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거인
‘한 대 맞더니 도망치기만 하네.’
대치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놈들은 날 해치지 못했으나, 나도 놈들을 해치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맞붙으면 모를까, 헌터들은 야비하게도, 혹은 지능적이게도 싸움이 아닌 전투(戰鬪)를 했다.
특히 성가신 건 헌터들의 무기였다. 살상력을 지닌 무기뿐만 아니라 마물을 포획하는 강력한 마법 도구도 있었다.
이계의 지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흔히 구속구라고 부른다.
황소 괴물을 묶어 놨던 마도구의 일종이다. 구슬에 닿으면 대상을 마나로 포박해 버린다.
느린 마물을 포획하는 용도인지 발사되는 구슬은 날 덮칠 만큼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날 지나쳐 단단한 바위에 달라붙은 구속구는 갈라지며 무수한 촉수를 뿜어냈다.
그 모습이 마치 페이스 허거처럼 보였다.
당하면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원거리에서 총을 발사하면 맥, 혹은 염력처럼 기이한 능력을 가진 여자에게 가로막혔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가면 전술적으로 물러난다. 야옹이의 민첩함이 없는 난 뜀박질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었기에, 내 속도론 녀석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방심을 하면 총알이 빗발치고, 심심하다 싶으면 육탄전을 시도해 온다.
그러다 잡았다 싶으면 물러나고 성가시기 짝이 없다.
‘개개인이 강하진 않아.’
원장님의 말처럼 용의 경고를 무시한 헌터들, 용의 무서움을 모르는 초짜들이라 능력은 별 볼 일 없었다.
하지만 약해서인지, 경계심은 훨씬 심했다. 내가 힘으로선 확실한 우위였으나, 머릿수는 녀석들이 더 많다.
‘힘을 빼 놓겠다는 거지?’
녀석들은 사자라기보다 하이에나 같다.
일곱 명의 헌터들은 제각기 가진 능력이 달랐다. 들어 본 적이 있다. 헌터들은 능력에 따라 역할을 맡는다고 했지.
TV 다큐멘터리 ‘헌터들의 삶’이란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이야기다.(재미가 있어서 끝까지 다 봤었다.)마물 사냥이든, 이계인 대응이든, 무슨 목적이든 간에 능력자들은 주로 팀을 짠다.
그리고 팀은 보통 최소 셋 이상이 협력하는 걸 뜻하며, 특정한 포메이션을 이룬다.
탐색, 공격, 방어.
세분화하면 수많은 갈래로 나눠지지만 큰 줄기는 이러한 세 개다.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능력자들이 팀을 이루어 협력한다.
‘올라운더’라 불리는 역할이 따로 있는 모양이지만, 대부분 1급의 마나를 가진 괴물들이니 저들 중에는 없을 것이다.
아마 갈색 머리 여자가 탐색, 내 공격을 막았던 흑인 아저씨가 방어의 역할을 맡고 있겠지.
리더를 포함한 나머지 다섯 명은 공격을 맡고 있는 걸로 보인다. 약하지만 다섯의 연계는 잘 짜인 연극을 보는 듯했다.
‘사실 시간은 내 편, 원장님만 오면 끝이지만…….’
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달라진다고 했다. 이전의 나처럼 행동하면 똑같을 뿐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방패를 들지 않은 채 무작정 뛰어갔다.
하지만 도망치던 헌터들은 이번엔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대장님, 준비는 끝났어요. 명령만 하시면 투입될 거예요.”
“좋아. 전 대원, 강하 실시.”
무전기로 명령하는 남자.
여섯의 헌터에게 말하는 게 아니다.
난 뜀박질을 멈추고 동굴의 위를 바라봤다. 천장에는 작은 빈틈이 있었다.
그리고 빈틈으로부터 로프가 내려온다. 이내 중무장한 사람들이 로프를 타고 강하한다.
시간은…….
저들 편이기도 했었구나.
“말했잖은가. 무모한 선택을 하지 말라고. 어리석음으로 이익을 챙길 기회를 놓쳤구나.”
“닥쳐. 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하하. 눈치는 빠르군.”
스물이 넘는 헌터들이 날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눈다.
피융-!
발사된 구속구,
적어도 30~40개.
아니, 더 많을지도.
한꺼번에 날아왔다.
피할 재간이 없다.
으득-!
한 번 당하자 속수무책.
내 몸은 페이스 허거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구속구에 묶인 채 그들이 알을 훔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으음.”
그때였다.
망에 알을 담은 채 옮기던 헌터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조심스레 망을 내려놓으며, 리더에게 말했다.
“대장, 어쩝니까? 벌써 부화해 버렸는데.”
망에서 뽈뽈뽈 기어 나오는 작은 생명, 대륙 거북의 새끼다.
무척 작았다.
어미가 지구에서 가장 큰 마물인데, 새끼는 너무 왜소하고 약해 보였다. 녀석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말을 거니’ 아직 떠지지도 않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사랑스러웠다.
녀석은 날 어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날 향해 작은 지느러미 같은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기어오기 시작한다.
“부화된 새끼는 큰 가치가 없다. 죽여서 동양인에게나 팔아 버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헌터의 손에 들린 기다란 장도가 추켜올려진다.
남자는 새끼 거북을 죽이는 행동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그래, 녀석들에겐 새끼조차 마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손을 뻗으면 닿은 거리다.
하지만 구속구에 묶인 내 몸은 옴짝달싹지 못했다.
바로 앞, 애타게 우는 새끼 거북이 있는데. 곧 울음을 멈출 새끼 거북이 앞에 있는데.
죽어 갈 녀석이 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어?”
정신을 차리자 난 한 손으로 새끼를 죽이려던 헌터를 움켜쥐고 있었다.
*
순식간에 구속구를 뜯고 사람을 움켜쥘 만큼 커진 후로도, 몸은 점점 자라났다.
마침내 사람들마저 내 새끼손가락보다 작게 보일 만큼, 내 몸은 커졌다.
씁-!
헌터는 내 손바닥을 칼로 쑤시고 달아났다. 하지만 기다란 장도도 이쑤시개에 찔린 듯 약간 따끔할 뿐이다.
도망치던 헌터는 그야말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무척 당황하여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다.
수십 명의 헌터들은 멍하니 거인이 되어 버린 날 바라봤고, 난 걸리버가 된 기분을 느끼며 멍청하게 서 있기만 했다.
‘대체?’
그 높아 보이던 동굴의 천장에 머리가 닿는다. 난 지금 세계의 모든 기네스를 깬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람,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 세계에서 가장 페니스가…….
어쩌다가?
그때, 턱시도의 칼라에 장착된 무전기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도 느껴져요! 이 마나! 다정 씨, 성공했군요!
말을 하자 내 목소리는 마치 확성기 수십 개를 틀어 놓은 듯 시끄럽게 울러 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말하는 것만으로도 헌터들은 귀를 틀어막는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원장님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저 지금 엄청 커졌는데요.”
-제가 말했죠?
무전기 너머로도, 원장님의 목소리는 매우 들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정 씨의 힘이 마물이 가진 마나의 힘을 빌려온다면, 이번 일은 그 어떤 헌터가 와도 결코 다정 씨를 해치지 못할 거라고요! 지금 다정 씨는 인간들이 대륙 거북이라 부르는 녀석의 마나를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대륙 거북의 마나…….’
새끼 거북,
너구나.
-새끼 때 작더라도 커 가며 마나를 많이 품을수록 몸은 무지막지하게 커져 가요. 아주 작은 마나의 양으로도 몸은 엄청나게 성장하죠. 마나의 특징을 굳이 말하자면 거대화랄까요?
샐러맨더는 불의 기운을 가진다.
마츄는 오물이 묻지 않으며, 늪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
그렇듯, 마물이 가진 마나의 힘은 종마다 모두 다르다.
대륙 거북이 가진 마나의 힘은 거대화였다.
-자, 그럼 힘내요! 곧 있으면 갈 테니까, 그전까지 다정 씨가 해낼 수 있죠? 만약 실패하면 수당금은 없을 거야.
흐음.
원장님과 대화를 끝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얼빠진 표정의 헌터들이 보인다.
생태계에서, 당연히 마물도 포함하여, 덩치는 가장 큰 무기다. 개미가 아무리 턱 힘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곰을 이길 수 있을까?
난 냅다 손바닥으로 지면을 후렸다.
콰아앙-!
크레모아라도 폭발한 듯 동굴이 울린다. 모래사장은 움푹 파여, 바닷물이 퐁퐁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격파하듯 주먹을 내려치자, 헌터들은 여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졌다.
으하하-!
썩 재미있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헌터들, 그나마 리더의 명령으로 구속구나 유탄 발사기를 사용하며 저항했으나 내겐 전혀 피해가 없었다.
골리앗이 된 기분이다.
잠깐, 다윗에게 죽지 않던가?
어쨌든 지금의 난 두려울 것이 없다.
마치 천하제일 무술 대회에서 거대 원숭이로 변해 주변의 모든 걸 짓밟는 손오공이라도 된 것 같다.
쾅! 쾅!
그런 느낌으로 헌터들을 압도했다. 상식을 벗어난 덩치에는 어떤 기술도 지략도 필요 없었다.
“어딜!”
도망치지 못하도록 요트를 박살 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헌터들을 긁어모으듯 잡아서 구속구가 한가득 담긴 상자에 던져 버렸다.
헌터들이 저항하나, 내 공포스러운 덩치를 감히 당해 내지 못했다.
원장님이 도착했을 땐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모든 헌터들은 기절하거나 구속구에 묶인 채였고, 부화한 새끼 거북을 포함하여 모든 알을 멀쩡하게 지킬 수 있었다.
원장님이 말했다.
“다정 씨… 장한… 역시… 가디언…….”
덩치가 워낙 커져서 원장님이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에? 뭐라고요오?”
얼굴을 찌푸리며 되묻자 원장님은 시끄러운 듯 귀를 살짝 막더니, 손짓 한 번으로 날 원래대로 만들었다.
“수고했어요.”
두 번 말하긴 싫은지 간단하게 칭찬하는 원장님이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원장님은 인간들에게 다소 자비로웠으나 글쎄, 용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선택권을 줄 거예요. 지금까지 대륙 거북의 알을 판매하며 기록한 장부를 주든가, 죽든가.”
“와, 역시 원장님은 진짜 자비로우시다.”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용병 길드는 몰락하겠지만 충분히 자비롭지.
죽는 것보다야.
원장님은 알과 ‘새끼 거북’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금방 돌아왔다.
“이제 다 끝난 건가요?”
“네. 대륙 거북은 이제 지구에 오지 않아요.”
“만약 다시 오면 어떻게 하죠?”
“그럴 일은 없어요. 알을 수거하는 이유, 말해 드렸죠?”
원장님은 ‘드래곤’이 아니면 결코 못할 일을 하고 왔다.
“버려진 세계와 녀석들이 살던 차원을 수복하고 연결했어요. 사실 녀석들이 지구에 온 이유도, 원래 알을 낳던 세계가 ‘멸망’해 버렸기 때문이죠. 그곳에 알을 가져다 놓고 출산 환경을 완벽하게 조성했으니, 원래 했던 것처럼 지구가 아닌 그곳에서 알을 낳을 거예요. 혹시 다시 지구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제 기운’을 살짝 뿌려 놨으니 도로 돌아갈 거예요.”
뭔가 스케일이 커서 쉽게 이해하진 못했으나 원장님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렇구나. 우린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원장님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더니, 빨간 눈동자로 날 뚫어지게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우리라고요?”
잘못 말한 건가?
“죄송합니다. 제가 망언을…….”
“아니, 아니. 우리, 우리라는 말이 꽤… 듣기 좋아서 그래요. 하핫.”
마물원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원장님은 기분이 좋은지 특별 수당을 두둑하게 챙겨 줬다.
원장님은 ‘우리’라는 말에 왜 그렇게 좋아한 걸까?
모를 일이다.
*
원반을 던지자,
“물어와!”
후다닥-!
포근이가 물어온다.
“호호, 누구 새끼인지 몰라도 참 똘똘해.”
포근이가 꼬리를 파르르 흔들며 물고 온 원반을 뱉어 냈다. 플라스틱제 원반은 녀석의 입 자국대로 녹은 상태였다.
난 다른 원반을 꺼내 다시 던졌다. 원반은 1회용이다. 포근이와 한 번 놀면 수십 개의 원반이 필요했다.
“하하, 녀석! 신나는구나? 어떻게 오줌과 불을 같이 싸니? 아빠한테 불 쇼라도 보여 주고 싶은 거야?”
한참 놀던 녀석은 혀를 날름거리며 오줌을 쌌다. 그리고 오줌은 기름이라도 되는 듯 포근이의 불꽃과 만나더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녀석을 애견 공원에는 데려가지 못한다. 한 번만 더 신나 하다간 공원을 몽땅 태워 먹겠다.
놀이 후에 배가 고픈지 배를 긁으며 낑낑거린다. 난 가져 온 썩은 물고기를 던져 줬다.
뀨!
맛있게도 먹는다.
그러다 반 토막 난 생선을 입에 물고 날 보고 먹으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린다.
아니, 난 됐어. 너 먹어.
으윽, 썩은 내, 미안하다. 포근아. 네 입 냄새는 아직 적응이 안 돼.
“맛있니? 많이 컸구나. 이제 아빠 찌찌도 안 먹고.”
대륙 거북 사건 이후로 헌터들과 엮이지 않으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마츄들도 번성하여 백 마리를 넘겼고, 샐러맨더도 훌쩍 커서 중형견 크기만큼 성장했다.
이제 내 소매 안에서 낮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드디어 모유를… 떼고 썩은 고기를 먹게 되었다.
몸은 편했으나 왠지 기분이 멜랑콜리했다. 커 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설마 내가 불꽃 모유를 먹이는 걸 아쉬워할 줄이야.
포근이가 커 갈수록 마냥 내가 키울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녀석은 내 애완동물이 아니다. 샐러맨더들과 지내며, 암컷을 만나 새끼를 낳고 샐러맨더처럼 지내야 한다.
그래서 틈틈이 합사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여전히 샐러맨더 무리는 포근이를 받아 주지 않았다. 기이한 건 새끼 때보다 오히려 포근이가 성장할수록 더 싫어했다. 정말 ‘무서워할 만큼’ 싫어하는데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다정 씨.”
포육실에서 하루 종일 포근이와 놀며, 조금 지루하던 찰나였다.
포육실로 들어온 원장님이 말했다.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다. 그녀의 옷엔 어떤 짐승의 털이 가득 묻어 있었다.
“오랜만에 능력 발휘해서 마물 좀 관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