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원 펀치
은밀하게 접근해 오는 요트, 수상한 몸놀림으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
‘젠장.’
원장님의 예상이 맞았다.
별일 없길 바랐으나 감히 드래곤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범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곱 명의 외국인이다.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으로 보아 헌터가 분명하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다 알을 발견하곤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OH! shit!”
하지만 이내 이곳에 자기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난 가만히 갯바위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으나, 헌터들은 다른 사람이 있는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큰 리액션으로 놀라며 비명까지 내질렀다.
당황하던 그들은 날 보며 뭐라, 뭐라 영어로 씨불이기 시작했다.
‘생김새로 보면 미국인 같은데.’
난 번역기(전이 이후 번역기는 필수가 되었다. 기술도 발달하여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이 뛰어났다.)를 켰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혹시라도 번역기가 잘못 번역할까 봐 딱딱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그들도 번역기를 키더니, 내 말을 알아듣고 질문에 대답했다.
“우린 자유 용병들이오! 허가증은 미국에서 발행했으며, 마물 사냥에 대한 면허증도 있소.”
일곱의 헌터 중 선두에 선 자가 품에서 코팅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진짜겠지. 뭐, 가짜면 어떻고.’
그들은 마물을 사냥할 권리를 획득한 용병들이었다. 아마 대륙 거북의 알을 채집하기 위해 왔겠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헌터들은 먼저 소속을 밝혔다.
긴장하나 적대하진 않는다.
그들도 원만한 상황을 원하는 듯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무어라 대답할까?
고민하던 난 짧게 말했다.
“마물원 직원인데요.”
번역은 오류가 없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헌터들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장이라도 난줄 알고 애꿎은 번역기의 전원을 껐다 켰다.
다시 한 번 말하자 그제야 알아듣는다. 여전히 이해는 안 되는 모양이지만.
“우리들은 이곳에 대륙 거북의 알을 포획하기 위해 왔습니다. 마물원이라는 곳에 소속된 남자,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알을 지킨다.’
아냐,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자.
“원장님 기다리는데요.”
말은 되더라도 대답은 되지 않는다. 뜬금없이 나온 원장이란 말에 중년의 근육질, 전형적인 외국인 마초로 보이는 남자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작은 동양인, 이곳이 대륙 거북의 산란 장소임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또한 특수한 장비가 없으면 이곳에 오지 못한다. 숨기지 말고 목적을 말해. 우린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갯바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입고 있던 방수복을 벗었다.
‘어이없지? 나도 없어.’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화려한 턱시도. 그들도 표정을 찌푸리지만 어쩌겠는가? 용의 취향인 걸.
“그래. 잘 알고 있네.”
난 남자가 했던 말은 그대로 돌려줬다.
“이곳에 대해 그리 잘 알면서 니들은 왜 온 거요? 나와 당신들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아니오. 용의 경고를 몰랐던 건가? 아니면 설마 엄포에도 무시하고 들어온 거?”
대답하지 않고 날 파악하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는 남자다.
하지만 쉽게 목적을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난 알을 지키러 왔으니까.
“…당신도 알잖아. 이곳에 드래곤은 없다.”
오호라.
이미 원장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가?
“그래, 알긴 아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알았냐고.”
답답할 것이다. 난 헌터들의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어차피 난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니 이 흐름은 좋았다.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던 헌터들은 결국 내 물음에 먼저 답했다.
“내 동료의 능력 때문이오.”
일곱 명의 헌터 중, 갈색 머리를 한 젊은 백인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난 탐색 능력을 지녔어요. 여기, 특수 능력을 보증하는 자격 서류의 사본입니다. 원하신다면 가져가세요.”
아메리카는 헌터에 관련된 모든 것에 서류가 필요하다더니, 별게 다 있구나.
“됐고, 말로 설명해 보세요.”
여자는 리더를 바라보며 허락을 구했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마나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그리고 드래곤은 그 특유의… 초콜릿으로 치면 진한 다크 초콜릿, 육고기로 치면 육즙이 풍부한 AAA급 스테이크…….”
“안젤리나, 설명이 길어. 간결하게 말해.”
“아무튼 난 드래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확실히 이 근처에 드래곤은 없어요. 확인하고, 또 확인해 봤으니까 장담할 수 있어요. 애초부터 놈들의 변덕스러운 장난이었던 거예요.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용이니까… 뭐. 어쨌든.”
헌터들의 리더가 말렸으나 기어코 끝까지 말을 하는 여자였다.
난 여자의 말이 끝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아닌데.”
“뭐?”
작게 말해 듣지 못하자,
동굴이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철썩!
마침 파도가 밀려와 거친 물살이 헌터들의 등을 찰싹 때린다.
“드래곤은 온다!”
내 고함과 파도가 맞물리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극적인 연출이 되었다.
‘아니, 왜 파도가 치고 지랄이야?’
덕분에 그들뿐만 아니라 나도 뻘쭘함을 느껴야 했다.
뺨을 긁으며 머쓱하게 말했다.
“어쨌든 알을 가지고 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고. 물러나는 게 좋을 거요. 내가 아니라 드래곤이 혼내 준다니까?”
…….
정적이 흐른다.
그들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단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할 뿐.
‘물러나진 않겠구나.’
리더가 나서서 말했다.
“좋소. 당신이 먼저 이곳에 왔으니 우리가 사냥감을 빼앗는 꼴이 되었군. 하지만 우린 용병이지 무법자가 아니오. 이익을 나눕시다. 안젤리나의 말처럼 이곳에는 드래곤은커녕 헌터들과 교섭인들도 없소. 귀찮은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오. 나눈다고 하더라도 개인당 몫은 상상을 초월하겠지. 원한다면 우리가 판매 중개인도 알선해 드리지.”
남자의 제안, 말이 길었으나 내 대답은 짧았다.
“싫어요.”
“…다 가질 생각이오? 무모한 판단을 하지 마시오. 이 바닥에서 욕심이 많으면 큰일을 당한다오.”
“아니, 난 다 가질 생각이 아니야.”
젠장.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못할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난 알을 지킬 겁니다.”
“지켜?”
입을 다문 채 날 보던 리더는 보다 굳은 눈빛이 되어 말을 이었다.
“어째서?”
그래, 어째서일까.
원장님의 명령을 제외하고 난 어째서 알들을 지키고자 하는 걸까?
“불쌍하잖아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죽으러 가는데. 알을 사 간 사람이 알 통조림으로 만들지, 관상용으로 냄새나는 수조에 처박아 둘지 어떻게 알아?”
남자는 피식 웃었다.
어이가 없겠지.
이해는 한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별종이다.
“겨우 그딴 이유로… 거짓을 말할 거면 보다 그럴 듯하게 하시오. 왜 지구에 해만 끼치는 마물을 불쌍하게 여기는 거지? 당신은 피를 빨아 먹는 모기 따위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라도 한단 말이오?”
“일단 질문에 답해 주자면 모기는 나도 싫어해. 여름마다 제발 가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안 그래도 말이 잘 안 통하는 놈들인데. 그래도 물면 어쩔 수 없지, 눈 찔끔 감고 죽일 수밖에. 그래도 난 시도는 해 보거든.”
리더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는다.
“아까부터 이해 못할 말들만! 머저리 병신이었군. 괜히 시간만 지체했어.”
난 무시하며 질문했다.
“그래, 넌 왜 해만 끼치는 마물의 알을 아득바득 가져가려고 하는 건데? 결국 팔아먹기 위해서잖아?”
마물들을 사냥하는 헌터들 중에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가 있을까? 왜 항상 가장 많이 사냥당하는 마물들은 ‘비싼 몸값’을 자랑하지?
“한 가지만 말해 줄게. 이제 대륙 거북에 의한 재앙은 없을 거야.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거니까.”
내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던 남자도 자신만만한 내 행동에 결국 의문을 지우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으나 그건 안 돼.”
“역시, 니들 이번이 처음이 아니구나.”
알을 포획하기 위해 움직이는 능숙한 행동들과 드래곤의 경고에도 침범하는 대범함. 이 녀석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상컨대 이미 몇 번 알을 훔친 적이 있겠지.
“당신을 대륙 거북의 알의 가치가 얼마인지 알긴 하오? 3년마다 한 번, 단 한 번의 헌팅으로 다음 번 헌팅까지 호화롭게 살 수 있소. 마지막으로 묻겠소. 이득을 나누지. 아니면 결국… 헌터들의 방법을 따를 수밖에.”
뭐가 지구에 해를 끼치는 마물인가? 재해, 해일, 부수적인 피해. 그딴 건 전혀 관심이 없잖아.
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외쳤다.
“좆까.”
(FUCK!)
*
그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서로 속닥속닥 대화를 나눈다.
젠장,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
녀석들이 비교적 상식적인 현대인의 이성을 가진 헌터들이라고 하더라도, 헌터들끼리의 싸움이 얼마만큼 처절하게 진행되는지 많은 미디어 매체에서 봐 왔고 최근엔 직접 경험까지 했다.
괜히 능력자들이 울타리를 찾아 길드나 국가에 소속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난 맞서는 걸 피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이유는 간단하다.
“포근아.”
턱시도 안에 숨어 있던 포근이(물을 싫어하는 야옹이는 데려오지 않았다.)가 내게 힘을 빌려 준다.
허리춤에 저절로 생겨나는 붉은 장검과 권총.
명백한 적의의 표출에 헌터들도 대응한다. 전이 이후에도 여전히 대인전에선 강력한 무기, 총을 꺼내든 것이다.
‘선빵 필승.’
내 쪽이 훨씬 빨랐다.
불의 기운을 응축하여 탄으로 쏘았다. 웬만한 헌터는 즉시 전투 불능으로 만들 위력이다.
콰앙!
그러나 헌터들이 당하는 일은 없었다. 일곱의 헌터 중 가장 큰 덩치를 가진 흑인 남자가 홀로 막아선 것이다.
‘강화 능력자.’
그는 온몸이 각지고 경화되어, 마치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다.
“맥, 안젤리나를 우선으로 보호해.”
맥이라는 자, 팀에서 방어 역할을 맡은 듯하다. 경화된 몸은 곧바로 원래대로 돌아왔으나, 총을 쏘면 다시 변하겠지.
“사격!”
남은 다섯 헌터의 대응 사격이 시작되었다.
전에 싸움에선 이 상황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함정을 파고 전면 대결을 피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화르르!
왼손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불꽃, 순식간에 전신을 뒤덮는 큰 원반 형태로 바뀐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빗발치는 총알은 모두 불꽃을 두른 방패에 가로막혔다.
강화된 턱시도의 효과다.
원장님은 즉시 피드백을 수용하여 턱시도에 방어 기능을 추가했다. 왼손의 방패는 마찬가지로 샐러맨더의 기운을 사용하여, 일정 운동 에너지를 차단하는 기능이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가 따로 없다.
총알이 우수수 떨어진다.
총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걸 깨닫자 헌터들 중 다섯 명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난 총을 집어넣고 검을 쥐었다.
하지만 야옹이와 교감하지 않은 난 단지 샐러맨더의 불꽃을 다루는(충분히 평범함을 넘어섰지만.) 남자에 불과했다.
아, 하나가 더 있긴 하다.
헌터들은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좁혔다. 특히 선두의 리더, 강화 능력자인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지척까지 뛰어와 날카로운 군용 나이프를 휘둘렀다.
난 오른팔을 들어 나이프를 막았다.
저 남자는 헌터다. 평범해 보이는 나이프라도 능히 거목을 잘라 내겠지.
‘고통도 없다.’
하지만 내 팔을 잘라 내기는커녕 턱시도를 찢지도 못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만들었다더니 대단하잖아?’
카르마 길드의 헌터에게 갈기갈기 찢겼던 턱시도는 원장님이 다시 만들 때 내구성도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
겉보기엔 천으로 만든 옷이나, 강철보다 단단하고 고무보다 질기다. 게다가 용의 마법에 의해, 난 충격도 받지 않았다.
나이프를 막으며 곧바로 주먹을 뻗었다. 남자는 재빨리 반응하며 두 팔을 들어 내 주먹질을 막았다.
빠각!
그러나 확실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날아간 남자는 한참을 데굴데굴 굴러 나자빠졌다.
선두의 리더가 당하자 덤비던 헌터들이 행동을 멈추고 뒤로 물러난다. 난 주먹을 추켜올리며 위협했다.
“한 대당 한 놈, 원 펀치 쓰리 강냉이.”
황소 괴물과 교감한 후, 강화 능력자에 못지않은 괴력이 생겨났다. 그래,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면 난 달라졌기 때문이다.
“빨리 끝내자. 그 편이 니들에게도 더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