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큰 게 최고다
“카르마 길드…….”
집으로 돌아온 난 곧바로 컴퓨터를 켰다. 카르마 길드의 헌터를 죽인 건 아무런 여운이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쉽게 잊힐 일은 아니었다.
검색 엔진에 카르마 길드를 검색했다. 광고 수익을 위한 어그로 정보가 대부분이나, 나름 타당한 근거를 가진 그럴듯한 정보들도 있었다.
카르마 길드가 중국 거대 범죄 조직을 전신으로 세워진 길드라는 건 유명한 얘기다.
하지만 그 외의 정보는 소문만 무성했다. 이계에서 넘어온 무림인에 의해 세워졌다느니, 그들이 무공(武功)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도 사실 무림이라 불리는 이계의 세력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 등등.
그러나 많은 소문 중에 좋은 소문은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지간히 미친 새끼군.”
인터넷 웹 사이트를 돌아보던 난 흥미로운 동영상을 발견했다.
유명 동영상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영상이었다.
게시일이 최근 일자며 조회수가 낮은 걸 보니 삭제를 당해도 누군가가 계속해서 올리고 있는 듯 보였다.
즉, 이 영상의 내용을 퍼트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영상을 보다 보니 절로 표정이 찌푸려진다.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하긴 저 정도 미쳤으니 이 정도 악명을 얻은 거겠지.
동영상에선 처음부터 자신을 카르마 길드의 수뇌부라고 칭하는 남자가 나왔다.
중국 전통 의상, 현대의 것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복장이다.
변발을 했으며 눈은 부리부리하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고집이 세 보였다. 카르마 길드의 악명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완전히 공개한 채로 미디어의 앞에 선 것이다.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보아라. 난 왕이 되고자 한다.]
장난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남자가 말하니 진담으로 느껴진다.
[예부터 창칼에 나약하고, 독에 무력하여, 밤의 암살자를 두려워하고, 낮의 신하를 의심하는 얼뜨기들도 왕이라 불리며 백만의 백성 위에 군림했다.]
남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자신의 광오한 신념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제 한 존재가 백만의 병사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내가 어찌 범인들과 같은 위치에 서야 하느냐? 어찌 그런 위대한 힘을 가진 자를 왕이라 부르지 않을쏘냐?]
댓글의 반응은 놀랍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은 ‘반’에 지나지 않았다.
┗ 아, 또 어그로 영상 올라오네. ㅅㅂ 관리자 일 안 하냐?
┗ 먹이를 주지 마시오.
┗ ㅂㅅ 엌ㅋㅋㅋㅋㅋ 왕이 되겠다래 ㅋㅋㅋㅋ 중2병 오짐ㅋㅋㅋ┗ 근데 저 새끼 말 중에 좀 혹하는 건 있지 않냐?
나머지 반은 저 남자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조의 댓글을 남겼다.
┗ 1급 마나를 보유한 능력자가 마음먹고 깽판 치면 진짜 다 ㅈ될 것 같은데. 막말로 드래곤이 갑자기 ‘인류 멸살 ㅅㄱ염.’ ㅇㅈㄹ 하면 어떻게 막음 ㅋ
난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늘 벌어지는 방구석 전문가들의 의미 없는 토론이다. 사실 남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영상 속의 남자가 했던 마지막 말은 머릿속에 남아 잠에 들 때까지 계속 생각났다. 특히 강렬하게 느껴졌던 하나의 문장.
[너희들이 쌓아 올린 체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붕괴될 것이다. 전이 이후의 세계를 대비하라.]
전이 ‘이후’의 세계.
*
오늘은 원장님이 며칠 전부터 말했던 ‘그 일’이 벌어지는 날이다.
전이 이후의 지구에는 기존의 생태계를 위협하는(동식물만 아니라 인간의 터전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재앙들이 수시로 발생했다.
대부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어떤 사건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원장님과 해결해야 할 사건은 많은 사건들 중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마물에 의해 발생하는, 자세히 설명하자면 바다거북에 의한 재앙이었다.
일의 중요도나 규모로 따진다면 지금까지 마물원에서 일하며 맞닥뜨린 일 중 가장 큰 사건이기도 했다.
바다거북을 상대하는 게 인류 터전을 지키는 중대한 사건이 된 건 전이가 발생한 뒤 3년, 그러니까 17년 전에 발생한 재앙 때문이었다.
재앙의 시작은 태평양에 나타난 거북이 무리.
이제 인류는 놈들을 대륙 거북이라고 부른다.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가 없다.
왜냐면 놈들의 덩치가 ‘대륙’ 스케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땐 환태평양 지진대에 발생한 큰 지진의 전조인 줄 알았다.
일본, 알래스카, 칠레를 덮친 해일 때문이다. 그러나 지질학적 징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내 인공위성 사진에 찍힌 놈들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마물’이 일으킨 재앙임을 알아차렸다.
우습게도 세계 여러 도시를 수몰시킨 해일은 크기가 산만 한(과장이 아니다.) 거북이 수십 마리가 태평양을 횡단하며 생긴 여파였다.
첫 전이가 발생한 지 3년, 그땐 확립되지 않은 비상 체계와 대응 인력이 부족하여 마물이 일으키는 재앙에 고스란히 타격을 입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난 똑똑히 기억했다. 종말이 다가온다며 난리법석이던 어른들을. 나도 종말인가 싶었다. 뭐, 결국 인간은 이런 세계에 적응해 버렸지만.
어쨌든 마물에 의해 첫 발생한 자연재해에 맞먹는 재앙은 3년 뒤, 또다시 발생했고, 그 후 3년의 주기마다 놈들이 태평양을 횡단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세 번째 발생 때부턴 인류는 착실하게 대응했고, 네 번째 재앙에는 거대 거북이들의 기묘한 행동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다.
알을 낳는다.
거북이들은 단지 지구에 알을 낳기 위해 바다를 횡단하며 인류의 터전을 위협했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지옥의 산란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구로 전이당한 마물들 중에서도 가장 큰 덩치임이 분명한 대륙 거북이들은 오랫동안 연구해 온 마물이었으나,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다.
놈들이 어디서 와서, 또 알을 낳고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놈들이 알을 낳는 장소가 정해져 있으며, 알의 크기가 성체에 비하여 무척이나 작아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알아냈다.
난 원장님으로부터 지옥의 산란철에 대하여 들었을 때, 당연히 대륙 거북이들을 포획하여 마물원이나 원래 살던 세계로 돌려보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장님은 예상 못할 말을 했다.
“알을 구해야 합니다.”
“알이요? 녀석들의 알?”
원장님은 거대 거북이에 대해서가 아니라, 녀석들이 낳은 ‘알’을 수거해야 한다고 한다.
이유가 궁금했다.
“알을 왜……? 데려다가 부화시키시려고요?”
“그럼 의미가 없죠. 지구는 아직 녀석들이 살던 세계에 비하면 너무 작은 세계이거든요.”
원장님은 ‘지옥의 산란철’을 막을 방법을 제시했다.
“본래의 세계로 돌려보낸다고 하더라도 다시 산란철이 되면 지구로 넘어올 거예요.”
방법은 간단했다.
하지만 이 간단한 방법을 인류는 17년 동안 해내지 못했지.
“우린 녀석들의 산란 장소를 바꿀 거예요.”
“장소를…….”
“다정 씨가 할 일은 제가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산란 장소를 조성할 동안 대륙 거북이들이 ‘알’을 낳는 걸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녀의 이어진 말에 이번 일도 대단히 피곤하고 골치 아플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알을 훔치기 위해 몰려오는 ‘헌터’들로부터 둥지를 지켜낼 것.”
소문은 들었다.
지옥의 산란철이 이제 더 이상 재앙이라기보다 헌터들의 ‘한몫 챙길’ 노다지가 되었다는 소문을 말이다.
대륙 거북이의 알을 노리는 헌터와 길드, 또한 세계 각국의 정부 소속 교섭인들.
‘그걸 나 혼자 어떻게 다 상대해?’
“제가 어떻게 헌터들과 싸우죠? 1 대 1로 다이다이 깨면 모를까, 몰려드는 능력자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원장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괜찮아요. 제가 미리 ‘으름장’을 놓았으니까. 그럼에도 덤비는 무모한 자들이 있을 테지만, 얼뜨기, 머저리들이니 다정 씨의 힘이면 충분해.”
“그렇군요. 용의 가디언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 박고 싸워야 하는구나.”
투정을 부리자 원장님은 손바닥을 추켜올렸다. 아, 맞다. 그녀는 용이었지.
아직까지 제대로 맞아 본 적은 없지만 언제라도 그녀의 변덕을 대비해 둬야 한다는 걸 까먹었다.
선을 넘은 건가?
눈을 찔끔 감았을 때였다.
그녀의 손이 내 머리를 매만진다.
뭔 짓인가 싶어 눈을 떠 보니, 그녀는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어린아이 칭찬하듯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괜찮아요.”
부드러운 말, 흔들리지 않는 눈빛. 정말 날 믿는다는 듯.
그녀가 말했다.
“다정 씨의 힘이 정말 마물이 가진 마나의 특성을 빌려 오는 것이라면, 장담컨대 그 어떤 강한 헌터가 와도 다정 씨를 해칠 순 없을 거예요.”
날 믿어 주는 그녀에게,
내가 해야 할 건 불신이 아닌 신뢰를 주는 것이다.
“성과금은 당연히 주시겠죠?”
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요.”
*
원장님의 전송 마법이 끝났다.
울렁거리는 속을 참지 못하고 한바탕 음식물을 게운 후,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이 전이로 생겨난 이계 비경이구나.
바다 한복판에 자리한 거대한 섬, 아니 동굴이다. 삼면이 반짝이는 석벽으로 막혀 있고, 유일하게 뚫린 입구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보였다.
마치 캐리비언의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곳이다. 망망대해에 우두커니 자리 잡은 거대한 동굴,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돌들로 이루어진 벽, 지면에 깔린 녹색 모래.
분명 지구엔 없던 환경,
전이 이후 지구와 동화된 이계의 ‘환경’.
‘느껴진다. 곧 있으면 오겠구나.’
난 미리 이곳에서 대기했다.
거북이들은 도착하지 않았으나 벌써부터 느껴졌다. 거대한 생명체가 다가오는 기척이!
갯바위 옆에 숨어 긴장하며 기다렸다. 마침내 바다로부터 기어 올라오는 거대한 거북이가 보였다.
생김새는 바다거북과 같았으나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 마치 작은 언덕이 움직이는 듯했다.
놈이 들어오자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옷이 홀딱 젖었다. 다행히 방수복을 입고 있어 안쪽 옷은 멀쩡했다.
‘어우, 눈깔 하나가 수영장만 하네. 헤엄쳐도 되겠어.’
거대한 동굴을 꽉 채우며 들어온 대륙 거북이는 알을 낳기 위해서인지 몸을 바동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동굴이 진동한다. 난 떨어지는 종유석을 가까스로 피해 내며 생각했다.
인류가 속수무책인 이유가 있었네. 저런 걸 무슨 수로 막겠어?
한 마리면 모를까, 저런 거북이가 수십 마리다.
대륙 거북은 알을 낳고 다시 바다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마물이긴 하나 육지에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가는 거북이의 출산 습성과 같다.
난 가까이 다가가 알을 관찰했다.
무척이나 작다.
저속하게 표현하자면 어미의 크기를 비해 발톱의 때만큼 작다.
알은 겨우 세 개, 아무리 둘러봐도 세 개뿐이다. 많은 알을 낳는 바다거북과 다르구나.
콰르르-!
다시 바닷물이 밀려온다.
난 구경을 멈추고 재빨리 갯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한 마리가 떠난 후, 곧바로 다른 대륙 거북이 올라왔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알을 낳을 장소를 살피더니, 첫 번째 녀석이 낳은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알을 낳았다.
그 후로도 수십 마리의 대륙 거북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를 지키며 같은 장소에 알을 낳았다.
‘알을 적게 낳는 대신에 임신한 암컷끼리 모여서 같은 곳에다가 낳는구나.’
알을 낳고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경이롭구나.
물론 난 출산에 대해선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다만 녀석들이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녀석들의 출산은 정말 경이롭고 신비했다.
녀석들은 제 덩치에 비해 너무 작은 새끼를 낳았다. 어미는 낳은 새끼를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책임한 건 아니다.
‘알을 낳기 위해 대체 어디에서부터 지구까지 온 거니?’
모성애가 없는 게 아닌 것이다.
녀석들이 알을 낳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교감하지 않아도, 간절하게 새끼의 생존을 원하는 어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저 자손 증식 방법이 다른 것이다.
예상컨대 대륙 거북이들이 본래 살던 세계는 저 거대한 덩치로도 방심할 수 없는 크고 위험한 괴물들로 꽉 찬 곳이라, 포식자로부터 알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안전한 곳을 찾고자 나선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새끼를 낳는 거북이들처럼, 녀석들은 ‘세계’를 넘어 산란 장소를 찾아다녔다.
긴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새끼들을 위한 것, 그러니 지구까지 넘어와서 알을 낳는 게 아닐까?
스무 마리의 대륙 거북들이 출산한 자리엔 내 머리통만 한 하얀 알들이 가득했다.
원장님이 새로운 산란 장소를 마련하면 연락을 준다고 했었지.
부디 그때까지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