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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4화 (24/258)

# 검은 고양이 #

원장님은 내가 식중독으로 골골대도 무신경하게 마물원으로 돌아갔으나, 난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놀랍게도 고양이 섬에서 걸린 식중독이 하루 만에 나은 것이다.

이젠 의료보험이 없는 나라도 비싼 병원비를 납부할 수 있었으나 습관처럼 '참을 때까진 참아보자'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고 한숨 자고 일어나자 고열도 사라졌고 몸도 개운했다.

병도 아파본 사람이 잘 안다고 했다. 마물 도축공장 옆에서 살 때 자질구레한 병을 달고 살던 나라서, 지원이 끊긴 고아원에서 자라온 나라서(성인이 되고 알았으나 전이로 인한 대기근으로 마물 고기를 먹였다고 한다.) 약한 식중독이라고 해도 이처럼 하루 만에 완쾌할 만큼 만만한 병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베테랑 헌터들은 뼈가 부러져도 침 바르면 낫는다던데.

아무래도 내 몸에 변화가 생긴 듯했다. 포근이는 마물원에 맡긴 상태였다.

검사소의 결과로 유추하자면 녀석과 붙어있을 땐 내 마나는 7등급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내 스스로의 마나는 9등급, 최하 등급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포근이가 없으니 내 마나는 일반 인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형편없는 수치다. 하지만 과연 평범한 인간이 지독한 식중독을 하루 만에 이겨낼 만큼 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을까?

'달마다 검사를 해봐야겠어.'

물론 재검사 비용은 사내 복지 차원에서 원장님에게 건의해봐야지.

몸은 개운했으나 휴가가 끝날 동안 침대에만 누워있기로 했다. 백수 생활을 할 땐 몰랐다. 뒹굴뒹굴하는 여유가 이토록 달았다니, 그리고 이토록 지루했다니. 먼지 가득한 단칸방에서 몇 달의 백수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몰라.

이튿날에는 오랜만에 자주 하던 게임에 접속했다.

백수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내 게임 캐릭터는 압도적인 장비와 우월한 LV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엔 한 번 잡으면 다섯 시간은 기본이었던 게임을 10분 만에 종료하고 말았다. 허무했다. 그땐 [+21 화염의 레바테인] 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데이터 쪼가리로 보여.

출근을 하루 앞뒀을 때, 난 생각했다.

'그냥 오늘 출근할까.'

학교 다닐 땐 최저 출석, 군대 다닐 땐 최대 휴가.

그런 내가 휴가를 반납하고 일을 하러 가볼까라고 생각했다.

여유로움, 혹은 지루함 속에서 새삼 깨닫는다.

헌터보다 스펙터클한 일상 속에서 두 달동안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겪었는데도.

난 이 일을 좋아하고 있구나.

##

3일의 휴가가 모두 끝이 났다.

마물원 유니폼을 챙기고 대문을 나선다. 포근이 때문에 박살 난 람보르 대신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출근 지하철, 열차 문이 열리고 들어서자마자 지독한 땀 냄새를 맡으며 좌석에 '오우거' 가 있음을 깨닫는다. 용은 지각에 관대하지 않았기에(항상 날 협박할 때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며 운을 뗀다.) 다음 열차를 기다릴 순 없었다.

이종족과 인간이 뒤섞인 열차 안에서 메탈리카의 'Hit the lights' 을 들으며 이어폰 소리를 최대로 높였다. 하필이면 옆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샨' 종족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귀뚤귀뚤, 귀뚜라미. 전이 전에는 풀벌레와 거꾸로 가는 보일러만 생각했지만 요즘 시대엔 대부분 곤충 인간 '샨' 을 떠올린다.

덜컹, 덜컹.

마물원이 있는 서울 외곽의 역에서 내린다.

지하철의 벽면엔 온통 낙서가 한가득이다. 외설적이며 폭력적인 묘사의 그래비티는 대부분 난쟁이족 '우딸리깔딸리' 들의 짓이겠지.

도로엔 아침부터 경찰차가 출동하며 사이렌 소리로 난리 법석이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도 천천히 걸으며, 마물원에 도착했다.

##

늦지 않게 관리실에 도착하자 드물게도 원장님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요?"

가장 먼저 할 일이 있었다.

3일 동안 보지 못해 분명 날 그리워하고 있을 포근이를 안아주는 것, 그래서 원장님의 인사에 꾸벅 고개를 숙이고 곧바로 포육실로 향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덕분에 휴가 잘 보냈어요. 포근이 상태는 괜찮은... 그건 뭔가요?"

하지만 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녀는 품에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작고 조그마한, 아직 새끼처럼 보이는 고양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안고 있다고 하여 대단할 게 없겠지만 그녀가 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용이 무언가를 안고 있다면 그게 투박한 돌이라도 전설의 금속, 미스릴일 수도 있었고 표지에 새끈한 사진으로 장식된 성인 잡지라도 사실 대단한 마법이 기록된 마법서가 아닐까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었다.

즉 저 고양이는 평범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고양이는 용의 품 안에서 얌전히 안겨있었다.

검고 윤기나는 털은 다른 색이 전혀 섞이지 않아 숯검댕을 펴 바른 듯 신기한 털을 가진 녀석이었다. 게다가 검은 고양이인 주제에 동공의 색마저 남색에 가까워 분위기가 제법 신비로웠다. 고양이는 원장님의 가슴에 안겨 꼬리와 발을 꼬물꼬물 거렸다.

고양이를 바라보던 난 문득 생각했다.

'푹신해 보여.'

여름이 다가오며 꽤 날씨가 더워졌다.

용이 날씨를 타진 않겠지만 환경에 따라 복장을 바꾸기는 한다.

얼마 전까지 두꺼운 스웨트를 주로 입던 원장도 더운 날씨에 알맞은 옷을 입기로 한 것 같았다. 잠자코 '고양이를' 바라만 보고 있자 원장님이 말했다.

"마담이 부탁하고 가셨어요."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올렸다.

마담이라, 여러모로 엄청난 존재였지.

"그분은 고양이들을 데리고 먼 나라, 아니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가시지 않으셨나요?"

문득 관리실의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침착하게 다른 생각을 하며 원장님에게 물었다.

마담, 고양이를 무척 아끼는 괴짜가 고양이를 부탁하고 갔다니, 무슨 이유 때문일까?

원장님은 부드러운 손길로 새끼 고양이의 뺨을 어루만졌다. 기분이 좋은지 눈을 껌뻑이며 눈 키스를 한다. 정말 얌전하고 애교 많은 녀석이었다.(용의 앞이라면 그 어떤 흉포한 동물도 얌전해지겠지만, 마담 때를 생각해보면 고양이는 예외였다.)

"사실 고양이 섬의 문제는 덤에 지나지 않았어요. 애초에 개인적인 문제였기도 했고요. 진짜 절 부른 이유는 이 녀석 때문이에요."

"고양이 한 마리 때문이요?"

녀석은 외형적으로 신비롭다는 것외엔 어떤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이젠 시선을 다른 곳에 새지 않고 정말 고양이만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검은 고양이다. 불길의 상징이라지만 귀엽기만 하다.

...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아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기에 느낌이랄 것도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 능력은 마물과 동물의 마음을 읽거나, 혹은 읽지 못한다. 그리고 읽지 못하더라도 녀석들이 문을 닫고 대화를 단절시켰다는 '느낌' 은 온다. 마나가 뛰어난 마물일수록 단절의 느낌은 진해지고 깊어져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진다.

그러나 녀석은 그것조차 없었다.

마음을 닫았는지, 대화를 원하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속마음이 읽히지 않아요."

강렬한 의문, 용에게 말하자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가요? 마담이 말하길, 녀석은 어떤 세계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라고 하셨어요. 마나를 품었으나 굉장히 이질적이라서 저조차도 이 녀석의 '출처'를 알 수가 없더군요."

그녀가 안고 있던 고양이를 내민다.

냐앙~

겨드랑이가 들려 길쭉해진 녀석이 날 바라본다.

남색의 눈은 자세히 보니 별이 뜬 밤하늘처럼 반짝였다.

"특별한 위해는 가하지 않더라도 미지의 존재인 만큼 불확실성을 염두 해야 될 것 같네요. 서식지와 생태도 모르니 우리를 만드는 것보다 다정 씨에게 맡기는 게 좋겠어요. 다정 씨가 보살펴주세요."

'고양이는 싫은데.'

냐앙!

그 순간, 녀석이 펄쩍 뛰어올라 내 품으로 안겼다.

역시 녀석은 애교가 고양이치곤 무척이나 많았다. 가슴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녀석, 수염이 간지럽다. 살포시 안으니 편안한 자세로 안겨든다.

고양이라는 게 속마음이 안 들리면 이리도 사랑스럽구나.

지금까지의 고양이들은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애교를 피웠기에 그다지 귀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골골거리며 애교를 피우면서도 속마음은 '츄르 내놔 집사 새끼야.'라고 욕하는 게 놈들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샐러맨더도 키운다.

아직까진 평범한 고양이, 대수겠어?

"좋아요. 그런데...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인데 시간 외 업무로 추가 수당을..."

"다정 씨는 참 알기 쉬워서 좋아. 어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아요?"

월급 명세서에 추가될 항목이 늘어났다.

##

개냥이라고 해야 할까?

녀석은 과하다 싶을 만큼 애교를 떨었다. 처음 만난 주제에 엄청 친근하게 군다. 교감이 동물들의 마음을 읽고 녀석들의 호감을 살 수는 있어도 날 좋아하게 만드는 페로몬을 풍기는 건 아니다.

손가락으로 녀석의 턱밑을 살살 긁어주니 골골골 거린다.

지금까지 고양이는 싫어했으나, 이 녀석은 매우 좋은 느낌이 든다. 괜찮다.

고양이들을 떠받들며 스스로 집사라 칭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겼으나(엄밀히 말해 그들의 사랑이 한심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고양이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이젠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포근이 데리고 오겠습니다."

녀석을 놔두고 포근이를 데리러 갔다.

포육실에서 홀로 남겨졌던 포근이는 날 보자마자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며 뛰어왔다.

용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녀석, 오랜만이라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으나 역시 내 몸은 곧바로 적응했다. 젖꼭지가 시큰해진다. 아아, 이제 몸이 반응해버려.

녀석을 안고 불의 기운을(더 이상 모유라고 칭하긴 싫었다.) 먹이며 관리실로 돌아왔다.

"어머, 인기가 많네요."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던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쫑긋 세우고 내게 달려든다.

녀석을 쓰다듬고 마츄 우리를 관리하기 위해 청소 도구를 챙길 때였다.

품속에서 기운을 먹던 샐러맨더가 소매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다.

녀석의 시선이 고양이에게로 향한다.

'엄청 싫어하는군.'

도마뱀은 과연 고양이와 사이가 나쁠까?

잠시 생각하던 난 저 도마뱀이 샐러맨더라는 마물이고 저 고양이가 드래곤도 알 수 없는 생물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츄-!

"으악!"

혀를 날름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던 포근이, 갑자기 소매에서 벗어나 제 털을 고르던 고양이를 덮쳐버렸다.

"너!"

아직 작지만 '마물' 샐러맨더다.

일반적인 고양이는 닿는 것만을 큰 상처를 입는다. 난 급히 말리려고 했으나, 이어진 반전의 장면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뀨웅! 뀨웅!

포근이는 고양이만큼 영역을 소중히 여기는 마물이다.

자신의 공간을 침범한 녀석에게 텃세질이라도 부릴 생각이었나 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순식간에 샐러맨더의 기습을 피해낸 고양이가 작은 이빨로 샐러맨더의 목을 꽉 물고 제압했다. 포근이는 그 아래서 뀨뀨거리며 발버둥을 쳤으나 발산되는 불의 기운에도 고양이는 멀쩡했다.

'마물은 마물이라는 건가?'

녀석들을 말리자 샐러맨더는 후다닥 품속으로 들어왔고 고양이는 여유롭게 혀로 제 몸을 그루밍했다.

'너도 평범한 녀석은 아니구나.'

"이름은 뭘로 하실 거예요?"

원장님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야옹이요."

네로, 에드가, 다크시니 등을 생각하던 난 간단하게 부르기로 했다.

다소 성의 없어 보이긴 해도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했다.

"정야옹."

물론 성은 '정' 씨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벌벌 떠는 포근이를 안아들고 이동장에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마물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불법이었기에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난 생각했다. 그래도 샐러맨더와 달리 겉으론 평범해 보이니 용암 서식지 따위를 구비해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캣 타워나 하나 사둘까."

츄르도 사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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