은요? 외래종으로 호주를 순식간에 덮어버린 사례가 있는 고양이들의 번식력을 무시한 채 1억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이 붙어서 사니 새끼는 계속해서 낳고 천적이 없으니 성묘가 될 때까지 안전하게 자라나겠죠. 개체 수가 못해도 두 세배는 늘어났을걸요?
물론 어느 정도 유지가 됐을 거예요. 스트레스는 받겠지만 해변가의 고양이처럼 참고 살만하죠. '당신' 이 실수한 건 고양이들이 귀여운 살인기계라는 걸 간과한 거야. 그들은 항상 사냥 본능에 사로잡혀있어요. 난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그래서 단언컨대,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 사냥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는 본능, 굳이 배고프지 않아도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가지고 노는 게 귀여운 외모에 숨겨진 놈들의 잔인성, 그런데 우리 캣 맘님께선 그중에서 '사이코패스' 고양이들만 골라서 한 곳에 격리시켜놓고 마법 약재', 그 비싸다는, 마력이 가득한 이계의 풀을 먹여 초유의 변수를 만들어내셨어요. 정글에서 마주쳤던 놈들은... 마나의 영향을 받아 몸짓이 배로 커졌고 사이코패스 본능을 잔뜩 발휘하며 이 섬의 불쌍한 고양이들을 사냥하고 있어요. '먹이' 가 충분해도, 녀석들은 그런 놈들이라고요. 젠장! 나쁜 건 당신이야. 지금이라도 당장 녀석들을 격리시켜야 돼. 그리고 이러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고양이들에게 훨씬 넓은 자기구역을 지정해줘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안타깝지만 적어도 지금의 반 이상을 폐사시켜야겠죠. 그 후, 적어도 고양이들을 관리하실 생각이라면 위선적으로 굴지 말고 고양이들의 80%는 거세시키세요. 당신 때문에 대체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고통받았는지 깨달으며 땅콩이나 수확하라고요!"
끝이다.
원장님을 바라봤다.
날 살려주시겠어요?
"흐음, 구역 문제라."
최대한 참았으나 이미 내 손을 떠나간 주둥아리는 용에게 반말을 하고 비하까지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캣 맘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 그럼 늘리면 되겠군요!"
캣 맘은 명쾌한 해답이라도 얻은 듯했다.
눈썹을 구기며 쳐다볼 때, 원장님이 달려와 날 안았다.
"잠시 피해있죠."
원장님이 날 안고 용으로 변하여 하늘을 날아오른다.
난 내 발 밑을 바라보며, 방금 전의 폭언을 했던 내가 얼마큼 또라이짓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용의 힘 앞에서 난 먼지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구구구-!
땅이 갈라진다.
지진이 일어난다.
바다가 넘실거리며 이내 폭풍이 되었고 해일이 일어났으나고양이 섬은 '어떤 마법' 때문에 성난 바다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고양이 섬 주변, 여기저기서 땅이 치솟는다.
저 심해 바닥에 얌전히 있던 대지였다.
산호초가 박힌 대지는 곧 고양이 섬과 부딪히며 하나의 땅이 되었고 순식간에 갈 곳 잃은 게와 물고기들은 다시 한 번 휘몰아치는 해일에 말끔히 쓸려나갔다.
바다 아래 잠들어있던 대지는 육지와 달리 휑했다.
그러나 '캣 맘' 의 손짓하게 초록 물결로 덮여갔다.
잔디였다.
이내 나무가 자라난다.
그 과정은 천지창조의 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이로움만 느낄 뿐, 오히려 놀라지는 않았다. 신화 속, 위대한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캣 맘이 '구역을 늘리면 된다'라는 말은 그 말 그대로, 고양이 섬의 면적을 넓히는 것이었다. 난 고양이 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미천한 두 눈에 새기게 되었다. 바다 아래서부터, 끌어올린 거였어. 미친 짓이야.
"마담, 그녀는 대지를 관장하는 드래곤, 용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존재죠."
"... 저래도 되나요?"
"한 번 마음먹은 그녀를 말리긴 힘들어요."
섬의 확장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지레 짐작한 건데, 태평양에 제주도만 한 섬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친 규모의 해일을 저대로 놔둔다면 인접 국가는 물난리가 났을 테지만 놀랍게도 그 여파를 캣 맘은 마법으로 막아내었다.
"나 저런 사람한테 큰 소리친 거예요? 어떡하죠? 나 죽는 건가요?"
"그녀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어요. 뭐, 맞는 말이니까요. 제법 멋졌어요. 다정 씨. 설마 용에게 '당신'이라니.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