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31화 (31/258)

# 31화 쥐라기 공원 (5)

둥지의 주인, 놈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렸다.

T-Rex.

또한 영어 동사로 티렉스의 뜻은 이러하다.

1. 크게 한 입 베어 물다.

2. 우적우적 씹다

3. 치아가 다 보이게 음식을 씹다. 물어뜯다.

얼마나 대단하면 신조어가 ‘우적우적 씹다.’라는 의미의 동사로도 쓰일까?

공룡의 대명사다.

또 슈퍼스타다.

학명의 의미는 폭군 도마뱀이다. 렉스는 ‘왕’을 의미하기도 한다.

백악기 후기의 가장 강력한 육식 공룡이다.

강력한 턱 힘을 가지고 있으며 높이 6m, 길이 15m, 10t의 거구를 자랑한다.

흔히 지구 역사상 최강의 육상 포식자를 논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곤 한다.

무는 힘 또한 엄청난 수준으로, 일반적으로 3.5~6t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동물 중에 가장 치악력이 세다는 백상아리의 2~3배 수준인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턱 힘으로 덩치 큰 초식 동물의 굵은 뼈도 아작 낼 수 있었다.

녀석이 최강의 포식자로 거론되는 건 턱 힘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도 완벽했기 때문이다.

시력은 인간의 10배를 뛰어넘으며, 수 킬로미터 바깥의 물체도 볼 수 있다. 달팽이관이 발달하여 청력도 아주 뛰어나며, 후낭의 크기도 커 냄새도 잘 맡는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녀석의 특징인 ‘거대한 입’은 한 입에 150kg 고기를 뜯어낸다. 먹이를 잡아 끌어당기는 동시에 뼈를 으스러뜨려, 데미지를 주도록 특화된 구조였다. 이빨의 길이도 최대 30cm나 된다. 그야말로 사람 따윈 입가심에 지나지 않는다.

굉장히 튼튼한 생물이기도 했다. 티라노사우루스끼리의 다툼에서 3.5t의 위력을 지닌 턱으로 급소인 목을 물리고도, 치명상을 입지 않고 살아남아 멀쩡히 활동한다.

육중하고 두꺼운 머리뼈는 수 톤에 달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넘어져도 큰 타격을 입지 않게 만든다. 자연 치유력도 뛰어나 골절 같은 중상도 스스로의 회복력으로 치유하여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근육질의 무식하게 거대한 포식자지만 달리기 속도가 느리지도 않았다.

길고 튼튼한 다리로 시속 40km로 달린다.

정말 매력적인 생물이 아닐 수 없다.

…….

그렇단 말이지?

한 손으로 마취봉을 들고, 다른 손으론 매뉴얼을 확인했다.

매뉴얼에 이토록 자세한 설명은 처음이었다. 역시, 섬의 입구를 쥐라기 월드처럼 꾸며 놓았을 때부터 알아차렸다. 원장님은 티라노사우루스를 각별하게 좋아하는 듯했다.

원장님이 서술한 녀석의 스펙만 보면 마물조차 우습게 여길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다행인 건 마취약이 통했다는 것이다. 지구상 가장 흉포하고 강력한 포식자라고 하더라도 ‘용’이 제조한 마취약엔 버티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취봉을 조립하고 놈을 겨눈 사이 탐색을 마친 티라노사우루스는 호랑이 울음소리의 100배쯤 될 만한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아가리를 벌려 날 삼키려 들었다.

다행히 난 아직 야옹이와 교감을 유지하고 있어 재빠른 반사 신경으로 놈의 이빨을 피할 수 있었다. 대가리가 큰 탓에 방향 전환이 느리고 동굴의 안은 비좁아 놈은 자유롭게 날뛰지 못했다.

틈을 타 마취침을 발사했고, 혹시 몰라 세 발이나 더 쐈다.

쓰러진 티렉스를 바라보며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는다.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정말.

젠장!

고개를 돌려 ‘모른 척’하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마!”

등껍질에서 머리를 빼꼼히 드러낸 채 눈치를 살피던 악동 공룡은 내 호통에 황급히 숨었다. 들고 가 거북이 찜으로 만들어 버릴까 했으나 당한 놈이 멍청하지, 녀석이 뭔 잘못인가 싶어서 참았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깊이 잠들었으나 동굴을 벗어나는 내 발걸음은 ‘고양이’ 발걸음처럼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

“오오! 내 자료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차로 돌아와 출발하려는데, 한 명이 비었다.

“어디 갔어요, 이 양반은?”

“가이드 씨 도와준다고 쫄래쫄래 따라가시던데…….”

백수였다.

얌전히 차에 있으라고 했더니 괜한 의기로 날 따라나선 듯했다.

흐음, 날 도와주러 한 건 고마운데, 이상한걸? 전혀 그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백수를 찾으러 차에서 내렸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차에 올라탔다.

“여기 있었네! 하아, 하아. 한참 찾아다녔네.”

“오는 길에 마주칠 법도 한데 어디까지 가신 거예요? 위험하게.”

“가이드가 죽으면 우리들도 다 죽는 거 아닙니까. 어쨌든 빨리 출발합시다. 이제 지긋지긋해. 빨리 집에 가고 싶네.”

태도가 부자연스럽다.

내 능력 탓에 난 사람들의 눈치를 잘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려오는 건 아니지만, 동물의 마음을 관찰하는 습관으로 사람 또한 ‘생각’에 따라 표출되는 행동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거짓부렁이를 할 땐 타고난 사기꾼이 아니라면 대부분 말이 빨라지고, 호흡이 불규칙하며, 눈을 잘 못 마주치고, 얼굴 혈색이 약간 빨개진다.

문제는 그가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큼큼, 저기 도와주러 가다가 하나 꺾어 왔는데 뭐, 생태 조사가 과제라면서요?”

“어머, 꽃이네요. 색이 예쁘다.”

아니면 그냥 구애 행동 때문인가?

이 상황에 여자를 꼬시다니, 대단해.

*

맞은편 안전지대로 가는 길, 평야에서 다시 한 번 교수가 부탁했다.

“이런 젠장! 망할 도둑 공룡 때문에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가 엉망이 됐어요. 가이드, 자료가 더 필요한데 괜찮겠습니까?”

“뭐, 어쩔 수 없죠. 다들 여기에서 잠시 내릴까요?”

세 명은 찬성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백수가 반대했다.

“방금 일도 있고, 위험한데 그냥 가죠?”

“안전지대에 가까워서 공룡들은 오지 못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만약 공룡이 오더라도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해를 끼치진 않을 거예요. 정 그러시면 설치만 도와주시고 차에 남아 계세요. 이 차 안은 티라노가 덤빈다 해도 안전하니까요.”

“티라노… 아, 네 그럼 난 차에만 있을게요.”

“그러세요.”

만화가는 스케치를 하고, 여대생은 과제 조사를 위해 내리고, 난 교수를 도와 조사 장비를 설치했다. 지지대를 설치하며 생각했다. 거대 벌레와 악동 공룡만 제외하면 기계처럼 사이클에 충실한 생태계는 꽤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원장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대체 이 섬은 누가 ‘만들었나요’?

뀨우-!

하악-!

멍하니, 조사 결과만 기다리던 그때였다.

격하게 반응하는 포근이와 야옹이.

또한 나도 느꼈다.

이미 한 번 겪어 본 적 있는 위압감!

콰라라라-!

놈은 그곳에서 등장했다.

마치 내 시선을 따돌리듯, 숲에서부터 튀어나온 놈은 거대한 턱으로 차량을 순식간에 뒤집었다. 방어 모듈이 발동되어 차량은 끄덕도 없을 것이며 남자도 무사할 것이다.

그러나 티라노는, 명백한 먹잇감인 나와 세 명의 사람들을 두고도 오로지 차량만을 공격했다. 무차별적인 공격! 지구 최강 포식자의 사냥은 더할 나위 없이 흉포하고 사나웠다.

차량이 없다면 도망치지 못한다.

마취봉을 조립하여 놈을 겨누었다. 두 방이면 잠들 테니, 조사고 나발이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마취침을 맞혔음에도 움직임은 둔해지지 않았다. 마취약을 교체하여 다시 쏘았으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차량만을 공격하던 티렉스가 고개를 돌린다.

놈이 날 바라본다.

‘분노가 느껴져.’

두렵도록 시린 눈빛이다. 검은 눈은 분노로 가득했다.

사냥꾼이 저토록 분노한다.

기이했다. 먹잇감을 먹기 위해서라기엔, 너무나도 치우친 감정이었다.

“꺄악!”

“조용히! 자극하지 말게!”

쾅! 쾅! 쾅!!

놈이 달려온다. 그녀의 비명에 아차 싶었으나, 방향을 바꾸진 않는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두고 가만히 있는 내게 달려온다.

오로지 나를 향한 적의다.

“쓰읍.”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티렉스를 잠재우지 않으면 도망치지 못한다.

죽음.

어린 시절, 몰살을 겪은 후 도리어 익숙해진 죽음.

그것과 가까워지며, ‘스위치’가 켜졌다.

그러자 오히려 마음은 침착해지고, 정신은 뚜렷해졌다.

‘마취침이 깊게 박히지 않는다면.’

마취봉의 손잡이를 돌려 침을 돌출시킨 형태로 바꾸었다.

마취침으로 안 된다면 직접 마취봉을 놈의 살가죽 깊이 박아 줄 생각이었다.

냐앙-!

포근이와 야옹이는 달아났다.

하지만 날 버린 게 아니라, 날 믿어서였다.

야옹이와 동화되어 다시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다.

‘로데오를 하듯이.’

티라노사우루스는 비교적 방향 전환이 느리다. 그것 하나만이 유일한 약점이다.

그럼으로 내가 노리는 건 놈이 날 물어뜯기 전에, 옆으로 피해 마취봉을 쑤셔 박는 것.

만약 타이밍을 놓친다면 저 무식하고 거대한 덩치와 부딪힐 테고, 트럭에 부딪힌 듯 날아가고 말 것이다. 마물과 교감하여 튼튼해진 나라도 즉사, 혹은 불구가 되겠지. 그렇다고 무서운 나머지 빨리 피하면 마취봉을 제대로 찌를 수 없다.

야앙~!

긴장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이하게도, 의아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이 상황을 재밌어 한다면 난 미친놈일까?

콰라라!

마침내 지척까지 도달한 티라노를 향해 난 마취봉을 추켜들었다.

*

‘최강의 육식 동물은 무엇이냐’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인간의 호기심이었다.

사자와 호랑이를 같은 우리에 던져 놓고 싸우게 만드는 원시적인 방법에서, 이젠 생물학적으로 접근하여 최강의 맹수를 가린다. 의견이 분분하나 그중에 항상 거론되는 맹수가 있으니 사자나 호랑이 같은 고양잇과 맹수들이다.

하지만 만약 같은 덩치라면 무엇이 가장 강한 ‘포식자’일까?

자연의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몸집을 제외해 버린다면, 의외의 존재가 많이 언급된다.

주로 언급되는 동물들은 작지만 강한 능력을 가진 벌레들, 작은 몸집을 보완하기 위해 독특한 방어기제를 발달시킨 동물들이다. 특히 곤충의 능력은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개미가 호랑이만큼 크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

하지만 예상외로 많이 언급되는 동물이 있다.

바로 고양이다.

고양이의 능력이 다른 동물을 압도하는 건 아니나, 명백히 포식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녀석들은 최강을 거론할 때 빠져선 안 되는 위험한 동물이 맞았다. 23억 마리의 고양이가 123억 마리의 포유류를 죽인다. 가장 활발한 포식자며 그에 마땅한 능력도 지니고 있다.

야옹이와 교감한 다정은 사람만큼 커진 고양이, 혹은 그 이상의 신체적인 능력을 가졌다.

그가 티라노사우루스와 마주할 때 ‘재밌다’라고 느낀 건 착각이 아니며, 스스로가 미쳐 버린 것도 아니었다. 고양이들은 대체로 겁이 많은 편이나 수세에 몰린다면, 적과 확실한 상하 관계가 있더라도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또한 반대로 적이 확실하게 자신보다 약하다면 놀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본능이자 육감이다.

다정은 티라노사우루스를 마주하며 머릿속으론 자신이 거대한 육식 공룡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본능적으로 이 상황을 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난 티라노사우루스는 과연 최강의 프레데터답게 빠른 속도로, 그리고 흉포하게 다정에게 달려들었다. 15m의 초식 공룡조차 당하고 마는 사나운 공격이다. 하지만 다정은 쉬이 피해 내고, 마취봉을 놈의 두꺼운 가죽 깊숙이 박아 넣었다.

사냥법의 차이였다. 다정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속도와 민첩성을 압도했고, 방향 전환마저 자유로웠다.

게다가 ‘마취봉’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만약 순수하게 육체적인 싸움이었다면 다정은 티렉스를 죽일 수단이 없었겠지만, 이건 싸움이 아니라 제압이었다.

마취약은 티렉스의 혈관으로 침입했고, 격하게 움직일 때마다 빠른 속도로 전신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티렉스는 몸이 마비되는 과정에서도 적의를 내뿜으며 다정에게 덤벼들었다. 비틀거리면서도 달려오는 놈의 모습에 다정은 이질감을 느꼈다.

다시 한 번 마취약을 주입한다. 가지고 있던 예비 마취약까지 사용했다.

놈의 둥지에서 썼던 마취약의 용량의 5배에 다다른다. 이미 놈은 쓰러져야 했다.

‘대체 왜?’

그러나 놈은 다시 일어났다.

몸을 가누지 못하여 사방에 머리를 박아 댄다.

10t의 무거운 덩치는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큰 부하를 받았다.

다정은 티렉스의 절룩거리는 다리를 보며 골절을 입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녀석은 일어섰다.

다정은 생각했다.

단순한 사냥이 아니다. 먹잇감을 먹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며 놈도 마찬가지다. 놈의 둥지엔 먹잇감이 풍족했고, 자신처럼 작은 먹잇감을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기할 필요가 없었다.

동물은 인간과 달리 지극히 합리적이다. 특히 포식자들은 이토록 불합리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폭군이라 불리는 더러운 성질 때문일까? 아니야. 보다 설명이 가능한 다른 이유가 있다. 불합리함을 감수할 어떤 이유. 자연에서 자신의 생존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건 무엇이지?

단 하나다.

다정은 알았다.

그동안 마물들과 교감하며 그 무엇보다 거대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바로 모성애다.

다정은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티렉스를 향해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교감의 끈을 던진다. 티렉스는 고고한 폭군, 평소의 녀석이라면 절대 다정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원하고 있었다. 포식자의 자존심보다 앞선 무언가에 의해 대화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느낀 건 지독한 분노,

하지만 곧 오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 거였구나.’

다정이 할 수 있는 건 거짓 없이 사과하는 것.

산불처럼 격렬했던 분노가 천천히 불씨를 잠재운다.

교감의 힘은 폭군 티렉스마저 진정시켰다.

“미안하다.”

네 둥지에서 날 먼저 공격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날 바라보며 불쾌한 듯 적의를 내뿜었던 이유는, 당장이라도 날 씹어 먹을 수 있었음에도 날 보내 줬던 이유는, 네 뒤에 알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그리고 천 길을 따라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이유는 네 새끼를 되찾기 위해서였구나.

하지만 난 네 알을 훔치지 않았어.

그러니 내가 아닌…….

다정은 뒤를 돌아봤다.

돌아본 그의 시선을 마주한 남자는 가슴을 옥죄는 공포를 느꼈다. 어두컴컴한 바다 깊숙한 곳에 빠진 듯 가슴이 답답해 온다. 소름이 돋아 피부가 간지럽다. 그러나 저항할 수는 없었다. 감히, 그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수억 년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포식자의 눈이다.

하얀 눈동자와 기괴할 만큼 작은 검은 눈동자. 진의를 알 수 없는 사냥꾼의 눈에선 오로지 먹잇감을 뜯어 먹겠다는 열의만이 느껴졌다. 남자는 그가 인간임을 알아도, 자신이 잡아먹힌다는 생각을 했다.

간신히 손을 뻗어 차량의 문을 잠근다. 그럼으로 약간의 안도감을 얻는다.

티렉스의 공격도 버텼던 튼튼한 차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정이 점점 다가올수록 확신은 의심으로 바뀌었다. 정말 안전한가? 난 이 상황에서 과연 살 수 있는가? 그는 죽음을 느끼며, 멍청하게도 그 원인에 대해선 망각해 버렸다. 자신이 이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마저 잊어버릴 만큼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침내 차량의 앞에 선 다정은 손을 뻗어 차 문을 열고자 했다.

그러나 차 문은 잠겼다. 그리고 안에 있던 남자는 열어 줄 생각이 없었다.

콰드득-!

그래서 뜯어 버렸다.

용이 고안한 마법 골렘이 손쉽게 파손된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공격에도 버텼으나, 티라노사우루스와 교감을 나눈 다정의 괴력은 버티지 못했다. 보다 밀집되고 응축된 힘이었기 때문이다. 생물의 한계를 넘어 다정은 손아귀의 힘만으로도 티렉스의 턱 힘과 맞먹었다.

남자는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으나 도망칠 곳은 없다.

황급히 반대편 차 문을 열고자 했으나 다정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다리를 붙잡는다.

“내놔.”

포식자의 눈을 마주한다.

남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숨이 막혀 온다.

인지를 아득히 벗어난 공포에 혀와 입술이 굳어 버린 것이다.

“대답 안 해?”

끄악-!

공포가 고통으로 덧씌워진다.

다정이 손아귀에 힘을 줄 때마다 남자의 다리는 마치 빨랫감을 짜듯 손아귀 형태 그대로 바뀌어 갔다. 남자는 비명과 함께 다급하게 외쳤다.

“뭘!”

다정이 힘을 푼다.

“무… 무슨 말인지 모… 모르겠어요.”

고통에 정신을 차린 남자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는 잘못 선택했다. 바른 말이 아닌 거짓말을 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거짓을 택한 건 남자가 타고난 성정 때문이다. 그는 공포와 고통으로 얼룩져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고, 결국 버릇대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모른 척하지 말고.”

뿌득-!

다정은 남자의 다리를 분질렀다.

그래도 병원에 간다면 후유증 없이 다시 붙을 만큼, 깔끔하게.

이마저도 자비다. 티라노와 교감을 나눈 다정은 그의 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이 흉포해졌다. 당장이라도 남자의 목을 비틀어 버리지 않는 게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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