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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37화 (37/258)

# 37화 마물 콘테스트 (4)

그는 순간 심장을 옥죄는 공포를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다섯 번의 뜀박질로 10m 이상을 도망친 남자는 독문병기 쾌타룡창을 쥐며 주변을 살폈다.

‘무시무시한 살기를 느꼈다.’

남자의 이름은 청운(靑雲)이다.

카르마 길드 한국 지부의 부부장이며, 카르마 길드가 내세우는 무력 단체인 화덕진군의 병사다.

또한 화덕진군 휘하, 기이한 병기를 주로 사용하는 초두라(招杜羅)단의 조장급 실력자이기도 했다.

그는 헛똑똑이가 아니다. 자신이 고문하던 남자의 조력자가 있을 거라는 건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따라서 창날이 쾌타(快打)하며 뻗어 나가 쾌타룡창이라 불리는 이계의 무기로 언제든지 찌를 준비를 하며 살기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청운은 카르마 길드의 베테랑 헌터였으나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경매가 열리고 있어야 했던 장소는 아무것도 없이 공허했다. 아침에 경호하며 시끌벅적함을 확인했던 청운이다. 하지만 잠시 교대를 하는 사이에 완벽하게 ‘사라졌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청운은 지금 살기를 내뿜은 자가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조차 휘청거릴 만큼 두려운 살기를 내뿜었기에.

“난 카르마 길드의 청운이다. 누군지 몰라도 나오지 않으면 이자를 죽이겠다.”

청운은 극도로 날카로워진 감각을 유지한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이 고문하던 남자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제야 깨닫는다.

살기의 근원이, 방금까지 죽어 가던 저 남자라는 걸.

청운은 사라진 카르마 길드와 마물들을 찾아 지부가 관리하던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용한 현지 헌터들을 제압하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능력자들은 대부분 정신이 강하다. 이자는 약했으나 그래도 능력자, 원하는 정보를 캐묻기 위해선 섣부른 고문으론 되지 않는다.

많은 경험으로 능력자들을 고문하는 법을 깨우친 청운은 남자에게 확실히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새겼다.

그렇게 남자의 몸에 수많은 구멍을 뚫었다. 분명 완벽히 상위의 위치에 있었다.

‘힘을 숨긴 건가? 아니야. 이상하군.’

그러나 지금, 죽어 가던 남자가 자신을 오싹하게 만드는 살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저 남자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기이하군.”

팔이 잘려 나가고, 진즉에 과다 출혈에 이르렀을 중상을 몇 군데나 입은 남자가 상처에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초재생 능력을 가졌나?’

또한 순식간에 팔이 ‘돋아나 듯’ 재생되고, 창에 의해 뼈까지 관통한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청운은 쾌타룡창을 움켜쥐었다. 초재생, 성가신 능력이긴 하나 불사의 힘은 아니다. 머리나 심장을 잘라 내면 죽는다. 청운은 이미 초재생 능력자와 격전했던 경험이 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대체 넌 정체가 뭐지?”

남자의 몸에서 ‘거대한 가시’가 돋아나기 전까진.

청운은 생각했다.

초재생 능력이 아니다.

저 모습은 변형, 아니 변질. 아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다. 수많은 능력자들을 만났으나 저런 능력은 처음이다. 대체 저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떠오르는 건 있었다.

저 남자의 모습은 마치…….

마치 마물과도 같아.

*

말했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게 난 놈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목소리는 대답했다.

‘힘을 빌려주겠다.’라고.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창날이 아주 느릿하게 뻗어진다.

바라본다.

포근이와 헌터의 뒤편,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마물 공장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지금도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포근이를 죽이려는 놈은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로지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공장, 갇혀 있는 마물 중 하나.

가장 강력한 기운을 가진 녀석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 자여, 나로 하여금 네 욕망을 풀지어다. 내키진 않으나 난 거부할 수가 없다. 너 또한 받아들여라. 처녀의 심장을 바치는 대신, 네 증오를 받은 자의 피를 다오.]

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창날은 포근이를 향해 휘둘러졌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는 난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그러자 잘려나간 팔이 꿈틀거리며 피와 신경 다발이 스스로 뭉치더니 이내 새로운 육체로 바뀌어 갔다. 또한 골절된 뼈와 내장이 수복되고, 상처마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철철 흘러나오던 피가 멈추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신에서부터 가시가 돋아났다. 아니, ‘뿔’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알맞을 것이다. 난 정체 모를 마물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녀석은 내게 힘을 빌려줬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다시 시간이 원래대로 흐른다. 실제로 시간이 느리게 흘렀던 건 아니다. 다만 ‘느려진’ 시간을 체감했을 뿐이다. 놈보다 아득하게 강한 위치에 올라 몇십 배나 민감해진 감각에 의해서, 다른 시간대를 찰나 동안 느낀 것이다.

“대체 넌 정체가 뭐지?”

당황하는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교감한 마물은 너무나 흉포하여 내 이성을 제어할 수 없었다. 녀석이 바라는 대가는 내가 증오하는 자의 목숨.

지독한 살인 욕구.

저항하려고 하면 저항할 수 있겠지. 하지만 굳이 난 ‘저항’하지 않았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창을 휘둘러 왔다. 처음 봤을 땐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을 꿰뚫던 벼락같은 공격이었으나, 이젠 너무 느리게만 느껴졌다.

피할 필요가 없다.

내가 더 빠르기 때문에.

휘둘러지는 창을 무시하고 달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목을 비틀어 머리를 떼어 냈다. 잠자리의 날개를 떼듯, 너무 쉬웠다.

죽은 남자를 무심히 바라본다.

그러다 등에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포근아.”

내 몸은 아직까지 가시투성이의 흉한 꼴이었으나 포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겨 왔다.

따뜻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물이라고 하여도 죽음은 두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녀석은 날 위해 죽음도 불사했다.

냐앙~!

“야옹아.”

검은 고양이, 야옹이도 쓰다듬어 달라는 듯 머리를 내밀었다. 녀석은 포근이와 달리 태평했다.

“뭐야?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다고 모를 줄 알아? 너 내가 죽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굴었잖아?”

냥!

그러자 야옹이가 심술난 듯 내 다리를 툭툭 쳤다. 그래, 알고 있어. 농담이야.

짐작이긴 하나 녀석은 당연히 내가 ‘죽지 않으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날 믿어 준 것이다.

두 마물을 안고 공장으로 향했다.

“너였구나.”

내게 힘을 빌려 줬던 마물.

공장 안, 가장 깊숙하고 은밀하게 숨겨 둔 장소. 다른 마물들과 달리 주술적인 결계와 장치들로 가득한 우리 안에서 녀석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생김새는 거대한 황소와 같았다. 다만 전신에 황소의 ‘뿔’이 돋아나 있으며, 소의 눈빛이라기엔 너무나 시리고 두려운 눈을 하고 있었다.

위험 등급 마물들을 만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녀석이었다.

“고맙다.”

그러나 내겐 은인임이 분명했다.

*

장부를 따라 여섯 군데의 공장을 제압했다. ‘녀석’의 힘을 빌리는 한, 내겐 너무 쉬운 일이었다.

얼마 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원장님에 의해 황소 마물을 포함하여 모든 마물이 마물원의 우리로 전송되었다.

하지만 난 아까부터 느끼던 찜찜함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살인을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일은 내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놈을 죽이고자 선택한 건 나였으니까. 지금이 예전 ‘세계’도 아니고, 누군가를 죽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자가 날 고문하고 죽이려 한 자이며, ‘가족마저 해치려 한 원수’였으면 그다지 애달픈 일도 아니지.

다만.

‘이렇게까지 했어도 공급자는 많겠지. 수요는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헌터의 일이라…….’

위험한 마물들을 사냥하고 흉악한 이계인들을 제압하는 그들, 지금까지 멀게만 느껴지던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깝게 느껴졌다. 나도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 것과 다름없다.

불행히도 부정적으로 느껴졌지만.

마물 전송을 끝마친 원장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다정 씨, 이번 일에 대해서 말해 줬을 때, 솔직하게 말해서 전 정말 기뻤답니다. 호호호, 다정 씨는 역시 ‘키우는’ 맛이 있을 것 같네요.”

“네? 죄송해요. 딴생각하느라 못 들었습니다. 무슨 맛이 있을 것 같다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호호.”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네.

…….

“원장님.”

난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 줬다. 혼자서 다섯의 헌터를 제압한 것, 카르마 길드의 헌터에게 죽을 뻔한 위기, 그리고 황소 마물과 교감하여 위기를 벗어났으며, 헌터를 죽였던 일까지.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소 마물에 대하여 설명해줬다.

“그는 아즈모타카라는 원시 세계의 마물이에요. 그곳에서 때론 신으로 추앙받기도 할 만큼 꽤 격 있는 마물이죠. 그 정도 되는 마물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니, 헌터들에게 당할 존재는 아니나 전이에 휩쓸린 후유증으로 약해진 상태더군요.”

때론 신으로 추앙받는다라,

확실히 강력한 기운을 내뿜던 마물이었지.

“힘을 회복하면 원래 있던 세계로 돌려보낼 생각이에요. 포획당한 게 분했는지 복수를 하고자 하는 모양이지만… 어쩌겠어요? 달래서 보내야지.”

황소 마물은 대단히 흉포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근데 걔, 원래 그럽니까?”

“네?”

“츤데레도 아니고 내게 힘을 빌려 주는 걸 상당히 못마땅해하면서도 잘도 빌려주더라고요. 마치 누군가가 강압이라도 한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빌려주는 듯한…….”

“아! 네. 맞아요. 좀 이상한 마물이긴 하죠. 추앙받는 주제에 신도들의 심장을 빼먹는 놈이라니까요. 아하하.”

이상하다.

원장님이 원래 저렇게 웃음이 많았던가?

*

‘그것’이 일어나기 전까진 여유가 있으니, 하루 동안 휴가를 더 준다고 했으나 마다했다.

지금 상태론 쉬어도 쉬는 게 아닐 것 같았다. 이상하게 피곤하지도 않고, 날도 밝아오니 곧바로 출근하기로 했다.

용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관리실에 도착했다. 원장님을 따라 에스프레소를 빼 마시던 난 문득 어떤 것이 생각이 나, 그녀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원장님, 저번에 나 왕 시켜 준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원장님은 뜻밖의 질문에 빨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어머, 농담이었는데.”

“그렇죠? 저도 진지하게 물어본 건 아니에요.”

“뜬금없이 왜 물어봤어요? 진짜 왕이라도 하고 싶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아무래도 ‘왕’이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겠죠?”

원장님은 씩 웃었다.

“그렇게 쉽진 않을 거예요.”

*

오후까지 관리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 원장님이 내게 창고의 비품을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다정 씨, 이것 좀 옮겨 주세요.”

“네?”

절로 말대답이 나온다.

뭐지?

창고에 있던 건 쇠로 만든 ‘마물 전용’ 장난감. 저게 몇 kg인지 모른다. 한 번도 들어 볼 생각이 없었고, 들지도 못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연약한 여자가 들긴 무겁잖아요. 오호호.”

새로운 농담인가?

용들 사이엔 저런 엄살 섞인 농담이 통하는가? 지상 최강의 생물이 연약하다고? 진짜?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일단 지시 사항이니 부탁한 대로 옮기는 시늉을 했으나 역시 들지 못했다.

“무거워서 못 들겠어요!”

낑낑거리고 있자 원장님이 말했다.

“왼손만 사용해서 들어 보세요.”

아니, 양손을 써도 안 되는데 왜 한 손만 쓰래? 내가 뽀빠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그래도 원장님(정확히는 용)이니 장난인지 뭣인지 모를 장단에 어울려 줬다. 그런데 왼손으로 쇠뭉치 장난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봐요. 내가 이걸 어떻게 들… 긴 들었네. 어라?”

콰앙!

땅에 놓자 굉음이 난다.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분명 쇳덩어리로 만들어졌는데.

당연히 들지 못하리라 생각했기에 가볍게 들었다. 다시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왼손으로만 있는 힘껏 쇠뭉치를 들어 올렸을 때, 콰앙-!

창고의 천장이 박살났다.

날아가 버렸다, 장난감.

‘딸근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되나?

“힘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셔야겠네요. 오호호.”

원장님은 손가락을 한 번 튕겨 순식간에 무너진 창고를 복구시켰다. 그리고 내게 사실을 알려 줬다.

알고 보니 황소 마물, 녀석과 교감하며 내 유전 형질이 달라졌단다.

왼팔이 특히 강한 건 잘려 나간 팔이 마물의 힘으로 새로이 돋아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원장님의 도움과 반나절 동안의 훈련으로 왼팔의 비정상적인 괴력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젠 전체적으로 힘이 강해졌다. 원래 육체가 가진 한계를 넘어 괴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아라크네 때와 다르다.

난 이번 일로 인하여 ‘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저 빼앗고 군림하기 위해서만 힘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지키는 것에도 힘은 당연히 필요했다.

‘나쁘지 않아.’

내가 정말 달라지고 싶다면, 이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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