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36화 (36/258)

# 36화 마물 콘테스트 (3)

나무 문 따윈 쉽게 뜯어냈다.

사무실은 최근까지 사용했는지 깨끗했다. 보관함을 뒤적거리던 난 자물쇠가 잠긴 보안 보관함에서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허접한 새끼들.”

세상에,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종이로 ‘장부’를 만들어?

“이런 곳이 일곱 군데나 더 운영되고 있다는 거지?”

장부에는 친절하게도 연결된 커넥션을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모두 이곳, 공업 지대의 폐 공장을 마물 창고로 이용하고 있었다.

망설일 이유는 없다.

난 다음 공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걸음을 늦춰야 했다.

‘능력자.’

그들은 딱 봐도 구분이 가능하다.

생김새와 들고 다니는 무기, 또한 풍기는 위압감도 모두 ‘인간’과 다르다. 쉬운 얘기다. 사람의 야생 본능이 퇴화되었다고는 하나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놈들은 사람, 그러나 육식 동물.

첫 번째로 턴 공장은 작은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이곳은 마츄나 부랄 쥐보다 훨씬 위험한 마물들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몸값이 비쌀 테고, 비싼 곳엔 언제나 헌터들이 있다.

드러난 헌터만 해도 세 명이다.

공장안에는 확실히 더 많겠지.

“포근아.”

포근이의 힘을 빌리자, 검은 총과 칼은 불길이 타오르는 붉은색으로 변해 갔다.

대체 나는 왜 덤비는 걸까?

원장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쉬운 일인걸?

답을 내리기엔 애매하다.

다만 많은 이유로 내 마음은 움직이고자 했다.

아마, 첫 번째로 달라지고 싶어서겠지.

별 볼 일 없던 내가 마물원에 다니며 힘을 깨닫게 되었다. 잉여 인간에 머무르지 않은 나는 ‘가능성’이 있음을, 스스로를 믿게 되었다.

두 번째는 공장 안의 마물들이 외치는 살려 달라는 비명이 너무 아팠다. 언제나 스스로의 생존에 대해서만 싸워 온 난 외면하고 있었다.

…….

젠장.

하고 싶은 걸 ‘해 버리는’ 용기는 얼마나 큰 걸까?

붉은 총을 겨눈다.

잔뜩 기운을 모으고 마침내 헌터들을 향해 발사했다.

쾅-!

“D! 습격이다, 전방 경계!”

콘크리트 벽을 뚫던 위력이다.

능력자라서 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중상을 입힐 만큼 강력하다.

소동이 벌어지자 공장 안에서 세 명의 헌터가 나왔다. 이로서 상대해야 할 적은 다섯.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될 줄이야.’

전이 이후, 싸움이 많아졌다.

우후죽순으로 탄생한 능력자들의 싸움이다. 그들의 싸움은 갈수록 더 늘어났다.

어쩌면 사람이야말로 본능에 가장 충실한 동물이 아닐까? 야생의 짐승들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 암컷과 먹을 것을 독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특히나 평범한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면, 결국 우두머리처럼 군림하고자 한다.

지금 상황은 약간 다르긴 하지만 결국 목적은 다를 바 없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다.

놈들은 능력자이나 뛰어난 편은 아닌 듯했다. 하긴, 공장이나 지키는 가드인데.

급습에도 내 위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난 총을 집어넣고, 다시 멀리서 날 지켜보는 야옹이로부터 힘을 빌렸다.

순간의 판단이다.

총을 발사하면 위치가 발각되고,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 한 명을 해치워도 5 대 1의 승부, 내가 불리해.

마침 날은 저물어 간다.

황혼이 찾아오고 노을이 진다.

‘천천히 움직이자. 안달 난 건 놈들이다.’

싸움인가, 사냥인가?

둘은 엄연히 다르다. 사냥은 싸움과 달리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스스로의 몸을 지키며, 확실하게 사냥감을 제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싸움이 아닌 사냥을 택했다.

조용한 사냥꾼이 되고자 했다.

어느덧 밤이 찾아오고, 은밀한 짐승과 동화된 난 어둠으로부터 기척을 완전하게 지웠다.

*

작동을 멈춘 공장 지대, 밤이 오자 어둠이 내리고 마침 구름에 달빛이 가려 주변이 온통 어두컴컴해졌다.

빛 한 점 없는 이곳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사냥터다. 어둠 속에서 야간 투시경이 없어도 내 눈엔 환하게 보였다.

달그락!

폐자재를 무너트리자 헌터들이 반응한다. 공장 사이의 뒷골목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다가온다. 헌터들은 손전등을 켰으나, 모든 곳을 비추기엔 턱도 없었다.

사냥, 대부분의 짐승들이 그러하듯 난 사냥감에겐 불리하되, 사냥꾼은 가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로 먹잇감을 유인했다.

‘총기를 사용하는군.’

다섯 헌터 모두 우지 따위의 기관 단총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육탄전에 강한 능력자들은 아니다.

폐자재로 만든 장애물에 몸을 숨긴 채 놈들을 관찰했다.

내 힘으로 놈들의 화망(火網)을 뚫을 수 있을까? 아니, 다섯은 무리야. 반사 신경이 뛰어나도 근거리에서 총알을 피할 만큼은 아니다.

‘조금만 더.’

하지만 문제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사냥은 ‘고양이’의 사냥이 아니다.

사냥은 영리해야 한다.

그리고 난 지구에서 가장 영리한 사냥꾼의 방식을 택했다.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걸어 들어오던 헌터들, 선두에 선 자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그러며 다급하게 외쳤다.

“A! 멈춰! 함정이다!”

그자는 움직일 수 없었다.

거미줄의 세기는 섬유의 두 배고,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수십 배다.

또한 인간을 잡아먹는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지독한 점성을 가지고 있다.(난 아라크네의 둥지를 걸을 때 용이 특수 제작한 기름 슈트를 입었다.)

‘입이 끈적거려, 젠장.’

시간이 없어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거미줄을 뱉어 냈다. 추한 꼴을 당했으나 효과는 있었다.

선두에 선 두 명이 장애물에 의해 가려진 시야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내가 준비한 트랩을 밞았다. 안간 힘을 쓰며 발버둥 치나 끈끈이에 걸린 바퀴벌레다. 전혀 소용이 없다.

“행동을 멈추고 밀집 대형으로!”

선두에 선 헌터가 대장인 듯 그의 명령에 세 명의 헌터들은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트랩을 피하고 적의 기습을 대비하기 위해 등을 맞대고 전방을 주시한다.

‘좋아.’

그리고 이건, 내가 원하던 전개다.

애초에 내가 불의 탄환이라는 편리한 수단을 포기한 이유는 헌터들이 가진 대응력 때문이었다.

내 위치가 발각되면 총알이 빗발친다. 그러니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기동을 봉인하고, 한 번에 다섯 헌터를 모두 제압해야 했다.

아니면 보다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싸우지 않고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바스락-!

“후방 경계!”

“선발 사격하라!”

손전등의 빛이 비추자 재빨리 장애물 뒤로 숨었다. 총알이 빗발치나 목표 없는 눈먼 사격이다. 맞을 리가 없다.

내 위치를 파악해도 헌터들은 사격만 할 뿐, 제자리에서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적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하기만 했으니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다.

이 ‘사냥’의 결과는 녀석들이 내 사냥터에 들어온 순간부터 결정되었다.

우엑!

목구멍이 따갑다. 거미줄을 이렇게 많이 뱉어 본 건 처음이네.

놈들이 지나쳐 온 곳마다 폐자재의 위치를 바꾸어 장애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틈틈이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뱉어 함정을 만들었다.

무당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사냥감을 잡는다.

즉, 굳이 내가 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체되자 세 명의 헌터는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끊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평범한 검으론 절대 자르지 못한다.

이계 무기를 가졌다면 모를까.

결국 그들은 정체 모를 적을 없애기 전까진 고착화된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움직인다.

바닥에 함정이 있다는 걸 학습하여 손전등으로 꼼꼼히 바닥을 살피며 골목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거미줄은 지뢰 따위가 아니다.

헌터들이 드럼통과 철골 자재들로 가로 막아 좁아진 통로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갈 때, 드럼통에 묻혀 둔 거미줄이 놈들의 옷과 팔뚝에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일단 한번 당하면 손 쓸 도리가 없다. 역겹게만 느껴졌던 아라크네의 능력이 잘 쓰기만 하면 이렇게 강력하구나.

결국 빠져나온 건 한 명.

재빨리 달려가 그의 마빡을 후리며 기절시키는 걸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 속수무책으로 당한 헌터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비록 이능력이 없으며, 육체 강화 따위를 가진 약한 헌터들이었으나 다섯, 그것도 총을 든 자들을 무력화시켰다.

본능적인 계략이 통했다.

어둠과 폐자재, 거미줄을 이용했으나 다른 환경이었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짓을 해 보지 않았기에, 정말 해낼 줄은 몰랐다.

괜히 뿌듯하다.

‘이제 마물들을 구하러 가 볼까.’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공장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처음 드는 생각은 얼굴에 묻은 무언가가 너무 따뜻했다는 것. 뒤이어 그게 내 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이 따끔했다.

“어?”

고통은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선을 내려 왼쪽 팔을 바라봤다.

없었다.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검붉은 피를 쏟아냈다.

“아… 아아악!”

마침내 견딜 수 없이 아파 왔다.

설 힘조차 없어 쓰러졌다. 잘려 나간 팔을 붙잡자 오른손이 피로 물들어 따뜻해진다.

아악-!

쓰러져 비명을 토해 냈다.

찰나의 순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재빨리 고개를 돌려 헌터들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여전히 거미줄 함정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상치 않군.”

하지만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제키만큼 기다란 봉, 아니 창을 쥔 채로 내게 걸어왔다.

날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저 새끼가 내 팔을 잘라 낸 범인이다.

‘생각을…….’

남자는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내 팔을 잘라 냈다.

단번에 총기 따위를 사용하는 형편없는 헌터들과 격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젠장.’

“본대와 연락이 끊기더니, 이제 지부의 창고마저 위치가 발각되었다. 정말 심상치 않군.”

서투른 한국어, 한국 사람이 아니야. 성조가 남은 말투, 중국인인가? 옷에 새져진 ‘업’을 상징하는 문양. 카르마 길드…….

강한 헌터, 잘려 나간 팔.

내가 어떻게 해야,

내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지?

‘크윽, 고통 때문에 머리가 잘 안 돌아가.’

다섯의 헌터들과 싸워 무력화시킨 게 처음이듯, 이런 상황도 처음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 같아선 연신 욕을 내뱉으며 놈의 변발한 머리를 놀려 주고 싶으나, 그렇게 하면 날 죽이겠지.

‘방법.’

결국 찾은 방법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 주머니 안의 비상벨, 원장님을 불러야 돼.

“멈춰라.”

하지만 오른손을 움찔거리는 순간, 다시 한 번 ‘먼 거리’에서 창이 휘둘러져, 내 어깨를 무참히도 파고들었다.

크악!

창날이 늘어났구나.

망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 저런 눈을 가진 ‘생물’을 많이 봐 왔다. 굶주린 맹수의 눈, 놈은 확실히 짐승의 눈을 하고 있다.

놈은 대수롭지 않게 다가와 창을 내 목에 겨눴다.

“너, 아는 것을 말해라.”

무엇에 대하여?

생각할 때, 놈은 내 어깨를 다시 한 번 찔렀다.

상처가 타오르듯 뜨겁다.

‘놈은 날 죽일 생각이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3초마다 몸에 구멍을 내겠다.”

다시 한 번 찌른다.

야옹이와 교감하여 강화된 내 몸이 놈 앞에선 마치 두부라도 된 듯, 날은 너무나 쉽게 살에 박혔다.

‘이러다가 진짜 죽어.’

고통으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꽉 붙잡는다. 오히려 죽음이 다가오자 냉정해진다. 손톱을 뽑아, 기회를 노려. 방심할 때 목을 찌른다.

아마 유일한 기회가 되겠지.

“이제 내장을 노리겠다.”

창이 추켜올려진다.

내 배를 찌르는 그 순간, 난 오히려 놈의 품으로 파고들어 손톱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놈은 내 손톱이 얼마만큼 날카로운 무기인지 모른다. 쉽게 풀리진 않겠지만 부디 먹히기를.

하지만,

그때였다.

뀨!

“안 돼!”

지켜보던 포근이가 뛰어왔다.

팔이 잘려나갔을 때부터 간절히도 바랐다. 절대 너희들은 나서지 마렴.

하지만 숨어 있던 포근이는 견디지 못했다. 녀석도 두려움을 안다. 하지만 녀석은 내 죽음을 더 무서워했다.

“탈출한 마물인가?”

창날이 내가 아닌 포근이를 향한다. 짐승의 이빨은 무참히도 포근이를 난도질하겠지. 포근이가 마물이라고 하더라도 확실히 죽을 것이다.

안 돼.

녀석은 내 아이다.

그래,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내 아이다. 내 몸에서 나온 불을 먹이고, 내가 키우는 아이다. 난 녀석을 사랑하고, 녀석도 날 사랑한다.

그러니 마물과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내 가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아이.

지켜야 돼.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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