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쥐라기 공원 (2)
그녀가 처음으로 건넨 건 전자사전처럼 보이는 기계였다.
다만 [취급 주의] 스티커가 붙어 있고, 그 아래 자그마한 글자로 경고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초기 사용자 외에는 사용 불가. 사용 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펼쳐 봐요.”
기계는 스틸 재질로 제법 묵직했다. 덮개를 열고 펼치자 스마트폰처럼 액정 화면과 몇 개의 조작 버튼이 나왔다. 난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사출 버튼을 누르자 기계의 상단부에 위치한 작은 홈으로부터 빨간 레이저가 발사됐다.
“포근이한테 레이저를 비춰 봐요!”
[샐러맨더]
크기: 몸길이 3~12m
몸무게: 1,600~2,400kg
서식 장소: 용암 지대
먹이: 부패한 고기
…….
레이저를 포근이에게 비추자 액정 화면에 샐러맨더의 사진과 특성, 서식지 등 정보가 출력되었다. 이제 용도가 뭔지 알 것 같다. 이건 휴대용 전자 매뉴얼이었다.
“제 지식을 집대성한 마물 사전이죠. 마물원뿐만 아니라 지구로 전이당한 마물이라면 대부분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다정 씨, 절대 매뉴얼을 빼앗기거나 팔지 마세요.”
사전에 기재된 정보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헌터는 마물을 잡아 고수익을 올린다. 교섭인은 마물을 거래하며 막대한 지위를 누린다.
동력석을 비롯하여 특정한 마물에게서 채취할 수 있는 기이하고 마법적인 물건들은 지구엔 없는 물질이기에 희귀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마물이 노다지인 건 아니다. 단지 위험하기만 한 몬스터들도 있다.
‘파라 고니아’처럼 악재(惡災) 취급을 받던 몬스터라도 뒤늦게 뛰어난 가치가 발견되기도 한다.
20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아직 인간들은 마물에 대하여 많은 걸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전이가 커질수록 인간들은 더더욱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전만 있다면 어떤 마물이 ‘보물’을 주는지, 마물의 약점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서식지와 생태까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따라오는 부가가치는 세계정세를 뒤흔들 만큼 어마어마할 것이다.
원장님의 말에 따르면, 강화된 매뉴얼은 마물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마물에 대한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니, 만약 이 작은 기계 하나가 사회에 알려지면…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거라는 걸 알겠다.
‘포켓몬 마스터의 도감 같은 건가.’
전자 매뉴얼에 용의 마법 중 하나인 소유자 각인이 찍혀 있어, 잃어버리더라도 저절로 돌아왔다(리모컨에 새겨 넣으면 정말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단 각인은 영구적인 게 아니라 지워지기라도 한다면 행방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가치가 높다고 하더라도 난 절대 매뉴얼을 팔 생각은 없었다. 용의 미움을 받느냐, 거액의 돈을 얻느냐. 당연한 선택이다.
매뉴얼에 이어 추적 마법이 깃든 조끼와 개조된 마취봉을 받았다.
마담의 약재와 윙바레의 기술력이 접목된 마취봉은 강력하여,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브라키오사우루스 같은 거대한 용각류 공룡도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손잡이를 돌려 봐요.”
아라크네에게 사용했던 마취봉과 같았으나 개조되어 더 강력해졌다.
원장님의 말대로 손잡이를 돌리자 봉의 끝에서 뾰족한 날붙이가 튀어나왔다.
“마취침이에요. 다시 한 번 손잡이를 돌리면 발사되죠. 마취봉에 비해 12배나 강력해 부작용이 있으니 정말 위급할 때만 사용하세요.”
과연 사파리. 다른 때와 달리 원장님이 많은 준비물을 챙겨 주신다.
하지만 용이 걱정할 만큼 위험하다면 이런 건 다 소용이 없다. 보다 본격적인 무기를 주면 좋겠는데.
“보통 마취총을 쓰지 않나요? 이런 것보다 총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총은 숙련도가 필요하잖아요.”
“대한민국 예비군을 무시하지…….”
“잔말 말고 가요.”
잔말 말고 갔다.
*
공간이 무너지고, 다시 재정립되자 전혀 새로운 환경이 펼쳐진다.
그곳은 아주 무더운 곳이었다.
만약 포근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습기 가득한 더위는 꽤 불편했었을 거야.
야옹이와 포근이는 동행했다. 사실 공룡 사파리 투어에 대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은 것도 녀석들 때문이었다.
“웅장하네.”
고대의 섬이다.
느껴지는 기운부터가 달랐다. 숨 쉬는 공기와 발을 딛고 있는 땅의 감촉, 그리고 시야에 담기는 모든 풍경들이 이질적이고 색다르다.
“여러분, 도착했습니다.”
쥐라기 공원은 제주도 크기의 섬이었다.
사파리 투어의 목적은 섬을 한 바퀴 둘러보며, 그 과정에서 유독 사나운 공룡들을 골라내고, 네 명의 관람객으로부터 불만 사항을 접수하여 공룡 사파리가 개방할 만큼 안전한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차량 투어다. 당연히 일반 버스로는 되지 않는다.
사자와 호랑이가 있는 사파리도 철망이 설치된 버스를 이용한다. 공룡이니 그 배는, 아니 수십 배는 튼튼해야 했다.
마물 사막 투어 때처럼 특별히 원장님이 개조한 차량형 골렘은 수륙뿐만 아니라 늪과 바위 지대같이 위험한 환경을 고려하여, 사람 키 정도의 높이로 날 수 있게 고안되었다. 튼튼하기도 엄청 튼튼해, 단순한 충격이라면 수천 톤도 버틴다고 했다.
용이 엉터리 영업 사원처럼 과장하지 않았다면, 차량에만 얌전히 있으면 공룡 사파리 투어도 크게 위험할 것 없어 보인다.
“우와, 쩌는데?”
“사진, 사진.”
젊은 남녀는 감탄하며 사진 따위를 찍고,
“이것 참… 놀랍군요. 지구와 전혀 다른 생태…….”
“오오, 이런 구도를 원했어요!”
지질학자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만화가는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태블릿에 섬의 풍경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원장님은 공룡 사파리 투어를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부터 시작하도록 만들어 놨다.
공룡은 섬으로 한참 들어가야 나오겠지만, 공룡을 아직 마주치지 않아도 이곳이 미지와 고대의 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거대한 나무! 풍부한 공기!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무언가’의 울음소리!
브라키오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모사사우르스!
인간은 대부분 공룡을 좋아한다.
남자아이라면 더욱 좋아하고,
나처럼 동물의 마음이 들려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아할 것이다.
그렇다.
가장 궁금한 게 있었다.
‘과연 공룡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장 녀석들과 교감하고 싶었다.
부디 고양이처럼 싸가지 없지 않길.
*
설레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공룡 사파리를 앞두고 모두 소풍을 온 듯 들떠 있다.
교수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가져온 탐사 장비를 점검했고(용의 허락하에 반입되었다), 만화가는 태블릿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특히 여대생과 백수는 이곳이 무슨 관광 유적지라도 되는 듯 신나 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 댔다.
하루 동안 지낼 곳이 관광지 따위가 아니라 공룡 섬이라면 대부분 무서워하겠지만, 이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다소 안일한 태도로 공룡 사파리에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은 안전 불감증이 극에 다른 현대인들 중에서도, 특별히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즘 세상이 오죽 흉흉한가? 공룡은 이제 더 이상 공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출발합니다. 허락 없이 차에서 내리거나 하시면 안 돼요!”
사파리 투어가 시작됐다.
아직 공룡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으나 절로 운전대에 힘이 들어간다.
원장님에게 이곳의 지형과 공룡의 서식지에 대하여 교육 받았다.
계획은 섬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안전지대까지 가는 것이다.
‘공룡이라, 아무리 그래도 위험하려나?’
거대한 나무들이 우거진 녹림을 지나면 공룡이 가장 밀집된 평야가 나온다. 그곳에서 공룡을 관찰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흉포한 공룡들을 골라내는 것이다. 처음 원장님의 설명을 들었을 땐 의아했다. ‘흉포한 공룡’이라니? 공룡들이 침입자를 몰아내거나, 먹잇감을 잡아먹는 건 대부분 섭리에 따르는 것일 텐데.
하지만 원장님은 상식을 벗어난 대답을 했다.
[만약 그들이 아득한 포식자를 곁에 두고 움츠린 상태로 두려움에 적응하며, 몇백만 년 동안 진화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살아남은 공룡들은 옛 지구의 생물과 같지만, 전혀 달라요. 말했다시피 용들의 오만으로 탄생한 기형종들이지요.]
용은 더 이상 공룡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알게 된 후로 그토록 씁쓸하고 슬픈 표정은 처음 보았다.
어쨌든 모종의 이유로 공룡들은 무척이나 온순하고 얌전하게 바뀌었다는 얘기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직접 겪어 보지 않았기에, 내 기억 속의 공룡은 여전히 무지막지한 ‘쥐라기 공원’의 괴수들이지만.
*
차량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
마르고 고운 흙이 깔린 평지가 나왔다.
“가이드, 잠시 멈추어 조사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곳에서 지질학자가 내게 부탁했다.
애당초 그의 목표는 고대의 섬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난 주위를 둘러보다 차량을 세웠다.
“아직까지 안전한 곳이니 괜찮을 것 같네요.”
외국인 노인은 상기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난 그가 가져온 탐사 장비를 내리는 걸 도와주며 말했다.
“대학 교수님이시죠? 투어에 신청하시고 하루 만에 한국까지 오셨던데 괜찮아요? 면담하는 와중에도 전화 엄청 오던데.”
“사직서를 제출하고 와서 괜찮습니다. 이십오 년 동안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 인수인계를 핑계로 절 고소하겠다고 하더군요. 뭐, 제가 꼴 보기 싫었을 뿐이겠죠. 될 대로 되라지요.”
인터넷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전이 이후, 학계는 실용주의로 편중되어 역사과 철학 등 가치 탐구적인 인문 학문은 사장되고 있으며, 대신 언어학과 법률 쪽은 세분화되고,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 쪽은 아예 뿌리부터 다시 뜯어고치고 있다고 했다. 뉴스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 기억난다.
우스갯소리로 ‘문과 지옥, 이과 천국’이라고 했지. 대학도 못 나온 내가 뭘 알겠냐마는, 그는 지질 시대에 관하여 저명한 학자였으나 대학과 마찰이 있는 듯 보였다.
남은 세 명에게 차에 남으라고 당부하고 노인과 같이 조사 장비를 옮겼다.
“요즘엔 아이비리그에서도 마법학 따위를 가르친다던데, 진짠가요?”
“진정, 학문의 가치도 모르는 것들이지요. 이계의 문물이 사회를 좀먹어 가는 걸 깨닫지 못하는 놈들입니다. 무지가 지속되면 결국 인류는 순수성을 잃어버릴 겁니다.”
“아… 네.”
어깨를 으쓱하며 그가 시키는 대로 조사 장비를 설치했다.
지질학자가 가져온 장비는 한 명이 들고 다닐 만큼 작았다.
간이 조사 장비 따위로 지질을 조사할 수 있을까?
“이런 장비로도 결과가 나오나요?”
노인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장비를 가동했다. 엔진 굴착기처럼 생긴, 접지대가 설치된 조사 장비는 윙윙- 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지층을 향해 기다란 줄을 뻗었다.
두부 자르듯 땅에 푹 들어간 줄은 작은 기계에서 사출된다고 믿지 못할 만큼 쉴 새 없이 뻗어 나갔다. 노트북과 장비를 연결한 노인은 파동 그래프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내게 보이며 그제야 질문에 대답했다.
“전이 이후, 발전된 문물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노인은 억 소리 나는 기계의 가격을 말하며 마법에 대해서 언급했다.
“탐지 마법이 접목된 이 장비 때문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크게 줄었지요.”
난 약간 의문이 들었다.
방금 전에 그가 말했던 얘기와 지금의 상황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전이가 사회를 좀먹어 간다면, 그의 비싸고 대단한 장비는 ‘좀먹은’ 장비가 아닌가? 굳이 말하여 시비를 걸진 않았다.
얼마 후,
조사 결과가 노트북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지질학자는 연신 감탄하며 내게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대학 교수답게 정말 말이 많은 남자였다.
“이 섬은 작지만, 놀라운 곳입니다! 지질 시대의 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나,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이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지질은 트라이아스기 지층의 특징인 암염, 사암, 석회암이 분포된 육성층을 이루나, 섬을 반으로 갈라 보자면 오른쪽 지질은 그 후대인 쥐라기 시대의 한반도 지질인 대동누층군을 따라가는군요. 또한 전체적으로 백악으로 이루어진 지층이니, 이 섬 자체가 중생대라고 불려야 되겠군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이곳은 마치 현생누대의 모든 특징을 섞어 놓은 곳 같다는 말입니다!”
“무슨 소리예요?”
“쉽게 말해 시대적 연결성을 보완할 수 있는 증거를 찾기 용이한 곳입니다.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될 것 같군요!”
“무슨 소리예요?”
세 번 되묻자 노인은 말을 멈추고 날 멀뚱멀뚱 바라봤다.
내가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탐사를 끝내고 차로 돌아오자, 이젠 다른 세 명에게 지루한 얘기를 들려줬다.
가이드는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네.
“공룡들이 번성했던 중생대는 시대적으로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뉩니다. 하지만 이 작지만 귀중한 섬은 복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과장을 보태면 2억 년 전쯤부터 시작된 지질의 역사가 응축된 곳이랄까요? 공룡의 생태도 정말 기대되는군요.”
만화가는 공룡에만 관심이 있다.
백수는 당연히 관심이 없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여대생이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습~ 하! 상쾌한 곳이야. 공룡들이 사는 곳이라서 그런 걸까요?”
“중생대는 현 지구에 비하여 산소 농도가 훨씬 높다고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숨쉬기가 편해요. 과제에 지쳐 있었는데, 힐링이 돼요!”
공룡 투어를 왔는데, 힐링을 하고 가는 저 여자도 보통이 아니군.
슬슬 지루하던 찰나였다.
“오? 저거 그거 아닙니까? 쥐라기 공원의 마크!”
백수의 외침에 모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원장님이 준비한 확실한 신고식이 있었다.
난 그녀의 센스에 감탄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원장님도 영화를 보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