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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42화 (42/258)

# 42화 거북 (1)

정신을 차리고 보니 최후의 1인이 되어 있었다. 훔바바다들은 성인 남성보다 훨씬 강했으나, 황소 괴물 덕에 괴력을 가진 데다가 야옹이와 교감하여 압도적인 반사 신경을 가진 내겐 상대가 되지 못했다.

“깝치지 마라.”

멋있는 말을 내뱉는다.

비록 작더라도 가장 강한 수컷은 나다. 이 정다정이라는 것이다. 훔바바다들은 감히 내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제 보상을 받을 때가 왔다.

[새끼! 새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

“안 돼. 정신 차리자.”

교감이 깊어지며 선을 넘을 뻔했다. 하마터면 아주 깊고 먼 곳까지 갈 뻔했다.

훔바바다들을 뒤로하고 게이트까지 가려고 했으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이라도 볼까?’

궁금했다.

미친 생각이지만 과연 훔바바다들의 공주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절대 다른 생각을 품은 건 아니다. 다만 생김새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잠자코 기다렸다.

훔바바다들의 공주는 무리 생활을 하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암컷의 개체가 극히 적은 사회라 보호의 개념으로 따로 생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다리고 있자 마침내 나무 너머로부터 그녀가 나타났다.

우지끈!

200kg의 수컷 훔바바다들도 견디는 굵은 나뭇가지를 하나같이 부수면서.

‘생각해 보니 매뉴얼에 개체마다… 무게가 극심한 차이가 있다고 했었지?’

동물 다큐를 간간히 보는 사람들은 언뜻 수컷이 크고 강하다는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알았다.

동물 다큐를 자주 보는 난 야생에선 사실 암컷이 대부분 덩치가 크며 강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걸.

특히 벌레에게서 확연히 드러나지만, 하이에나처럼 동물의 세계에서도 암컷이 덩치가 크고 강한 건 흔한 편이다.

훔바바다들도 그랬다.

다만 너무 그랬다.

패배한 수컷이 참지 못하고 공주에게 달려든다. 정확히 한 방, 나조차도 몇 번 토닥거렸던 수컷 훔바바다를 일격에 잠재운다.

‘최종 보스다.’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공주는 강력한 사랑의 신호를 보내며 내게 안기려, 혹은 안으려 들었다.

도망쳤다.

그러나 야옹이의 민첩함으로도 도무지 떨쳐 낼 수가 없다.

이대론 잡아먹힌다.

안 돼.

“살려주세요! 원장님!”

공주의 억센 손길이 내 등을 스치고 지나가던 그 순간, 공간이 무너지는 박탈감과 속이 뒤집히는 메스꺼움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의식이 사라지던 마지막에, 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을, 간신히도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가졌다.

‘고마워요… 원장님.’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관리실의 소파였다. 옷은 입은 채로다.

‘입혀 준 건가.’

얼마 후, 원장님이 돌아왔으나 난 차마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내가 훔바바다의 숲에서 생활하던 모습 전부가 녹화된 비디오를 상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난 다정 씨의 저런 모습이 참 좋더라. 발끈하는 게 아주 귀여워.”

부끄러웠다.

*

훔바바다들과의 일이 끝나고 3일 동안 고생한 대가로 이틀의 휴가를 받았다.

이번엔 여름도 다가오겠다, 특별히 원장님에게 부탁해서 나만의 별장에서 지내기로 했다.

“크으, 태평양의 전용 섬이라.”

여자 친구는커녕 친구도 없어 혼자뿐이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캣 맘에게서 받은 태평양의 고양이 섬,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도 없는 그곳에 캣 맘이 남긴 편의시설을 이용하여 끝내주는 휴가를 보냈다.

칵테일과 뜨거운 햇빛, 모래사장과 철썩이는 파도,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혼자만의 휴식을 취한다.

행복했다.

따뜻해.

포근이하고 야옹이도 데려올 것 그랬나?

“날씨가 왜 이래? 웬 먹구름이…….”

파라솔 아래, 모래사장에 몸을 파묻고 한참 일광욕을 즐기던 그때였다.

선글라스 때문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엔 거대한 먹구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커져서, 기이함을 느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저게 뭐야?”

하늘을 가리고 햇빛을 가리며 나타난 무언가는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정확히 ‘떨어지고’ 있었다.

위급하다.

위험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도망쳤다. 교감을 하지 않아 뜀박질은 평범한 남자였으므로, 아주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했다.

콰카아앙-!

모래사장의 모래가 모두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 만큼,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언가의 크기는 어마무시 했다. 하늘에서 떨어졌으나, 운석이 아니다. 아니,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도 의문스럽다. 운석이라면 난 흔적도 없이 소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큰 여파를 몰고 왔으나, 섬을 지울 만큼 파괴적이진 않았다. 마치 하늘과 바다 사이, 그 어느 중간 지점에서 떨어진 듯.

간신히 살아남은 난 정신을 차리고 그것의 상태를 살폈다.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내가 저걸 알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대륙 거북이?”

화창하고 기분 좋던 어느 날,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건 다름 아닌 마물, 한때 알을 낳기 위해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재앙이라 불렸던 거대 거북이.

사태를 파악하고자 했다.

대륙 거북의 ‘머리’가 있는 부분으로 힘껏 뛰어간 난 초롱초롱한 눈(적어도 수영장만 한)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엄마?]

그리고 엄마 소리를 들었다.

“나 네 엄마 아닌데.”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마물이 엄마라고 부르는데 무어라 대답할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침착한 대답이었으나 달리 할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

“아니래도.”

나 네 엄마 아니야.

*

“헉헉.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어!”

녀석은 날 졸졸 쫓아다녔다.

문제는 녀석에게 있어 섬이 아기용 욕조만큼 작다는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덩치로 내게 달려들어 우지끈 깔아뭉갠다면 난 쥐포가 될 게 분명했다.

필사적으로 도망 다녔다.

[엄마!]

녀석이 누구인진 생각해 냈다.

얼마 전, 헌터로부터 구했던 대륙 거북이었다. 그땐 내 머리통만 한 크기였는데 지금은 제 손바닥(정확히는 지느러미)으로 날 뭉갤 만큼 커졌다.

‘장난 아니잖아!’

녀석들의 ‘마나’의 특성이 거대화라는 건 알았으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덩치가 수백, 수천 배로 커질 줄은 몰랐다.

쿠쿠쿠-!

녀석은 그저 반갑게 날 따를 뿐이다. 하지만 녀석이 움직일수록 섬은 엉망진창 쑥대밭으로 변했다.

언덕이었던 곳은 순식간에 뭉개져 평평해졌고, 바위들은 튕겨 나와 포탄이 되어 날아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표현하는 훌륭한 속담이 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기]

비유가 아니라 내가 진짜 쥐가 된 꼴이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간신히 별장에 도착했다.

‘비상벨!’

다행히 헤매지 않고 곧바로 침실에서 비상벨을 찾을 수 있었다.

“원장님! 도와주세요!”

난 녀석의 무시무시한 지느러미가 야자수들을 무참히 부러트리는 걸 지켜보며 다급히 원장님을 애타게 불렀다. 다가온다.

[엄마!]

날 산 채로 뭉개려는 잔인한 녀석! 눈을 찔끔 감고 교감의 끈을 던져 ‘나 네 엄마 아니다’만 외쳤다. 하지만 녀석은 반가움에 미쳐서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마침내 별장마저 무너졌다.

‘하하. 구해 줬던 새끼 거북이가 산만큼 거대해져서 날 깔아뭉개 죽이려고 하네.’

이대로 죽으면 얼마나 허무한가? 저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 가고 있는 많은 생명들 중, 단연 가장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감은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짙어지는 그림자를.

다가오는 거북이를.

[엄마?]

하지만 내가 깔려 죽는 일은 없었다. 난 처음 만났을 때보다 오히려 더 작아진 새끼 거북이가, 그녀의 손바닥에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지켜봤다.

“흐윽, 원장님.”

달려가서 안으려고 했으나 원장님이 손을 내밀어 가로막았다.

“이건 뜻밖의 상황이네요.”

거북은 작아진 채로 원장님의 손바닥 위를 뽈뽈뽈 돌아다녔다.

‘드래곤의 마법인가.’

간신히 죽음을 면한 난 새삼 원장님이 드래곤이며, 아득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 거대한 생명체를 순식간에 저런 꼴로 만들어 버리다니.

“흐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대륙 거북은 지구로 오지 못하는 거 아니었나요?”

감히 드래곤의 말을 의심하는 꼴이었으나 물어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그녀는 분명 대륙 거북의 터전을 복구했다면서 더 이상 지구로 넘어오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어떻게, 왜 넘어왔단 말인가?

원장님은 붉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대륙 거북의 습성 때문이겠죠.”

원장님의 이론은 이랬다.

“대륙 거북의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어미를 찾아가요. 성체까지 빨리 자란다고 하더라도 새끼 때엔 생존율이 극악이라서 무리를 짓기 위해선 어미 세대와 합류를 해야 하거든요. 회귀 본능이 어떤 마물들보다 강해서 심지어 지구에서 알을 낳더라도 차원을 넘어 어미를 찾을 수 있는 거겠죠. 차원을 넘나드는 신비한 마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원장님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새끼 거북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이 개체는 다르군요.”

그리고 내게 내민다.

얼떨결에 새끼 거북을 받아 든 난 녀석이 내게 보내는 격한 애정(진짜 어미에게 향해야 할)을 느낄 수 있었다.

작아진 거북은 방금 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손가락에 머리를 비비적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다른 알들과 달리 너무 일찍 부화한 새끼 거북, 다정 씨가 새끼와 교감하는 바람에 다정 씨를 어미로 인식한 것 같아요. 충분히 커질 만큼 기다리다가, 지구에 발생한 작은 전이를 틈타 돌아온 거겠죠. 무시무시한 귀소본능이에요.”

지금은 용의 마법에 의해 작아진 상태이나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리와 따로 떨어진 개체, 어떻게 보면 내 탓이기도 했다. 돌려보내야 돼.

“어떻게 하죠?”

원장님도 내 생각과 같았다.

“지구에 남기엔 너무 위험해요. 아무래도 어미를 찾아 줄 수밖에 없겠군요.”

“어미가 있는 곳이라면 원장님이 ‘너무 큰’ 세계라고 말했던 곳이요?”

“맞아요.”

원장님에 의해 다른 ‘세계’로 건너간 적은 몇 번 있었다. 특히 기억나는 양해의 바다. 온통 불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세계.

하지만 원장님의 이어진 말에 양해의 바다가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말 위험한 세계죠. 거수들의 세계, 지구 차원보다 100배 이상 더 큰 세계. 대륙 거북조차 그곳에선 평범한 동물. 드래곤인 저조차 방심할 수 없는 지옥(地獄) 중 한 곳.”

온통 겁주는 말만 하더니 갑자기 싱긋 웃으며 내게 손을 내민다.

“나의 가디언, 같이 가 주실 거죠?”

정말 난감하다.

왜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물어볼까?

남우세스러우나 장단에 맞추었다.

“당연하죠. 위대하신 존재시여.”

풉!

하지만 원장님은 명백한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다시는 어울려 주나 봐라.

*

거수들의 세계에 가기 전, 원장님은 날 단단히 준비시켰다.

헌터들과 싸우게 만들거나 마물들 사이에 던져 놓는 평소의 방식과 달랐다.

용이 긴장할 만큼, 정말 위험한 곳이긴 한가 보다.

“턱시도, 업그레이드 버전.”

그녀는 새로운 복장을 선보였다. 패션쇼가 아니었기에 외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뭐가 업그레이드되었는지가 중요하지.

“몇 가지 기능을 추가했어요. 이 턱시도도 다정 씨의 마나로 발동이 되죠. 지금까지 포근이의 기운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미처 쓰지 못했던 기능들을 이젠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저 아이랑 교감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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